지휘자 금난새

지치지 않는 날갯짓으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5월 1일 12:00 오전

포디엄 위에서 오롯이 자신이 살아낸 시간으로 답한 그의 이야기

금난새. 그는 누구인가. 현 성남시향 지휘자 겸 예술총감독, ‘해설이 있는 음악회’의 원조,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지휘자, 그 스스로 브랜드이자, 끊임없는 파생 상품을 만들어내는 CEO다. 그가 1998년부터 이끌어온 유로아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지난해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꿔 단체의 방향성을 곤고히 세워나가는 중이다.
금난새의 활동 중에는 기업과 예술을 잇는 역할도 선명하다. 대표적으로 제주 신라호텔을 비롯한 여러 기업과 시작한 ‘제주 뮤직아일 페스티벌’이 올해 12회를 넘겼고, 2012년부터 고급연회 장소로 잘 알려진 라움아트센터의 예술감독을 맡아 정기연주회를 가져왔다.
학생들과의 교류도 금난새가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다. 2010년 전국 25개 대학 학생들이 모여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로 창단한 대학생연합오케스트라 KUCO(Korea United College Orchestra)의 지휘를 꾸준히 맡아왔고, 마사회가 지원하는 농어촌희망청소년오케스트라 KYDO(Korea Young Dream Orchestra)의 예술감독으로 각 지역을 돌며 지도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모교인 서울예고의 교장도 맡고 있다.
금난새의 행보를 두고, 누군가는 ‘오해’ 혹은 ‘외면’하고, 어떤 이는 ‘열정’ 혹은 ‘프로 정신’에 시선을 둔다. 그래서 만났다. 나는 금난새를 둘러싼 소문을 물었고, 그는 자신이 살아낸 시간으로 답했다.

소문 ① 금난새는 ‘해설 없는’ 음악회는 안 한다?
“물론 해설 없이 연주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지방에 연주를 가서 공연 시작 전, 일부러 객석을 향해 물어봅니다. 멘델스존 교향곡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손드는 사람이 1500석 중에 100명도 안 돼요. 이게 현실이에요. 아직도 갈 길이 멀어요. 그런데도 그냥 연주만 하고 가는 게 나은 걸까요?
공연 전 각 악장의 특징을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3악장은 이 부분이 아름다운데 애정 없이 연주하면 이렇다면서 짧게 연주를 보여줘요. 우리 첫 연습이 그랬는데 연습으로 예쁘게 만든 연주와 비교해보라며 다시 연주하면, 관객들은 무엇이 다른지 단번에 느껴요. 음악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레 생기죠.
1994년부터 예술의전당과 함께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를 시작했는데, 당시 청소년 음악회는 예술의전당과 업계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로젝트가 아니었어요. 다들 모양 좋은 완제품을 가져오는 데만 신경 썼죠.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데려오면 청중이 많이 온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제한된 청중만 불러 모을 따름이죠. 저는 시장과 청중 개발을 위해 청소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결국 20년 전 ‘청소년 음악회’ 관객들이 이제는 교향악축제 객석에 앉아 있잖아요?
해설이 있든 없든 연주가 안 좋으면 사람들은 안 와요. 아무리 친절해도 음식이 맛없고 지저분하면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평론가들의 리뷰에 큰 관심이 없어요. ‘청중이 행복한가?’ ‘그들이 다시 표를 살 것인가?’에 초점을 두죠.
기업들은 고객을 위해 이것저것 챙기고, 서비스를 다하잖아요.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청중은 정말 중요해요. 그런데 음악으로 행복해지고 싶어서 온 사람들을 장님으로 만들어놓고 마음껏 즐기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소문 ② 금난새는 날짜에 구애 없이 서울예고에 출근한다?
“3년 전, 서울예고 교장직 제안을 받을 때 들었던 얘기죠. 연주가 많고 바빠서 소화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더니, 행정적인 부분은 교감이 맡아서 충분히 할 수 있고, 교장은 학교와 학생들에 대한 큰 방향성을 제시하면 된다는 거였어요. 날짜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요. 그런 부분이라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수락했어요. 그렇다고 소문처럼 1년에 3일만 학교에 가겠어요?(웃음)
학교와 학생들에게 필요한 방향을 고민하다 새롭게 시도한 몇 가지가 있어요. 기존의 것은 선생님들이 이미 잘하고 계시니까, 저는 다른 발상으로 아이들의 사고를 넓히려는 의도에서 시작했죠.
먼저, 교장실에 있는 테이블과 무거운 소파를 치우고, 피아노 한 대를 삼익악기에서 빌려왔어요. 아이들이 언제든 와서 연주할 수도 있고, 제가 있을 땐 자유롭게 오디션도 볼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또 솔리스트 중심 교육에 균형을 잡기 위해 실내악 비중을 늘렸어요. 정기연주회도 2중주, 3중주를 하도록 독려했죠. 이번 정기연주회는 현악 4중주를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생각해보면 무용, 미술, 음악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정작 학교에선 학생이나 전공 간 교류가 활발하지 않아요. 그래서 발레 전공생들 공연 때 음악과 학생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를 할 수 있게 시도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미술과 학생들만을 위한 해설음악회도 열었죠. 연주는 음악과 학생들이 맡았고요. 성악 전공생들은, 노래를 잘하는데 상대적으로 연기가 약한 편이라 연출가를 초대해 연기 수업을 받는 시간을 가졌어요.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는 학부모도 있었는데, 정작 학생들 반응은 달랐죠. 평소 수업에선 배울 수 없는 부분들을 보고 경험하게 됐으니까요.
어느 날은 무용과 학생들이 시험 치르는 걸 봤어요. 대기하는 중에도 얼굴에 미소 짓는 걸 잊지 않고 연습하는 모습에 놀랐어요. 음악하는 친구들은 표정이 정말 심각하거든요. 무대에 드나들고, 인사할 때 표정까지도 커뮤니케이션의 한 수단이 되잖아요. 그래서 음악과 아이들을 데리고 무용과 아이들이 하는 걸 같이 본 적도 있어요. 저런 부분을 배워보자는 취지에서.
교장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 제가 언급한 것이 있어요. 받은 연봉을 학교를 위해서 쓰겠다고. 저는 독일 유학 시절에도 레슨비를 낸 적이 없어요. 세금도 안 내고, 그 나라를 위해 한 것도 없는데 말이죠. 독일은 지식에 굶주린 사람에게 값없이 가르침을 줬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받는 돈은 환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시장을 개척하고, 지휘를 해서 버는 돈은 마땅히 받아야겠지만, 교장으로서 받는 돈은 학교를 위해 쓰려고 저금하고 있어요.”

소문 ③ 금난새는 기존 음악계와 무조건 다르게 간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방향, 시도를 좋아합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걸 밀고나가는 성격이라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요. 우리 클래식 음악계는 규모에 비해 시장 크기가 너무 작습니다. 때문에 포디엄 위에서 벌어지는 일뿐 아니라 음악계 전반에 시선을 두게 됐어요. 우리가 하는 음악이, 내가 하는 일이 나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요.
1980년 한국에 들어와 KBS교향악단을 맡을 때부터 ‘음악 시장’과 ‘청중’에 관심이 많았어요. 1990년에 들어서면서 대도시와 지방의 격차가 극심해졌죠. 음악 시장은 너무 제한적이었고, 청중도 거의 없었어요. 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1992년 수원시향으로 갔습니다. 한 해에 10회 연주하던 오케스트라가 여러도시를 순회하면서 3년 만에 연 60회까지 공연했죠. 이런저런 노력을 기업이 먼저 알아봤습니다. 수원이 연고지인 삼성전자가 수원시향의 스폰서를 자청해 1995년 당시 연 4억 원씩 5년간 총 20억 원을 지원했죠. 이와는 별개로 50억 원을 들여 야외 음악당도 지었어요. 이후 삼성전자 해외 지사와 연계해 미국·영국·스페인·태국 등지로 투어 공연도 할 수 있었어요.
겨울이 비수기인 제주도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올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신라호텔과 함께 만들어낸 프로젝트가 올해 12년째 진행한 ‘제주 뮤직아일 페스티벌’이에요. 사람들에게 실내악을 보급해야겠다는 생각과 기업의 필요가 잘 맞은 경우죠. 기업이 단순히 예술을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윈-윈 구조를 늘 염두에 뒀어요. 음악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필요한 음악을 하는 것도 중요해요. 누군가는 교육에, 또 다른 누군가는 시장을 개척하는 데 힘써야겠죠.
결국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건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말로만 하면 안 돼요. 그래서 다양한 일을 해낼 수 있었어요. 내가 원해서도 하지만, 수요가 있으니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거죠.
지난 15년간 뉴월드 필하모닉을 이끌면서, 없던 것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정부지원금이 단 1원도 없었어요. 둘째, 많지 않지만 급여가 밀린 적은 없습니다. 빚도 없어요. 셋째, 학생들에게 돈을 받고 연주하는 ‘협주곡의 밤’을 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출연료를 주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줬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걸까요? 어떤 것이 건강한 걸까요? 남들과 같은 방법을 따르지 않고서도 가능하다는 걸 직접 보여주고 싶었어요.
물론 정부가 예술가에게 지원을 해주는 건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청중이 많이 오나 적게 오나 월급은 나오잖아요. 다만 그만큼 자생력은 줄어들겠죠. 민간 오케스트라는 하루하루에 모든 게 걸려 있어요. 연주가 좋지 않으면 제안도 줄어드니까. 그래서 저는 성남시향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고.
그런 마음을 모아 ‘성남 러브 뮤직 페스티벌’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성남 소속 예술단(합창단·소년소녀합창단·국악단·교향악단·청소년교향악단) 전체가 참여했어요. 4월 23일부터 5월 3일까지 공연장뿐 아니라 연습실, 콘서트홀 로비, 성남 일대의 공원, 가천대학교, 시장 곳곳에서 연주를 합니다. 계원예고 학생들도 참여하고요. 각 단체의 협업으로 하나의 공연을 완성하고. 어디에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음악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또 이러한 협업이 좋은 롤 모델이 되길 바랍니다.”
인터뷰 말미, 금난새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칠순을 앞둔 지휘자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나라에 처음 서양음악이 들어온 지 100년 정도 됐어요. 그 사이 좋은 연주자도, 청중도 늘어났죠. 그래도 우리에겐 서양의 것을 쫓는다는 콤플렉스가 있어요. 저는 다른 각도로 생각하고 싶어요. 모든 문화는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곧 주인입니다. 음악을 새롭게 보는 관점, 이것이 담긴 콘텐츠를 클래식 음악 본고장에 수출하고 싶어요.”
짧지 않은 대화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이야기를 곱씹으며 그가 주류‐비주류, 프로‐아마추어, 정부지원‐민간자립의 허공을 가르며, ‘하늘을 나는 새’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새는, 오늘도 포디엄 위에서 지치지 않는 날갯짓을 펼치고 있었다.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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