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 예술과 과학의 미래 ①

로봇, 인간의 예술을 훔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6월 1일 12:00 오전

과학자·음악가·작곡가·철학가·소설가에게 들어보았다. 예술과 과학이 아름답게 공존할 순 없을까? ① 철학자 김기현이 말하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② 작곡가 장재호, 인공지능 시대의 음악 창작

최근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얼마 전 구글에서 개발한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세계 최상위급 프로기사 이세돌과의 공개 대국에서 4승을 하면서 앞으로 인류가 인공지능 로봇에 의해 잠식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나왔다. 이번 대결에서 우리는 기계 앞에 선 인간의 한계와 인간다움을 보았고, 인간을 마주 대하고 있는 인공지능 로봇이 지닌 상상을 초월한 능력을 보았다. 승패 자체보다 세상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 사건이었다.

요즘엔 운전은 물론 청소하는 로봇, 그림 그리는 로봇, 요리하는 로봇, 연주하는 로봇까지 나와 사람들의 편리한 삶을 돕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오차 없이 수술하고, 빠르게 물품을 배달하고, 신속하게 주식 시장을 예측하고, 정확하게 재판하는 로봇이 가득한 세상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인간보다 기계를 더 신뢰하는 세상, 사람보다 인공지능과의 소통에 더 마음을 쓰고 심지어 사람보다 인공지능 기계와 사는 것을 선호하는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무엇보다 인간의 숭고한 노동의 의미 자체가 로봇에 의해 사라지는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의 목소리도 높다. 지금도 효율지상주의, 최대 이윤주의가 만연하는 풍토인데 인공지능의 역할이 더욱 확대되면 무서운 속도로 인류가혼란에 빠지지 않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20년부터는 단순 반복 업무는 자동화로 대체되고 이제 사람은 감성과 소통 능력이 필요한 업무에 집중하게 되는 시대가 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확실한 건 이제 세상은 인공지능과 함께해야 할 숙명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의 영역은 어떨까? 자료에 의하면, 자동화에 따라 직무의 상당 부분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위험이 높은 직업은 콘크리트공, 정육원과 도축원, 제품조립원, 조세행정사무원 등 단순 반복적이고 정교함이 떨어지는 동작을 하거나 사람들과의 소통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특징을 보인다. 반면 화가 및 조각가, 사진작가, 지휘자, 작곡가, 연주자, 문학가 등 감성에 기초한 예술 관련 직업들은 자동화에 의한 대체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다. 전문가들도 일부 로봇이 예술 영역까지 섬세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인간의 가장 고귀한 속성인 정신적 부분까지 인공지능 로봇이 따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인간과 로봇이 함께 하는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단순 암기식 선행학습에서 벗어나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초의 자율주행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한 미국의 한국계 로봇 박사, 데니스 홍(UCLA 교수) 역시 “창의력은 서로 관계가 없는 것을 연결시키는 능력이다. 그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차가운 금속을 가지고 인류의 삶을 어떻게 더 행복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인간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 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진정한 가치는 사람들이 인공지능으로 말미암아 점점 행복해질 수 있는지 추구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야흐로 로봇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시대가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눈부신 기술과 과학이 세상을 압도하는 지금, 예술과 과학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글 국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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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김기현이 말하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오직 인간만이 예술의 원천인 감성을 갖고 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국에서 알파고가 압승하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열풍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 제2, 제3의 알파고가 나타나 마치 기존에 사람들이 하던 일들을 컴퓨터와 로봇이 대신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고, 이제 각 분야마다 그 의미를 해석하고 대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어떤 분야는 완전히 인공지능에 의해 잠식되어 짐을 싸야 할 것이라며 걱정하고, 어떤 분야는 비교적 안전하다며 안심하기도 한다. 예술은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공지능이 공략하는 인간 정신의 영역과 예술이 담당하는 정신의 영역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마음은 세상이 이러저런 모습으로 되어 있음을 파악하는 표상의 능력을 갖는다. 눈앞의 장미를 보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조선의 첫 왕이 이성계였음을 배운다. 마음은 세계에 대한 표상에 머물지 않고, 여기서 시작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멀리서부터 작은 물체가 점점 커지는 것을 보고서는, 그 물체가 어느 속도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가를 계산하여 나에게 위협이 되는가를 판단하고 피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내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지를 판단하기도 한다.

인간은 지능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해왔는데, 문제 해결의 영역을 컴퓨터가 대신하면서 생겨난 분야가 바로 인공지능이다. 알파고는 문제를 해결하는 계산 능력에서 컴퓨터가 인간을 추월하고 있음을 보여준 예이고, 여기에 인간의 뇌와 비교될 수 없는 정보량(소위 빅 데이터)이 결합하면 그 능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다. 우리는 이미 그런 영향권 아래 살고 있다. 실시간 교통 정보를 반영하여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 그렇고 기상예측이 그렇다. 빅 데이터와 결합한 인공지능은 적용 영역을 넓혀가며 우리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인공지능이 마음의 모든 영역을 점령하게 될까? 인간의 마음은 세계의 모습을 그려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은 거기에 온갖 색채를 덧입혀 그 내용을 풍성하게 한다. 아침에 일어나 맡는 커피 향은 거실 어딘가에 어떤 물질이 준비되어 있는가에 관한 정보를 나에게 전달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보와 문제 해결 너머 풍미의 세계로 나를 인도하고, 아련한 과거 기억으로 나를 연결해주기도 한다. 상처를 입었을 때 오는 통증은 나의 피부조직 어딘가에 손상이 생겼다는 정보를 주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타인이 다쳤을 때 받을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게 하여 휴머니즘의 틀을 주고,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에 대한 윤리적 규범을 가능하게도 한다.

마음에 색채를 주는 이 영역을 흔히 의식이라고 부르는데, 감성이 중심부를 구성하여 마음의 내용을 풍성하게 해준다. 그리고 감성은 상상, 상징, 의미, 해석, 초월 등이 살아날 양분을 제공한다. 감성을 갖는 인공지능 시스템, 로봇을 만들 수 있을까? 감성을 갖는 것처럼 흉내 내는 로봇은 만들어질지 모르지만, 감성을 갖는 로봇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마음을 울린 명곡들의 빅 데이터를 분석, 조합하여 또 하나의 멋진 곡을 인공지능은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감동의 새 영역을 개척하는 곡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기존 연주들의 빅 데이터를 분석하여 어떤 성부에서 키보드를 어떤 강도의 조합으로 압력을 가하는 것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가를 흉내 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공지능은 한 인격의 통일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감동의 양식을 구성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정보를 외우고 문제를 푸는 능력은 인공지능 시대에 더 이상 인간의 몫이 아니다. 문제 해결을 다뤄온 다양한 분야에서 역할을 재규정하기 위한 일로 분주하다. 예술의 본령이 감성이라면, 예술이야말로 인공지능의 도전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영역 아닐까 싶다. 기계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테크닉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고, 영혼의 중심을 이루는 감성과의 긴장감을 계속 유지한다면 말이다.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자신과의 대화, 그를 통한 인간 감성의 이해가 예술 행위와 예술 교육에서 더욱 중시되지 않을까 싶다.

글 김기현(철학자)

오클라호마대학교 철학과 교수와 대통령직속 인문정신문화 특별위원회 위원, 2008 세계철학대회 한국조직위 사무총장, 서울대 인문대학 교무부학장을 지냈으며, 저서로 ‘마음과 철학’ 서양편, ‘현대인식론’ 등이 있다. 현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와 인문학 강의를 통해 독자와 청중과 만나고 있으며 서울대 철학과(인지과학협동과정)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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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장재호, 인공지능 시대의 음악 창작

“인공지능은 새로운 창작을 위한 좋은 ‘도구’가 될 것”

인공지능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며 인간의 능력을 점점 닮아가고 있다. 단순한 모방 연주를 넘어 작곡 등 창작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는 인공지능의 음악적 도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예술계에서도 인공지능이 화두입니다. ‘예술 창작의 주체’로서 인간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나왔던 우려입니다. 전자악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전자악기 한 대로 대체될 것이고, 어쿠스틱 악기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구나’라는 걱정이 있었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어떤가요? 아직도 기존 악기들을 그대로 연주합니다. 대신 전자악기는 그것만이 구현할 수 있는 독특한 사운드에 초점을 맞춰 발전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미세한 차이를 기계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음악은 현재 어떤 수준에 이르렀나요?

인공지능 작곡을 오랫동안 연구한 데이비드 코프가 자신의 프로그램으로 만든 음악을 들어보면 비발디나 바흐 등의 작품과 매우 흡사해서 참 흥미로워요. 프로그램의 원리는, 음악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어느 작곡가의 작품에서는 도 다음에 솔이 나올 확률이 70퍼센트다’ 같은 방식이죠.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수집된 이러한 경향성에 따라 특정 음악 스타일과 유사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하지만 아직은 축적된 데이터의 활용을 위한 ‘도구’에 가깝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과를 도출해야 진정한 인공지능이겠지요.

인공지능을 활용한 음악 작업은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까요?

인공지능 열풍을 타고, 알고리즘을 이용한 작곡 프로그램이 당분간 우후죽순 생겨날 것입니다. 초기에는 애플의 ‘개러지밴드’처럼 일반인들의 흥미를 끄는 음악 프로그램이 대부분 아닐까 싶습니다. 단시간에 고급 예술의 영역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유의미한 창작물이 나올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창작 현장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거쳐야겠죠. 아티스트들도 과학에 대한 공부가 많이 필요할 테고요.

교수님도 과학의 음악적 적용에 관심을 기울이신다고 들었습니다.

‘로스’(LOSS, Life of Sounds)라는 작업을 2013년에 했습니다. 유전학의 알고리즘을 소리에 적용한 프로젝트로, 각각의 소리들이 생성·분열·번식·소멸을 거치는 과정을 나타낸 작품이었습니다. 알고리즘을 음악에 적용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우연성을 발견하는 재미있는 공연이었죠. 흥미로운 것은, 그 우연성조차 큰 틀에서 보면 인간의 계산 아래에 있다는 거죠. 수학적인 확률 이론을 음악에 접목한 크세나키스는 ‘우연성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컨트롤을 바탕으로 만들어질 때에야 흥미롭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인공지능을 보며 놀라고 재미를 느끼는 지점도 바로 예측 불가능성에 있지만, 결국 그것도 인간의 통제 아래 놓입니다. 그 속에서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결과가 새로운 즐거움을 줄 것입니다.

인공지능으로 작곡된 결과물이 과연 인간의 창작물과 같은 예술적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요?

기존 음악을 모방하는 것은 흥미 유발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없습니다. 예술의 본질은 창조성에 있으니까요. 그보다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전혀 새로운 음악적 영역을 만들어낼 때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컴퓨터가 등장했을 때도 지금과 비슷한 염려가 있었지만, 현재 컴퓨터 음악은 기존의 것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 독자적 예술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활용도 이와 같으리라고 봅니다.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음악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젊은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들의 유연한 사고와 감각이 과학기술과 어떤 접점을 이룰지 기대해야죠. 인공지능은 새로운 예술을 위한 좋은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창조의 최초이자 최종 주체가 ‘사람’이라는 사실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과학기술과 음악의 만남은 창작의 반경과 외연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장재호
작곡가이자 미디어 아티스트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음악테크놀로지과 교수이며 오디오-비주얼 공연 그룹인 Tacit Group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공생명의 이론과 기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를 응용한 음악, 설치물, 오디오-비주얼 공연 작품들을 발표해오고 있다

글 이정은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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