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

다채로운 색깔로 건반을 물들이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6월 1일 12:00 오전

루체른 심포니와 함께 처음으로 내한하는 그녀의 음악 그리고 삶

처음엔 ‘비주얼이 부각되는 시대를 잘 타고 나온 연주자’라고 생각했다. 패션 잡지에 어울릴 법한 화려한 이목구비와 세련된 의상. 앨범 재킷을 통해 처음 만난 그녀의 첫인상은 그랬다. ‘꽤나 인기 있겠군’ 하며 듣기 시작한 그녀의 음악은, 섣부른 예상과는 달랐다. 절정에 다다른 기교가 유려하게 펼쳐지는 동시에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는 듯한 사색적 터치가 오가는 연주. 눈이 만든 선입견을 귀가 허물었다.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Khatia Buniatishvili)는 1987년 조지아의 트빌리시에서 태어나 4세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6세에 처음으로 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를 가졌다. 트빌리시 음악원을 거쳐 빈 국립음대를 졸업했고 2003년 키예프에서 열린 호로비츠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2008년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콩쿠르에서 3등을 차지하는 등 주목을 끌었다. 2011/2012 빈 무지크페라인 ‘라이징 스타’로 선정되며 두각을 드러낸 부니아티쉬빌리는 마르타 아르헤리치로부터 “뛰어난 재능과 표현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으며 음악계의 총아로 떠올랐다.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답게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의 주요 레퍼토리는 프란츠 리스트를 위시한 기교적인 작품들이다. 데뷔 음반의 레퍼토리로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 등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며 클래식 음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테크닉에만 치중한 연주가 전부라면 그녀의 인기가 이렇게 뜨겁진 않을 터. 부니아티쉬빌리는 그 속에서 자신의 음악적 에너지를 강렬하게 표출한다.

데뷔 음반 이후 이어진 행보를 통해 그녀만의 음악적 색채는 더욱 확고해졌다. 작품 해석을 놓고 평단의 평가가 엇갈리기도 하지만, 그녀는 그런 평가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음악적 주관을 확고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TV 쇼에 출연하고 SNS를 통해 팬과 소통하는 젊은 아티스트다운 모습과는 별개로, 음악에 있어서는 분명한 카리스마를 드러낸다.

4장의 음반을 발매하면서 자신의 레퍼토리를 공고히 쌓아나가는 동시에, 그녀는 실내악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와 첼리스트 기에드레 디르바나우스카이테와 함께 피아노 트리오로 활동한 바 있고,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과는 듀오 음반을 발매할 만큼 견고한 호흡을 보여주었다. 친언니인 그반차 부니아티쉬빌리와의 피아노 듀오 연주도 종종 가지며 계속해서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젊은 연주자로서 무척 영리한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부니아티쉬빌리의 연주 영상들은 인터넷에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다. 실내악을 연주하며 상대방을 지그시 바라보는 다정한 눈빛,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중 언뜻언뜻 비치는 만족스러운 미소, 현란한 기교를 너끈히 보여주는 여유로운 제스처. 무대 위의 그녀는 누구보다도 음악적인 사람이다.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와의 일문일답을 지면에 옮긴다. 이메일로 나눈 대화임에도 그녀의 솔직함과 산뜻함이 경쾌하게 전달됐다.

총천연색 음악을 그려내는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

최근 발매한 음반의 제목은 ‘만화경(Kaleidoscope)’입니다.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라벨 ‘라 발스’,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를 ‘만화경’이라는 제목으로 엮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목에 담긴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세 곡 모두 색채감이 넘치는 작품입니다. 어두운 현실을 만화경으로 들여다보면, 만화경이 그 이미지를 왜곡시켜 다채로운 상상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죠. 만화경 속에 공존하는 현실과 상상을 음악적으로 나타내고 싶었어요. 만화경이 지니는 이러한 양면성이 이 세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고 보았습니다.

앨범을 위해 만화 예고편을 제작하는 신선한 시도를 했습니다. 스크립트를 본인이 직접 작성했는데, 제작 의도가 궁금합니다.

이번 음반에서 펼쳐질 음악을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눈 내리는 겨울, 마을 사람들은 환하게 모닥불을 피워 축제를 즐기고, 아이들은 알록달록한 풍선을 들고 신나게 뛰어놉니다. 이를 지켜보던 소녀는 쓸쓸히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있는 병든 어머니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어머니에게 묻은 핏자국을 보던 소녀는 만화경을 들고 그것을 들여다보죠. 만화경에 비친 붉은 얼룩은 화려한 기하학적 무늬로 현란하게 바뀌며, 마을 사람들의 축제 장면과 다시 이어집니다. 형형색색 아름답고 기쁨이 넘치는 한쪽의 모습과 슬프고 비극적인 다른 한 편의 모습이 동시에 펼쳐집니다. 전혀 다른, 하지만 동시에 매우 유사한 인생의 양면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시각을 담았어요.

당신의 연주는 화려하고 다채로우면서도 고혹적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연주를 통해 표출하고 싶은 이미지, 혹은 자신이 추구하는 연주의 지향점이 있다면요?

진정한 감정과 생각, 진짜 이야기들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음악, 그리고 제 삶 속에서 ‘진실’이라는 가치에 도달하도록 저를 이끌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진정성입니다.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성이 표현되기 위해서는 빈틈없는 정밀함이 요구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술적 가치의 주된 요소라고 생각해요.

당신의 연주 스타일과 행보를 보며 전성기의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연상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롤 모델, 또는 존경하는 연주자로는 어떤 사람이 있는지요?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제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피아니스트예요. 또 글렌 굴드,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도요. 이들을 비롯해 독창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음악을 하는 많은 연주자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베르비에 페스티벌과 ‘아르헤리치와 친구들 2013’ 등을 통해 다양한 실내악 무대를 가졌습니다. 기돈 크레머, 르노 카퓌송 등 여러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췄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무엇이었나요?

모두 저마다 특색이 있어서 하나만 고르기 어렵네요. 기돈 크레머와 르노 카퓌송뿐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 이브리 기틀리스,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 그리고 피아니스트이자 제 언니인 그반차 부니아티쉬빌리를 추가하고 싶어요. 실내악은 누구와 함께 연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와요. 그게 독주와는 다른 실내악만의 매력이죠.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젊은 아티스트

2013년 베를린 근교의 숲에서 펼쳐진 당신의 음악회 영상을 보았습니다. 참신하고 아름답다고 느꼈는데, 그런 음악회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또 연주 당시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야외에서 연주하면 자연과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면서 아드레날린이 나오는 듯한 상쾌함이 느껴져요. 숲 속에서의 공연은 무척 아름답고 감명 깊었어요. 인위적인 장치는 하나도 없었고, 오직 자연스러운 소리만이 가득했죠. 숲 속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경험이었어요.

2015년에는 밴드 콜드플레이의 음반 ‘A Head Full Of Dreams’에도 참여한 바 있습니다. 전혀 다른 분야와의 협업이었을 텐데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크리스 마틴(콜드플레이의 리드 보컬)은 진정한 아티스트이자 음악가예요. 두 개의 서로 다른 음악 세계를 하나로 묶는 과정은 흥미롭고 아름다웠어요.(부니아티쉬빌리가 참여한 곡 ‘만화경’-그녀의 최근 음반 제목과 같다-에서는 그녀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 위로 13세기 페르시아의 시 ‘게스트 하우스’가 낭송된다. 끝부분에는 버락 오바마가 부르는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등장하는 독특한 곡이다.)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연주 활동을 해왔고,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등 소위 ‘국제적인’ 아티스트의 면모가 느껴집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연주하는 삶은 어떤가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에요. 저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또 그 에너지를 써야 해요. 무대 위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뿜어내지만, 청중에게서 그 에너지를 다시 돌려받습니다. 여행을 다니며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게 좋아요. 그러고는 행복한 마음으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거죠.

조금 가벼운 질문 하나 할게요. 열정적인 연주를 따라 찰랑거리는 풍성한 단발머리는 당신의 트레이드마크인데요, 언제부터 그 헤어스타일을 고집했나요? 헤어스타일을 바꿀 생각도 있나요?

‘트레이드마크’라고 불리는 것들은 대개 계획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 같아요. 원래 항상 긴 머리였는데, 어느 날 사고를 당해 머리를 완전히 밀어야 했어요. 지금 제 머리 길이가 딱 좋아요.

6월 24일과 26일, 한국에서 루체른 심포니와의 협연으로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선보일 예정이지요. 이 작품에 대한 당신의 해석이 궁금합니다. 또한 제임스 개피건이 지휘하는 루체른 심포니와는 어떤 인연이 있나요?

그리그의 음악이 지니는 신비로움의 깊이, 그리고 그것들의 뒤섞임이 매력적이에요. 그리그의 나라 노르웨이의 지형과 닮지 않았나요? 동시에 그리그의 음악에서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도 느껴져요. 루체른 심포니와 함께 무대에 오른 적이 몇 번 있고, 항상 편안한 마음으로 연주했습니다. 제임스 개피건과는 처음으로 함께하게 됐는데, 매우 기대하고 있어요. 저는 늘 새로운 발견을 즐기니까요!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음악가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인생에 대해 미리 계획하지 않는 편이에요. 피아니스트로서 특별한 목표를 정해놓고 있지도 않아요. 목표가 있든 없든, 음악 그 자체가 제 삶입니다.

사진 소니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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