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의 최전방에 배우가 있다. 일상의 복잡한 마음으로 극장에 가더라도, 배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일상을 벗고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가난한 자들의 종교에서 경험하는 소박한 위안과 큰 용기를 얻기도 한다.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연희단거리패의 1기 배우이자 현재 극단 대표로 살림을 돌보고, 날마다 무대에서 한국 연극 현장을 지키고 있는 배우 김소희를 만났다
공연의 최전방에 배우가 있다. 일상의 복잡한 마음으로 극장에 가더라도, 배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일상을 벗고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가난한 자들의 종교에서 경험하는 소박한 위안과 큰 용기를 얻기도 한다.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연희단거리패의 1기 배우이자 현재 극단 대표로 살림을 돌보고, 날마다 무대에서 한국 연극 현장을 지키고 있는 배우 김소희를 만났다
대학로는 이상한 곳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반은 배우이고, 반은 관객이다. 대학로 거리 자체가 연극 무대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여기에 연극 스태프들까지 하나둘 얼굴을 마주치다 보면 거대한 연극학교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최근 ‘대학로 이탈현상’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대학로가 상업공간화되면서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연극인들이 대학로에서 밀려나고 있다. 성북동으로, 문래동 공장지대로 공연장이 이동하고 있다. ‘연극의 메카 대학로’의 명성이 무너질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우리는 우리의 극장을 왜 지키지 못했을까. 뒤늦은 한탄의 목소리도 높다.
대학로 한복판에서 초기 대학로 연극의 시대를 마련하며 견인차 역할을 했던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이 지난해 내내 검열 논란으로 시끄러웠고 연극 관객들의 발길도 끊겼다. 지금 대학로 연극의 명맥은 혜화동 로터리의 몇몇 작은 민간극장이 간신히 이어가고 있다. 대학로 북쪽 끝 혜화동 로터리에 자리한 연우소극장, 혜화동1번지 소극장, 선돌극장, 그리고 게릴라극장이 그들이다.
검열 논란과 공공 지원금의 편파성 논란으로 ‘대학로 연극’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가운데 연희단거리패 30주년 기념 공연들이 게릴라극장에 꿋꿋하게 올라가고 있다. 요란한 홍보 없이도 연일 객석이 꽉 찬다. 지난 4월 22일부터 5월 15일까지 게릴라극장에서 연희단거리패 30주년 기념 두 번째 공연으로 올려진 ‘벚꽃동산’의 객석에 앉아 시시각각 호흡이 바뀌는 관객들을 느끼며 새삼 연희단거리패의 저력을 느꼈다. 오래 버티면서, 더욱 강력해지는 비법이 궁금했다.
배우 김소희를 만났다. 연희단거리패 1기 배우이자 ‘연출가 이윤택의 페르소나’로 불리며 지난 30년간 조연과 주연을 두루 오간 그녀는 ‘원전유서’(2009), ‘혜경궁 홍씨’(2014)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체호프의 ‘갈매기’로 연출가 데뷔를 했다. 현재 극단 대표로 연희단거리패의 살림을 돌보면서 매일 무대 위에서 한국 연극 현장을 지키고 있다. 김소희에게 무턱대고 연극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어떤 질문이든 시원시원하게 할 말 다하는 대답에서 해방감이 느껴진다. 마주 앉은 사람의 ‘호흡이 바뀌는’ 시간이었다.
관객의 호흡이 바뀌는, 배우의 현장
연희단거리패의 ‘벚꽃동산’(2016)에선 라네푸스카야 부인과 로파힌이 이별의 긴 키스를 나눈다. 원작에는 없는, 연출가 이윤택만의 해석에 의한 특별한 장면이다. 이 장면에 ‘영원한 젊은 햄릿’ 이윤택이 자신의 청춘을 뒤돌아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지나간 시대는 그것대로, 새로운 시대는 또 그것대로 두고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떠난다. 아름답고 냉정한 장면이다.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은 이윤택이 젊은 시절 로파힌의 입장에서 오랫동안 꿈꿔온, 그가 연극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에서 라네푸스카야 부인 역할을 맡은 김소희는 순수하고 동정심 많고 아무 대책 없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누구도 그녀를 미워할 수 없는 체호프 식의 ‘귀여운 여인’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최근 연희단거리패의 공연들이 강력하게 다가온다. ‘벚꽃동산’도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한 무대였다. 요즘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인지 작품 속에 담긴 희극성과 짙은 페이소스 하나하나가 다 느껴졌다. 체호프가 지독히 독한 남자였구나,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저걸 다 이야기하고 있구나 싶으면서 놀랍게 다가왔다.
“맞다. 연출을 맡은 이윤택 선생님도 극단적인 세계를 가로지르는 성향이다. 이론 상 연출가를 나눌 때 해석적 연출가와 창조적 연출가로 구분하는데, 이윤택 선생님은 후자에 속한다. 창조적 연출가는 ‘체호프는 저렇게 썼고, 나는 이렇게 읽혀서, 그렇게 해석했다’고 말한다. 창조적 연출가에겐 남들과 다른 안경이 있다. 남들이 평범하게 보는 걸 더 세밀하게, 남들 눈에 파란색만 보이지만, 그는 빨간색도 볼 수 있다. 체호프, 셰익스피어, 브레히트 등 어떤 작품을 할 때든 이윤택 선생님이 가진 안경의 기준은 결국 ‘삶’이다. 삶을 기준으로 봤을 때 해석이 강력해진다.”
이윤택의 페르소나이자, 현재 연희단거리패 대표로 살림을 꾸려가고, 작년에는 체호프의 ‘갈매기’로 연출가 데뷔도 했다. ‘갈매기’는 화려한 여배우가 나오는 극인데, 김소희가 해석한 아르카지나는 아주 일상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더라.
“‘갈매기’는 연극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여배우가 화려하게 치장만 하고 사는 것 같지만, 현실에선 ‘오늘 관객이 몇 명인데 돈이 왜 이거밖에 안 돼?’ 계산하며 산다. 아르카지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이 강한 인물이다. 지는 해가 되고 싶지는 않은 거다. 화려하거나 좋은 옷을 입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찌그러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 욕망이 굉장히 강한, 솔직한 사람이다. 나야말로 그런 것 같다. 내가 만난, 같은 세대의 여배우들도 자기중심이 강하고 아르카지나 같은 면이 많다. 사람은 다르지만 존재의 증명, 그에 대한 욕구는 모두 강하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사회생활에 마이너스가 된다. 그래서 감춘다. 반면 예술가들은 표현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다. 그만큼 자기 욕망에 솔직하다. ‘갈매기’는 엄마와 아들이 등장하지만 예술가와 예술가로 끝까지 대립한다. 아르카지나는 아들한테 돈 쓰는 건 아까워도 자기 의상비는 다 계산한다. 그런 장면이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왔다.
“요즘은 삶이 더 지독하고, 더 드라마틱하고, 더 끔찍하고, 강렬하게 느껴진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인간이란 정말 어디까지 갈 수 있지?’ ‘연극이라면 어디까지가 진짜라고 해야 하지?’ 하는 식으로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오늘의 현실이 더 드라마틱하고, 가혹하고 잔인하다. 이런 상황에 무대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는 건 가짜가 되어버린다.
“‘오이디푸스’는 스토리만 보면 소위 ‘막장’인데, 그 안에는 ‘깨달음의 언어’가 있다. 오이디푸스가 마지막에 도달하는 인간에 대한 깨달음, 그 하나를 끝끝내 두레박으로 건져 올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연극은 그런 순간을 줘야 한다.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겉보기에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게 아닌, 인간의 존재를 들여다봤을 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궁극적으로 더 높은 것… 그런 것을 보여줘야 한다.”
연극은 동시대 관객과 어떻게 만나야 할까. 지난해 불거진 검열 문제뿐 아니라, 이제 주체적인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는 극단도 드물다. 하지만 연희단거리패에는 이것을 돌파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연극은 그야말로 사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지에 있는 사원이 아니라, 시장 안에 들어가 있는 사원. 번잡한 가운데 쑥 들어오면 뭔가 다른 기운을 느끼고, 달라져서 나가는 걸 연극이 관객에게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연극은 영화처럼 주류가 되기는 어렵다. 다만 영화나 다른 매체가 할 수 없는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연극은 구체적이고 확실한 체험이다. 관객이 보고, 호흡이 바뀌는 체험이다. 일상에선 숨결이 완전히 바뀌는 체험이 쉽지 않은데, 그것을 연극이 준다면 어떨까? 호흡이 바뀌면 시원함을 느끼지 않나. 거기에 배우가 있다.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배우와 같이 체험하는 데서 관객의 숨결도 같이 바뀐다. 탄식했다가 웃기도 했다가, 그런 경험이 일어나면 관객이 연극을 보러 계속 오지 않을까?”
살아있는 무대, 연극의 저항 방식
지난 몇 년 사이, 연희단거리패의 작품에선 그런 ‘다른 호흡들’이 느껴진다. 초기 ‘오구’(1990)나 ‘햄릿’(1996) 같은 작품에선 양식성이 강했다. 전체적인 미장센과 조명을 중시하고 양식적인 배우들의 동작은 마치 인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오레스테스 3부작’(2013), ‘혜경궁 홍씨’(2013), ‘벚꽃동산’(2016) 등 최근 작품들에선 삶의 구체적인 체험과 발견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성장이 그러한 변화의 흐름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다. 무대 위의 배우들 하나하나가 나무처럼 보이고, 공연이 시작되면 울창한 숲 속에 들어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연희단거리패는 예전부터 분명한 색깔을 가져왔는데.
“연희단거리패만의 메소드 연기가 있다. 이윤택 선생님은 ‘리얼리티를 뛰어넘는 더한 실재성’을 강조하신다. 일반적으로 ‘메소드 연기’라 하는 것마저도 뚫고 나와서, 관객이 ‘저 배우는 진짜 저렇게 느껴서 그런 것 아니야?’라고 생각해야 더 살아 있는 연기가 된다는 것이다. 삶의 어느 순간에 관객과 배우가 만났는데,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을 죽은 순간으로 보내선 안 된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그 순간의 정점을 향하다 보니 오히려 관객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나가는 게 우리의 색깔인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나가는 순간은 들어온 때와 같지 않도록, 다른 호흡을 갖게 하고 싶다는 열망이 우리에게 있다.”
언제부턴가 극단에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양식성이 강했던 과거 작품과 달리, 최근 작품들에선 구체적인 삶의 순간과 배우가 보인다.
“초창기엔 ‘배우들이 이윤택의 인형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 선생님은 젊고 힘이 넘쳤다. 배우들이 자기 준비가 많이 되지 않은 채 그걸 좇으니 관객의 눈에는 연출이 시키는 대로 한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연출가가 그런 걸 요구하지는 않았다. 다만 배우가 연출가의 요구를 뛰어넘어 관객을 만날 여유가 없었다. 그땐 배우들이 다 어렸다. 마음의 여유뿐 아니라 기술적인 것, 나이에서 오는 연륜도 없었다. 또 연출가가 꿈꾸는 세계가 너무 강력하니, 결국 그를 존중하는 배우들이 남게 됐다. 이승헌, 김미숙, 조인곤과 지금은 고인이 된 이윤주. 20년 정도 이들과 같이 작업하면서 나이를 먹고 여유가 생기니 이윤택 선생님 말대로 가더라도, 어떻게 해야 관객이 따라올 수 있을까 싶은 게 쌓였다.
1999년 연희단거리패는 밀양으로 내려가 대규모 작품들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일식’(2000), ‘시골선비 조남명’(2001)은 밀양을 근거지로 삼은 전통예술과 만나 훈련을 거치면서 완성됐다.
서울에서 한참 각광을 받던 시절, 밀양으로 떠났다. 환경의 변화를 택한 이유는?
“지금의 환경에선 더 이상 본질적인 작업에 집중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극단 내부적으로 공유됐다. 배우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니, 연습 시간 외에는 붙잡아둘 수도 없고. 연기면 연기, 연극이면 연극, 끝까지 가보고 탐구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일상이 번잡한 거다. 작업을 하면서도 이런 방식은 곧 한계가 오겠구나 싶었다. 누군가 자본을 계속 대준다 할지라도,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잘나갈 때 거꾸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려간 거다. 밀양에 가서 제일 먼저 보일러 깔고, 자갈 깔고, 흙 개고, 다 같이 벽돌을 올려 우리가 직접 연습실을 만들었다. 그때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는데, 분장하고 무대 올라가는 것뿐만 아니라 이렇게 준비하는 것도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연희단거리패가 30년을 건강하게 버텨온 아주 중요한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때 서울에 머물렀다면 명맥은 유지했겠지만, 건강함은 잃을 수도 있었겠다 싶은 생각이 종종 든다.”
밀양연극촌은 모든 스태프가 합숙하면서 자급자족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연극만을 위한 연극’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반 자체를 ‘연극공동체’로 꾸리게 된 것이다. 24시간이 연극을 위한 삶이 되었다. 4시간짜리 대작 ‘원전유서’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말은 쉽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원전유서’는 추상적이고 양식적인 작품이지만, 인간이 명확하게 보여 통쾌했다. 자식은 맞아 죽어가는데, 엄마는 집을 끝까지 지키는 장면이 강렬했다. 고통스러운 내용인데도 말이다.
“‘원전유서’도 밀양에서 작업했다. 밀양에서 2003년에 올린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왜 관객을 잡아끌었는지 본질적으로 연구하고, 또 고급스럽게 잡아끌 수 있는 장치를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어, 그런 부분을 각각의 작업마다 실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밀양에선 대규모 실험이 가능했다. 무대를 밤새워 만들 수도 있고, 만들었다 엎을 수도 있고. 일을 좀 많이 했다. 일반 연극인은 생각할 수 없는 것들, 새벽까지 일하고 아침에 일어나 훈련하면서 우리만의 것이 생겼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요즘 연극계가 힘들다고 하는데, 연희단거리패는 더 열심히 공연을 하고 있다. 월북 시인 백석의 삶을 다룬 ‘백석우화’(2015)는 오히려 밝고 맑은 연극으로 볼 수 있는 게 신기했다. ‘벚꽃동산’(2016)은 작품의 숨결이 다 살아났다. 기술이 발달하고, 무대 위 연기가 화려해져도 감동을 못 느낄 때가 많은데, 연희단거리패의 연극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연극 자체가 말을 토대로 해서 그런지, 음악이나 미술보다 확실히 저항의 요소가 있는 것 같다. 말은 질문을 던질 수 있으니, 다른 예술보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면서 저항의 매체가 될 수 있다고 할까? 연극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지만 다른 장르에 비해 배우의 몸이 있고, 의식이 있으니 자본에 좌우되지 않고서 밀어붙일 수 있다. 연극이 살아 있어서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형태로, 관객과 생생하게 만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저항이라 생각한다. 연극하기 어렵고 지원금 못 받았다고 해도, ‘왜 저렇게 멀쩡히 연극을 잘하는 거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공연을 보여주고 싶다는 저항 정신을 지켜야 관객들 마음도 시원해지지 않을까? 연극엔 그런 통쾌함이 있는 것 같다.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연희단거리패 30주년, 더 강력해진 ‘게릴라들’
이날 김소희는 렌트한 차를 타고 촬영장에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가 있으면 오히려 불편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녀는 연극뿐 아니라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의 질문을 던진다. 연희단거리패도 마찬가지다. 연극이 힘들다고 하는 지금 더 열심히 연극을 만들고, 대학로에서 연극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는 때에 오히려 극장을 만들어 계속 대학로 연극을 지켜나가는 중이다.
‘벚꽃동산’을 마지막으로 체호프의 4대 장막극을 모두 공연했다. 체호프가 연희단거리패의 색깔과 잘 맞는 편인가?
“기본적으로 우리는 셰익스피어적 색깔이 강한 극단인 것 같다. 방 안에 들어앉아 있는 이야기보다는 우주적인 것, 일상을 뛰어넘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 극단에 많다. 그래서 체호프 작품을 할 때도 평범한 일상을 뛰어넘는 배배 꼬인 것, 더 우스꽝스러운 것, 더 괴물 같은 것을 보려고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극단의 정신이 젊은 것 같다. 한 극단을 30년 동안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이윤택 선생님이 생각의 게으름을 굉장히 경계하신다. 그럴때마다 마치 철퇴를 내리듯 굉장히 아프게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굉장히 후련해지면서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든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셨기에 우리에게 불필요한 찌꺼기가 남지 않은 것 같다. 또 극단 내부적으로 관계가 건강하다. 극단에 오래 남아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건 잘못한 것 같다’고 언제든지 서로 얘기해줄 수 있는 교감이 있다. 인간 몇 십 명이 같이 살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 알력도 없이, 찌꺼기 없이, 그러면서 전문성과 존재감을 획득할 수 있다는 건 쉽지 않다. 이 자체가 대단히 실험적인 행위이고, 앞으로도 성공적인 실험이 되기를 바란다.”
하루 24시간, 연극만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사는 것이 가능할까? 모두가 꿈꾸지만 여러 제약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에 맞추면서 현실을 살 것인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현실을 뚫고 갈 것인가 누구나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다만 연극에 확실한 전문성을 갖춘다면, 떵떵거리고 사치스럽게 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먹고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런데 연극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그런 부분을 먼저 불안해한다. 정말 가난해도 먹고 살 수는 있다. 연극만 생각하다 보면 생활이 해결될 수 있는데, 다른 걸 좇으면서 연극을 하다 보면 오히려 생활이 힘들어진다. 연극이 아닌 다른 것에 한 번 맞추기 시작하면 계속 따라 맞추게 된다. 하지만 연극을 하면서 얻는 엄청난 기쁨에 집중하면 다른 것들은 따라오는 것 같다. 미쳐야 갈 수 있는 거다.”
연희단거리패가 운영하는 게릴라극장은 민간 극장이다. 수익이 나야 운영될 수 있다. 극장을 운영하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유지, 관리비 등을 생각하면 상업 극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게릴라극장은 어떻게 운영되나?
“초기에는 투자만 했다. 처음부터 흥행하는 극장이 아닌, 의미 있는 극장으로 만들자고 했다. 그래서 지원금을 받았는데도, 우리만 좋은 데 쓰면 안 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누가 알아줄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공공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원금을 받았다는 게 사람들이 이렇게 인정해줬다는 것인데, 돈 몇 푼 더 챙기면서 그 기대를 배신하면 안 된다는 거다. 그래서 다른 극단들과 공동기획 공연들을 올렸는데, 그러다 보니 프로그램북 제작비조차 안 나오는 때도 많았다. 그래도 굶으면 다음 연극을 할 수 없으니, 다음을 위해서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 일반인 대상으로 생활체육도 가르친다. 문화체험도 시켜주고. 일반인들 속에 들어가 저변을 넓히는, 수평적인 작업들을 많이 한다. 동시에 산골에 들어가 오랫동안 깊이 집중하는 수직적인 작업도 항상 같이 한다. 그렇게 나름의 색깔을 유지하다 보니 관객들이 게릴라극장에서 하는 건 어떤 수준 이상이라고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
국공립 극장의 공공성이 줄어드는 시기에, 민간 극장이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건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지원금이 없어서 제작을 포기하는 극단도 많은데.
“우리는 돈을 덜 들여 공연하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도 다른 지원금은 다 탈락하고 다행히 ‘벚꽃동산’이 서울문화재단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가뭄에 단비 같은 지원금이다. 이번 ‘벚꽃동산’ 무대는 이윤택 선생님이 디자인하시고 배우들이 직접 만들었다. 의상도 각자 자기 옷을 가져오고. 지원금이 없어서 못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꿈꾸는 시스템은 ‘지원금이 있으면 공공성을 더 획득하고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지원금이 없으면 연극이 죽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행위. 그걸 계속 보여주고 싶다.”
연희단거리패의 근본적인 저항 정신은 관객들에게 힘을 주고 있다. 피켓 들고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닌, 다른 저항의 방식도 있다. 동네 어귀마다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한 그루 큰 정자나무처럼, 연희단거리패의 게릴라극장은 대학로 연극이 지속될 수 있도록 넓고 깊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5월에는 극단76의 40주년 기념 공연의 판을 열어줬고, 젊은 연출가를 발굴해 공연을 올리는 ‘게릴라 젊은 연출가전’의 푸른 역사도 계속 이어간다.
올해 중에는 성균관대학교 인근에 연희단거리패 30스튜디오도 새로 개관한다. ‘햄릿’ ‘오구’ ‘오이디푸스’ ‘서울시민 1919’ 등 그간 연희단거리패가 내놓은 레퍼토리 공연들이 이곳에서 계속 올라갈 예정이다. 24시간 연극만 생각하고 연극만 꿈꾸는 집단이 오랜 시간을 쌓아 이루어낸 놀라운 일들이다. 올 한 해 연희단거리패를 보면서 신나는 일이 많아질 것 같다.
공연의 최전방에 배우가 있다. 관객은 배우와 함께 울고 웃는다. 흔히 배우를 ‘천의 얼굴을 가진 직업’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일상의 복잡한 마음으로 극장에 가더라도, 배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일상을 벗고 자신과 마주하는지도 모른다. 가난한 자들의 종교에서 경험하는 소박한 위안과 큰 용기를 얻기도 한다.
어느 무대든, 김소희는 “끝까지 가고 싶다”고 했다. 매일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하는 동안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지점에 다다르고 싶다는 말이 인터뷰 내내 이어졌다. 실패할지언정 한 순간 스스로를 내던지고 싶다는 그 말처럼 연희단거리패도, 김소희도 그렇게 끝까지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진행 김선영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
헤어·메이크업 권득영·서영화(CARA′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