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

아름다움이 깨어나는 시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7월 1일 12:00 오전

2016 센다이 콩쿠르에서 우승한 장유진. 현재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박사과정 중인 그녀의 새로운 일상들

2016 센다이 콩쿠르에서 우승한 장유진. 현재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박사과정 중인 그녀의 새로운 일상들

변화는 시간이 아니라 경험에서 온다고 했던가?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귀여운 모습은 그대로인데 우아한 분위기가 비쳤다. 영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로 무대에서 사랑받던 깜찍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어느새 버르토크와 슈만을 연구하고 연주하는 박사과정 연주자가 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졌다. 그녀는 2016 센다이 콩쿠르에서 우승해 상금 300만엔(약 3264만원)과 금메달을 수여 받은 한편, 음반 레코딩 기회와 일본에서의 협연 및 독주회 기회도 얻었다.

2001년에 센다이 시 400년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창립된 센다이 콩쿠르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두 부문을 대상으로 3년 주기로 개최되고 있다. 올해 바이올린 부문은 5월 21일부터 6월 4일까지 진행됐고, 10개국에서 40명의 연주자가 참가했다.

순수한 미소 속에 섬세한 카리스마를 갖춘 그녀는 연주와 공부를 병행하며 이번 콩쿠르를 준비했다. 깊이와 넓이를 확장해 가고 있는 장유진, 미국에서 지내는 그녀의 새로운 인생을 엿본다

우승을 축하해요.

기대하지 않고 도전한 콩쿠르인데 그래서 더 기쁘고 감사해요. 그동안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며 비슷한 레퍼토리를 계속 연주하면서 새로운 작품을 연주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센다이 콩쿠르에서 연주한 작품들은 제게 모두 도전이었어요. 모차르트 론도 아다지오와 버르토크 바이올린 소나타, 슈만 바이올린 협주곡까지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지원하게 되었고요. 결선 때에는 멘델스존과 스트라빈스키 협주곡을 한자리에서 연주해야 했어요. 이번에 새로운 곡들을 배우면서 배운 점이 무척 많았어요. 그렇게 3주 동안 오로지 음악에만 몰두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주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을 거예요. 콩쿠르 분위기도 경쟁보다는 연주회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여서 좋았고요. 만약 이번 콩쿠르의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도 제게는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거예요.

준비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곡이 있었다면요?

새롭게 배운 곡 중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는데, 하면 할수록 심오하고 깊은 슈만의 음악 세계를 느낄 수 있었어요. 슈만 음악에 대한 생각을 깊이 있게 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콩쿠르 우승으로 연주 기회가 많이 생겼을 텐데, 어떤 계획이 있나요?

일본에서 연주할 기회들이 생겼어요. 내년 3월에는 협연, 6월에는 독주, 그리고 음반도 발매할 예정이고요.

어린 나이에 영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을 했었는데, 이후 부담은 없었나요?

제가 성격이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편이에요.(웃음) 솔직히 그런 부담은 별로 없었어요. 그리고 영차이콥스키 콩쿠르 이후 국제 콩쿠르 도전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고요. 워낙 실내악을 좋아해 앙상블 연주를 많이 하면서 오히려 더 음악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얼마 후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 공연도 앞두고 있는데요.

2012년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장유진·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심준호)이 결성된 이후 한국에서뿐 아니라 아프리카나 콩고, 탄자니아, 요르단 등을 순회하면서 음악회를 열었어요. 의미 있는 시간이 많았고, 저희끼리도 더 친해질 수 있었죠. 작년에는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전곡 연주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큰 영감을 받았어요. 실내악 연주는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한데 저희 앙상블은 또래이기도 하고 워낙 친하고 서로 잘 챙겨줘요. 그래서 어느 땐 연습하기 위해 만났는데 웃는 시간이 더 많을 때도 있어요(웃음). 제겐 그 시간들이 오아시스 같아요. 서로 격려하고 지지해주는 동료들이 있어서 왠지 마음이 든든해요.

또래 연주자들이 국제무대에서도 활약하고 있는데, 각자 고민들도 있을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음악만을 해온 저희들이기에 세상에 나와선 어린아이와 같을 때가 많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한 음악가가 되는 길이 쉽지 않다는 곳도 느끼고요. 하지만 저희는 음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더 끈끈하게 뭉칠 수 있고, 우리끼리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이기 때문에 언제나 함께 무대에 설 기회도 많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저희 세대들의 다양한 음악 무대가 많아질 거예요.

어릴 때 청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네요?

초등·중학교를 청주에서 다니면서 주말에 한예종 영재학교를 다녔어요. 바이올린은 유치원 때 스즈키 메소드를 통해 시작했는데, 본격적으로 김남윤 교수님께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음악가의 꿈을 키우게 되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저도 좋아했지만 부모님이 워낙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셨어요.

김남윤 교수님께는 어떤 걸 중심으로 배웠나요?

교수님은 바이올린뿐 아니라 음악가의 자세, 가치관, 음악성에 대해 많이 강조하셨고, 내적인 부분을 많이 채워주셨어요.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미리암 프리드를 사사하면서 석사 및 전문연주자과정과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한 후 현재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데 콩쿠르 준비는 어떻게 병행했나요?

그게 가장 큰 문제였죠.(웃음)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치고 시작한 박사과정은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었어요. 박사과정을 시작한 이유는 독주회 프로그램을 짜고 작품에 대해 설명해야 할 때 좀 더 전문적인 지식과 디렉팅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에요. 혼자서 하긴 벅찬 면이 있었고 음악학, 역사, 철학 등 다양한 공부도 해보고 싶었어요.

박사과정을 공부해보니 어땠나요?

연주를 주로 하던 제가 도서관에서 작품에 대한 정보를 찾고 연구하고 분석해서 페이퍼를 작성하고 발표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어요. 연습 시간도 부족하고 첫 학기에는 많이 당황했죠. 연구할 주제를 찾는 것도, 자료를 찾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우왕좌왕하면서 서서히 공부와 연주 시가 밸런스를 맞추게 되었죠. 그리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다양한 방법도 스스로 고안했는데, 센다이 콩쿠르를 위해 준비하던 작품을 박사 과정 수업에서 프레젠테이션하면서 공부와 연습을 병행했어요.

일석이조였네요.(웃음)

네. 그러면서 예전보다 악보를 지켜보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것이 제게 여러 면에서 큰 변화를 준 것 같아요. 단시간 안에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기보다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정보를 취합하고 생각하고, 분석하고, 또다시 정보를 찾는 과정 속에서 음악을 구성하는 이외의 다른 요소들에 대해 넓게 배울 수 있었죠. 다양한 시각으로 음악을 바라보고 나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그럼 예전에는 어떻게 작품에 접근했나요?

물론 그때도 작곡가의 의도와 악보 속에 담긴 숨은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연주 자체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객석에서 제 연주를 좋아해 주고 환호해주는 게 행복했고요. 지금은 작품에 대한 문헌을 찾기 위해 도서관에 가 있는 시간이 늘었고 음악 서적을 읽는 시간도 많아졌어요. 정보 자체를 얻기보다는 이해해서 나만의 해석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전할 수 있을 테니까요.

연습실에서 도서관으로 삶의 반경이 더 넓어졌네요. 그런데 유진씨는 원래 책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았나요?

제가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연주 이외의 시간엔 뭘 하세요?’라는 질문에 ‘책 읽기’라고 답했거든요. 그 이후 갑자기 ‘독서광 연주자’로 변신했어요.(웃음) 책 읽는 건 물론 좋아하죠. 어린 시절 고전소설과 역사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어요. 특히 스토리가 있는 소설을 좋아해요. ‘나니아 연대기’ 같은 판타지 소설과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같은 영화도 즐겨 보고요.

미국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보스턴은 산책하기 좋은 곳이 많아요. 음악을 들으면서 걷고 좋은 친구들과 앙상블도 하고 여유가 더 생겼어요. 물론 도서관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늘고 있긴 하지만요.

연주자로서 꿈꾸는 것이 있다면?

지금처럼 즐기면서 새로운 레퍼토리도 공부하고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폭넓은 지식도 쌓고 싶어요. 실내악 활동 역시 제가 좋아하는 분야라 열심히 하려고 해요. 서로의 음악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건 역시 음악을 하는 가장 큰 기쁨이니까요.

항상 밝아 보이는데, 힘들었던 시절은 없었나요?

의외로 어릴 때 방황을 했어요. 중학교 시절 저만 일반 중학교에서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어서 좀 힘들었죠. 그리고 스무 살 무렵인가, 어느 날 문득 제 연주가 더 이상 변화 없이 이렇게 지속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슬럼프에 빠졌었어요.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했나요?

슬럼프가 생기면 거기에 푹 빠지는 편은 아니고 음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좋아지곤 해요. 친구들과 앙상블을 하면서 다시 음악 하는 즐거움을 찾고 책도 보고 영화도 보면서 되도록 모든 일을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지금의 삶에 만족하나요?

제가 안달복달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저희 가족 모두 그래요. 그래서 오히려 편하게 이 길을 올 수 있었어요. 최선을 다하지만 안 되는 일에는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 편이고요. 요즘은 전보다 훨씬 음악을 많이 듣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그저 무심히 듣던 하이페츠나 아이작 스턴 연주도 요즘은 굉장히 다르게 다가와요. 음악이라는 것이 이렇게 넓은 것이구나 느껴지고 제가 모르고 있는 앞으로 알게 될 음악 세계가 더 궁금해져요. 제 삶에 감사하고 만족하면서 그동안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던 더 깊고 넓은 것들을 계속 발견하고 싶어요.

가끔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느낄 때가 있다. 창조의 영감이 빛나는 순간은 꼭 연습실에서만 찾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장유진은 지금 느린 시간 속에서 음악을 둘러싸고 있는 더 넓은 세계를 여행 중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깨어나는 시간. 새로운 계절을 향해 그녀가 천천히 걷고 있다.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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