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의 악기로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제작 콩쿠르 1·2위를 차지하다
먼 나라에서 뜻밖의 승보를 전해온 악기 제작자 박지환의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평소 악기 제작자라는 직업을 접하기 어려운 탓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물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심지어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어, 찾고 읽기를 반복하며 홀로 악기 제작자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작 용어에 익숙해질 즈음,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나름 오랜 기간 클래식 음악을 들어오면서 관심은 연주자와 무대에 쏠려 있었을 뿐, 한 번도 악기 제작자를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엉뚱한 부분에까지 닿았다. 영화 ‘해리포터’를 보면서도 ‘왜 지팡이 만드는 사람에 대해선 아무런 이야기가 없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지만 음악에 있어선 때때로 도구 탓을 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존재한다. 청중에게 감동을 주는 무대를 위해선 음악과 연주자, 그리고 악기의 합이 중요하다. 그런 무대를 위해서는 좋은 악기가 필수적이고, 결론적으로 우리에게는 훌륭한 악기 제작자가 필요하다.
서른넷 박지환, 악기 제작자로 우뚝 서다
악기 제작자.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낯선 그 길을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앞서가는 한 젊은이가 있다. 폴란드에서 열린 2016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제작 콩쿠르에서 1·2위에 오른 두 바이올린의 주인, 악기 제작자 박지환이다.
1위에 오른 바이올린 ‘오르소’는 ‘소리가 열려 있어 연주하기 좋다’는 평을, 2위와 최고제작상을 받은 ‘마샤’는 ‘힘 있는 고음과 풍부한 저음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오르소’와 ‘마샤’를 제작할 때, 각각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나요?
최대한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스타일을 존중하면서, 각각의 악기가 개성을 잃지 않도록 에프홀과 스크롤 모양, 칠의 느낌에 변화를 줬습니다. 또 ‘오르소’는 최대한 편안한 소리를, ‘마샤’는 좀 더 두텁고 강한 소리를 내도록 했습니다.
악기 이름을 ‘오르소’와 ‘마샤’라고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 살배기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마샤와 곰’에서 따왔습니다. 이탈리아어로 곰을 오르소(Orso)라고 하는데, 이는 아내의 생각이었습니다. 덕분에 두 악기 모두 생각지도 못한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아 더욱 기쁩니다.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는 제작 심사와 소리 심사로 악기를 평가합니다. 심사는 어떤 절차를 거치나요?
처음 3주 간은 제작 심사가 이뤄집니다. 악기의 제작 완성도, 바니시(도료의 칠해진 상태), 전체적인 스타일 등을 평가하는데 이 과정에서 ‘마샤’가 최고제작상을 받았습니다. 소리 심사는 일주일 동안 독주, 피아노와 2중주, 오케스트라 협연 등 총 3차에 걸쳐 음색, 소리의 편안함, 현간의 균형, 악기 사용의 용이함 정도를 평가합니다.
악기 제작자에게 콩쿠르 참가란 어떤 의미인가요?
학교를 졸업하고 거의 매해 콩쿠르를 찾았습니다. 연주자처럼 악기 제작자도 이름을 알리고,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기 위해 참가합니다. 그러나 제작 경력이 길지 않은 제게는 공부를 위한 목적이 더 컸습니다. 보통 시상식이 끝나면 일정 기간 참가 악기들을 전시하는데, 해외 각지에서 온 제작자들의 악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됐죠. 단기간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꾸준히 콩쿠르에 참가할 생각입니다.
스무 살 박지환, 군대에서 길을 찾다
트럼펫을 공부하던 중, 현악기 제작으로 진로를 바꾸셨다고요.
서울시향에서 트럼펫 주자로 활동한 아버지를 따라 트럼피터가 되고 싶었지만 음대 입시에 실패한 후, 바로 입대했습니다. 군악대에 복무하면서 현악 주자를 많이 만났고, 점차 현악기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우연히 악기 제작자에 대해 알게 됐는데, 어려서부터 무언가 직접 만들기를 좋아하던 저는 그 일이 제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유럽 각지와 미국을 포함해 훌륭한 악기 제작학교가 있는데, 크레모나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제작학교의 커리큘럼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요?
과르네리, 스트라디바리우스, 아마티 등 최고의 바이올린이 탄생한 이탈리아의 크레모나야말로 악기를 제작하고 배우는 데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년제인 스트라디바리 제작학교는 악기 제작을 중심으로 실습, 바니시, 수리 등을 가르칩니다. 음향학이나 악기 연주 등 전반적으로 음악과 관련된 수업이나 영어, 수학 등 교양 수업도 있고요.
제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진로는 보통 어떤가요?
대부분 ‘제작’과 ‘수리’로 나뉩니다. 제작을 선택하면 개인 공방을 열거나 전문 공방에 취직하게 되죠. 다만, 제작 위주로 시장이 발달한 크레모나에서 수리를 선택한 학생들은 일감과 일자리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스물아홉 박지환, 스스로를 브랜딩하다
졸업 후 본인의 공방을 차리셨죠. 한국인 악기 제작자로서 공방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졸업 후 1년 반 정도 전문 제작자 밑에서 일을 배웠습니다. 이후 여러 공방들로부터 제작일을 받아오던 중, 자유로운 환경에서 악기를 만들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공방을 차렸습니다. 직접 악기를 만들 뿐 아니라, 수리를 맡거나 일을 받기도 했죠. 아무래도 악기 시장이 유럽 출신 제작자들의 악기를 선호하기 때문에 그들보다는 불리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점은 초기에 잠깐 겪는 문제이고, 오히려 한국인으로 유리한 부분도 있습니다. 한국인 특유의 손재주와 빠른 습득력은 현지에서 굉장히 높게 평가받습니다. 덕분에 다른 나라 출신 제작자에 비해 쉽게 일감을 얻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편이고요.
그동안 제작한 악기 중 특별히 애정이 가는 악기가 있다면?
일 년에 보통 바이올린 3~4대, 비올라 2대, 첼로 2대 정도를 제작해왔습니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악기가 있다면 아무래도 처음 만들었던 악기겠네요. 제작학교 학생 시절, 혼자 집에서 악기를 만들어보려다 한국인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콩쿠르 준비에 한창 바쁜 시기였는데도, 선배는 본인의 작업실에서 제작을 배울 수 있게 해주셨어요. 그분이 바로 크레모나 콩쿠르, 독일 미텐발트 콩쿠르 등 큰 규모의 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상한 박성현 제작자입니다. 그때의 경험이 악기 제작자로 살아가는 데 밑거름이 됐죠. 그래서인지 첫 악기에 더 애착이 갑니다.
‘바이올린은 오래될수록 좋다’고 합니다만, 오래됐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악기는 아닐 텐데요.
먼저 ‘좋은 악기’를 정의하자면, 좋은 재료를 바탕으로 만듦새에 문제가 없어야 하고, 유지와 관리가 잘되어 있어야 합니다. 연주자의 스타일과 경제적 상황에도 맞아야 하고, 무엇보다 좋은 소리를 내야겠죠. 올드 악기의 가장 큰 매력은 오랜 세월을 거쳐 형성된 ‘소리’입니다. 악기의 소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진다는 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만, 앞서 말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채 오래되기만 한 악기는 그저 ‘오래된’ 악기일 뿐입니다.
올드 악기와 비교했을 때 모던 악기가 지니는 장점은 무엇인가요?
이 또한 ‘좋은 악기’의 조건을 갖췄음을 전제해야겠네요. 현대에는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악기를 위한 음향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악기의 소리를 길들여가는 과정이 오히려 더 즐겁다’며 새 악기를 찾는 연주자들도 많아지고 있고요.
악기 제작자와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도 큰 이점입니다. 악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또 제작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면 악기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또 모던 악기는 올드 악기보다 유지 및 관리가 쉽기도 하고요.
다시 서른넷 박지환, 미래를 말하다
앞으로 계획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우선, 크레모나에서 공방 운영과 학업을 병행할 생각입니다. 과거의 제작자들에 대해서나 현악기 제작의 황금기였던 바로크 시대의 음악, 미술, 건축 등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공부해볼 생각입니다.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는 제 악기뿐 아니라 한국인 제작자가 만든 악기가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 연주자들이 우리가 만든 악기를 많이 사용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인 제작자들도 해외 제작자의 우수한 악기와 견주어 손색없을 만큼의 악기를 만들 수 있어야겠죠. 그래서 저는 이탈리아에 남아 있습니다. 현악기의 본고장인 이곳에서 인정받는다면 연주자들도 한국인 제작자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줄 테니까요.
어떤 악기 제작자를 꿈꾸시나요?
우리가 말하는 바이올린은 이미 수백 년 전 그 형태가 정해진 악기입니다. 옛것, 옛날의 제작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박지환만의 차별된 무언가를 담아내는 악기 제작자가 되고 싶습니다. 너무 과거의 것을 모방해서도 안 되고, 개성만을 추구해서도 안 되죠. 궁극적으로는 한국 연주자를 비롯해 전 세계의 많은 연주자를 만족시키는 제작자가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수십, 수백 년 동안 자란 나무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고, 악기는 그 힘으로 또 수백 년을 살며 연주자와 청중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죠. 그런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게 바로 악기 제작자입니다. 비록 작업대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고 모든 제작 과정을 묵묵히 견뎌야 하지만 이런 방식의 일을 즐길 줄 알고, 악기 제작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언제까지나 무한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34세 악기 제작자, ‘젊은 장인’이라 불리는 박지환이 들려준 이야기에서는 아름다운 자부심이 흘러넘쳤다. 최순우 작가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 쓰인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운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악기 제작자에게 오늘은, 어쩌면 무수한 시간이 흐른 후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보다 더 긴 명맥을 이어나갈지도 모르는, 악기들의 역사가 시작되는 기점이다. 수백 년의 미래를 내다보는 마음으로, 음악사의 한 편에서 고요하게 그 가치를 지켜나가는 젊은 악기 제작자 박지환의 모습에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운 뜻을 몇 번이고 곱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