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피스트 황세희

손끝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7월 1일 12:00 오전

2014년 프랑스 하프 콩쿠르에 우승하며 이름을 알린 황세희. 하프의 대중화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녀의 이야기

2014년 프랑스 하프 콩쿠르에 우승하며 이름을 알린 황세희. 하프의 대중화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녀의 이야기

1995 고양 출생
2008 예원학교 입학
2010 오사카 콩쿠르 3위
2011 서울예고 입학
2012 일본 하프 콩쿠르 2위
2013 헝가리 세게드 하프 콩쿠르 특별상, 비엔나 콩쿠르 대상
2014 프랑스 하프 콩쿠르 전체 대상·카막 특별상, 라이언&힐리 어워즈 수상, 미국 영아티스트 하프 콩쿠르 3위
2016 인디애나 음대 최고연주자 과정 입학

하피스트 황세희와의 사진 촬영 현장은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이동이 어려운 하프의 특성상 스튜디오 촬영이 힘든 데다, 아시아 하프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그녀는 연주를 마치고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결국 리허설 전 무대 세팅 시간을 이용해 사진을 찍기로 했다. 주어진 시간은 단 5분. 마음이 급해 서두르는 기자와는 달리 그녀는 사진작가의 요청에 따라 침착하게 움직였다. 차분한 그녀 덕에 미션은 ‘파서블’로 엔딩을 맞았다.

지난 5월 1일 열린 아시아 하프 페스티벌의 라이징 스타 콘서트에서 황세희는 한국 대표로 연주회의 오프닝을 장식했다. 앙리에트 르니에(Henriette Renié)의 ‘3개의 에피소드를 가진 교향적 작품’을 연주하는 그녀의 손끝에서는 앳된 외모와는 다른 진중하고 묵직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차분한 성격은 연주에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연주는 시시각각 변하는 음색과 다이내믹한 아르페지오를 통해 다채롭게 변모했지만, 그 중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음악에 몰두하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게 빛났다.

2010년 오사카 콩쿠르를 시작으로 일본 하프 콩쿠르·세게드 하프 콩쿠르에 입상하며 차세대 하피스트로 떠오른 황세희는 2014년 세계적인 하프 제작사 라이언&힐리가 주최하는 라이언&힐리 어워즈 수상과 미국 영아티스트 하프 콩쿠르 3위 수상으로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왔다. 같은 해 열린 프랑스 하프 콩쿠르에서는 전 부문 참가자 중 최고점을 받아 전체 대상과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인디애나 음대에서 수전 맥도널드를 사사하고 있는 그녀는 7월 21일 금호아트홀에서 독주회를 가진다.

라이징 스타 콘서트가 끝난 후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황세희를 만났다. 그녀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여덟 살 아이가 느꼈던 하프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부터 자신의 음악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 황세희의 시작

처음 하프를 만난 건 여덟 살 때였어요. 부모님께서 악기를 하나쯤 다루길 바라셔서 언니와 함께 피아노를 배우던 중이었죠. 어린 시절의 제게 피아노 음색은 단조롭게 느껴졌고, 금세 흥미를 잃었어요. 그러던 중 피아노 선생님의 스튜디오에 따라갔다가 하프를 보게 됐어요. 화려한 외관과 손의 움직임 따라 다채롭게 변하는 음색은 저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그렇게 하프를 시작했어요. 현을 뜯을 때마다 몸으로 전해지는 진동도 매력적이었죠. 점차 하프와 교감하게 됐고, 열 살에 하프를 전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예술가로서 삶을 위해 감내한 것

예원학교 시절 저는 승부욕이 강한 학생이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참 독하게 연습했죠. 서울예고에 진학한 후 학년이 올라갈수록, 해외 콩쿠르에 참가하는 것과 학교생활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많은 친구가 저와 같은 문제로 고민했고요. 하나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에 과감히 홈스쿨링을 택했습니다. 자연스레 다른 친구들과의 교류가 줄어들었죠. 무척 외로운 시기에 곽정 선생님을 만났어요. 선생님은 항상 음악 앞에서의 겸손한 자세를 강조하셨어요. 당시 저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고 제 음악은 고쳐야 할 것투성이였죠. 그때부터 오로지 연습에만 몰두했어요. 평범한 학생으로서의 삶은 포기했지만, 음악적으로는 크게 성장한 시기였죠. 여러 콩쿠르에 입상할 수 있던 계기도 됐고요.

해외 콩쿠르 도전기

꽤 오랫동안 콩쿠르에 도전해왔어요. 참가할 때마다 부담이 큰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이 중압감이 원동력이 되고, 좋은 결과를 만들죠. 결국 콩쿠르는 음악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출전했던 콩쿠르 중에서는 2014년 프랑스 하프 콩쿠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당시 아시아권 참가자는 저 하나였어요. 유럽인들 사이에서 심리적 위축도 있었고, 넷째손가락이 현을 뜯을 수 없을 정도로 부어 있던 터라 마음을 비우고 임했어요. 고생이 많았지만, 감사하게도 전체 대상에 특별상까지 수상했습니다. 하프의 본고장에서 거둔 우승은 그 어떤 결과보다도 달콤했어요.

함께 연주하는 즐거움

어린 시절 함께 하프를 배운 언니(황세영) 역시 하피스트로 활동하고 있어요. 자매가 같은 악기, 그것도 흔치 않은 악기를 전공한 특별한 케이스죠. 형제가 같이 음악을 하더라도 악기가 다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잖아요. 저희는 음악적 고민마저 같아요. 언니는 항상 제 소리를 들어주고, 제가 놓치는 부분을 짚어줘요. 무엇보다 가족이니 눈빛만 봐도 통하고요. 언니와 듀오 연주를 몇 번 가진 것 외에는 앙상블 경험이 많진 않았어요. 그러던 중 2011년 언니와 함께 하피데이 앙상블(예술감독 곽정)에 입단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실내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저의 성장기를 함께한 실내악단이죠. 하피데이 앙상블은 하프의 대중화를 꿈꾸며 하프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결성된 앙상블이에요. 어떻게 하면 청중에게 하프의 색다른 매력을 알릴 수 있을까 늘 고민하죠. 그래서 음악적인 부분부터 의상, 프로그램 구성 등 연주 콘셉트까지 아이디어 회의를 굉장히 자주 해요. 연주를 앞두고는 밤새 연습하다 같이 잠들고, 밥도 지어 먹으며 합숙 훈련도 하고요. 제겐 또 하나 가족인 셈이죠. 지난 4월에는 카네기홀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쳤어요.

미국으로 내디딘 첫발

올해 인디애나 음대에 입학해 수전 맥도널드 선생님을 사사하고 있습니다. 하프계의 대모라 불리며 하프의 부흥에 힘쓰시는 분이에요. 어릴 때부터 무척 배우고 싶던 분이지만, 여든 살의 선생님과 잘 소통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어요. 막상 만나 뵈니 그런 생각을 한 제가 부끄러울 정도로 큰 도움을 주세요. 선생님 덕에 하나의 터치로 소리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고요. 그 전까지는 오랜 시간 반복적인 연습에만 몰두했다면, 지금은 기술적인 부분 외에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있어요. 덕분에 연주 스타일도 한결 자유로워졌어요. 예전에는 소극적인 표현이 고민이었거든요. 저만의 색깔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확장하고 싶은 레퍼토리

요즘 앙리에트 르니에의 작품에 푹 빠져 있어요. 20세기 3대 하피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프랑스 하피스트예요. 맥도널드 선생님의 스승이기도 하죠. 맥도널드 선생님께 배우는 동안 르니에의 레퍼토리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르니에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어요. 이번 독주회도 ‘3개의 에피소드를 가진 교향적 작품’ ‘명상’ ‘전설’과, 그녀가 편곡한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1번 등 프로그램의 절반을 르니에 작품으로 채웠어요.

나에게 영감을 준 예술가

프랑스의 하피스트 이자벨 모레티가 떠오르네요. 청중을 사로잡는 힘이 있는 연주자예요. 2014년 세계하프대회에 참가할 당시 실연을 접했는데, 모레티가 만드는 프레이즈에 따라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것을 보며 ‘100% 교감’이 어떤 것인지 느꼈죠. 연습을 하다 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 답답할 때면 모레티의 음반을 들어요. ‘이런 방법으로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며 많은 아이디어를 얻죠. 그녀의 연주 중에서는 알베르트 차벨의 ‘구노 ‘파우스트’에 의한 판타지’를 가장 좋아해요. 언젠가 그녀와 듀오 연주를 한다면 꿈만 같을 것 같아요.

나와 밀접한 타 예술 장르

발레를 꽤 오랫동안 배웠어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전공까지 할 뻔했죠. 사실 하프를 켜는 동작이 발레의 몸짓과 비슷해요. 손의 모양에 따라 소리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에 ‘움직임’에 대한 센스가 필요하죠. 동작이 유연할수록 현을 다루기도 수월하고요. 연주할 때 선이 예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발레의 영향인 것 같아요.

하피스트로서 꿈꾸는 미래

유학을 결심한 이유는 하프의 대중화를 위해서였어요. 해외의 경우, 페달이 없는 켈틱 하프의 보급률이 높아요. 상대적으로 연주하기가 쉽기 때문에 하프를 취미로 삼은 사람도 많고, 길거리에서 하프 버스킹을 하는 등 대중에 개방되어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하프라고 하면 아직까지 그랜드 하프만을 떠올려요. 하프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악기고, 일상과 가까이 있는 악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한국에서 ‘하피스쿨’이나 ‘열린 하프 교실’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해왔어요. 이런 작은 시도가 모이다 보면 언젠가 하프의 대중화가 이뤄지지 않을까요? 열심히 실력을 쌓은 다음, 본격적으로 하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싶어요.

사진 강태욱(Workroom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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