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안종도

생각이 묻은 건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8월 1일 12:00 오전

2012년 롱 티보 콩쿠르 우승 이후, 불레즈·라모·슈만으로 국내에서 첫 리사이틀을 갖기까지

2012년 롱 티보 콩쿠르 우승 이후, 불레즈·라모·슈만으로 국내에서 첫 리사이틀을 갖기까지

어느 인터뷰에 실린 그의 말이 참 좋았다. 멋이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그 말들을 떠받치는 ‘생각’이 참 좋았다. 난해한 시를 썼지만, 명징하고 논리적인 언어로 자신의 시를 해명하는 시인 같았다. 정말이지 자신이 ‘연주’로 써야 할 음악에 대해 꿰뚫고 있는 듯했다.

2012년 롱 티보 콩쿠르 우승(1위 없는 2위) 후 한국에서의 리사이틀은 처음이다. 불레즈 ‘노타시옹’, 라모 ‘기술적 손가락 훈련을 위한 클라브생 작품집’ 중 모음곡 D장조, 슈만 ‘다비드 동맹 무곡집’을 선보인다. 크게 보면 작곡가 3명의 3곡이다. 하지만 불레즈의 곡이 12곡, 라모가 10곡, 슈만이 18곡으로 구성된 것을 빌려 “40개의 각기 다른 순간을 만난다는 것은 마치 여러 감정의 실타래로 엮인 우리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며 말하는 이 피아니스트는, ‘연주하다’를 뜻하는 ‘interpreter’가 ‘해석하다’라는 다른 뜻도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먼저 말 걸고 싶은 피아니스트. 안종도가 있는 독일 함부르크로 이메일을 날렸다.

2016년 여름. 본인에게 가장 화제는 무엇인가요?

열일곱 살에 고국을 떠나 14년 만에 처음으로 리사이틀을 갖게 되었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구성한 곡들과 함께 찾아갈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 시간이 관객들과 어떤 호흡을 이뤄낼지 정말 기대됩니다.

어떻게 연주하느냐 못지않게 무엇을 연주하느냐는 것도 중요하죠. 연주자는 그 ‘무엇’을 통해 자신의 가슴을 열어 보여주잖아요. 이번 선곡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곡을 구성하는 것은 작품을 창조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공연에 부제를 붙인다면 ‘작은 형식에 의한 예술’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불레즈는 12곡, 라모는 10곡, 슈만은 18곡, 이렇게 ‘작은 형식’들로 구성된 곡들입니다. 각각의 곡은 짧지만 특색이 농축되어 있죠. 마치 인상적인 시구 몇 절로 된 시처럼 단어 하나하나가 소중하기에 그 어느 하나도 흘려버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일상에서 종종 일어나는 찰나의 순간이 우리 마음에 깊은 인상을 새기듯, 불과 20~30마디에서 일어나는 이 짧은 순간들을 살아 숨 쉬는 생명으로 만드는 것이 피아니스트로서 도전이자 보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 공연에선 세 명의 작곡가, 그리고 바로크에서 현대에 이르는 40개의 곡이 만나 ‘커다란 그림’으로 펼쳐질 것입니다. 이 세계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것은 연주 순간에 펼쳐질 저와 관객들의 대화와 소통일 것이고요.

홈페이지(www.jongdoan.com)를 보니, 연주 가능한 레퍼토리를 적어놓은 듯한 곳이 있더군요. 그곳에 모차르트·베토벤·쇼팽·슈만·브람스·그리그·라흐마니노프 협주곡과 함께 뒤사팽과 메시앙의 협주곡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현대음악을 즐기는 편인가요?

음악의 ‘건축적 구조’를 보여주는 독일 음악과 비교해볼 때 프랑스 작곡가들은 피아노라는 기계가 낼 수 있는 소리의 다양성과 독창성, 그리고 ‘소리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인상주의 화가들이 형상과 구조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 대기에 떠도는 색채, 빛 고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처럼 말이죠. 물론 뒤사팽·메시앙·불레즈 등의 곡에도 ‘건축적 구조’가 있어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피아노라는 악기의 소리를 표현하고 실험할 수 있다는 것이, 피아니스트로서 느끼는 매력인 것 같습니다.

불레즈 ‘노타시옹’은 피아노가 일관되게 ‘타악기’처럼 다뤄진다는 점에서, 라모 ‘기술적 손가락 훈련을 위한 클라브생 작품집’은 말 그대로 ‘클라브생(하프시코드)’을 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슈만 ‘다비드 동맹 무곡집’은 응당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번 곡들을 보고 타악기·하프시코드·피아노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여러 악기의 소리와 질감이 충분히 표현되어 있는 곡들입니다만, 세 곡을 아우르는 것은 바로 ‘춤’ 아닐까 생각합니다. 륄리의 발레 음악에서 영향받은 라모(1683~1764)의 작품집은 동시대 화가인 프랑수아 부셰(1703~1770)의 화폭에서 펼쳐지는 그리스 신들의 비밀스러운 춤과 같고, 슈만은 그의 영혼 안에 맴도는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뛰어노는 춤을, 불레즈는 아방가르드적 요소가 다분한 현대무용을 떠올리게 합니다. 감정을 곧바로 몸으로 실어낼 수 있는 행위인 춤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과 영혼에 밀접하게 닿아 있는 의식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40개가 넘는 감정의 세계와 엮여 있는 이번 프로그램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고요.

라모의 곡에는 ‘기술적 손가락 훈련을 위한 클라브생 작품집’이라는 다소 딱딱한 제목이 붙었습니다만, 너무나 감성적이고 서정적이더군요. “이래서 ‘기술적 손가락 훈련’이 될까?”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손가락 훈련’을 위해 곡이 좀 더 냉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종종 연습하다 몇몇 이해가 안 되는 어려운 패시지를 만날 때면 정말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죠. 사실 하프시코드(클라브생)를 위한 곡이라 피아노로 연주할 때면 어려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충분히 극복되어야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음악이 살아난다는 점에서 저도 어찌 해야 할지. 라모는 너무나 당연히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쇼팽의 연습곡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저절로 이해가 되기도 하는 부분입니다.

40개의 조각(불레즈 12곡, 라모 10곡, 슈만 18곡) 중 좋아하는 곡을 4~5곡 꼽는다면?

보석 같은 곡들 중에 5곡이라니··· 너무 어려운 질문입니다. 하지만 연주 후 종종 마음에 긴 여운이 남아 있는 곡이 있습니다. 바로 ‘다비드 동맹 무곡집’의 14번인 ‘아름답게 노래하면서(오이제비우스)’입니다.

2012년 롱 티보 콩쿠르의 결선에서 연주한 슈만 협주곡은 우승의 기쁨을 안겨준 곡이기도 한데요. 그래서인지 슈만의 피아니즘은 더 특별하게 다가갈 것 같습니다.

슈만은 독일 낭만파를 대표하는 작곡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는 항상 극단적으로 변하고, 그의 희로애락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곡 안에서 종종 연주자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기도 하고요. ‘아름답게 노래하면서’는 인생에 한차례 거친 폭풍이 지나고 잠잠해진 뒤 노래하는 사랑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얼마나 달콤한지를 슈만답게 강렬히 표현합니다. 여기서 ‘강렬히’는 말은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그만큼 많이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이 곡을 듣다 보면 ‘매일 꿈속에 나오는 당신을 볼 때마다 난 당신에게 부드러운 인사를 건네지요. 하지만 곧바로 터져 나오는 울음에 복받쳐 나는 당신의 사랑스러운 발밑에 내 몸을 쓰러뜨립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그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이 생각납니다. 어떤가요? 극단적인 것과 부드러움, 달콤함은 선뜻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지만, 슈만에겐 너무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니었을까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유학(모차르테움), 파리의 롱 티보 콩쿠르에서 입상, 독일 함부르크에서 교육 활동(함부르크 음대). 안종도 씨에게 세 도시는 좀 특별할 것 같은데요.

7월의 2주 동안 오스트리아와 독일 등지에서 네 차례 연주가 있었고, 셋째 주에는 제네바에서 리사이틀과 마스터클래스를 가졌습니다. 여기에 함부르크 음대 수업과 최근 시작한 칼럼 기고까지. 다가오는 순간마다 도전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함부르크의 브람스 등 옛 거장들이 숨 쉬던 곳에서 저도 숨 쉬며, 그들이 바라보던 하늘 아래 그들이 음악으로 호흡하던 예술의 존재와 흔적을 마음껏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바쁘지만 이러한 것을 통해 살아 있는 것을 매번 느낍니다.

8월 4일 리사이틀 이후에 기대되는 협연이나 리사이틀을 꼽는다면요?

같은 프로그램도 어떤 장소에서 어떤 관객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모습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올해 독일 하노버와 스위스 제네바 그리고 서울로 이어지는 이 프로그램이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 숨 쉴지 저 또한 궁금합니다. 10월 이후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독일 뮌헨을 비롯한 몇몇 도시에서 리사이틀이 예정되어 있고요. 학교는 새 학기를 시작합니다. 다음 시즌부터는 독주뿐 아니라 독일 가곡에 더욱 집중할 계획입니다.

사진 금호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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