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이경숙·김규연 모녀

엄마와 딸의 인생 소나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8월 1일 12:00 오전

같은 피아니스트로서 서로에게 보내는 사랑의 선율. 

얼마 전 6·25를 맞아 KBS에서 기획다큐멘터리 ‘피아노’를 방영했다. 전쟁의 상처와 공포 속에서 울려 퍼진 피아노 선율.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도 음악 콩쿠르가 열렸을 만큼 우리나라는 유난히 음악과 교육의 열의가 높았다. ‘피아노’ 다큐멘터리에 나온 피아니스트 이경숙은 해방과 함께 6·25를 겪고 그 속에서 피아노를 운명적으로 만났다.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의 땅에서 잔잔히 들려오던 피아노 소리. 그것은 희망이었다. 같은 시간 피아니스트 김규연은 엄마가 나오는 방송을 미국 자신의 방 안에서 보고 있었다. 집에서만 보던 엄마의 모습이 브라운관 속에서 자연스럽게 투영돼 전국에 방영되고 있다. 엄마의 절실하던 피아노가 그녀의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1악장/피아노와의 만남

성악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이경숙은 글을 읽기 전에 악보를 보고 동요를 배우기 전에 슈베르트의 ‘보리수’를 흥얼거렸다. 전쟁통에 부산으로 피난 가서 생활하던 중 어느 날 집에 들어가 보니 어느 선교사가 두고 간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의자에 앉아 피아노를 두드려보던 그때 소리가 하도 맑고 좋아 그 후론 피아노 곁에 꼭 붙어 지냈다.

“밖은 전쟁의 소문과 공포로 가득한데 음악 소리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했어요.”

딸 김규연은 피아니스트인 엄마 덕에 피아노를 만났다. 어렸을 땐 피아노라는 악기가 모든 가정에 있는 줄 알았다.

“침대나 소파처럼 피아노도 모든 가정에 있는 줄 알았어요. 가구처럼요.(웃음) 어린 시절엔 그저 장난감처럼 신기하고 재미있는 물건 같았죠. 또 피아노는 다른 장난감보다 훨씬 리액션이 빨랐어요. 연습하면 좋은 소리가 났고 멋진 선율도 만들어졌죠. 그러면서 점점 피아노와 친해졌어요.”

김규연이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게 된 건 순전히 그녀 자신의 음악 재능 덕이었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전공시킬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다른 세계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고 음악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분야이니 취미로 배우게 했던 거죠. 그런데 옆에서 보니 규연이의 음악성이 자꾸 보이는 거예요. 질문하는 것도 창의적이고 무엇보다 자기가 피아노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래서 모녀가 처음 간 곳은 동네 음악학원. 피아니스트 이경숙이 김규연의 손을 잡고 학원에 들어서자 선생님들이 일제히 긴장했다. 부담스러웠는지 학생이 많다는 이유로 공손히 거절했다. 다음 학원에 갈 때는 선글라스와 스카프를 둘렀다. 이경숙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우여곡절 끝에 김규연은 연희동 소라 음악 학원에서 피아노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뭘 배워오면 제게 묻고 확인하고 너무나 열심히 피아노를 치더군요. 옆에서 보면 치는 모습도 귀여웠죠. 규연이는 음악뿐 아니라 운동도 좋아했어요. 특히 축구를 좋아해서 공놀이를 하다 유리를 깨서 제가 불려가기도 했죠. 유난히 씩씩하고 건강한 아이였어요. 그런데 피아노 앞에 앉으면 집중력이 유난히 강했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옆에서도 보였어요.”

“엄마는 제가 학창 시절 워낙 바쁘셔서 어디를 배우고 있는 줄도 모르셨을 거예요.(웃음) 그냥 저를 믿고 놔두셨던 것 같아요. 연습하란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으셨지만 제가 연습을 하고 있으면 은근히 좋아하셨어요. 저는 피아노를 치다 책이 읽고 싶으면 책도 읽고 밖에서 운동도 하고 꽤 자유롭게 학창 시절을 보냈어요. 특히 역사책을 많이 읽으면서 사고의 폭이 넓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워낙 호기심이 많아서 하고 싶은 것이 많았죠.”

김규연이 학원을 떠나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운 건 한예종 예술영재학교 시절이었다. 조숙현·강충모 선생님을 만나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다.

“예비 학교 때 리듬과 율동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음악 표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곡을 주제로 안무를 함께 만들고 표현하는 시간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때 윤홍천 오빠도 이 수업을 들었는데 아주 좋아했고 열심이었죠.”(웃음)

사실 리듬과 율동 수업을 처음 만든 건 이경숙이었다. 한예종 교수로 재직할 당시 그녀는 풍부한 표현법을 가르치기 위해 수업마다 다양한 커리큘럼을 도입해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마음껏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스스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종종 어머니들이 아이들이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습하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음악이란 건 얼마나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죠. 그래서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자유롭게 표현력을 늘릴 수 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아이들의 교육은 정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는 부모의 지혜가 필요하죠. 규연이를 키우면서 그런 걸 더 많이 느꼈어요.”

2악장/닮은꼴 엄마와 딸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로 유명한 이경숙이 앞치마를 두른 모습은 어떨까? 딸이 본 이경숙의 모습은 요리하고 청소하고 가정을 돌보는 여는 엄마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경숙 교수는 열린 사고를 갖고 있는 다정한 엄마지만 예의와 배려를 중시하는 보수적인 어른이기도 하다.

“엄마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셨어요. 음악이면 음악, 살림이면 살림. 긍정적인 에너지가 집 안에 가득했죠. 요리도 잘하셨는데, 다만 내일은 먹을 수 없는 딱 오늘만 먹을 수 있는 창의적인 요리를 해주셨어요.(웃음) 일명 엄마표 음식. 제가 워낙 먹는 걸 좋아해 엄마와 만나면 먹는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산책도 같이 하고, 영화도 같이 보고요. 아빠도 음악을 좋아하세요. 고모가 음악을 전공하셨고, 워낙 집안에 음악이 흐르다 보니 저절로 애호가가 되셨어요. 엄마와 전 음악 얘기를 집에서는 자주 안 하는데 오히려 아빠가 하세요.”(웃음)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원장과 연세대 학장을 지내며 학생들과 오랜 세월 함께했던 이경숙은 은퇴 후 2015년부터 서울사이버대학의 교수로 새로운 음악 인생을 살고 있다.

“일 년 전부터 나가고 있는데 우리나라 최초 온라인 피아노과로 솔로 연주자뿐 아니라 반주자, 테라피, 학원교사, 방송, 광고업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고 있지요. 무엇보다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환경상 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 의미가 깊어요. 학생들의 진지한 태도와 열정에 날마다 감동하고 있어요. 봉사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김규연은 현재 맨해튼 음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얼마 전에는 쿠바에서 연주회도 가졌다.

“쿠바는 우리나라 1950, 1960년대 모습과 비슷해요. 하지만 문화 수준이 높아서 공연장에 어린아이들이 굉장히 많이 와서 음악을 감상했어요. 여유 있게 문화를 즐기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이번 여름에 한·중 수교를 축하하는 연주회가 금호아트홀에서 있고 클리블랜드에서 협연도 있을 예정이다. 11월 독주회와 내년 봄 카네기홀 연주도 기다리고 있다. 내년 5월에는 폴란드에서 녹음한 첫 음반도 나온다. 레퍼토리는 라모와 슈베르트로 구성되었다.

“첫 음반이어서 레퍼토리 선곡에 많이 고민했는데 저하고 잘 맞을 것 같은 곡이고 엄마도 선곡하는 데 조언을 좀 해주셨어요. 테크닉이 화려한 작품보다는 음악 깊은 곳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연주하고 싶어요.”

화려한 기교보다는 절제된 표현이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그녀의 연주는 젊은 연주자에게선 찾기 어려운 깊이를 갖고 있다.

이경숙 교수는 보통 어린 시절엔 으레 화려한 표현이 극대화된 곡을 좋아하는데 베토벤이나 브람스를 자꾸 치려 하려는 딸의 모습이 어느 땐 어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한다.

“행동하는 건 아이 같고 어느 땐 답답할 정도로 순수한데 연주할 땐 굉장히 성숙하고 진지하죠. 그게 규연이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3악장/지금, 우리의 음악

‘열정의 카리스마’로 상징되는 이경숙.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제 엄마는 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아름답던 젊은 시절을 돌아보는 나이가 되었다.

“3년 전인가 눈이 많이 아픈 적이 있었어요. 몸이 아프니까 마음도 약해지고 연주하기가 힘들더군요. 그래도 그해 슈베르트 소나타 D960을 연주했고, 12월에 쇼팽 작품들을 연주했어요.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쇼팽의 ‘이별의 노래’를 연주했는데, ‘이 무대가 마지막 연주일지도 모르겠구나’ 싶었어요. 그 후로는 무대에 오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연주하죠.”

예전에는 며칠을 연습해도 멀쩡했던 몸에 나이가 들면서 하나둘씩 이상이 오는데 그녀는 웬일인지 점점 피아노와 더 친밀해졌다. 손가락, 허리, 다리 아프지 않은 곳이 없고 언젠가는 피아노를 치다 쥐가 날 때도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암보. 보통 고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음악이 좋고 피아노가 애틋해지는 것이다.

“젊은 시절엔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많이 의식했고 언제나 좋은 연주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냥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그 순간을 즐기면서 연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언뜻언뜻 피아노를 못 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떨까 두려움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다가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맞아! 규연이가 있지. 규연이가 연주를 하잖아. 괜찮아.”

김규연은 올해 서른한 살이 되었다. 연주 활동 중에도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쌓고 있다. 예전보다 변화하는 환경을 받아들이고 다양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과 친해지는데 많이 유연해졌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여유를 갖게 되었다.

“심리 상태에 따라 내 음악이 달랐다는 걸 시간이 지나고 나서 느껴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나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또 거기서 나오는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전 지금 제 나이가 좋아요. 서른은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은, 그런 나이 아닌가요?”

하지만 그녀도 엄마가 나이 드는 것에는 달랐다.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의 흰머리가 느는 것이 안쓰러운 건 세상 모든 딸들의 마음이다.

“요즘은 일부러 제가 자제하는 편인데, 예전엔 엄마와 떨어져 있으면 아침마다 안부를 묻고 문자를 하고 그랬어요. 엄마가 저를 귀찮아하세요.(웃음) 걱정하지 말고 지금을 즐기며 감사하라고 하시죠. 나이가 드는 건 자연의 이치라고요. 사실 미래에는 현재가 없잖아요. 현재는 사라지는 거고 현재에 미래를 너무 생각하다 보면 지금을 즐길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엄마는 누구보다 현재를 사랑하는 분이죠. 그런 엄마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음악가로서 타고난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엄마의 연주는 표현할 때 막힘이 없고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깨끗하죠. 복잡한 것들이 다 사라진 후 남은 간결한 아름다움이 피아니스트 이경숙의 매력인 것 같아요.”

한 시대를 이어온 피아니스트가 한 집안에 둘씩이나 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악을 참 좋아하잖아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음악을 들으며 희망을 품고 살아왔죠. 그리고 우리 세대엔 꿈도 못 꾸던 일들이 지금은 세계 음악계를 놀라게 할 만큼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어요.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러워요. 물론 우려되는 부분도 있죠. 규연이도 젊지만 요즘 클래식 음악계는 젊은 스타 위주의 무대만 많은 것 같아요. 연주자도 너무 금방 나타났다 사라지죠. 예술계는 젊음과 늙음이 함께 공존해야 건강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한 시대에 존재하는 다양한 세대의 예술가들이 서로 교류하고 영향을 받는다면 예술은 더 풍요로워지겠죠. 시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연륜이 있는 연주자에게도 자주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김규연 역시 클래식 음악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사실 저희 세대에 좋은 연주자가 많고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교육을 통해 세계적으로 뛰어난 연주자도 많이 나왔죠. 그런데 요즘 보면 예술과 엔터테인먼트가 구분되지 않고 있지 않나 싶어요. 클래식 음악을 대중에게 더 많이 소개하고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전을 이해하고 감동받기까지 예술가에게뿐 아니라 청중에게도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시간을 너무 빨리 쉽게 얻으려다 보니 흥미 위주로 자꾸 음악 산업을 이끌려고 하는 거죠. 우리 모두 진정한 예술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필요한 때인 것 같아요.”

앙코르/피아노는 계속 이어진다

“얼마 전 아침에 일어났는데 규연이가 자기 방에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더군요.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젊음에서 오는 기교와 깊이가 참 특별하다 느꼈어요. 하지만 전 규연이가 연주자로서의 보람만큼 이 세상에서의 평범한 행복도 누리며 살았으면 해요. 아내와 엄마로서 가정에서 느끼는 기쁨을 만끽하면서요. 저 역시 규연이를 막 낳아서 키울 때 ‘음악보다 소중한 것이 있구나’ 느꼈으니까요.”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마음도 애틋하다. 인터뷰를 마치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김규연이 엄마를 향한 마음을 전했다.

“지금도 엄마의 모습을 보면 갖고 있는 에너지가 저보다 더 크다고 느껴져요. 늘 그렇게 엄마가 무대에서 사랑하는 음악을 하면서 생명력 넘치는 피아노를 계속 들려주었으면 좋겠어요. 어린 시절에나 지금이나 방문 틈 사이로 들리던 엄마의 피아노 소리는 언제나 제겐 희망이었으니까요.”

사진 심규태(HARU) 헤어 TG헤어 로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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