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해금’ 아픈 마음을 보듬다
남한산성은 내가 자주 가는 곳이다.
힘들이지 않고도 정상에서 먼 아래까지 내려다볼 수 있다.
소나무 숲도 좋고, 대체로 잘 정비되어 있는 성곽의 모습도
아름답다. 산성을 따라 산책하듯 걷고 나면
거기에 온 이유가 무엇이든 마음이 정돈된다.
여름의 한가운데, 남한산성을 걸었다.
남한산성이 주는 친숙함
나는 산을 좋아한다. 어떤 산이든 좋지만, 걸을 때 적당히 그늘지는 숲길을 가장 좋아한다. 마음먹고 올라야 하는 이름난 산은 아무래도 자주 가진 못한다. 누군가가 그랬다. ‘우리 집 뒷산’이 가장 좋다고. 익숙하고, 즐겨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특별한 일이다. 때로는 꼭대기까지 가지 못한다. 가끔 산을 오르다 귀가 몹시 아파지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겨울에 산행을 하면 특히 그렇다. 산이나 숲이 주는 즐거움은 그 입구에서든 정상에서든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0년 전 네팔에 갔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했다. 나흘 동안 산에 올랐는데 비가 많이 와서 목표했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발길을 돌리는 날 어찌나 섭섭하던지, 끝없이 오르던 계단에 앉아 한참 동안 마음을 추스른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의 산행을 안내했던 자그마한 네팔 아저씨가 그랬다. 아무리 사람이 가고자 해도, 산이 받아주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것이라고. 비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건너편 산을 향해 ‘언젠가 다시 오겠으니 그때는 받아달라’고 빌었다. 내려와서 알게 되었는데, 산을 올라갈수록 폭우가 심해져 계곡이 불어나서 사고도 있었단다. 결국, 산이 받아주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산 아래의 마을에서 열흘 정도 지냈는데, 날이 맑아지는 때면 늘 안나푸르나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 다시 가보지 않았지만, 마음 어딘가에서는 끝내지 못한 여정 언저리를 서성이고 있다.
산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안나푸르나 근처에 다녀오고서부터다. 그 전에는 산과 바다라면 당연히 바다였으니까. 그런데 산이 좋아졌다. 작은 발걸음으로 결국 산꼭대기에 오를 수 있는 것이 좋아지더니, 언젠가부터는 그냥 나무랑 흙이랑 산 냄새가 좋아졌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남한산성에 자주 가게 된 것이다. 엄밀히 말해 남한산성에 가는 것을 등산이라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런 점이 더욱 좋다. 걷다 보면 깊은 숲인 듯 펼쳐지는 소나무 군락과, 돌아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성곽이 평화롭다. 성곽의 거스르지 않고 이어지는 그 구불거림은 원래의 쓰임새와는 상관없이 안온하다. 조금 숨이 가빠질 즈음 산등성이 아래 보이는 높은 빌딩숲과 한강, 멀리 남산까지 펼쳐지는 시야도 시원하다. 소나무 그늘 아래에 친절하게 놓여 있는 벤치에 누워 곡을 쓴 적도 있다. 아무래도 일이 풀리지 않아 답답함이 쌓였을 때도 남한산성에서 툭툭 털어내고, 혼자 웃기도 했다. 무엇 때문에 떠오르지 않던 음악이 떠오르고, 풀리지 않던 숙제가 스르르 풀렸는지 알 수는 없다. 그저 산이 그런 기운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남한산성은 나에게 기댈 수 있는 가까운, 친근한 곳이 되었다.
해금을 사랑하게 된 이유
해금을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국립국악중학교 2학년 때 전공을 정하는데, 고민이 많았다. 나에게 해금은 더없이 여성스럽고 옹알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는, 다소 신경질적인 인상을 주었다. 당연히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선이 굵고, 깊은 울림이 있는 거문고가 훨씬 멋있어 보였다. 아빠는 거문고는 내 몸집에 비해 너무 크다면서 해금을 권하셨다. 해금은 줄이 둘뿐인데도 모든 음을 낼 수 있다더라고, 앞으로는 그런 악기가 빛을 발할 것이라고 하셨다. 당시 아빠는 우리 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셨다. 하지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전통 악기들을 면밀히 살피셨을 것이다. 그런 아빠의 권유에도 해금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전공에 대해 고민하던 어느 날이었다. 연습실을 지나가는데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짐승의 옹알이 같기도 하고, 여인의 흐느낌 같기도 한 소리였다. 가냘프면서도 날카로운 소리… 그 소리가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되어 나오지 않고 뭉뚱그려진 말에 울음이 섞여 있었다. 그날 해금이 나에게 말을 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해금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해금이 나에게 온 것이다. 해금을 하면서 해금이 나 대신 참 많이 울었다. 그래서 더욱 해금과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다. 일본에서 혼자 살던 시절이나, 음악에 대한 끝없는 욕심으로 스스로를 닦달할 때 해금은 하나뿐인 출구였다. 나의 미숙한 감정이나 삶의 편린을 보듬어줄 수 있는 존재 역시 해금이었다. 혼자이던 시간과 그 고독함을 견딜 수 있던 건 해금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금은 무릎에 앉혀지는 작고 단순한 악기다. 두 줄은 1센티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그 사이에 활이 끼워져 있다. 그 좁은 틈에서도 활은 무한하고 자유롭다. 명주실을 꼬아 만든 현은 거칠다. 활도 다른 찰현악기의 활보다 확실히 분방하게 생겼다. 뭉텅이로 느슨하게 매어 있다. 해금의 매력은 뭘까. 공중에 떠서 매어 있는 두 개의 명주실 현을 왼손으로 끊임없이 주물러 소리를 낸다. 활은 오른손으로 잡아채듯 현에 문지른다. 흐르는 듯이 활을 쓰지만 절대 미끄러지지 않는다. 활과 현이 서로 엉기고 비틀어지면서 소리가 터져 나온다. 굳이 표현하자면 사각거리는 듯한 소리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비척거리는 누군가를 끌어안는 소리 같기도 하다. 잘 웃고, 잘 운다. 재치 있으면서도 웅숭깊다. 내면에 깊은 슬픔을 안고도 환하게 빛난다. 나의 해금 사랑은 어쩔 수가 없다.
쓰다듬는다는 것은
그렇게 해금에게 위로받으며 연주자 생활을 하던 어느 날이다. 40대 초반 회사원이던 지인이 불쑥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해금을 들으면서 한번 엉엉 울고 싶어요. 아마 해금이라면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때 나는 좀 당황했다. 어른이 된 남자, 그것도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이 음악을 들으면서 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같이 감수성 예민한 사람만 그런 줄 알았으니까. 그리고 또 놀란 건, 사람이란 누구나 그렇게 때론 울고 싶은 존재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가끔 누군가의 절실한 울음에 대해 생각한다. 운다는 건 건강한 일이다.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니까. 숙제처럼 해금을 붙들고 그 절실함을 쓰다듬는다.
나를 울리는 해금 소리가 있다. 강은일의 ‘비에 젖은 해금’이다. 강은일 선생님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배웠다. 웃을 때는 천진한 아이 같고, 해금을 잡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다. 내가 연습에 소홀하거나 겉멋이 들어 있으면 북풍처럼 매섭고 혹독했지만, 진지하고 열심히 배울 때는 봄 햇살처럼 따사로운 분이었다. 더없이 순수하고 강인한 정신을 소유한 분. 누구보다 해금을 사랑하고, 사람을 품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선생님의 소리가 나를 울린다. ‘비에 젖은 해금’이 세상에 나온 지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나는 울컥한다. 해금 특유의 서정성과 끊기지 않는 생명력이 나를 아프게도 하고, 기쁘게도 한다. 그녀의 활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있다. 아주 작은 소리로 이어지는 활 질은 듣는 사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 깊은 농현으로 음이 흔들릴 때는 넓은 품에 안기는 것 같고, 높은 고음의 활약은 해금만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무엇보다 감성적인 선율을 섬세하게 연주하는 것과 카덴차의 화려하면서도 극적인 표현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그녀의 활 질은 날카롭고도 부드럽다. 그렇게 극과 극을 오가면서 소리를 낸다. 뭐랄까. 속이 찌르르하다.
스승의 소리는 늘 나에게 길을 보여준다. 정체되지 않고 열려 있다. 그리고 움켜쥐고 있던 부질없는 것들을 떠나보내게 해준다. 어딘가에 쌓여 있던 감정의 찌꺼기와 어쩌지 못하는 욕심, 불행의 씨앗인 미움 따위들 말이다. 그녀의 해금을 듣다 보면 그런 것들이 사라진다. 선명하고도 묵묵하게 위로를 건넨다.
어느 새벽이었다. 왠지 잠이 오지 않아 밤새 뒤척이다 늦게야 잠이 들었는데 깊이 잠들지 못했는지 새벽에 눈을 떴다. 그때 갑자기 남한산성이 떠올랐다.
산줄기들은 가까이 다가와 성을 겹으로 외호했고, 물은 동쪽으로 흘러 성 밖 들에 닿았다. 산이 물러서며 성 안팎으로 길이 열리는 자리가 조붓했다. 들이 헤벌어지지 않아서 산과 들은 옷깃을 여미고 맞아들이는 형국이었다. 성안은 오목했으나 산들이 바싹 조이지는 않았다. 성 안 마을은 하늘이 넓어서 해가 길었다. 순한 물은 여름에도 땅을 범하지 않았다. 성벽을 따라서 소나무 숲이 서늘했고, 작은 물줄기들은 농경지 가까이 흘러왔다. 관아가 들어서기 전부터 땅에 기갈들린 백성들이 성 안으로 모여들어 개울을 끼고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은 작지만 복작거렸다.
–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 중
김훈의 ‘남한산성’을 가슴을 움켜쥐고 읽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곳에 스며 있는 역사가 너무나 무거웠다. 책을 덮고 찾은 남한산성은 생명과 사람으로 넘치고 있었다. 시린 마음에 온기가 돌았다. 소나무 숲의 기운과 어디서 돌아봐도 까마득하게 이어진 성곽, 산을 헤치지 않는 발걸음들이 아픈 역사를 덮어주고 있었다.
비에 젖은 해금. 이른 새벽의 고요함과 선선함, 그 사이에 서 있는 마음에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 해금은 그런 마음을 가만히 덮어준다. 쓰다듬어진 마음은 더 이상 뾰족하지 않다. 뾰족하지 않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가. 그 작은 위로에 우리는 함께 걸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