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황수미

진심 어린, 도전의 노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0월 1일 12:00 오전

올가을, 앙상블 마테우스와 함께 내한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약속된 시각, 전화 너머로 차분하고도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대 위 에너지 가득한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을 경험하는 순간은 기자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10월 첫 내한을 앞둔 앙상블 마테우스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소프라노 황수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표현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이 음성으로 전해졌다.

새롭게 도전하는 그녀의 레퍼토리

프랑스 대표 실내악단으로 손꼽히는 앙상블 마테우스는 1991년 장 크리스토프 스피노시를 중심으로 마테우스 현악 4중주단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다양한 편성과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로지르며 발전해왔다. 무엇보다 이들의 행보 중심에는 ‘바로크’ 그리고 ‘오페라’가 있다. 최근 발매된 ‘거울’(Miroirs, DG)는 클래시카 매거진 쇼크(CHOC) 음반에 선정됐고, 그보다 앞서 카운터테너 필립 자루스키와 작업했던 비발디 오페라 아리아 모음집 ‘영웅’(Heroes, Virgin)는 디아파종 도르를 수상하는 등 그간 음반으로 만나온 이 실연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기회다.

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 내털리 드세 등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성악가들과 함께 작업해온 앙상블 마테우스가 이번에는 소프라노 황수미에게 손을 내밀었다.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위 수상과 함께 차세대를 이끌 실력파 소프라노로 행보를 이어가며 나날이 발전하는 그녀의 오늘을 함께 목격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번 무대에선 비발디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과 텔레만 2대의 플루트를 위한 협주곡, 하이든 교향곡 82번 ‘곰’과 함께 황수미가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 ‘세르세’ 중 ‘우아한 몸짓 하나로’, 라모의 오페라 ‘카스토르와 폴룩스’ 중 ‘슬픈 준비’, 모차르트 ‘환호하라 기뻐하라’를 선보인다. 그녀가 본 오페라극장 솔리스트로 처음 배역을 맡아 부르던 ‘울게 하소서’를 제외하면 나머지 작품은 모두 내한 공연을 위해 새롭게 준비하는 아리아다.

“지난해 10월 취리히에서 스피노시를 만나 프로그램을 확정했어요. 앙상블 마테우스가 바로크에 강한 단체이거니와 저도 도전해보고 싶은 레퍼토리가 추려졌어요. 올해 7월 같은 프로그램으로 함께 연주했는데, 무엇보다 스피노시의 넘치는 에너지에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한시도 악기를 손에 놓지 않은 채 음악적 표현을 계속 중얼거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2부 무대를 여는 모차르트 ‘환호하라 기뻐하라’의 경우 대부분의 관객이 화려하고 장식적인 선율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녀는 “초반의 레치타티보나 중간의 느리고 서정적인 부분을 잘 소화해야 곡을 제대로 완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부분을 지나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도록 기도하는 서정적인 경과구를 거쳐, 다시 넘치는 환희에 다다르는 여정 그 자체를 주목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진정성과 재능으로 증명하는 무대

2014년부터 본 오페라극장의 유일한 동양인 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황수미는 9월 25일 개막하는 푸치니 ‘라 보엠’의 미미 역으로 데뷔를 일주일가량 앞두고 아침저녁으로 연습에 한창이었다. 그간 극장에서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파미나, ‘코지 판 투테’의 피오르딜리지, 푸치니 ‘투란도트’ 류, 베토벤 ‘피델리오’의 마르체리네를 맡아온 그녀는 2016/2017 시즌 ‘돈 조반니’의 돈나 안나, ‘코지 판 투테’의 오르딜리지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시기에 극장에 들어온 다른 솔리스트들과 비교해도, 황수미처럼 단독 캐스팅으로 주역을 맡은 경우는 손꼽힐 정도다. 무엇보다 ‘라 보엠’의 미미는 그녀가 선망해온 캐릭터라 기대도, 부담도 적지 않았다.

“정말 원하던 배역이지만, 막상 극장 측이 이야기를 꺼냈을 땐 자신이 없었어요. 푸치니 작품은 ‘투란도트’의 류만 했는데, 반면 미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끌고 나가야 하거니와 작곡가 특성상 풀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대등한 소리를 낼 수 있을지, 혹시 성대에 무리는 없을지 고민이 많았죠. 악보를 보면서 주변에서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기대와 도전의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한편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심사위원이자 피아니스트인 헬무트 도이치와의 인연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황수미는 요즘 그와 내년 여름 새롭게 선보일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성악가와 반주자가 음악을 함께 만들고 호흡하는 것이 중요한 리트 특성상, 요나스 카우프만·디아나 담라우·안젤리카 키르히슐라거 등 유명 성악가들의 무대를 맡아온 헬무트 도이치와 짝을 이룬다는 것은 그녀에게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년 사이 헬무트 도이치와 편한 관계가 됐지만, 그분 앞에서 노래할 때 여전히 작아지는 걸 느껴요. 지난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긍정적인 스트레스가 제게 큰 윤활유가 되죠. 헬무트 도이치를 보면서 타고난 재능뿐 아니라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고 롱런하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과 철저한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섣불리 ‘예스’를 외치지 않고, 때론 ‘노’를 택하는 것도 성공의 한 방법이라는 걸 배우고 있어요. 전 지극히 한국적인 사람이라 극장에서 나이가 많거나 높은 직급의 사람에게 거절하기가 어려웠거든요. 게다가 첫 직장인 극장에서 믿고 맡기는 배역을 거절하면 다시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죠.”

그녀는 스스로 잘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 못하는 것은 거절하지만, 잘할 수 있는 것을 120%로 해내는 것으로 ‘소프라노 황수미’를 증명해내는 중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무대에서 동양인으로서 롱런하기 위해 진정성을 바탕에 둔 정서적 자연스러움이 객석까지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지난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당시 인터뷰에서 그녀는 롤 모델로 초기 시절의 안나 네트렙코를 이야기했다.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며 더욱 다양한 무대를 경험하는 지금, 어떻게 달라졌을까.

“대학 시절 발성적인 부분을 연구하기 위해 네트렙코의 초기작을 많이 들었어요. 여기 와서 보니 체구와는 별개로 러시아나 동유럽권 가수들의 소리는 아예 달라서 자칫 따라 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걸 느꼈죠. 주변에 잘하는 가수가 정말 많아요. 예전에 같이 공연하던 디아나 담라우는 에너지도 좋고 인성도 훌륭하거니와, 가정에서 아이들을 잘 돌보면서 커리어를 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본 오페라극장 앞으로 흐르는 라인 강과 슈만의 묘지를 오가며 새롭게 채워가는 예술적 영감의 결, 삶의 순간마다 길어 올린 감정을 오롯이 작품에 담아내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처럼, 올가을 완숙미로 빛날 황수미의 무대를 기대해본다.

사진 심규태(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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