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정호윤

무르익는, 사유의 노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0월 1일 12:00 오전

세계 무대를 활보하며 깊어져가는 그의 목소리를 만나다

지난여름 개관한 롯데콘서트홀이 써 내려간 기록 가운데, 대중 사이에서도 화제를 모은 공연이 있다. 8월 25·27일 양일간 임헌정의 지휘 아래 850명의 합창단과 141명의 오케스트라, 8명의 독창자 등으로 구성되어 약 1000명이라는 압도적인 숫자로 콘서트홀의 개관을 알린 말러 교향곡 8번 ‘천인 교향곡’ 공연이었다. 객석과 가장 가까이 맞닿은 무대의 가장자리에 선 솔리스트들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거대한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소리를 각각의 자리에서 오롯이 받아내며 고군분투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들어온 이가 테너 정호윤이다. 1부 라틴어 찬가에 이은 2부 ‘파우스트’에서 마리아를 흠모하는 박사로 나선 그의 목소리는 ‘구원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콘서트홀에 자리한 모든 이에게 던지는 듯했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으로 유학 생활 1년 만인 2003년부터 독일 함부르크 슈타츠오퍼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해, 이후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 솔리스트를 거친 테너 정호윤은 현재 세계무대 곳곳을 활보하며 내년 초에는 푸치니 ‘라 보엠’,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로 시드니 오페라에서 데뷔한다. 그보다 앞서 10월 6·7일 제14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 ‘라 보엠’의 로돌포로 한국 관객과 만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말러 교향곡 8번 ‘천인교향곡’에 참여한 소감이 어떤가.

말러 교향곡 8번은 세계적으로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 아니다. 예전에 빈 콘체르트하우스에서 200여 명 규모로 하는 걸 보면서 언젠가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무대에 설 수 있어 기뻤다. 무엇보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말러에 대한 새로운 사랑을 느끼게 됐다. 더불어 내가 느낀 감정과 떨림을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선명하고 직선적인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자 1000명가량 모인 대규모 공연이었다. 여러 면에서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두 번째 리허설까지 엄청 긴장했다. 물론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긍정적인 긴장감이다. 첫 리허설에선 1000명의 기에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얼얼했다. 음악적으로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 사이에서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하고 꿈꿔온 것만큼의 무대가 나온 것 같아서 행복했다.

10월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 푸치니 ‘라 보엠’ 무대에 선다. 테너들에겐 첫사랑 같은 작품이라 생각하는데, 본인에겐 어떤 느낌인가.

제일 좋아하는 레퍼토리로 꼽는 작품이다. 대학생 합창단 시절 처음 불렀던 작품인데, 그 이후 매일 밤 음반을 듣고 오페라 총보를 보면서 ‘내 최고의 레퍼토리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가사를 외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겐 정말 첫사랑 같은 오페라다. ‘라 보엠’ 악보를 버전별로 5개를 갖고 있는데, 그중 학생 시절 노트했던 악보는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다. 프로 음악가로 활동하면서 좋아하는 작품을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즐기면서 하니 ‘라 보엠’으로 극장들이 다시 불러주는 일도 많다. 지난 6월에는 도이치 라디오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카렐 마크 시숑과 함께 콘서트오페라 버전으로 공연했고, 같은 작품으로 2017년 시드니오페라에 데뷔한다.

유럽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한 함부르크 슈타츠오퍼나 이후 솔리스트로 활동한 빈 슈타츠오퍼 데뷔작은 모두 베르디 ‘리골레토’였다.

지금까지 ‘리골레토’ 오디션에선 떨어진 적이 없다. 행운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공연 역시 언제나 성공해, 새로운 극장에서 ‘리골레토’를 하면 재공연 요청이 오거나, 이후 지속적인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정서적인 면에서 가슴 아프고 깊이 있는 작품을 선호하는 편이라 한때 ‘리골레토’의 두카 공작이 가볍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작품에 빠져들고 ‘세계에서 이 작품을 가장 잘하는 테너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먹으면서 이젠 내게 행운의 작품이 됐다.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은 어떤가? 테너의 모든 테크닉을 다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인데.

매 시즌마다 빼놓지 않고 꼭 하는 작품이다. ‘사랑의 묘약’을 해야 스스로 좋은 균형 감각을 유지할 수 있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된다. 기초체력을 다지고 나를 정리해주는 작품이랄까. 그래서 에이전트에게 일 년에 최소 한 번 이상 잡아달라고 한다. 우리를 롱런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고 얘기하면서. 어떤 면에선 부담스러운 작품이지만 고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예술가는 예나 지금이나 선택받는 자리에 있다. 또한 붙잡거나, 아니면 돌려보내야 하는 기회와 늘 마주치게 마련이다.

성악가로서 제일 힘든 부분 중 하나다. 스스로 절제하고 때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 말이다.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실수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돌이켜보면 참 많이 참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연주자들은 악기가 낡으면 바꿀 수 있지만 성악가는 몸이 낡았다고 바꿀 수 없으니 스스로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극장에 소속됐던 시절, 과도한 요구는 거절하고 그마저 수용되지 않으면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다. 극장장 눈엔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가수처럼 보일 수 있으나, 맡은 배역마다 최선을 다한 덕에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프로선수로 대회에 참가한 이상 부상으로 경기에 참여할 수 없거나, 부상을 극복하거나 둘 중 하나다”라는 말을 최근 프로골퍼 박인비 선수가 했는데, 깊이 공감하는 바다.

빈에서 10년째 살고 있는데, 생활은 어떤가.

사실 빈에서 머무는 기간은 일 년에 두 달 정도 될까 싶다. 계속 연주 여행을 다니느라 가족들 얼굴 보기도 쉽지 않다. 빈 사람들은 외식할 돈을 아껴서 극장에 갈 정도로 오페라를 사랑하고, 오페라 가수라고 하면 모두가 좋아하고 친해지고 싶어 한다. 오페라 가수와 산다는 게 같은 아파트 주민들에게 자랑이 되는 도시다. 이곳에서 오래 살았지만 아직 집을 사지 않았다. 언젠가 떠나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도록. 오페라 가수로서 삶은 흐르는 물 위에 노 저어가는 배와 같다. 정박하는 순간 떠내려간다. 계속 움직여야 지금을 유지할 수 있다.

계속 노래하는 이유, 음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꼽는다면?

살기 위해서 노래를 한다. 음악을 하면 할수록 힘들고 어렵다. 그만두겠다고 결심한 적도 많다. 엄청난 기쁨도 있지만 아픔도 있다. 그런데 이게 없으면 이젠 내가 살 수 없다는 걸 안다. 돈이나 명예를 가지려고 음악을 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사진 심규태(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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