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 연주자 꽃별

내 음악의 이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0월 1일 12:00 오전

5년 만에 6집 ‘고요의 시간’을 발매한 꽃별. 장르, 형식보다 중요한 음악 그 자체의 의미

해금 연주자 꽃별이 신보 ‘고요의 시간’을 편집부로 보내왔다. 그녀의 6집 음반을 CD 플레이어에 걸며, 그녀의 ‘시작’을 떠올렸다. 꽃별은 15년 전 김용우 밴드와의 일본 공연에서 로커처럼 모니터 위에 다리를 올리고 해금을 연주했다고 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던 때라고. 신비한 악기를 역동적으로 연주하는 묘령의 여인에게 일본 음악 관계자들은 매료됐고, 그녀는 포니캐년 레이블에서 데뷔 음반 ‘Small Flowers’(2003)과 2집 ‘Star Garden’(2004)을 연이어 발매했다. 일본 내 대중적 음악가 사사키 이사오(피아노), 사야(피아노·작곡), 시노자키 마사즈크(바이올린·작곡) 등이 참여한 덕에 그녀는 한·일 양국의 큰 관심을 받았다. 그녀의 시작은 뜨거웠다.

세 번째로 발매한 ‘Fly Fly Fly’(2006)에서는 그녀의 음악적 자립을 엿볼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부터 동요, 민요까지 다양한 음악을 소재로 한 흥미로운 시도는 자유로움과 생기로 빛났다. 처음으로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제작한 4집 ‘Yellow Butterfly’(2009)는 그간의 앨범 중 가장 큰 규모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아냈지만, 그만큼 듣기에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체코 내셔널 심포니와 함께한 4집 음반에는 중세 유럽풍 멜로디나 영화음악 같은 화려한 사운드가 가득했는데, 그 안의 해금은 고유의 맛을 잃은 채 위태로워 보였다. 꽃별은 그렇게 예술가로서 성장을 위한 통증을 겪었다.

이후 발매한 5집 ‘숲의 시간’(2011)과 그 연장선에 있는 이번 ‘고요의 시간’은 ‘비움’의 ‘채움’이 돋보인다. 해금 음색의 본질에 몰입하고, 마치 그림을 그리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곡들을 수록했다. 이번 음반에 실린 아홉 곡은 모두 그녀의 남편인 작곡가 조용욱이 작·편곡했다. 해금 특유의 떨림을 머금은 ‘일렁이는 마음’, 해금과 기타가 교차하는 독특한 편곡의 ‘새야새야’, 사랑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 봄날’까지,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하고 마음을 잔잔하게 하는 곡들이 담겼다. 평온한 삶을 마주한 그녀는 비로소 솔직한 내면을 꾸밈없이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

꽃별은 ‘객석’ 2015년 11월호를 시작으로 여행과 음악이 담긴 에세이 ‘거기서 들려오는 소리’를 연재하고 있다. 매달 첫 독자로서 그녀의 원고를 읽으면 감성적인 문체와 더불어 국악에 대한 그녀의 새로운 시선을 엿볼 수 있어 즐겁다. 꽃별은 국악기인 해금을 연주하지만, 국악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악기 자체의 소리와 성격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편이다. 옛것을 낯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현대의 감상자들에게 어떤 감흥으로 발현될지 고민한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장르적 구분을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녀는 손에 해금을 쥐었고, 그저 오늘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여섯 번째 음반의 콘셉트를 ‘고요의 시간’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재 당신의 삶의 모습을 반영한 건가요?

1집을 시작으로 총 다섯 장의 음반을 내는 데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달려왔어요.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바라는 것, 해금이라는 악기에 대한 편견, 정상에 올라서고 싶은 욕심… 달려야 할 이유가 너무나 많았죠. 그런데 4집을 녹음하고 나서는 크게 달라졌어요.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고 나니 시원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척 허무했죠.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외로움, 막막함 같은 것이 느껴졌고, 시간이 좀 더 흐르자 고요한 상태가 되더군요. 그 적막한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일종의 ‘안도감’ 같았죠. 이번 음반은 5집 ‘숲의 시간’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숲의 시간’이 스케치 같았다면 ‘고요의 시간’에서는 농밀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20대를 전쟁하듯 보내고 나니 현재의 삶은 무척 평화롭게 느껴져요.

이번 음반의 프로듀싱을 남편인 조용욱 작곡가에게 맡겼는데요, 두 분이 정서를 공유하고 아홉 곡을 완성하며 하나의 앨범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합니다.

조용욱 작곡가는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남편, 그리고 음악 동료입니다. 저의 첫사랑이기도 하고요.(웃음) 그 사람은 고등학교 때까지 해금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제가 그곳에 연주를 하러 갔을 때 음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음악가로서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결혼한 후 적극적으로 함께 작업했죠. 이번 음반을 준비하면서 제가 원하는 건 세 가지였습니다. A-B-A’ 같은 특정 형식을 갖추지 말 것, 선율이 분명하게 들리기보다는 스며들 듯이 느껴지게 할 것, 음반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로 들리도록 곡마다 유기적 관련을 맺을 것. 그 사람은 갸우뚱하면서도 제 주장을 이해해줬고, 또 믿어주었어요. 서로 영역을 지키면서 자연스럽게 작업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수록곡 중 ‘새야새야’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악기 구성도 독특하고, 방향성도 모호하고요. 이 곡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나요?

‘새야새야 파랑새야’는 오랫동안 음반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해온 민요입니다. 굉장히 단순한 선율임에도 우리의 정서를 잘 담고 있는 곡이니까요. ‘새야새야’는 연주자들 간의 최소한의 약속만으로 연주한 결과물입니다. 대금과 해금이 교차하며 선율을 연주하고, 기타가 중간에 빠른 스트로크로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죠. 녹음 후 모니터를 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대금과 피아노 그리고 해금이 계속 물결을 일으키는데, 치밀하게 짜고 연주한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연습을 통해 집요하게 서로 소리를 탐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연주자들 모두 특별한 경험으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창작곡에 우리 고유의 가락이나 장단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이나 책임을 느낀 적은 없나요? 대중음악 작법으로 쓰인 당신의 음악은 크로스오버 또는 뉴에이지라는 장르로 분류되곤 하는데, ‘장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음악을 만들 때만큼은 어떠한 강박도 가지고 싶지 않습니다. 책임을 느끼는 부분은 그저 좋은 음악, 최선을 다한 음악을 선보여야 한다는 것뿐이에요. 해금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소리가 무엇일까, 연주자인 내가 아닌 해금 자체가 내고 싶어 하는 소리는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명인들의 연주를 들으며 해금에 대해, 전통음악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지만, 새로 만드는 곡에 옛것을 어설프게 섞고 싶지는 않아요. 그저 제 안에, 그리고 해금 안에 담겨 있는 고유의 소리와 호흡이 당연하게 묻어날 거라 여기죠.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음악’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감상이 편한 음악, 상품 가치를 위한 음악,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는 음악 등 세상의 수많은 음악이 서로 다른 의도로 존재합니다. 이 질문의 답이 당신이 음악을 하는 궁극적 이유가 될 것 같네요.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음악요. 좋은 순간을 회상할 수 있거나,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만들거나, 슬픔을 더 처절하게 만들거나, 행복의 황홀함을 느끼게 한다거나… 다 좋은 음악이라고 할 수 있죠. 박병천 명인이나 김소희 명인의 구음을 듣고 있으면 가사가 없어도 소리 자체에서 느껴지는 깊은 울림에 감동을 얻습니다. 여행 중 수천 킬로미터를 걷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작은 침대에 들어가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연주하는 바흐 ‘골드베르크 협주곡’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느낀 천국은 뭐라 설명할 길이 없어요. 찰나의 순간이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그것이 제 음악의 이유가 될 겁니다.

사진 소노르 뮤직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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