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마체라타 극장의 프로덕션 ‘라 트라비아타’를 연출한 헤닝 브록하우스. 상상을 뛰어넘는 연출로 세계무대를 사로잡은 그의 예술 세계가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인다
객석이 무대가 되고 무대가 야외로 바뀌는 등 신비롭고 화려한 무대예술 연출을 선보여온 오페라 연출가 헤닝 브록하우스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가 11월 8일부터 1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다. ‘브록하우스 스타일’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획기적인 그의 연출기법은 뛰어난 색채 감각과 함께 아주 작은 소품 하나에서부터 마지막 커튼콜이 내려질 때까지 철저히 계산되어 화려함과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헤닝 브록하우스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장면마다 강렬한 색채의 미학이 펼쳐지는데, 조명의 그림자마저 색으로 바꾸어 그만의 색으로 창조하며 다채로운 색채를 통해 각 장면마다 인물들의 심리와 음악을 연결해 표현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마체라타 극장에서 헤닝 브록하우스에게 의뢰하여 제작된 것으로, 마체라타 극장의 대표작이다. 특히 무대와 의상에서 나타나는 색감들이 선율 속에 어우러지는 조화가 뛰어나다. 한국에서의 첫 공연을 앞두고 있는 헤닝 브록하우스와 이메일 인터뷰를 나누었다.
한국에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공연을 갖는 소감이 어떤가?
한국 무대에 서게 되어 정말 기쁘다. 한국에 가는 건 처음이지만 오페라 음악의 전통이 무척 깊은 나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무대가 무척 기대된다. 공연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그대로지만 이번 한국공연을 위해 의상을 새롭게 제작해 보여줄 예정이다.
25여 년 동안 공연한 ‘라 트라비아타’의 연출과 의상, 안무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변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
‘라 트라비아타’ 연출을 할 때 집중한 부분은, 각 등장인물들의 내적·외적 행동의 변화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였다. 그래서 등장인물의 행동에 집중하고 이데올로기적 사회의 모순을 표현하기 위해 ‘라 트라비아타’를 브레히트의 서사극에 가깝게 표현하려고 했다. 환상에 근거해 등장인물들을 미화시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라는 인물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나? 개인적으로 그녀를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는가?
베르디 오페라와 뒤마 2세(1824~1895)의 소설 ‘동백꽃의 연인’에서 그려진 비올레타의 열정과 투지가 인상적이었다. 그것이 내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만들 수 있었던 모티브가 되었다. 관객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었다. 오페라를 연출할 때는 뒤마 2세의 소설을 충실히 따르려고 노력했다. 보통은 비올레타가 접대를 하는 부르주아 집안의 주인처럼 소개되는데, 나는 그녀가 ‘라 트라비아타’에 등장하는 다른 여성들처럼 사교계 여성이었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녀가 사교계 여성이었다는 사실은 비올레타가 알프레도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해도 당시 사회 분위기로는 그 사랑을 사랑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을 것이다. 그런 사회의 이중 윤리와 모순을 그려내고 싶었다. 그것이 베르디가 인습에 대한 저항을 작품에 담으려 했던 의도와도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무대 디자이너 요셉 스보보다와 함께 작업하며 어떤 걸 가장 중요시했나?
요셉 스보보다와는 그동안 16개의 작품을 함께 했는데, 그것은 내 연출 인생에 다시없을 행운이었다. 공연예술이란 나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장르이니만큼, 서로 극적 이상을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기에서 많은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고, 이를 실현해나갈 수 있다. 스보보다와 나는 여러 아이디어와 연극적 언어에 대한 완벽한 공감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나누었던 상호간의 교감과 신뢰, 그리고 함께 작업하며 느낀 희열은 이후 지금까지 그 누구와도 느껴보지 못했다.
당신은 인물의 심리나 사건을 색채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무대에서 거울 연출이 인상적인데, 이를 통해 관객에게 어떤 경험을 하도록 하고 싶었는가?
거울 아이디어는 요셉 스보보다와의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수많은 토론, 의견들 간의 비교 분석, 수차례 회의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거울이 열리는 것은 기억의 책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야기는 항상 두 관점에서 진행된다. 한 이야기는 무대 위에 수평으로 펼쳐지고, 이 첫 번째 관점의 이야기와 평행선을 이루는 두 번째 관점 이야기는 거울 속에 수직으로 반사되어 관객에게 보인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변증법적으로 서로 얽혀 있다. 무대 위 거울은 평소 같으면 관객이 볼 수 없는, 관객석에서 보이지 않는, 관객이 봐서는 안 되는 여러 가지 모습을 보게 해줌으로써 관객을 마치 법정에 선 증인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연출 속에는 하나가 아닌 수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나는 이런 연출을 통해 관객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읽어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특히 3막에서 거울이 들어 올려질 때 극의 분위기가 오라토리오처럼 변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나는 관객이 비올레타의 죽음에만 집중하지 않고 거울에 반사되어 비치는 자신들을 바라보면서 지금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생각해보고 투영해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예술이란 무엇인가?
나는 예술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우리 각각의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창의력과 감동을 끌어 올려줄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에게 잠재된 내면을 끌어낼 수 있는 예술이 아름다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훌륭한 연출이란 무엇인가?
훌륭한 연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다만 나에게 연출을 한다는 것은, 무대에서 음악과 작곡가의 의도를 완벽히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당신의 말처럼 오페라는 조화의 예술이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각각의 파트가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서로 공감하고, 현장에서 각자 역할을 다하는 동시에 완벽히 서로를 서포트해 주는 것. 그것이 조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오페라의 가장 큰 매력은 어떤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이 작품을 꼭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오페라의 가장 큰 매력은 음악과 극이 완벽한 조화에서 오는 감동이다. 어떠한 새로운 해석을 하더라도 항상 악보를 따르고 음악 속에 녹아 있는 극의 의미를 따른다. 그래서 오페라는 ‘클래식 음악’이다. 하지만 이러한 오페라는 고전을 헤닝이라는 연출가는 어떤 방식으로 오늘날의 관객에게 전하려고 하는지, 과연 이번 ‘라 트라비아타’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어 또 다른 조화를 추구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본다면 분명 관객들에게 이번 무대가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한국오페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