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8일 대구오페라하우스
이번 제14회 대구오페라 페스티벌은 시작 전부터 몇 가지 기대를 모았다. 한국에서는 자주 상연되지 않는 베토벤의 ‘피델리오’를 베토벤의 고향인 독일 본 오페라극장을 초청했고 오스트리아 린츠 극장은 오페라의 혁명을 가져온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그리고 성남아트센터와 공동 작업으로 ‘카르멘’이 공연됐다. 매년 함께하는 국립오페라단의 ‘토스카’를 유치한 것과 광주시 오페라단과 함께 푸치니의 ‘라 보엠’을 공동 제작해 동서 교류의 물꼬를 튼 것도 의미가 깊었다. 이번 대구오페라 페스티벌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라 보엠’ 첫날 공연을 관람했다.
무대가 열리자 라탱 지구의 낡고 추운 다락방이 펼쳐지기보다는 갤러리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인인 로돌포와 화가인 마르첼로가 등장하는 1막에 엄청나게 많은 그림이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첼로는 아직 화가로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그림 습작을 많이 한 부지런히 노력하는 아마추어 화가의 모습 같았다. 그림은 겨울의 풍경이지만 예술가 지망생들의 파리 다락방은 인생의 봄을 1막에서 맞고 있었다.
마르첼로 역의 이동환은 풍부한 울림과 성량으로 극장을 가득 채웠고, 테너 정호윤은 로맨틱한 지중해적 빛깔로 로돌포를 빼어나게 소화해냈다. 유럽 유수의 극장에서 테너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정호윤은 특히 대표 아리아인 ‘그대의 찬 손’ ‘오 사랑스런 아가씨’ 같은 곡에서 탄력 있는 중저음과 빛나는 고음으로 든든하게 극을 이끌어나갔다. 소프라노 이윤경은 수줍어하는 전통적인 해석의 천생 여자 미미로 분해 여성성을 부각시켜 부드럽고 따뜻한 미미가 되었다. 무제타 역의 장유리는 유혹적이며 발랄한 무제타로 무대에 즐거움을 주었고, 쇼나르 역의 바리톤 석상근은 재미있고 흥겨운 연기로 극에 활력과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콜리네 역의 베이스 최승필은 4막 ‘안녕, 낡은 외투야’를 단단하게 불러내며 인상적인 가창을 각인시켰다.
연출가 기 몽타봉은 2막 크리스마스이브 모뮈스 카페 장면을 반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 등 다양한 그림으로 대체했는데, 화려하고 활력이 넘치기보단 정적이고 차분한 크리스마스 풍경이 만들어졌다. 소리가 모아지지 못한 합창과 포커스를 주지 못한 조명은 못내 아쉬웠다. 몽타봉은 ‘라 보엠’을 인생의 춘하추동으로 해석하며 3막에서는 쓸쓸한 이별을 잠시 유예하고 4막에서는 미미가 세상을 떠날 때 무대 배경인 겨울 그림에 검은색 천을 내려 죽음을 애도했다.
공연이 열리기 전 극장 야외무대에서 성악 공연이 열려 적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독특한 대구오페라만의 매력이다. 메트 오페라나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가끔 이뤄지는 백스테이지 투어를 이번 축제에 마련한 것도 청중의 오페라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청중의 오페라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좋은 효과를 가져왔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도 이제 14년째를 맞았다. 앞으로 페스티벌이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2013년 올렸던 베르디 ‘운명의 힘’에서처럼 새로운 스타일의 연출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