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과 싱가포르예술축제가 공동 제작한 이 작품은 판소리와 음악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연출·무대디자인 등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수작이었다
인터미션 없이 약 110분에 달하는 ‘트로이의 여인들’은 왕비 헤큐바(김금미 분)를 비롯해 패전국 트로이의 여인들이 승전국 그리스의 노예로 끌려가기 전, 몇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다. 길고 긴 전쟁이 끝났지만 살아남은 여인들은 그보다 더 긴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트로이의 여인들’을 쓴 기원전 5세기의 작가 에우리피데스는 이 여인들에게 어떠한 희망의 빛도 던져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겨우 붙잡고 있는 희망을 차근차근 짓밟아놓을 뿐이다.
국립극장과 싱가포르예술축제가 공동 제작한 ‘트로이의 여인들’은 옹켕센(연출), 배삼식(극본), 안숙선(작창), 정재일(작곡·음악감독), 조명희(무대디자인), 김무홍(의상), 원후이(안무), 스콧 질린스키(조명), 오스틴 스위처(영상) 등 국내외 예술가들이 함께한 작품으로, 2012년 김성녀 예술감독 취임 이후 선보인 작품들의 맥락과 코드의 연장선상에 있다. ‘메디아’(2013)와 ‘오르페오전’(2016)의 그리스 코드, (전 예술감독 유영대 재직 중에 발표한 아힘 프라이어의) ‘수궁가’(2011)와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2014)의 해외 연출가 협업 코드, ‘장화홍련’(2012) ‘메디아’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변강쇠 점찍고 옹녀’(2014) 속 사회적 약자인 여성 코드 등. 이러한 행보와 코드를 바탕으로 국립창극단은 명민하고 똑 부러지는 기획으로 타깃을 명확히 조준할 줄 알며, 현재의 성공에 만족치 않고 늘 새로운 길을 탐색하고 있다. 그러면서 콘텐츠를 뾰족하게 갈아, 마치 동판에 에칭하듯 관객의 뇌리에 새긴다. ‘이것은 창극이다, 새로운 창극이다’라고. 그 행보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음악의 결을 살린 연출
국립창극단이 해외 연출가와 협업한 작품들에는 ‘연출가=작품=심장’이라는 도식에 대한 믿음이 서려있다. 2011년 ‘수궁가’의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를 향한 선택이 새로운 미술-창극을 남겼다면, 2014년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은 과감한 서사 비틀기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옹켕센은?
옹켕센이 연출한 2014년 싱가포르예술축제 개막작 ‘페이싱 고야’는 마이클 나이먼이 2000년에 작곡·발표한 오페라다. 옹켕센이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화려한 영상이나 출연진의 기하학적 동선이 불러일으키는 3차원적인 감성이 아니라, 나이먼 특유의 반복적 기법과 음악의 결인 듯하다. 즉, 그는 ‘연출 먼저, 악보 다음’의 연출가가 아니라 ‘악보 먼저’를 실천하는 연출가다. 따라서 여러 실험과 시도를 거친 국립창극단이 옹켕센을 주목한 이유는 음악에 힘을 주겠다는 것이었으리라.
옹켕센은 의외의 패를 내놓았다. 오래된 집의 기본 골격을 되살리기 위해 그 위에 겹겹이 바른 페인트며 벽지를 벗겨내는 것처럼 창극음악에 덧입힌 장식을 제거한 것. 창극의 근간인 판소리의 원형을 추구하는 것이자, 현대예술적 관점에서 보자면 다양체에서 하나의 요소(음악)를 확대·부각하는 미니멀리즘 기법이라 볼 수 있겠다.
국립창극단은 ‘작창’으로 안숙선을 내세웠고, 정재일이 음악의 살을 발랐다. 주요 인물이 대사와 노래를 할 때는 기본적인 북장단과 특정 악기를 배정했다. 예를 들어 헤큐바의 소리는 거문고(최영훈)와 맞물렸고, 그리스의 왕 아가멤논에게 팔려갈 공주 카산드라(이소연)는 대금(이원왕)과 함께하는 식이었다.
배삼식의 극본도 음악에 한몫했다. 2014년 한승석·정재일이 출반한 ‘바리 abandoned’에서 바리데기 설화를 모티프로 가사를 쓰기도 했던 배삼식 특유의 매끄러운 ‘작법’과 에너지가, 단원들의 구성진 ‘창법’으로 연결되었다.
국립창극단이 앞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창극 음악의 변신과 변화의 진폭을 어느 정도의 각도로 설정해야 하는가다. 필자의 기억에 국립창극단이 해외 연출가와의 작업에서 음악이 보여준 변화의 진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관객이 눈뜨는 지점 역시 창극을 통해 굳어진 ‘(전통)음악적 이미지’ 위에 새로운 ‘연출적 이미지’가 입혀질 때다. 판소리(과거)와 미장센(현재·현대)의 봉합 속에서 새롭게 눈을 뜨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과 판소리에 대한 ‘과감한 이노베이션’보다 ‘연접되는 레노베이션’의 자세를 유지할 음악감독과 작곡가의 영입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스타 소리꾼 활용법
‘트로이의 여인들’은 왕비 헤큐바(김금미 분)와 여덟 명의 단원이 무대에 상주하는 가운데 그리스 왕 아가멤논의 노예로 끌려갈 카산드라(이소연 분), 헤큐바의 며느리 안드로마케(김지숙 분)가 상황에 따라 출연하는 흐름이다. ‘장화홍련’ ‘메디아’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변강쇠 점찍고 옹녀’처럼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 축에 속하는 이 작품은 판소리가 ‘한’의 정서를 담고 있는 터라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애절함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무대는 전쟁 후 이야기를 그리지만, 이 전쟁은 스파르타의 왕비였던 헬레나가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에게 반해 트로이로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우스(최호성 분)가 도망친 헬레나와 파리스 왕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던 것. 그래서 헬레나의 등장이란 이제 곧 노예의 길을 걸을 트로이의 여인들의 분노가 가득 고여있는 인민재판장에 서는 것과 같다. 이러한 시선에 노출된 헬레나 역은 남성 단원 김준수가 맡았다. 이국의 여인을 바라보는 증오의 시선이 무대를 덮었고, 그 시선을 감당하지 못하는 헬레나의 불안함을 김준수는 반남반녀의 묘한 기운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의 중허리(60분 즈음)에 등장한 김준수는 여성들의 소리로만 진행되던 흐름에 새로운 색을 입혔고, 기분 전환의 순간을 제공했다. 김준수는 정재일이 직접 연주하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약 16분 동안 여성 관객의 숨통을 조였다. 판소리의 하이라이트를 ‘눈대목’이라 하고, 오페라에는 ‘아리아’가, 뮤지컬에는 ‘뮤지컬 넘버’가 있다. 창극에도 분명 아리아에 준하는 눈대목이 존재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는데, 정재일과 김준수의 무대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두 사람이 일구는 단독 무대를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을 상상해보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김준수의 성음에 있었다. 성량(聲量)에 여성적 성량(性量)의 비중을 조금 더 넣었다면 어떠했을까. 김준수가 지닌 소리에 대한 승부욕과 다양성이 여성적 표현을 위한 의상·복장·화장에 가려지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국립창극단은 최고의 스타 군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배우의 탄생이 영화의 역사를 바꾸었듯이 국악계도 스타와 신 스틸러의 출연을 늘 반긴다. 그런 점에서 김금미의 존재는 대단히 중요하다. ‘메디아’의 도창, 국립극장 프로덕션 ‘단테의 신곡’(2013)에서 지옥의 판관 미노스 역을 맡았던 그녀가 관객의 귀와 가슴에 불을 지르는 듯한 ‘화염방사성 창법’은 관객을 압도한다. 향후 그녀의 존재를 아예 염두에 두고 작품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후반에 손자 아스티아낙스를 잃었을 때 “너희들이 우리에게 한 일을 너희들끼리 싸우며 똑같이 겪게 되리라”는 구성진 성음을 읊조릴 때, 그녀의 목소리는 극장 너머 현 시국의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듯했다.
국립창극단은 남의 이야기, 먼 이야기를 선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그것들을 지금―현재―우리의 이야기로 알레고리화하고 치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창극이 유품을 전시한 전시물과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유리막이 아니라,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동시대의 감수성과 사건을 씹어 먹고 자란 문화적 동물이란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힘이다. 그래서일까. ‘트로이의 여인들’을 보며 지금의 한국사회를 트로이의 폐허처럼 만들고 있는 ‘한국의 여인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진 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