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의 시작과 함게 걸어온 16년의 시간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오래지 않아 밀레니엄을 맞이한 2000년. 새 천년을 시작하며 설렘과 기대, 흥분으로 가득하던 그 해는 뉴서울오페라단이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 시기이기도 하다. 올해로 16년째 뉴서울오페라단을 이끌고 있는 홍지원 단장은 이탈리아 토레프랑카 국립음악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한국으로 들어와 본격적인 오페라 제작에 뛰어들었다.
“저 역시 성악을 전공했고, 서양의 오페라가 여러 면에서 익숙하죠. 유명 작곡가의 작품을 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해외 관객들이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창작 오페라를 통해 세계가 우리나라를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을 저의 사명으로 여기며 달려왔습니다.”
해외 유명 극장의 오페라들이 DVD 등을 통해 국내 애호가들에게 좀 더 편리하게 소개되고, 다양한 오페라 레퍼토리가 국내 무대에 오르던 2000년대, 뉴서울오페라단의 연혁을 들여다보면 2005년 평양에서 공연된 ‘아, 고구려 고구려-광개토호태왕’을 비롯해 한국적인 소재의 창작 오페라를 중심으로 국내뿐 아니라 오랜 기간 중국 주요 도시에서 공연해온 이력이 눈에 띈다.
“그간 중국 내 투어를 하면서 경험한 것들은 지금 뉴서울오페라단만의 귀중한 자산이자 다른 오페라단과 차별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지난 3년간 현제명 ‘춘향전’, 임준희 ‘시집가는 날’ 등과 같은 우리의 창작 오페라 공연을 관람한 현지 중국인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입니다. 우리의 전통 복식과 관습, 음악, 무용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시청각으로 경험하면서 이러한 문화적 체험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기회에 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죠. 한류 열풍의 영향뿐 아니라 오페라 무대에 서는 우리나라 가수들의 뛰어난 실력에 대한 호평도 상당합니다.”
뉴서울오페라단은 임준희 ‘시집가는 날’을 2012년부터 4년간 중국 지역을 순회하며 무대에 올려왔다. 이러한 지속성 가운데 2015년 중국의 고전 ‘사기’를 쓴 사마천의 일대기를 오페라로 제작해달라는 의뢰를 중국 측으로부터 받게 된다. 제작 비용의 상당 부분을 중국이 감당했고, 창작부터 공연에 이르는 전 과정을 홍지원 단장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음악가들이 이끌어 올해 봄 국내에서 초연됐다.
“클래식 음악, 오페라를 두고 볼 때 중국은 개척할 여지가 아직 상당한 나라죠. 앞으로 우리 민간단체에서 오페라를 제작하려고 할 때 국내뿐 아니라 인접 아시아 국가, 특히 중국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다면 교류뿐 아니라 시장 확대 측면에서도 상당한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사회주의 체제로 인해 민간단체가 자력으로 진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큰 숙제이자 가장 어려운 관문이죠.”
뉴서울오페라단의 16년 발자취
2000년 창단 공연을 시작으로 올해 16주년을 맞이한 뉴서울오페라단 역사 가운데 기록적인 작품과 인상적인 순간들을 홍지원 단장과 살펴보았다.
2005년 창작 오페라 나인용 ‘아, 고구려 고구려-광개토호태왕’
3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초연됐고, 같은 해 9월 북한의 평양봉화예술극장 무대에도 올랐다.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발발하던 당시, 이에 대한 문화적 대응책이자 민족의 자긍심 회복을 위한 바람을 담아 뉴서울오페라단은 광개토호태왕을 내세웠다. 고조선의 옛 영토를 회복한 영토 확장 정책에 초점을 두고, 담덕태자가 광개토호태왕으로 등극해 중국을 상대로 승전고를 울리는 과정이 주된 이야기의 흐름으로 설정됐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토대로 제작한 의상, 다양한 한국 무용, 검무, 검술이 무대에 펼쳐졌다. 볼거리가 다채롭고 풍성했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극의 상당 부분이 영웅예찬에만 기울어 있다는 점, ‘한국적’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뒤섞여 있다는 혹평도 있었다. 다만 성악진들의 섬세한 표현력과 풍부한 성량에는 공통된 호평이 돌아갔다.
2012·2013·2014·2015년 임준희 ‘시집가는 날’
한·중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2012년 7월 베이징 21세기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됐다. ‘맹진사댁 경사’를 원작으로 임준희 작곡, 김영무 각색으로 새롭게 창작된 오페라로 한국의 전통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해학을 그려냈다. 무대에는 국수호디딤무용단을 비롯해 전통적인 한복을 입은 출연진과 함께 전통무용, 사물놀이를 곁들여 공연 한 편으로 한국의 전통미를 모두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이듬해 중국 투어가 이어졌고 2014년에는 상하이에서 한국 관광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상하이 대극원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데 이어, 제1회 한국문화축제 개막작으로 항저우 대극원에서도 공연됐다.
2016년 한·중 공동제작 오페라 ‘사마천’
동양 역사서의 근간이자 세계의 고전 중 하나로 손꼽히는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의 일대기를 다룬 창작 오페라다. 중국 전한시대 역사가로 적군에 투항한 이릉을 변호하다가 궁형을 당하고, 이를 견뎌내며 역사서를 써내려간 그의 철학을 무대에 펼쳐놓았다. 지난 몇 년간 창작 오페라 ‘시집가는 날’로 베이징, 광저우, 상하이, 항저우 등 중국 내 여러 도시에서 공연을 올려온 뉴서울오페라단의 활동을 높이 산 중국 측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기념해 뉴서울오페라단에 제안을 했다. 사마천을 일대기를 다룬 기존의 대본을 각색하고, 작곡가 4~5명이 공동으로 작곡을 했다. 오페라의 주인공은 중국인인 사마천이지만 창작진부터 제작과 무대에 오른 출연자는 모두 한국인이었다. 홍지원 단장은 “창작 오페라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사마천’은 대본부터 다시 손을 본 후에 내년에는 유럽을 거쳐 중국에서 공연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작 오페라 발전을 위하여
홍지원 단장은 “창작 오페라는 끊임없는 수정과 보완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쌓아야 하기에,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마음과 눈과 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세월 창작 오페라 환경을 지켜본 그녀에게 우리나라에 탁월한 오페라 대본가가 없다는 점은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게다가 작곡가·극작가가 악보나 대본 수정에 인색한 경우라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쉽지 않거니와, 어려운 과정을 거쳐 나온 창작 오페라의 상당수는 단발성으로 공연되고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도 앞으로 우리 오페라계에서 보완해야 할 부분으로 제시했다.
“정부 차원에서 오페라 제작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작곡가뿐 아니라 극작가 양성도 중요합니다. 또한 창작 오페라를 전통 소재, 한국의 영웅에 국한시켜 연결 짓는 것도 지양해야 할 부분이에요. 오페라계에선 그 기준이 굉장히 보수적이거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반면, 뮤지컬계에선 시대나 소재를 초월한 창작 작품이 인정과 지원을 받고 있어요. 한국인이 자유로운 상상력을 갖고 만드는 오페라 작품들이 앞으로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페라 돋보기┃2000년대 한국 오페라 ①
2000년대 한국 오페라계 변화 동력을 수요자 입장에서 찾는다면 오페라 애호의 수준과 기호가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다는 것부터 꼽아야겠다. 가장 중요한 계기는 DVD의 등장이다. 2000년대 이전에도 비디오테이프와 레이저 디스크라는 시각 매체가 존재했지만 기능, 가격과 편의성 등 모든 면에서 월등한 DVD의 보급은 가정에서도 세계 일류 오페라하우스의 최신 공연을 쉽게 만날 수 있게 해주었고, 주요 공연장마다 생겨난 음악 아카데미와 사설 강좌는 최신 트렌드의 오페라 영상을 해설과 함께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아리아 중심으로 오페라를 즐기던 애호가들이 점차 ‘무대 예술로서 오페라’라는 본질적 시각에서 사전 학습하고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와 통한다.
1962년 국립중앙극장 산하의 전속단체로 출발한 국립오페라단이 2000년부터 재단법인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중요한 환경 변화였다. 1999년 12월 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에 의한 것으로, 단장에게 오페라단 운영의 실질적인 전권을 부여하되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공공적 기관이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아무래도 수익 확보가 중요한 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 법인화가 바람직한 것이냐에 대한 반발이 없지 않았지만 활동 근거지를 예술의전당으로 옮김으로써 공연장 환경은 월등히 나아졌다. 국내 성악가들의 대부나 다름없는 박수길 단장에 이어 강력한 사명감과 추진력을 지닌 정은숙 단장, 오페라 연출가 이소영 단장을 거치면서 더욱 신선한 작품을 뛰어난 프로덕션으로 소개한다는 국립오페라단 본연의 임무를 비교적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다.
– ‘객석’ 2011년 9월호 특집 ‘이 땅의 오페라 1948’ 중
일부 발췌 및 재구성
사진 뉴서울오페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