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피아노 독주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7년 2월 1일 12:00 오전

1월 3일
롯데콘서트홀

‘신드롬’의 이유를 증명하다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를 석권한 이후, 한 피아노 학회에서 발표를 제안해온 적이 있다. 그가 몰고 온 열풍이 과연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기대에 찬 물음이었다. 언론, 음반업계, 기획사 등 다양한 루트로 자문을 구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학원계의 반응이었다. 조성진의 우승으로 피아노 학원생이 증가한 곳은 서울의 강남권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므로 일시적 열풍에 그치리라는 현실적 예상이었다. 이렇듯 음악계가 조성진에게 거는 기대와 우려는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확장되어 있었다. 조성진의 이번 독주회는 티켓 오픈 9분 만에 이틀 치 좌석인 3900여 석이 매진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러므로 조성진 신드롬은 적어도 조성진 개인에게는 온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을 증명한 동시에, 그가 들려준 연주는 이 현상이 앞으로도 응당 지속되어야 함을 일깨운 공연이었다.

조성진이 독주회의 첫 곡으로 선택한 베르크 소나타 Op.1은 흥미로운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청중에게는 선율이 단번에 파악되지 않는 낯선 곡이지만, 피아니스트로선 그 느슨한 선율의 서정성 덕에 공연의 시작으로 선호되는 작품인 것. 무대 위 긴장을 들키지 않으면서도 손가락을 적응시킬 수 있는 유익한 곡이지만, 조성진은 첫 프레이즈의 부점 리듬부터 독특하게 처리하면서 느슨한 선율에 대한 기대를 산산이 깨뜨렸다. 그의 음색은 시종일관 풍부한 양감과 묵직한 음영을 드리우고 있었는데, 특히 긴장의 상승 구간마저 저음의 하중을 가라앉힌 채 몰아치는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연이어 연주된 슈베르트 소나타 C단조 D958에서는 그의 젊은 패기와 함께 어떤 강박 또한 감지되었다. 콘서트홀을 가득 채운 장삼이사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듯,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악상을 한껏 강조하고 있었다. 슈베르트 특유의 서정성보다는 정점을 빈번히 찾아 돌진하는 질풍노도의 감성이 돋보였는데, 특히 셋잇단 음형이 반주에 깔리는 악상에서 애끓는 감정을 요동시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2악장의 명상적인 장면에서도 마디의 여운을 다 채워야 할 쉼표를 조금씩 덜어내면서 무언가 갈망하는 결핍을 훌륭히 드러내주었다. 패기에 찬 해석과는 별도로 무엇이든 가능할 법한 여문 손끝과 배음의 조탁을 가려내는 섬세한 청력은 그의 완벽한 연주력을 증명해주었다.

2부에선 쇼팽 발라드 전곡이 연주되었다. 독일어권 작곡가 특유의 진지한 야심을 드러냈던 1부, 혹은 심사위원 모두를 만족시켜야 했던 지난 경연의 모습과는 달리 한층 자유로운 개성을 드러냈다. 콩쿠르 당시엔 세부 프레이징을 정밀하고도 탄탄히 표현했다면, 이제는 높이 날아오른 새의 시선에서 곡의 전체와 부분을 모두 아우르면서 연주하고 있었다. 조성진의 연주는 주선율과 반주의 청각적 거리가 놀랍도록 입체적인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주선율과 반주에 가려 자칫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내성의 선율선에 생명을 부여하는 각별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특히 발라드 3번의 연주는 잊을 수 없다. 선율로부터 화성의 양감을 부풀리거나, 리듬의 시간차가 예측할 수 없는 부정형이거나, 터치 하나하나가 공기의 부력을 갖춘 듯 산산이 부서지며 반짝거리거나, 이제 더 이상 우승에 얽매이는 콩쿠르 참가자의 연주가 아니라 명실공히 거장의 풍모를 갖추게 될 매혹적인 연주였다. 발라드에 한창 빠져드는 순간, 돌연 그의 어릴 적 인터뷰가 떠올랐다. 어린 소년은 인생의 목표가 ‘귀한 연주를 하는 피아니스트’라 했다. 귀한 연주의 의미를 되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작곡가가 그 곡을 만들었을 때의 노력과 고뇌를 헤아리는 연주입니다.”

사진 롯데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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