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정 피아노 독주회

REVIEW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7년 3월 1일 12:00 오후

강렬한 매력과 호소력

 

음악은 말없이 비밀을 드러낸다. “음악이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렇다고 침묵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빅토르 위고의 말이다. 이날 독주회의 부제는 ‘침묵의 소리’였다. 사실 이날 독주회는 침묵이 아닌 열변이라 할 수 있었다. 역설적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의문점이 있는 지점에 또한 임현정이 말하고 싶은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난 듯도 했다. 반어법이다. 그녀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주자였다. 이것은 그녀가 직접 쓴 프롤로그, 작품 해설, 그리고 에세이까지 세 부분으로 구성된 프로그램 노트에서부터 잘 드러났다.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사랑이라던가? 임현정은 음악에 아주 깊이 빠져 있었다. 마치 열병을 앓듯이. 프롤로그에서 연주 직전의 심정을 그녀는 “몸은 뜨거워지고 목은 타들어간다”라고 고백했다. 첫 작품은 슈만의 ‘사육제’ Op.9였다. 이 작품은 시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21개의 소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녀의 연주에서는 슈만의 음악적 분신 중 열정적이고 진취적이며 투쟁적인 플로레스탄의 성격이 두드러졌다. 그녀는 마지막 곡 ‘필리스틴에 대항하는 다비드 동맹의 행진’까지 맹렬한 속도로 한 곡씩 돌파했다.

엄청난 속도감은 이날 전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맥박이었다. 임현정은 작품의 속도를 정하는 기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표현이 먼저다. 열광하면 그것이 속도를 결정한다.” 그렇다. 그녀의 음악은, 열광적인 속도로 진행한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질주하는 속도. 이것은 “음악에 절제라는 것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는 그녀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브람스의 8개의 피아노 소품 Op.76에서 임현정은 내밀하고 짙은 정서로 공감을 유도했다. 그녀는 연주 중 때때로 얼굴을 청중 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몸짓이 연극적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대상에 함께 찬탄하기 원하는 의도로 읽혀졌다.

라벨의 ‘거울’은 섬세한 색채와 정교한 음영의 표현에 집중해 더욱 입체감이 풍부한 연주를 들려줬다. 작품의 추상적 이미지들이 그녀의 손끝에서 생생하게 살아났다. 지휘하듯 손을 허공에 저으며 시작한 ‘종의 골짜기’에서는 비의적인 신비로운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날 모든 작품을 연주하기 전에 그녀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후에 연주했는데, 프랑크의 ‘전주곡, 코랄과 푸가’ FWV21은 그대로 하나의 절절한 염원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끓어오르는 용광로 같은 자신의 심경을 음악으로 쏟아냈다. 앙코르는 30분가량 계속됐다. 격정의 지속적인 폭발이었다. 정적인 순간은 없었다. 연주를 하면 할수록 그녀는 새로운 기운이 솟아나는 듯했다. 그녀가 편곡한 ‘아리랑’은 한이 아닌 흥이 넘쳤다. 엄청난 기력에 호방한 기개까지 엿보였다.

“예술이란 모든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믿는 피아니스트 임현정. 음악에 자신을 기꺼이 던져 심화되고 확장되어가는 그녀의 일관된 방향성이 이날 연주회에서 호소력 있게 전해졌다. 강렬한 매력과 본질적인 진지함을 겸비한 그녀의 웅변이 긴 여운을 남긴다. 지금까지는 그녀의 서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서주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영앤잎섬

 

임현정 피아노 독주회

2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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