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인 임희영의 첼로 협연
설 연휴 일주일 뒤인 2월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신년음악회가 열렸다. 김민이 이끄는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이하 KCO)의 무대였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이지수 작곡의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진도아리랑’이 첫 곡이었다. 육박하는 긴장감이 피치카토로 이어졌다. ‘진도아리랑’의 주선율이 변화를 거듭했다. 크고 작은 톱니바퀴의 회전을 보듯 엇박과 정박이 묘하게 조화를 이뤘고 하프시코드의 고풍스런 울림이 진도아리랑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이어서 비발디 4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RV550이 연주됐다. ‘조화의 영감’ 중 한 곡이고, 바흐가 건반악기곡으로 편곡한 작품으로 귀에 익은 선율이다. 이소란·정원영·최정현·한윤지 등 네 명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구성된 KCO 바이올린 콰르텟이 협연했다. 각기 개성 있는 의상을 입고 분방한 연주를 펼쳤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누비는 소프라노 캐슬린 김이 등장했다. 헨델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와 ‘줄리오 체사레’ 중 ‘폭풍에 부서진 배라도’ 등 두 곡을 연속으로 불렀다. 윤활유를 바른 듯 촉촉한 고음을 부드럽게 구사한 그녀의 노래에 KCO가 일사불란한 합주를 곁들였다.
흰색 드레스를 입고 첼리스트 임희영이 무대에 나왔다.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첼로 수석으로 오케스트라 연주 모습은 봤지만 독주는 처음이라 기대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임희영이 연주한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33은 이날 공연의 백미였다. 시작 부분의 템포는 약간 빠른 편이었다. 임희영이 첼로에 활을 가져가자 중후한 울림이 무대 밑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듯했다. 여느 독주자들의 시선을 주목하면, 긴장한 나머지 한 곳을 응시하게 마련이다. 임희영은 달랐다. 다양한 곳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잘 준비된 자의 여유가 느껴졌다. KCO의 반주가 좀 더 유연했으면 어땠을까 했지만 이내 알맞은 궤도를 찾아갔다.
풍성하면서도 날렵한 첼로였다. 가냘픈 체구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음색이 실현되고 있었다. 폐부 깊숙이에서 심금을 울리는 저음을 길어냈다. 고음 처리에서 약간 불안할 때가 있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비감을 품고 막바지로 향할 때 그녀는 발레리나 같은 표정을 지었다. 빠른 패시지에서도 서두르지 않고 우아함을 잃지 않는 모습은 흡사 백조 같았다. 임희영은 앙코르로 ‘백조’가 아닌, 포레의 ‘꿈꾸고 난 뒤’를 연주했다. 고급스러운 흐름으로 몽환적인 음색을 들려줬다. 더 많은 무대에서 그녀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휴식 시간 뒤 2부의 첫 두 곡은 캐슬린 김의 노래로 장식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벨기에에서 활동한 작곡가 에바 델라쿠아의 ‘목가’와 모차르트의 ‘환호하라, 기뻐하라’ 중 ‘할렐루야’였다. 캐슬린 김은 ‘빌라넬레’에서 멋진 기교를 뽐냈지만, ‘할렐루야’에서는 온전한 컨디션이 아닌 듯한 가창을 들려줬다. 두 곡을 연속으로 배치하지 말고 따로 떼어놓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현실의 3분’ ‘천사의 죽음’ ‘다섯 악기를 위한 협주곡’ 등 공연의 마지막 세 곡은 피아졸라의 작품이었다. KCO의 강점인 현악군의 촘촘한 앙상블을 바탕으로 일궈낸 무리 없는 연주였다. 앙코르로는 ‘안넨 폴카’ ‘농부 폴카’ 등 슈트라우스 2세의 폴카를 연주하며 신년음악회 분위기를 북돋웠다. 서울바로크합주단에서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로의 변신을 마무리하려면 금관과 목관에서도 현악만큼의 응집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
2월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