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벙 프랑세, 관악기 스타들의 앙상블

MONTHLY FOCUS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4월 1일 12:00 오전

5명의 관악주자와 피아니스트가 선보일 프랑스 관악 명품들

교향곡의 아버지인 하이든은 실내악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는 거의 혼자 힘으로 현악 4중주를 완벽한 형식으로 끌어올린다. 같은 계열의 악기를 사용하고 콘티누오 없이 연주해 소리의 톤이 일관된 데다 4성부 텍스처에 내재된 대위법의 가능성까지 더해져 현악 4중주는 기악곡의 이상적 형식의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 다섯 옥타브에 이르는 넓은 음역 덕분에 후대의 작곡가들은 전례 없는 융통성을 누리기까지 했다. 하이든에게 6곡의 현악 4중주를 헌정했던 모차르트는 비올라나 첼로가 더해진 현악 5중주를 통해 풍성한 짜임새와 복잡한 성부를 요리해 실내악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베토벤은 현악 4중주를 교향곡과 같은 수준으로 확장하며 다채로운 짜임새를 구사했다.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실내악에서도 낭만주의와 그 이후 작곡가들은 하이든의 독창성, 모차르트의 완벽함, 베토벤의 광대함을 인정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이들의 발자국을 지나치게 가까이 따라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실내악의 역사는 현악기 중심이다. 그 사이로 관악 실내악은 듬성듬성 자라났다. 그래서 어느 작곡가에게나 관악 실내악 작품은 메인디시에 따르는 별미 같은 존재이다. 현악기가 지배해온 실내악의 역사가 19세기에 이르러 어느 정도 정점을 찍자, 19세기 말부터 관악기를 위한 실내악곡들이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관악 연주자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진행되던 악기 개량이 멈추면서 보편적인 기준의 악기들이 안착했고, 작곡가들은 교향곡이나 교향시를 작곡할 때마다 관악기의 비중과 독자성을 전보다 훨씬 많이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중심지도 바뀌었다. 현악 실내악이 18세기와 19세기에 독일-오스트리아 권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면, 19세기 중후반부터 프랑스에서 그 기운이 꿈틀거렸다.


프랑스 작품과 프랑스적인 스타일

처음으로 내한하는 레 벙 프랑세(Les Vents Franais)는 ‘The French winds’라는 뜻이다. 여기서 ‘French’란 이들의 음악이 프랑스 음악과 닿아 있음을 암시하고, 그 스타일과 성향을 대변하는 시그니처이기도 하다. 이들은 엠마누엘 파후드(플루트), 프랑수와 를뢰(오보에), 폴 메이어(클라리넷), 질베르 오댕(바순), 라도반 블라트코비치(호른), 에릭 르 사쥬(피아노)로 구성되어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인 파후드, 서울시향과 협연(2009·2014) 및 지속적인 내한을 통해 지명도를 쌓은 를뢰가 상대적으로 낯선 멤버들의 인지도를 보장해준다.

레 벙 프랑세는 콩쿠르나 데뷔 공연 등을 목적으로 결합한 단체가 아니라, 음악사에 숨은 목관 2중주나 3중주를 발굴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따라서 결성식과 선언을 통한 시작이 아니라, 태동의 명확한 기원을 알 수 없는 역사를 지닌 앙상블이다. 그래도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이들의 시점은 2000년대 초반으로 잡을 수 있겠다. 파후드, 메이어, 르 사쥬는 음악사의 뒤안길로 들어가 하나둘씩 발굴한 목관 실내악곡들을 EMI를 통해 세상에 내놓았다. 당시 앨범재킷에는 ‘레 벙 프랑세’라는 문구는 찾아볼 수 없고, 연주자들의 이름만 적혀 있을 뿐이다. 이처럼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이름 없는 3중주단의 개념으로 활동하며 프랑스음악사를 중심으로 한 작품 발굴에 힘썼다.

2005년에 발매한 ‘프렌치 커넥션’(EMI)에는 프로랑 슈미트, 다리우스 미요, 앙드레 졸리베 등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있는 프랑스 작곡가들의 관악 작품을 담았다. 여기에 쇼스타코비치와 빌라 로보스를 넣어 작품 간의 연관성을 실험하기도 했다. 이러한 발굴-실험-공연-녹음의 과정에서 작품의 편성에 따라 를뢰, 오댕, 블라트코비치가 자연스럽게 합류하며 다양한 도형을 갖췄다. 음악가들의 이합집산에는 유동성과 융통성을 가졌지만, 프랑스 작품을 발굴하는 것에 찍은 방점에서는 힘을 빼지 않았다.

이들이 ‘레 벙 프랑세’라는 이름을 단 것은 2013년 워너 클래식스 레이블와 독점 계약을 맺으면서부터이다. 이듬해인 2014년에 발매한 앨범(Waner Classics)이 본격적인 출사표가 되었다. 두 장의 CD가 커플링된 이 앨범의 첫 장에는 ‘프랑스 음악’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19·20세기의 파리를 수놓았던 이베르·라벨·졸리베·미요·타파넬의 작품을 담았다. 커플링된 다른 음반에는 리게티·쳄린스키·바버·힌데미트·베레즈의 작품을 담았다. 결국 ‘20세기’라는 키워드로 두 장을 연결한 셈이다. 이 앨범이 목관 5중주의 작품을 담았다면, 같은 해에 나온 또 다른 앨범(Waner Classics)은 목관 5중주와 함께 하는 ‘피아노’에 방점을 찍었다. 이에 따라 르 샤주는 주인공 아닌 주인공이 된 셈. 3장의 CD에 담긴 음악 역시 지극 ‘프랑스적인’ 작곡가들이 채우고 있다. 프란시스 풀랑, 루이즈 파랭, 앙드레 카플레, 알베르 루셀 등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있는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을 담았고, 모차르트의 피아노와 관악기를 위한 5중주 K.452가 마지막 트랙의 막을 내린다. 여기서 모차르트의 작품은 이들이 고전주의로 넘어가는 이정표가 되었는데, 이들이 2017년에 발매한 세 번째 음반(Waner Classics)을 예견하는 것 같다. 이 음반은 베토벤의 목관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오보에·클라리넷·바순을 위한 트리오 Op.87, 피아노와 플루트·바순을 위한 트리오 WoO.37, 변주곡 WoO.28, 호른 소나타 Op.17, 클라리넷·바순을 위한 듀오 WoO.27이 수록되었다(‘WoO.’는 ‘작품번호 없음(Werke Ohne Opuszahl)’의 약자이다). 베토벤의 작품을 노래하는 이들의 숨결은 아기자기한 구조도 대범하게 처리하고, 보다 시원한 흐름으로 프레이즈를 연출한다.

이번 내한은 레 벙 프랑세의 첫 내한이다. 관악계의 스타플레이어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무엇보다 한국 관악주자들의 이어지는 해외 교향악단 입단과 그들의 내한 및 협연을 통해 국내 관객들도 관악기에 대한 수준이 피아노나 현악기 못지 않게 높아졌는데, 이러한 수준을 충족시켜주는 관악 전문 앙상블의 불모지인 현 상황에서 이들의 내한은 몇 시간 동안 국제적인 수준을 접하는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 이들은 이번 내한에서 최근 발매한 베토벤이나 관객에게 친숙한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니라, 결성 초기의 결심을 다지기 위해 부지런히 연주했던 이베르, 미요, 풀랑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과거에 비해 이들의 결성력은 더욱 단단해졌고, 그 사이로 피어나는 여유의 향기도 더 진해진 상태에서 관객들은 이들의 ‘성숙한 초심’을 만나는 것이다.

이번 달 17일에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을 마친 이들은 폴 메이어가 객원지휘자로 활동하는 도쿄 코세이 관악오케스트라가 있는 일본에서 20일부터 28일까지 8회의 공연을 선보인다.

 


레 벙 프랑세 내한 공연
4월 17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투일레 피아노와 목관 5중주를 위한 6중주 Op.6, 이베르 목관 5중주를 위한 3개의 소품, 미요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Op.47, 풀랑 피아노와 목관 5중주를 위한 6중주 FP100 외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Leave a reply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