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낸 두 바이올리니스트. 화려한 콩쿠르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그녀들이지만 삼십대를 맞이한 그녀들에게 새로운 도전은 매일 눈 앞에 놓여 있다. 4월 공연을 앞둔 이들에게 삶과 음악에 대한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명확한 자기 세계를 가진 이들이 무대에 서기 전 들려준 각각의 진솔한 이야기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 음악은 내 삶의 반영
2015년 ‘칸토 안티고’로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품었던 후 신지아가 3년 만에 리사이틀을 갖는다. 협연, 실내악부터 공중파 TV까지 다양한 무대를 소화하는 그녀가 이번에는 4월 28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반전’이라는 주제로 새로운 분위기의 무대를 선사한다. ‘반전’은 양면성을 지닌 전반부와 후반부 레퍼토리에서 따왔다. 독주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바흐의 샤콘,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3번에 이어 후반부에는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시마노프스키 ‘세 개의 신화’,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비에냐프스키 ‘오리지널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이어진다. 양면을 아우르는 주제들이 한층 성숙해진 그녀의 내면을 대변해 줄지 기대를 모은다.
그동안 연주와 방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왔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너무 재미없는 답변인데, 요즘엔 제 본업에만 충실하고 있어요. 음반 작업, 실내악 연주, 솔로 리사이틀 준비 등으로요.
이번 연주회 주제가 ‘반전’인데요. 연주 레퍼토리의 성격이 전반부와 후반부가 전혀 다른 것이 매력적이네요. 양면을 아우르는 음악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작업일 것 같은데 음악을 잇는 그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해 말씀하실 때 열정, 카리스마와 같은 단어들로 표현하세요. 대조적으로 또 어떤 분들은 여성적이고, 감성적인 모습이 떠오른다고도 하시고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 모습들 모두가 저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요. 20대의 저, 30대의 제 모습이 그대로 이번 레퍼토리에 반영되어 있어요. 반전의 프로그램이지만 신지아의 지금까지의 여정을 함께 되돌아보는데 의미를 두고 들어 주시면 전반부와 후반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30대가 된 이 시점에 제 인생을 뒤돌아보니, 한 무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여드릴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더라고요. 연습만 하면서, 콩쿠르에 도전하던 패기 가득했던 20대의 모습과 시간이 흘러서 더 깊은 감정을 배우고, 그 감정을 연주하려는 지금의 모습을 같이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반전이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모두 지금까지의 제 모습에서부터 나온 것 같아요.
이번 작품들을 감상할 때 청중들이 어떤 면에 초점을 맞춰서 들으면 좋을까요.
이번 프로그램은 제가 지금 현재 기록하고 싶은 지금까지의 제 음악인생이 반영되었어요. 10~20대, 열과 성을 다해 콩쿠르에 도전하던 순간들, 그 시간들을 지나 조금은 깊어지고 넓어진 현재의 모습을 담았다고 하면 맞을 거예요. 앞으로 이어질 제 연주 생활에 한 악장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악장을 시작하는 이 순간을 관객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서로 성격이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이번 공연의 감상팁은, 1부와 2부 반전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를 만나는 데 초점을 맞춰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반전’이란 건 참 매력있는 것 같아요. 평소 이런 반전을 좋아하나요. 사실 예술가들도 반전이 많은 사람들인데 작품에서도 그런 면들이 많이 반영되곤 하잖아요.
평소에는 반전 보다는 일관된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일상에서 맛 없어 보이는 음식을 한 입 먹었을 때 엄청나게 맛있으면 몇 배로 행복하듯이, 그런 소소한 반전은 삶에 재미를 줄 수 있겠죠.
30대에는 20대와는 다른 고민이 있을 것 같은데, 요즘 많이 드는 고민이나 생각들이 있나요.
요즘에는 뭔가 책임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20대 때는 제 음악, 제 삶 모든 것이 제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나만의 해석과 나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의 색깔은 어떻게 해야 더 짙어질 수 있는지 안으로가 아닌 밖으로의 고민이 더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실제로 요즘에는 지아씨 라는 호칭보다는 신지아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꽤나 듣게 되었어든요(웃음). 좀 더 깊어진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겠죠.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은 무엇인가요.
30대라는 시기는 모두에게 성숙을 필요로 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은 지금까지 해 왔던 제 음악을 기록하고 싶다는 거예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음반 작업도 하고 싶고 무대를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많이 갖고 싶어요. 제가 바라는 이상적인 삶은 제 커리어를 잘 쌓아가면서 동시에 제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과의 행복한 시간도 함께 지켜나가는 거예요. 가끔 너무 연주에만 몰두하다 보면 주변 사람을 살피지 못하게 되는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요.
함께 무대에서 활동하는 동료들과의 연대감 같은 것을 느끼는지도 궁금하네요.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고 저도 연주자인 만큼 함께 그들과 무대에 설 때 느끼는 행복감이 무척 크죠. 이번 솔로 리사이틀 역시 제 첫 음반인 ‘Passion’에서 함께 연주했던 피아니스트 아키라 에구치와 함께 해요. 첫 음반을 낸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는데 이번에는 어떤 음악을 함께 만들어 내서,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최근에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과 음반 작업을 함께 했어요. 솔리스트로서 무대에 자주 서지만, 같은 삶을 사는 연주자들과 함께 하는 작업은 상대 연주자의 음악관이나 삶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연대감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어서 무척 의미있어요.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만나 음악을 함께 하면, 관객들에게도 색다른 행복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동안 대중과의 소통에도 큰 역할을 했는데 클래식 음악이 대중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큰 역할을 했다 하면 감사할 따름인데요. 사실 제가 다양한 활동들을 했던 이유가 클래식 음악을 대중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알릴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서 시작되었어요. 클래식 음악 연주자지만, 새롭고 다양한 활동으로 다가가면 더 많은 분들이 저를 통해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대중가요에 비해 길이도 길고, 사람들이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 맛을 한 번 보면 깊이 빠져들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요. 다양한 연주자, 관계자 분들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으니 점점 더 많은 분들이 즐기는 음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직도 클래식 음악은 지루한 옛날 음악이라는 편견이 아직 남아 있어요. 다른 장르도 물론 훌륭하지만, 몇 백 년 전 만들어진 음악들이 후세의 사람들에게까지 깊은 감동을 준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죠. 과거의 사람들도, 현재의 사람들도 한 음악을 통해 감동을 받고, 그로 인해 삶이 바뀐다는 것은 거의 기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담고 있는 클래식 음악의 힘은 그래서 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올해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번에 리처드 용재 오닐의 음반 작업에 참여했어요. 다양한 연주자들이 참여한 음반인데, 새삼스럽지만 함께 호흡하는 시간들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3월에는 이 음반에 참여한 아티스트로서 용재 오닐 리사이틀에 함께 하고요, 4월에는 온 정신이 쏠려 있는 솔로 리사이틀이 예정되어 있어요. 이번 솔로 리사이틀 타이틀은 ‘반전’인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라는 의미 있는 곳에서 하는 저에게는 큰 공연이라, 준비하는데 온 정신이 쏠려 있다 보니 그 다음에 무엇을 할지 딱 떠오르진 않는데요. 공연을 마친 후에는 연주가로서 당연하겠지만 지금까지 연주해 본 곡들 외에도 새로운 곡들에 도전하고 싶고, 다양한 연주자들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 음악은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는 객석과 인연이 깊은 연주자다. 2015년부터 객석에 연재되었던 조진주의 에세이는 많은 팬층을 형성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장인과의 만남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가장 높은 경지의 수련의 과정은 자신을 알고 극복하고 내려놓은 작업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많은 독자들에게 성찰하게 한 시간이었다. 국내외에서 다양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는 객석, 한겨레, 조선일보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철학과 생각을 표현해 왔다.
그동안 연주와 교육은 물론 언론 분야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왔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클리블랜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생활을 어떤지 궁금합니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것은 언제나 상당히 즐겁습니다. 내년부터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맥길 대학교로 학교를 옮기게 되어 이사준비도 하고, 학생들 콩쿠르 준비도 도와주며 여전히 활기차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엔 연주가 특별히 많은 편이어서 체력적으로 조금 지치기도 했지만 불러주시는 곳이 많다는 것은 연주자로써 행복한 일이니까요. 모든 일들을 유연하게 균형을 맞춰서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4월 12일 금호아트홀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이탈리아 모음곡(새뮤얼 두시킨 편곡)’, 리처드 대니얼푸어의 ‘바장탱에 밤이 드리우면’, 앙드레 프레빈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탱고 음악과 춤’, 루토슬라브스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수비토’, 포레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1번 A장조, Op.13을 연주하는데 현대곡에 무게를 둔 이번 프로그램에서 청중들은 어떤 면에 초점을 맞춰서 감상하면 좋을까요.
흔히 현대곡이라고 하면 불협화음과 듣기 힘든 소리들로 가득찬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이번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곡들은 아름답고, 강한 에너지로 가득한 곡들입니다. 흥미진진한 진행에, 색채가 강렬하고 완성도가 높은 곡들이니만큼 많은 청중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30대는 20대와는 또다른 고민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많이 생각들이 있다면요.
그다지 다른 것 같지는 않아요. 고민은 늘 비슷합니다. 어떻게 하면 음악을 좀 더 깊게 할 것인가, 음정은 어떻게 하면 좀 덜 틀릴 수 있을까, 하는 것들!
30대가 되면서 음악이나 삶에서 생각하는 것들이 조금 달라지는 것들이 있나요?
글쎄요. 많이 다른 것 같지 않아요. 아직은 체력도 비슷하고요(웃음). 더 안정되었다거나 특별히 의미가 있다거나 하진 않네요. 29세에서 하루 지나 30대가 되었다고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여전히 철이 없고 많은 것이 서툴러요. 하지만 그것이 아직도 많은 일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확실한 건 30대건, 40대건, 50대건, 편안하고 싶지는 않아요. 편안해 지면 왠지 연주가 느슨해 질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있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어려운 일들을 선택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는 일에 점점 더 자신이 생기고 스스로의 연주가 마음에 들기 시작 했다는 것은 가장 최근의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인간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성숙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인데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이 있나요.
치열하게, 자유롭게, 아름답게, 강하게 살고 싶습니다. 성숙은 도무지 모르겠지만 살아낸다는 것이 조금 익숙해 진 것 같긴 해요.
같은 세대 연주자들과 삶을 나누곤 하는지 연대감 같은 것을 느끼는지 궁금하네요. 무엇인가 그들과 사회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하는지도요.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조금 외로운 부분들도 있습니다. 사실 연주자의 삶이라는 것은 이기적이지 않고는 이어가기 힘든 부분들이 있어요. 사실 허심탄회하게 깊은 고민을 서로 나누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저와 비슷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구요. 그런데 예술이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 이외에, 꼭 사회에서 특정한 일을 해야 할까요? 거창한 것 보다는,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인스타그램 팔로우 수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고 예술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는 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연주가 네이버로도 생중계되는데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예술 교육과 병행되지 않는 다면 큰 효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전 음악의 힘은 결국 긴 호흡, 그리고 미세하고 섬세한 인간적 감수성의 표현에 있어요. 문화와 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지적 호기심, 오랜 관심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쌓이고 연상되는 데이터 레퍼런스 없이는 이해가 힘듭니다. V LIVE 등은 좋은 시도 이긴 하지만 단순히 접근성만 높였다고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바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입니다. 예술이 꼭 대중적일 필요는 없지요. 문화예술의 가치는 본래 기본적으로 대중적 소비와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또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황홀하고 가장 어두운 순간들을 함축적으로 풀어낸 것이기에 인생의 내면을 한순간에 바꿔버리는 거대하고 강렬한 힘을 내재하고 있지요. 이것이 공적자금(Public funding)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물론 소비하기 쉬운, 자극적이고 쉬운 곡들도 있으며 그런 곡들을 연주하는 것도 가끔은 즐겁지만, 그런 곡들을 연주하기 위해 제 인생의 많은 것들을 포기해 가면서 공부하고 연습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음악이 인간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느꼈고, 제 연주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작곡자의 내면을 온전히 느끼고, 위로받길 바라며 더욱더 세밀하게 그 내면을 표현할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그런 면에 있어 오히려 연주자들이 본인의 생각이나 곡에 대한 느낌을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우리 삶에,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한 사람의 기호에 맞는 음악의 한 종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아요.
올해 계획이 있다면요.
우선 4월 공연을 정성들여 준비할 생각이고, 11월에 있을 경기 필하모닉과 마에스트로 다니엘 가티의 연주를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진두지휘하는 미국 클리블랜드에 여름 실내악 캠프인 ‘앙코르 챔버 뮤직(ENCORE Chamber Music)’의 세 번째 시즌도 재미있게 진행되길 바라고요. 다음 번에 인사드리게 될 때는 연주자로써의 첫 발을 내딛었던 몬트리올에서 새로운 시즌 시작을 즐기고 있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어를 다시 배우느라 진땀을 빼고 있을 테지요. 아무쪼록 모두들 건강하시길. 올해도 좋은 연주로 자주 찾아 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글 국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