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시작점에 선 젊은 두 피아니스트
한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클래식 음악 강국이다. 물론 현재 국내 클래식 음악 시장의 수요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젊은 라이징 스타의 등장이 클래식 음악계에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2월과 3월, 금호아트홀은 라이징스타 시리즈와 금호아티스트 ‘더 위너스(The Winner’s)’로 피아니스트 신창용(b.1994)과 손정범(b.1991)의 무대를 선보였다. 네이버 생중계로도 방송된 공연은 클래식 음악계 종사자들은 물론 많은 팬들로 가득 차며, 이 두 연주자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는지를 증명했다. 그리고 이들을 향한 평단과 대중의 관심은 앞으로 이 두 젊은 연주자가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지에 대한 기대를 하게 했다.
두 사람은 모두 한국에서 강충모를 사사했다. 이후 신창용은 미국으로 떠나 커티스 음악원과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학업을 이어갔고, 2016년 힐튼 헤드 피아노 콩쿠르 1위, 2017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 1위 등 여러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뉴욕 카네기홀 데뷔했다. 지난 1월에는 스타인웨이 앤 선스 레이블에서 데뷔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반면 손정범의 선택지는 독일이었다. 독일 뮌헨 국립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뮌스터 음대에서 공부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2017년 독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뮌헨 ARD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수상하며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같은 공연장에서 선보인 두 연주자의 연주는 전혀 다른 개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젊은 열정과 음악가로서의 고집, 그리고 더 큰 예술가로서 성장하기 위해 겪는 성장통이 함께한 두 개의 무대를 이곳에 전한다.
다양한 색깔을 담아서
2월 1일, 2018년 금호아트홀 라이징스타 시리즈로 선보인 신창용 피아노 독주회의 키워드는 ‘다채로움’이었다. 1부는 바흐 토카타 BWV912로 시작해 리스트 ‘피아노를 위한 고독한 가운데 신의 축복’ S173/3,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Op.101로, 2부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를 위한 6개의 악흥의 순간’ Op.16로 채워졌다. 바로크, 고전, 낭만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의 작품을 담아 구성적인 면에서는 여느 연주회와 비슷해 보였지만, 프로그램의 선택에서는 꽤 다채로운 모습을 보였다. 무대에서 잘 듣지 못했던 바흐 토카타 BWV912나 리스트 S173/3은 평범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신선한 느낌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지난해 서울국제콩쿠르 우승 이후 국내에서 선보이는 첫 독주회라 기대도 부담감도 많이 느꼈다는 그는 이번 무대에 앞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파리와 미국에서 두 차례의 연주를 가졌다고 했다. 여러 차례의 연습을 거쳐서인지, 연주나 무대매너에 있어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작품마다 다른 색깔을 보여주면서도, 여전히 모든 곡에 신창용의 색깔은 분명히 드러났다. 물론 아직 더 많은 성장을 예고하고 있는 연주자이기에 연주나 프로그램 구성 등 모든 부분에서 완벽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연주만큼은 꾸민 것처럼 불편한 구석 없이, 딱 제 나이에 맞는 옷을 입은 듯 했다.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고집 있는 무대
3월 8일에는 피아니스트 손정범의 연주를 만나볼 수 있었다. 뮌헨 ARD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이라는 타이틀로 선보인 손정범의 피아노 독주회 역시 콩쿠르 이후에 선보이는 국내 첫 독주 무대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연주를 보기 위해 일반 대중은 물론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부터 국내 교수진과 평론가까지 많은 이들이 공연장을 찾았다.
첫 곡은 모차르트 환상곡 K397. 작곡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 손정범은 깊은 호흡으로 한음한음 정성스레 짚어 내려갔다. 온전히 빠져든 듯한 그의 모습에 관객들도 숨을 멈추고 연주에 집중해갔다.
2부에서 들려준 슈베르트에서도 손정범의 특별한 음색은 존재했다. 바로 전날 예술의전당에서 같은 곡을 연주한 임동혁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였다. 임동혁의 슈베르트가 빛과 그림자를 담은 초연한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손정범의 슈베르트는 묵직한 폭풍 같았다. 조금 더 남성적이고 투박한 목소리의 슈베르트랄까. 담담한 표정 속에서 묵직하게 체중을 실어 울리는 그의 터치는 깊고 강했다. 이 두 연주는 그가 그리고 있는 연주자로서의 이상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하게 했다.
손정범은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로 확실한 개성을 보여주었지만, 쇼팽 에튀드 Op,25 전곡에서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연주자에게 어떤 스토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날의 12개의 에튀드는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가득했다. 그의 음색은 분명 담겨있었지만, 시종일관 저돌적이고 무거웠으며, 몇 번이나 손을 멈추고 구간을 반복하는 등 연주자가 전하고자 하는 그 어떤 메시지도 들을 수 없었다. 반복되는 실수 때문인지 그는 곡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건반에서 손을 놓아 버리기도 했다. 분명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콩쿠르 이후 쏟아진 무리한 연주 스케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콩쿠르 우승자라는 타이틀에 대한 많은 이들의 기대가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이런저런 이유를 다 차치하더라도 아쉬움이 남는 연주임에는 분명했다.
손정범은 콩쿠르 후 약 6개월의 시간 동안 30여 번의 무대에 올랐고, 이번 독주회를 위해 스위스 바젤에서 협연 무대를 마친 직후 한국에 들어왔다. 콩쿠르 우승으로 앞으로 3년 동안 슈투트가르트, 뮌헨, 드레스덴 등 독일 주요 도시에서 50번의 연주를 가질 예정이며, 분명히 이 스케줄 외에도 여러 초청 연주를 소화해야 할 것이다. 이제 이 많은 공연 스케줄을 어떻게 운영하고 소화할지는 그의 몫이다. 본인의 컨디션에 따라 레퍼토리를 조정할 수 있는 것도 세계적인 연주자로 발돋움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것이다. 연주자로서 가장 기본에 집중하겠다는 본인의 말처럼 당장 앞만 보고 달리기보다는 보다 신중한 결정으로 연주자로서의 긴 생명력을 가져가길 기대해 본다.
신창용과 손정범, 두 젊은 피아니스트의 이번 무대에는 분명 빛나는 개성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대한 많은 연구와 시행착오는 이들이 더 큰 예술가로 성장하기 위한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의 연주는 4월 교향악축제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넘치는 열정과 뚜렷한 음악적 세계관을 지닌 두 젊은 피아니스트, 계속해서 성장하는 이들의 무대는 앞으로도 분명 주목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