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음악으로 일본을 넘어 세계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스즈키의 하프시코드 독주를 만나다
스즈키 마사아키가 처음으로 한국 무대를 밟은 것은 2004년 4월, 금호아트홀에서의 하프시코드 독주회였다. 당시 그는 바흐의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 BWV903과 L.쿠프랭의 모음곡 등을 연주했다. 그리고 14년 만인 올해, 그때와 같은 무대에 같은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다. 바흐 콜레기움 재팬의 지휘자가 아닌 하프시코디스트 스즈키 마사아키를 만나는 시간이다.
스즈키는 1990년 고음악 연주·합창단체인 바흐 콜레기움 재팬을 창단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발돋움한 것은 1995년 BIS 레이블과 함께 시작한 바흐 교회 칸타타 전곡 녹음 프로젝트다. 2013년 완결된 55장 분량의 전집은 전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다.
하프시코드로 첫 내한 무대를 선보인 이듬해 2005년, 스즈키는 바흐 콜레기움 재팬을 이끌고 명동성당에서 공연을 했다. 2005년은 J.S.바흐 탄생 320주년을 맞아 수많은 바흐 연주가 있었던 해였는데, 당시 공연은 한국의 음악계에 적잖은 놀라움을 안겼다. 2000년대에 들어 원전연주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했던 한국과는 달리, 일본의 원전연주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뤄지고 있었다. 연주뿐 아니라 이론적 연구도 활발하다.
이후 2011년 LG아트센터 바흐 B단조 미사 전곡 연주, 2016년 통영국제음악제 바흐 마태수난곡 공연 등 한국을 꾸준히 방문했지만, 오롯이 홀로 무대에 오르는 것은 14년 만의 일이다. 지휘자 스즈키가 아닌 하프시코디스트 스즈키가 선보일 바로크 선율에 한국의 고음악 팬들은 벌써부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바로크 음악의 거장 스즈키 마사아키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프랑스 작곡가 루이 쿠프랭, 영국 작곡가 윌리엄 버드, 독일곡가 프로베르거와 북스테후데의 작품들을 연주한다. 다양한 나라의 바로크음악을 한데 모았다.
프랑스와 영국, 독일의 이러한 양식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17세기 후반 들어 여러 나라간의 음악적 양식은 더욱 큰 차이를 보였다. 악기를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차이점을 드러낸다.
공연의 2부에서는 바흐의 전주곡과 푸가 BWV853과 파르티타 6번 BWV830을 연주한다. 한국의 많은 이들이 당신의 바흐 해석을 기대하고 있다.
6개의 파르티타들과 그것이 속한 ‘클라비어 연습곡집’은 바흐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특별히 주목해야 할 곡들이며, 그중에서도 6번 E단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앞서 말한 바로크의 국가 간 다양성은 18세기 전반에도 존재했지만, 바흐는 그러한 차원을 넘어 다른 어떤 작곡가보다도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바흐 콜레기움 재팬은 모차르트 미사 음반으로 지난해 그라모폰상을 수상했다. 새로운 관심사로 모차르트가 부상한 것인가?
우리의 레퍼토리는 바흐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바흐만 연주한다면 그의 음악을 이해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바흐 자신부터도 이미 여러 다른 작곡가들에게 막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음악을 남긴 다른 작곡가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음반으로 발매할 좋은 기회를 이제 만났을 뿐, 모차르트는 바흐 콜레기움 재팬의 오래된 중요 레퍼토리이다.
2년 전 BIS 레이블의 대표 로베르트 폰 바르와 만났을 때, 그는 내게 바흐 콜레기움 재팬과 당신의 이야기를 했다. 1994년 데모 녹음을 처음 받았던 순간 특별함을 느껴 바흐 교회 칸타타 전집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결심하게 됐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기술적인 문제를 놓고 숱한 토론을 거쳤다. 하지만 로베르트 폰 바르와 BIS의 열정은 처음부터 한결같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이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아시아인으로서 고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당연히 일본 음악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제 국적은 무의미하다. 연주를 결정짓는 더 중요한 요인은 음악가 개인의 성격과 배경이다. 난 유럽과 미국에서 고음악을 연주하는 많은 아시아 연주자들을 알고 있다. 장차 더 많은 아시아의 앙상블과 오케스트라가 고음악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바로크 음악 시장은 어떠한가?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고 많이 성장하고 있다. 지금의 젊은 음악가들은, 내 세대가 그 나이였을 때보다 훨씬 더 넓은 관점으로 음악을 이해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완전히 새로운 트렌드가 탄생할 것이고, 그땐 아무도 ‘고음악’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아들 스즈키 마사토(지휘·오르간·하프시코드·작곡)도 당신의 길을 따라 바로크 음악에 매진하고 있다. 아버지이자 선배 음악가로서 그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
그는 이미 온전히 독립적인 음악가이고, 내 조언이 필요하지 않다. 그와 그의 동료들, 그 세대의 음악가들은 누구보다도 유연하고 소통능력이 뛰어나다.
글 이정은 기자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