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YOUNG ARTISTS
나이 제한선 19세. 이제 막 선을 넘은 그녀는 무서운 속도로 달리며 조금 이르게 어른 티를 입었다
비올리스트 이해수가 2018 프림로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세계 최초로 비올리스트만을 위해 개최된 콩쿠르이며, 미국에서도 가장 큰 비올라 콩쿠르인 프림로즈 콩쿠르는 1979년 첫 회 이후 수많은 훌륭한 연주자를 배출해온 권위 있는 경연의 장이다.
올해로 열아홉. 나이가 차기를 기다리며 일찍이 여러 청소년 콩쿠르에서 기량을 닦은 이해수는 자격이 주어지자마자 참가한 첫 성인 콩쿠르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다른 이라면 한창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이해수는 음악에 매진하고자 한국으로 돌아와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동급생보다 열 살이나 어린 나이에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해 로베르토 디아즈와 신윤 황을 사사하고 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음악을 시작했으나, 탁월한 음감과 빠른 습득력으로 줄리아드 예비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9세의 이해수는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단다.
“나는 그냥 연주자가 아니라 이다음에 죽더라도 비올라를 생각하면 누구나 내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연주자가 될 거야!”
성인의 자격으로 참가한 첫 콩쿠르, 그리고 우승. 이해수에게 프림로즈 콩쿠르는 음악가로서의 자아를 깨우치고, 소녀에서 어른으로 자라나는 계기가 되었다. 일찍 깨어난 만큼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며 세상을 넓혀나가길. 바지런히 자양분을 쌓아 더 먼 곳에 닿기를. 당차고 원숙한 모습으로 마주 앉아 소신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모습을 보니, 어린 그녀의 꿈이 예상보다 일찍 이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이해수의 시작
시작은 바이올린이었어요. 오빠가 바이올린을 배우는 걸 보고 저도 따라 배우겠다고 나섰죠. 그런데 만나는 선생님마다 마치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비올라가 어울리겠다더라고요.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살던 때라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고민하며 음악 선생님을 찾았고 그때 줄리아드 음악원에 계시던 이신규 선생님과 만났죠. 제 첫 스승이세요. 그때까지만 해도 비올라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데, 바이올리니스트인줄 알았던 신규 선생님이 비올리스트인걸 알고는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깨달았어요.(웃음) 이후, 토피 아펠 선생님과 예비학교에서 공부했고 커티스 음악원에 진학해 로베르토 디아즈·신윤 황 선생님께 배우고 있습니다.
프림로즈 콩쿠르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데다가 성인으로서 참가한 첫 콩쿠르였어요! 음악가라는 길에 확신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고요. 나이 제한 때문에 참가를 미루다가 이번에야 도전하게 돼 열심히 준비했어요. 디아즈 선생님은 귀한 악기까지 빌려주며 격려해주었죠. 여러 선생님과 동료들의 도움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비로소 이 길이 내 길이구나 싶어요. 제 스스로를 학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음악가’라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피드백도 막연히 레슨에서 듣던 지적과는 무게가 다르더라고요. 이전에는 CD처럼, 혹은 영상 속 세계적인 연주자처럼 연주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며 제 의도를 담는 건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하지만 경연을 통해 제 음악을 만들고, 저만의 소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답니다. ‘네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해라. 그 길이 옳은 길이다’라는 선생님들의 말씀을 이제야 몸소 깨달았어요.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
브람스요. 음악은 물론, 그의 삶이 감동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브람스 소나타를 공부하면서 ‘어떻게 해야 더 아름답게 표현해낼까?’ 고민에 빠진 적이 있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음악 자체가 워낙 아름답기 때문에 뭘 더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음악을 전해라”셨죠. 꾸미지 않았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브람스의 매력을 그때 크게 깨달았어요. 콩쿠르 결선에서도 브람스 트리오를 연주하면서 클라리넷 파트를 연주했는데, 독주곡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도전이었지만 브람스 특유의 아름다움 덕분에 더 힘을 내서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도전해보고 싶은 음악
콩쿠르를 끝내고 나니 새로운 곡에 대한 열망이 마구 피어올라요.(웃음) 쇼스타코비치 첼로 소나타는 제가 손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품인데, 꼭 비올라로 연주해보고 싶어요. 힌데미트 작품도요. 또 요즘 실내악에 관심이 많아서 학교로 돌아가면 베토벤 현악 4중주를 비롯한 여러 곡을 공부하려고요. 실내악을 연주하면서 오히려 비올라가 지닌 독주 악기로서의 가능성을 더 많이 찾았거든요. 학교로 돌아갈 날이 무척 기다려집니다.
이해수가 그리는 이해수의 음악
아직 어려서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 많거든요. 드라마나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의 삶과 이야기 속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어요.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찾아내는 과정이 연주에도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음악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담은 이야기 말예요. 그래서 연습할 때도 저만의 시나리오를 그려보곤 해요. 음악에 이야기를 불어넣음으로써 생명을 깃들게 하는 거죠. 사실 제가 브람스의 큰 사랑을 어떻게 다 이해하고 공감하겠어요. 하지만 ‘미 비포 유’라는 영화를 보고는 어렴풋이 그 슬픔과 애틋함을 이해하겠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청중이 제 음악을 통해 한 권의 소설책을 읽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고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비록 제가 담은 내용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상상하게 될 지라도요.
앞으로의 목표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한 후에는 유럽에서 공부를 이어나가 볼까 해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시간을 내 독일에 가보려고요. 베를린에 머물며 여행도 하고 분위기도 살펴보고요. 음악가의 길에는 끝이 없잖아요. 음악을 직업적으로 대하기보다는 그저 살면서 즐길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존재로 여기고 싶어요. 사실 다른 사람과 음악을 연주하고, 또 들려드릴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잖아요.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을 다룰 수 있다니,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즐기자. 이 음악을, 이 아름다움을 온 마음을 다해 즐기자 싶어요. 10년 뒤, 20년 뒤엔 또 그만큼 성숙하고 성장한 이해수로 당당히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감사한 마음으로 음악을, 또 제 악기를 대할 거예요.
글 정원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
2009 줄리아드 예비학교 입학2011 한예종 영재원 입학2013 커티스 음악원 입학2015 요한슨 국제 스트링 콩쿠르 1위 스털버그 스트링 콩쿠르 입상2018 프림로즈 콩쿠르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