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바흐 ‘요한 수난곡’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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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8월 1일 12:00 오전

‘객석’ 필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수난곡의 균형점을 찾아서

서울시향의 ‘요한 수난곡’(7월 6·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연주는 현대음악 소개에 남다른 비중을 두었던 이 악단의 지금까지의 성향을 미루어 볼 때, 반대급부에 해당하는 도전이었다. 재단 출범 이후 서울시향은 바로크 시대 작품 연주에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과거 ‘원전연주’ 혹은 ‘정격연주’라 불리던 시대 악기 운동이 주도했던 고증에 따른 소편성 해석이 보편적인 인정을 받으면서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바로크 음악을 연주할 입지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종교 음악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서울시향이 시도한 종교음악은 (애초에 전례음악이라 볼 수 없는) 모차르트와 베르디의 ‘레퀴엠’이 최전방 전선이었다.

서울시를 대표하는 예술단체가 특정한 종교 작품을 연주하는 데 대해 반발하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슬림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종교의 자유에 관한 한 우리나라보다도 더욱 예민한 독일의 베를린 필이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디지털 콘서트 프로그램으로 선택할 만큼, 클래식 음악과 기독교 음악은 완벽한 분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뿌리가 이어져 있다. 지금은 콘서트홀에서 연주되는 모차르트 ‘레퀴엠’이나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공연에 찾아오는 청중들이 모두 기독교 신자라고 보장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의미도 없다. 그 작품들이 작곡된 동기나 역사적·종교적 기능을 넘어선 예술성을 보편적으로 인정받은 지는 이미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음악이자 극음악인 바흐의 수난곡

전례음악으로서의 기능을 넘어서 바흐의 수난곡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예술적 가치 중 하나는 오페라의 대안적 장르로서의 가능성이다. 바흐가 라이프치히에서 수난곡들을 작곡하던 당시 그의 선배 및 동시대 작곡가들은 교회 음악보다는 오페라라는 장르에 더욱 치중하고 있었다. 17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작곡가 4인방인 몬테베르디·쉬츠·샤르팡티에·퍼셀이 저마다의 나라에서 연극적 상상력과 언어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을 발휘하며 일찌감치 이 장르에 혁신을 일으켜 멍석을 깔아놓았고, 음악 외적으로는 무역으로 부흥하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 세워진 오페라극장이 도시의 코스모폴리탄적인 입지와 경제적 부를 상징했다.

바흐 시대 음악가들은 지명도가 있으면 누구나 오페라를 작곡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동갑내기 헨델 또한 기본적으로 바흐와 비슷한 음악교육을 받았고 루터교 인생관을 공유했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바흐보다 훨씬 대중적이다. 이처럼 전 유럽을 휩쓴 오페라 열풍에서 바흐는 온전히 격리되어 있었을까? 당시 독일 사회를 휩쓸었던 루터교의 경건주의에 몰입한 바흐가 오페라를 아예 외면했는지, 아니면 당시 진화 중이던 오페라가 지닌 극적 효과를 이용해 신도들을 계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는지, 오늘날 바흐 수난곡들의 연주해석은 이에 대한 의견에 따라 좌우된다.

이 모든 관점을 고려할 때 티에리 피셔가 지휘한 서울시향의 요한 수난곡은 한 마디로 ‘절충주의’적 연주라 요약할 수 있었다. 확장된 현악 편성과 대규모 합창단(모테트 합창단)은 낭만주의 연주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두 대의 오보에 중 한 대를 오보에 다 모레로 대체하고 바소 콘티누오를 위해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비올라 다 감바 등 고악기를 배치했다. 이러한 절충주의는 성악 솔리스트들의 해석에서도 볼 수 있었다. 에반겔리스트 역을 담당한 서울시향 올해의 상주음악가 이안 보스트리지와 합창단 왼쪽에 위치한 소프라노·알토·테너 파트의 성악가들이 다소 드라마틱한 창법을 구사했다면, 오른쪽에서 노래하던 예수와 빌라도는 절제된 감정의 경건주의를 지향했다.

필자가 본 7월 7일 공연의 시작은 솔직히 실망스러울 정도로 불안정했다. ‘요한 수난곡’ 전체에 걸쳐 가장 강렬한 임팩트를 표현하는 도입부 코러스 ‘주여, 우리 주여(Herr, unser Herrscher)’를 지휘자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느린 템포로 시작했고, 현악기와 관악기는 박자가 서로 슬그머니 엉켰으며,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첫 번째 합창에서 음정조차 맞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했다가 반복 부분에 이르러서야 이들은 간신히 하나의 길을 찾았다.

이 모든 혼란은 이어진 에반겔리스트의 레치타티보를 통해 한 순간에 수습됐다. 이안 보스트리지의 강렬하면서도 극적인 목소리는 청중들의 집중력을 금세 빨아들였으며 전체 드라마를 진행하는 견인차 역할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간간이 고음부 처리가 매끄럽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극의 흐름에 방해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복음사가에 응답하는 예수 역의 바리톤 정록기는 같은 배역을 수십 번 노래한 연륜을 과시하듯 안정되고도 절제된 음성을 구사하며 보스트리지의 드라마틱한 해석과 조화로운 대조를 이루었다. 빌라도 역의 바리톤 로더릭 윌리엄스는 정록기와 같은 성부이지만 예수와 대립하고 고뇌하는 인물상을 전혀 다른 색채로 담담하게 잘 이끌어냈다.

 

실질적 지휘자였던 건반악기의 균형감각

이렇듯 고정된 배역들의 열연에 힘입어 소프라노·테너·알토 아리아는 남다른 개성을 과시하며 빛을 발했다. 소프라노 서예리, 알토 파트를 노래한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테너 제바스티안 콜헵의 아리아들은 경건한 찬송가를 넘어서 속세에 속해 있는 인간의 슬픔과 갈등, 죄책감을 현실적으로 표현했다. 첼로 객원 수석 주연선과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 강효정의 절제되면서도 리드미컬한 바소 콘티누오 연주는 솔리스트들의 가사에 대응하여 정서적으로 한층 더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솔리스트들의 약진으로 극의 감정선이 고조됨에 따라, 초반에 부진했던 합창단도 예수를 매도하는 눈먼 대중과 반대로 그를 안타깝게 여기는 민중의 슬픔 사이를 기민하게 오가며 자신의 역할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각 솔리스트들의 개성에 따라 전례의식과 드라마라는 양 극단을 오가는 와중에도 음악이 흐트러지지 않고 균형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피셔의 지휘봉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난곡의 프레임을 튼튼하게 떠받쳐준 뱅자맹 알라드의 공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오르간과 하프시코드를 넘나든 그의 활약은 온갖 인간의 목소리들과 악기들에게 한 곡 한 곡 시작될 때마다 나아갈 길을 앞서 제시하고 리드하는, 신뢰할 수 있는 이정표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실제로 포디엄의 개념이 없던 그 시절 작곡된 이 작품을 바흐는 아마도 알라드가 앉은 그 자리에서 직접 건반악기를 연주하며 이끌었을 것이다.

글 노승림(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서울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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