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stage
스위스 바젤 발레의 상임안무가 리처드 웰록이 제임스 전의 무대를 위해 내한했다. 오롯이 그만을 위한 작품, 제임스 전의 춤이 무대 위로 펼쳐진다
해외에서 검증받은 4편의 연극과 국내 대표 안무가들의 초연작을 모아 선보이는 베스트 앤 퍼스트 시리즈(Best & First)가 9월 4일부터 10월 7일까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열린다. 이 중 4편의 무용 무대는 이재영의 ‘구조의 구조’(9월 8·9일)로 시작해 박호빈의 ‘마크툽(MAKTUB)’(9월 29·30일), 제임스 전의 ‘Post 2000 발레정전’(10월 4·5일), 그리고 예효승의 ‘오피움(Opium)’(10월 5~7일)으로 이어진다. 젊은 안무가들 사이로 눈에 띄는 한사람이 있다. 바로 내년 환갑의 나이를 앞둔 안무가 제임스 전이다. 온몸이 녹아내릴 듯한 무더위를 뚫고 그의 특별한 리허설 현장을 찾았다. 연습실에는 카미유 생상스 바이올린 협주곡 3번 2악장의 선율이 흐르고 있었고, 소품 몇 가지가 놓여있는 넓은 연습실은 제임스 전의 움직임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연습실 밖의 열기보다 더 뜨거운 열정이 담긴 그의 춤은 아름다운 음악 위로 유려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제임스 전의 60년 춤 인생이 담긴 5개의 작품
“‘베스트 앤 퍼스트’라는 큰 주제 안에서 그동안 선보였던 작품으로 시작해 새로운 작품으로 마무리되는 프로그램을 구성했습니다. 새로운 인생으로의 여정을 담은 거죠.”(제임스 전)
제임스 전의 ‘Post 2000 발레정전’은 모두 다섯 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진다. 1부에서는 ‘바람처럼(Like the Wind…)’ ‘도시의 불빛(City Light)’ ‘두 개의 이미지(Two Images)’, 그리고 ‘미드 시프트(Mid Shift)’를, 2부에서는 ‘7컬러 오브 라이프(7 Colors of life)’를 선보인다. 이미 무대에서 선보였던 앞의 세 작품에 이어 1부의 마지막과 2부는 각각 리처드 웰록과 제임스 전의 신작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무대의 처음을 열 ‘바람처럼(Like the Wind…)’은 지난해 창무국제공연예술제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제임스 전과 정운식이 출연해 인생에 부는 다양한 바람, 바람처럼 살아온 자신의 삶을 표현한다. 두 번째로 선보일 ‘도시의 불빛(City Light)’은 이날 공연에서 선보일 작품 중 가장 오래됐다. 25년 전, 제임스 전이 유니버설발레단에 있었던 시절에 만든 작품으로 1993년에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서 초연됐다. 사회를 움직이던 거대한 군중들의 힘이 어둠 속에서 조용해질 때쯤 젊은이들은 그들의 연이을 찾아 나서고,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운 사랑을 가슴에 품은 이들이 도시의 밤을 밝힌다는 스토리를 담은 이 작품을 서울발레시어터가 다시 무대에 올린다. ‘두 개의 이미지(Two Images)’ 역시 재연되는 것으로, 2014년 제16회 대구국제무용제를 통해 초연된 작품이다. ‘올드 & 영(Old & Young)’을 주제로 현재의 나와 마음속 나를 강석원과 알렉산드로 세이트카리예브가 모던 발레로 풀어낸다.
새로운 시작
“처음부터!” 제임스 전이 바닥에 눕고, 생상스 바이올린 협주곡 3번 2악장이 다시 흘러나온다. 바닥에 누워 시작되는 이 장면은 ‘탄생’을 의미하는 작품의 시작 부분이다. 점차 성장한 그는 옆에 놓인 의자나 책상에 앉기도 서기도 눕기도 하며 다양한 움직임을 이어간다. 단 10분의 시간, 단 3개의 소품밖에 쓰이지 않았지만, 작품 안에 압축된 수많은 감정이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며 건네는 마지막 인사. 탄생에서 삶,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담은 이 작품은 이틀 만에 완성된 안무와 움직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테크닉적인 움직임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제임스 전에게 새로운 도전이 될 작품 ‘미드 시프트’는 그의 오랜 친구 리처드 웰록(스위스 바젤 발레 단장·상임안무가)이 안무를 맡았다. “누군가가 저를 위해 안무를 만들어 준 것이 무려 30년 만입니다. 춤을 추고 싶었고, 누군가 나를 위한 작품을 만들어주길 바랐죠. 아내(김인희)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리처드가 적임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오랜 지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리처드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의 움직임에는 스토리가 담겨있죠. 전문 댄서로서만 활동한 지는 시간이 꽤 흘렀고, 리허설하는 지난 이틀 동안 온몸이 아팠지만, 동시에 매우 행복했습니다.”(제임스 전)
“제임스는 무용수로 시작해서 안무가·예술감독으로 활동하며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왔습니다. 이번 공연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번 작품을 통해 수년간 쌓아 올린 저의 명예와 함께 제임스 전에게 존경을 표하며 이 작품이 미래 무용계에 놀랄만한 순간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리처드 웰록)
20대로 돌아간 기분이라는 제임스 전의 말처럼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시너지는 굉장했다. 놀라운 집중력과 내면에서 나오는 표현력으로 만들어가는 스토리. 두 사람이 무대 안팎에서 쌓아온 연륜의 가치가 유머와 감동이 담긴 무대로 피어났다.
무지갯빛으로 빛날 인생을 꿈꾸며
‘Post 2000 발레정전’을 장식할 마지막 작품 ‘7컬러 오브 라이프’ 역시 제임스 전의 새로운 면모를 기대하게 한다.
“60 인생을 마무리하며 무지개와 같은 새로움을 찾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철학적인 내용보다도 축제 분위기 속에서 무용수와 관객이 함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인간미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는 아픔과 고통, 슬픔이 얽혀 있는 복잡한 인생을 지나고 보면 또 다른 희망이 담긴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된다고 말한다. 남은 인생은 무지개처럼 평화롭고 아름답길 바란다고. 이 작품은 특별히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무용수들과 친구인 성악가 박정원이 함께한다. 젊은 시절이 지나가고 해를 거듭하며 변해가는 모습과 생각들.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새로움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무대에 가득하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심규태(HARU)
‘Post 2000 발레정전’
10월 4·5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도시의 불빛’ ‘미드 시프트’ ‘7컬러 오브 라이프’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