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Wald)에 돋아나는 가능성의 잎새

ARTIST IN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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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0월 15일 9:00 오전

비올리스트 & 발트 앙상블 리더 최경환

많은 이들이 그들의 음악을 좋아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

8월 25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의 무대. 서문을 여는 보케리니의 ‘라 뮤지카 노투르나 델 스트라드 디 마드리드’가 시작되었지만 무대에는 한 명의 첼리스트뿐이었다. 그가 힘차게 현을 퉁기며 현의 팡파르를 울리자 바이올린, 비올라를 든 단원들이 한명씩 들어와 연주를 시작한다. 바이올린의 선율은 1780년대 마드리드의 밤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음악의 발걸음은 상쾌하고 시원한 숲의 저녁으로 향한다. 여섯 개의 악장을 지나 마지막 악장에서 단원들은 차례로 무대 뒤로 돌아갔다. 단 하나의 빈 좌석 없이 가득 찬 공연장 내의 관객들은 이들의 연주와 퍼포먼스에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젊은 아이디어가 돋보인, 품위 있는 퍼포먼스였다.

현악기로 구성된 발트 앙상블은 비올리스트 최경환이 이끌고 있다. 그는 예원학교, 서울예고, 쾰른 국립음대를 졸업했고, 쾰른 필하모닉의 프락티쿰(Praktikum, 인턴십)을 마쳤다. 현재는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실내악 전공으로 석사 과정 중이다. 쾰른 필에서의 시간은 짧았지만,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할 수 있었다.

“2014년 여름에 몇 명의 단원들과 챔버 오케스트라 규모로 연주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휘자 없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공유하는 그 과정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음악이란 ‘마음’과 ‘공유’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어요.”

마음이 음악을 키우는 텃밭이라면, 마음의 공유는 곧 음악을 키우는 농부의 손길과도 같은 것이다. 최경환은 마음 통하는 한국과 독일의 지음들을 모아 작은 앙상블을 만들었다. 2015년 2월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창단 공연을 가졌고, 그해 8월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로 공연을 이어갔다. 이름은 발트(Wald)라고 지었다. 독일어로 숲이라는 뜻이다.

“다양한 나무들이 어우러져 숲을 만들 듯이, 독일과 한국에서 활동 중인 젊은 연주자들의 모임입니다. 창단 공연 때부터 객석에 가득 들어찬 관객들을 보며 가능성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베를린 내 공원에서 가진 버스킹 공연
지나가던 작가가 우연히 촬영하여 발트앙상블에 기부한 것이다

처음에는 세 그루의 나무가 전부였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한 그루씩 늘어나며 ‘숲’이 되었다. 이번 공연에는 정원영·권명혜·이명은·이경은·설민경·신동찬·김지민·조수민(바이올린), 최경환·황택선·최혜인·문서현(비올라), 박유라·박성진·현영필(첼로), 서진은(더블베이스), 박진형(하프시코드)이 함께 했다. 특히, 유럽 메이저 오케스트라에서 경험을 쌓고 있는 이명은(함부르크 필하모닉), 이경은·박유라(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아카데미), 황택선(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아카데미), 설민경(밤베르크 심포니), 최혜인(브루크너 오케스트라)의 합류는 이번 공연에 새로운 활기와 성숙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가장 힘든 점이요? 지휘자 없이 음악을 만들어가면서 지휘자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고요, 음악을 하면서 음악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에요. 모두 한 자리에 있을 때에나 다가오는 깨달음입니다.” 이날 공연에서 유성권(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수석)의 협연으로 비발디의 바순 협주곡 RV474와 프랑세의 바순과 현을 위한 디베르티스망을 선보였다. 발트 앙상블은 ‘아티스트 시리즈’를 통해 유럽에서 활동 중인 음악가와 함께 매 공연을 만든다. 내부적으론 여러 작품들을 통해 구성원의 소통가능성을 가늠하고 연습할 수 있는 기획이며, 외부적으로는 초청음악가와 그의 장기를 발트 앙상블과 함께 선보이는 시간이다. 작년에 선보인 IBK챔버홀 무대에는 조성현(쾰른 필하모닉 수석)이 모차르트 플루트 협주곡 KV314를 함께 했다.

“13세기부터 지어진 쾰른 대성당을 바라보며 걷던 쾰른 시절이 유럽음악의 역사를 체득한 시절이라면, 지금 베를린은 유럽의 도회적 감수성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도시의 모습은 늘 변해요. 걷잡을 수 없죠. 그래서 다양한 변화를 실험 중인 발트 앙상블도 ‘열린 숲’을 지향하고자 노력합니다.”

이날 2부를 장식한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말러 편곡버전)가 끝나고 무대 뒤에서 만난 유성권은 “재미있게 음악하는 단체”라고 소개했다. “그 어떤 레퍼토리를 함께 연주하자고 해도 ‘예스’라 답하는 앙상블입니다. 음악가에게 그 한 마디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는 출발점이 되죠.”

현재 실내악을 수학 중인 최경환은 발트 앙상블의 성장지점을 암스테르담 신포니에타나 뮌헨 챔버 오케스트라로 잡았다. “현재 한국음악가들은 어디를 가도 좋은 평을 듣습니다. 그런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마음을 잘 맞추면 분명 좋은 음악이 나올 겁니다. 실내악에선 나이에 걸 맞는 시도와 실험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보케리니를 연주할 때, 한명씩 등퇴장하는 퍼포먼스를 하려했던 건 우리만의 젊은 아이디어와 역동성을 보여주자는 의지에서 비롯되었어요. 한편,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는 단원들의 흰머리가 늘어갈 때까지 꾸준히 합을 맞추며 그 깊이를 들여다보아야 할 레퍼토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공연은 내년 8월 같은 장소다. 이 숲의 푸르름이 한껏 기대된다.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발트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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