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크 횔러 York Hőller

COMPOSER OF THE MONTH 이달에 주목해야 할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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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0월 15일 9:00 오전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음악

 

©Co broerse

20세기 초중반이 전통에서 달아나고자 했던 아방가르드의 시대였다면, 후반은 다시 전통의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모색의 시대였다. 특히 이 후반에는 여러 스타일이 접목되는 경향이 두드러져 새로운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20세기 중반을 갓 지난 시기에 데뷔한 요르크 횔러(1944~)는 현대음악을 기반으로 고전음악과의 해후를 추구했던 작곡가로, 자신만의 음악적 구성 원리 안에서 과거와 오늘이 한 몸이 되도록 함으로써 독일현대음악의 또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여러 선배 거장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오페라 연출가인 괴츠 프리드리히로부터 “독일 최고의 작곡가 다섯 명 중 한 사람”이라는 호평을 들은 것은 이러한 횔러의 작업이 매우 성공적이었음을 말해준다.

 

위대한 작곡가의 시작

횔러는 1944년 1월 11일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레버쿠젠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세에 첫 피아노 연주회를 가지면서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고, 3년 후인 1963년에 쾰른 음대에 입학하여 알폰스 콘타르스키로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그리고 거장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으로부터 작곡을 배우면서 작곡가의 길로 향했다.

2년 후 다름슈타트 하계 음악 강좌에서 알게 된 피에르 불레즈 역시 21세의 젊은 횔러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횔러는 당시 젊은 작곡 학도들처럼 노령의 거장들이 사용했던 12음 작곡법으로 피아노 2중주곡 ‘디아포니’(Diaphonie: 1965)를 작곡했다. 그리고 아도르노의 강좌를 듣고는, 그의 ‘자유로운 스타일의 포스트-음렬주의’에 동조하여 12음 양식을 표현주의적으로 변형시켜 현악 4중주곡 ‘3개의 단편’(1966)을 완성했다.

하지만 분명 음렬음악의 시대는 저물고 있었고, 횔러도 이를 느끼고 있었다. 그의 첫 관현악곡 ‘토픽’(1967)은 그 고민의 첫 결실이었다. 이 곡은 서독일 방송국(WDR)에서 초연 직후 독일의 주요 악보출판사 중 하나인 쇼트 사가 계약을 제안할 정도로 음악계에 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1970년에만 바르샤바 가을 음악제와 다름슈타트 하계 음악 강좌, 쾰른 등에서 미하일 길렌이 지휘하는 서독일 방송 교향악단에 의해 연주되며 작곡가 횔러를 알렸다.

‘토픽’은 그의 스승인 치머만과, 특히 치머만의 오페라 ‘병사들’(1957~64)의 영향으로 다양한 양식이 혼합되어있는 모습을 보인다. 전체 아홉 부분은 성격·음량·빠르기·악기·형식 등으로 분명하게 대조되며, 현대적인 인상과 함께 바로크적인 단편과 재즈의 뉘앙스도 들린다. 이러한 특징은 음렬음악을 거부하고 청각적인 효과와 인상을 추구한 그가 의도적으로 계산한 것이었다.

이러한 점은 1960년대에 폭풍을 몰고 온 외국인 3인방(리게티·펜데레츠키·윤이상)이 이끄는 음색작곡 혹은 음향음악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횔러는 그 역시 독특한 음색을 구현했으나 중심주제가 드러나도록 명확한 구조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그들과 달랐다. 그 구조는 나선과 같은 기하학적 구조물이나 시각적 작품·문학·철학·과학 등으로부터 얻은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감각적인 표현이나 말하는 듯한 선율 등 선명한 음악적 제스쳐를 사용함으로써 감상자들이 직관적으로 감상하고 심리적으로 반응하는 효과를 꾀했다.

 

전자음악, 앙상블과 조우하다

슈토크하우젠이 횔러를 알게 된 것은 서독일 방송국(WDR)에서 이뤄진 조우 덕이었을 것이다. 횔러가 1970년에 학업을 마치자 슈토크하우젠은 이듬해에 자신이 이끌고 있던 WDR 전자음악 스튜디오로 그를 초청했다. 횔러는 이듬해까지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열의를 가지고 작업하여 그의 유일한 순수전자음인 ‘수평선’(1972)을 완성했다. 그는 이 경험으로 많은 작품에 전자음악을 사용했으며, 기악앙상블과의 성공적인 조화를 만들어냈다. 슈토크하우젠 또한 그의 우상들의 명단에 들어간 것은 물론이다.

4채널 테이프로 구현된 ‘수평선’의 아이디어는 ‘음악은 생동하는 유기체’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횔러는 DNA와 같은 유전자 코드가 존재하고, 최소 단위인 세포가 모여 전체가 구성되는 기본 개념을 만들었다. 그리고 수학적인 계산에 의해 소리의 소재를 변형시키고 연결하여 그 개념을 구현했다. 특히 음량과 템포의 변화에 로그 스케일(1, 2, 3이 아닌 101, 102, 103과 같은 지수 진행)을 적용하여 극적 대비를 크게 했다. 로그 스케일의 변화는 자연에 흔히 존재하므로 전자음악임에도 인공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감지된다.

30대 중반 이후 횔러의 명성 역시 로그 스케일처럼 크게 높아졌다. 1979년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로부터 ‘푀르더 상’을 받았으며, 역시 그 해에 쾰른 시로부터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 상을 받았다. 그의 우상이자 은사의 이름을 딴 이 상은, 그에게 더없는 영광이었을 것이다.

 

예술이라는 유기체

횔러는 1970년대 말 바그너와 융·아도르노에 심취하면서 음악은 모방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대상의 특징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악이 대상을 모방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해온 일이지만 추상적인 개념을 조직화하는 데에 집중했던 그에게는 새로운 세계와 다름없었다. 그는 앙상블과 테이프를 위한 ‘신화’(1980, 1995년 수정)에 이러한 생각을 반영했다. 이 곡은 특정 이야기를 묘사하기보단 음악으로 말하는 이야기라는 의미에 초점을 두고 ‘음시’라고 칭했다. 그에게 음악은 말과 같은 것으로, ‘신화’는 감상자에게 원초적인 언어로서의 경험을 주고자 했다. 그래서 음악적인 선율과 화음보다는 언어적인 제스쳐를 주로 갖는다. 횔러는 이 곡에 대해 ‘바람, 물, 요정 시링크스, 호른 신호, 메아리, 위협적인 동작, 디오니소스의 원무 등’ 여러 이미지를 나열했다고 말했다.

이 곡이 보여주는 어쿠스틱 악기와 전자음악의 조화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불연속적인 음정으로 구성되는 세계와 음정의 제약이 없는 세계의 공존은 요즘도 어색한 결과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횔러는 이미 ‘신화’에서 이 두 세계가 매우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그리고 곡의 구조가 상당히 특이하다. 기본 선율로서 최소구성단위 세포가 존재하며 횔러는 이를 ‘음향형태’(Klang gestalt)라고 불렀다. 이것은 유전자 구성블록의 불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연속의 특징을 갖는 유전자 코드이다. 이 코드는 모든 세포에 충분히 나타날 뿐만 아니라, 그 자체 안에 전체 유기체의 특정한 구조를 포함하는 하나의 ‘예술유기체’이다.

‘신화’에서는 17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선율이 하나의 ‘음향형태’를 구성한다. 이 음향형태는 횔러가 ‘무한 발전’의 원리라고 말했던 다양한 방법으로 발전되고, 이들이 일렬로 이어감으로써 ‘시간형태’(Zeitgestalt)를 구성한다. 이렇게 세포들이 모두 모인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횔러는 이러한 작곡 방법을 ‘형태작곡’(Gestaltkomposition)이라고 불렀다. (음향형태가 음들의 나열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형태작곡을 확대된 음렬기법으로 보기도 한다.) 형태작곡은 중심주제가 변화하는 구성을 가진 ‘토픽’에서도 엿보이며, ‘수평선’에서 언급된 유전자 코드와 세포, 유기체의 개념에서 이미 나타나지만, 현악 4중주와 전자음악을 위한 ‘응창’(1976)에서 이 작곡방법이 본격적으로 적용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응창’에서 음향형태는 42개의 음으로 구성되며 음간격, 길이, 리듬, 빠르기 등을 바꿔가며 증식한다. 이 양식의 핵심은 하나의 유전자 코드가 유기적으로 발전하여 하나의 유기체를 만든다는 데 있다.

합창과 관현악, 전자음악을 위한 ‘검은 반도’(1982)도 대표적인 횔러의 ‘음시’로, 말하는 듯한 리듬과 제스처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의지가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근대 독일의 시인 게오르크 하임의 시 ‘밤’이 연결되어있는 탓도 있다. 전자음악과 저음현은 밤의 어두움을 저음의 소리덩어리로 표현하고, 여성합창이 신비하고 두려운 분위기를 만든다.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는 다른 세계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거장과 마르가리타

1980년대에 그의 활동과 명성은 해외로 뻗어가기 시작했다. 1984년에는 로마의 ‘발라 마시모’의 상주예술가로 1년간 몸담았으며, 1986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과 문학 훈장과 슈발리에(기사) 작위를 받았다. 이 해에 불레즈가 이끄는 파리의 IRCAM에서도 수개월간 작업했다. 이듬해에는 피아노 협주곡 1번(1970)으로 유네스코 국제 작곡가 포럼 상을 받았다. 횔러의 대표적인 앙상블곡 ‘반음향’(1986) 역시 이 시기에 쓰인 작품이다. 현대음악 앙상블인 ‘앙상블 모데른’의 위촉을 받았을 당시, 그는 IRCAM에 있었는데 이 곡에 브람스와 불레즈에 대한 오마주를 부여하여 (‘브람스’는 IRCAM에서 현대음악 작곡가와 작품 정보를 모아놓은 라이브러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들의 작품을 인용하고 발전시켰다.

그의 1980년대 작품으로서 오페라 ‘거장과 마르가리타’(1989)를 빼놓을 수 없다. 원작은 소련의 미하일 불가코프의 철학적 소설로, 괴테의 ‘파우스트’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에서 탐구하고 있는 선과 악의 사유를 잇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역작이다. 이 소설은 소련 치하의 모스크바에 나타난 흑마술사 볼란드와 그 일당이 소동을 벌이는 사건과 예수와 빌라도의 사건, 그리고 이름 없는 ‘거장’(매우 역설적인 설정이다.)이 자신의 소설에 대한 비판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사건을 묘사한다.

거장의 내연녀였던 마르가리타(파우스트의 연인과 같은 이름으로, 순결한 처녀가 아닌 내연남을 만나는 유부녀로 설정한 것 또한 역설적이다)는 거장을 만나기 위해 볼란드와 결탁하여 사탄의 무도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약속대로 거장을 만나 함께 지내게 된다. 예수는 예수와 빌라도를 소재로 한 거장의 소설을 읽고 볼란드에게 의뢰하여(선과 악은 동등한 위치이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영원한 안식으로 이끈다. (‘파우스트’ 1부의 패러디로, 선과 악의 판단 없이 승천한다.)

횔러는 이 소설을 바탕으로 직접 대본을 작성할 정도로 강한 열의를 보였으며, 그의 작곡 기법들을 총망라해 담았다. 전자음악과 그의 현대적인 작곡 기법을 충분히 사용하면서도 2막에서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4악장을 비롯하여 다양한 음악의 인용이 들린다. 또한 재즈 등의 대중음악적인 요소들도 접할 수 있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대중에 대한 관심의 호소라기보다는 극의 내용에 기반한 것이며, 음악적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탁월하게 응용되었다. 이 오페라는 1989년에 파리 오페라단에 의해 초연되었고, 1990년 최고의 음악극에 주어지는 평론가 상과, 1987~90년 사이에 유럽에서 초연된 오페라 중 최고의 작품에게 수여되는 ‘롤프 리버만’ 상을 받았다.

 

라인 강의 축복을 머금다

1990년대에 그의 명성은 최고에 달했다. 횔러는 슈토크하우젠의 후임 예술감독으로 약 20년 만에 쾰른 WDR 전자음악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이 직책은 2000년까지 유지됐다. 그리고 1991년에 베를린 예술원의 회원이 되었으며, 1993년에 베를린의 한스 아이슬러 음대의 작곡 교수로 초빙되었다. 2년 후, 모교인 쾰른 음대로 옮기면서 활동 중심지를 라인 강변으로 완전히 옮겼다.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시카고 심포니가 관현악곡 ‘아우라’(1992)를 미국에서 세계 초연하면서 미국을 방문했던 것도 이 시기였다.

1998년에는 독일연방의회로부터 위촉을 받는 명예로운 일도 있었다. 이듬해에 서독의 수도인 본에서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으로 연방의회를 옮기기 전, 기념행사인 ‘본 콘서트’를 위한 작품이었다. 횔러는 그 해 가을에 작곡을 시작하여 이듬해 초에 관현악곡 ‘출발’(1999)을 완성하고, 6월에 본 베토벤하우스에서 열린 마티네 콘서트에서 처음 선보였다.

원제목인 ‘Aufbruch’는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희망찬 출발을 의미하는 단어로, 베를린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횔러는 본을 떠나는 아쉬움도 잊지 않았다. 음악사에서 중요한 라인 강 지역의 작곡가들, 즉 본에서 태어난 베토벤의 ‘이별 소나타’ 중 느린 악장의 주제와 뒤셀도르프에서 활동했던 슈만의 ‘라인 교향곡’의 시작 부분, 그리고 그의 스승 치머만의 유쾌한 ‘라인의 헌당식 축제 무곡’ 등을 인용했다. 이 중 슈만의 단순한 C장조 펼친 화음 선율을 반음계적으로 변형하여 구성한 23개의 음이 ‘음향형태’가 되며, 이것이 횔러의 ‘형태작곡’으로 발전한다. 횔러의 작품은 기존 클래식 악기와 타악기와 같은 색다른 악기가 만나 새로운 음색을 만들고, 또한 과거의 음악과 새로운 음악이 자신의 음악구조 안에서 하나가 되는 이상을 지향했다.

횔러에게 ‘출발’을 위촉한 당시 독일연방의회 의원 한스-울리히 클로제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는 본과의 이별을 기념하는 ‘본 콘서트’를 위해 작품을 위촉할 작곡가 추천을 두 친구에게 요청했다. 클로제는 여기에 현대적이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임팩트도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이 중 괴츠 프리드리히는 곧바로 횔러를 추천했다. 그리고 “횔러는 독일 최고의 작곡가 다섯 명 중 한 사람”이며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둠 속에서도 변함없이

이러한 명성 횔러의 이면에는 심한 녹내장의 고통이 있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 이후 약 3년간 작곡을 하지 못할 정도로 횔러의 증세는 1980년대 말 이미 심각하게 악화된 상태였다. 다행스럽게도 조수들과 컴퓨터의 도움으로 작곡을 재개할 수 있었다. 횔러는 2006년에는 함부르크 예술원의 회원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신작을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는 더 이상 빛이 없었다. 하루를 그린 관현악과 합창을 위한 ‘영원한 날’(2001) 중 ‘낮’ 부분에서 ‘밤의 노래’라고 불리는 말러의 교향곡 7번을 인용한 이유로 “그에게 낮도 밤과 같기 때문일 것”이라는 도나우에슁엔 음악제 예술감독인 비외른 고트슈타인의 견해는 애석하기까지 하다. ‘영원한 날’은 여러 요소가 하나가 되는 이상을 다차원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가사는 중세 이슬람의 시인인 이븐 샤라프의 ‘아침’과 근대 독일의 시인 게오르크 하임의 ‘낮’, 그리고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이슬라 네그라의 밤’이 순차적으로 등장한다. 지역적으로 동에서 서로 이동하고, 시기적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하며, 시는 하루의 흐름을 따라간다. 이 흐름은 형태작곡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12개의 음을 모두 포함하는 22개의 음이 음향형태를 구성하고, 빠르기와 음높이 등을 변화시켜 소리를 집중시키기도 하고, 확산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텍스트의 내용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

아침에서 시작하여 밤으로 끝나는 ‘영원한 날’의 아치 구조는 이후의 작품에도 영향을 끼쳤다. 2010년 그로마이어 수상작인 대규모 관현악 연작 ‘천체’(2006)도 그러하고, 콩쿠르 우승자를 위한 위촉곡인 피아노 소나타 3번(2011)은 최저음에서 시작하여 유기적으로 발전한 후 급히 소멸한다. 서울시향과 쾰른 귀체르니히 오케스트라의 공동 위촉곡으로 2014년에 서울에서 세계 초연된 ‘여행’(2014)과 이번 달 서울에서 아시아 초연될 비올라 협주곡(2017) 역시 어딘가로부터 온 듯이 시작되어 어디론가 가듯이 홀연히 마치는 모습을 묘사한듯 마치 우주 공간에서 영원한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그는 빛을 잃었지만, 유기체를 우주공간으로 펼치는 넓은 시각을 얻은 것이다.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기고와 해설, 강의 등 여러 활동으로 우리를 위한 음악으로서의 클래식을 나누고 있다. 서울시향의 프리렉쳐를 진행하고 있으며, 화음쳄버오케스트라 자문위원, 현대음악앙상블 ‘소리’ 프로그래머로서 흥미로운 음악회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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