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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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0월 4일 4:51 오후

당신에게 전하는 ‘시대정신(時代精神)’
양인모·김한·일리야 라쉬코프스키 트리오 리사이틀
9월 6일 | 금호아트홀

지금 이 시대의 ‘시대정신(時代精神, Sprit of the age)’은 무엇인가? 국어사전은 시대정신을 “한 시대의 사회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정짓는 정신”이라 정의한다. 예술적 시각에서 본다면 어떤 특정 시대를 풍미한 감정이나 사고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시리즈 네 번째 무대는 바로 이 ‘시대정신’을 주제로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를 중심으로 클라리네티스트 김한과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이 세명 의 젊은 음악가 말하는 이 시대의 음악, 그들이 이야기하고자 한 ‘시대정신’은 무엇이었을까?
이번 공연은 새로운 시대의 음악을 앞서 마주했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다리우스 미요, 벨러 버르토크, 그리고 폴 쇤필드로 채워졌다. 바이올린과 클라리넷, 피아노라는 흔치 않은 조합에 잘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의 연주를 앞두고 양인모가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이크를 들고나온 그는 연주할 곡의 간단한 설명과 함께 당일 프로그램이 변경된 이유에 대해 차분하면서도 위트있게 설명했다. 프로그램북에 담긴 내용이 아닌, 연주자로서 경험하고 탐구한 내용을 자신만의 목소리로 전해준 이 시간은 관객이 공연에 흥미를 가지고 집중할 수 있게 해준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무대는 시작부터 끝까지 뜨거웠다. 스트라빈스키 ‘병사의 이야기 모음곡’가 긴장감 가득한 스토리였다면, 미요의 모음곡에서는 민속적 색채감이 유희적으로 드러나며 풍성한 이야기를 전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시게티의 요청으로 버르토크가 작곡한 ‘클라리넷과 바이올린, 피아노를 위한 콘트라스츠’는 단순한 짜임새를 지니면서도 화려한 기교를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을 원했던 연주자의 바람을 훌륭하게 담고 있었다. 양인모와 김한은 작곡가의 의도에 따라 다르게 조율된 두 악기를 번갈아 연주하며 보는 재미를 더했다. 2부를 채운 쇤필드의 작품에서도 연주자들의 화려한 기교와 재치가 돋보였다.
세 연주자가 전한 낯선 긴장감은 결코 불편하지 않았다. 굉장히 촘촘하고도 유연하게 짜인 연주는 오히려 기분 좋은 긴장감과 흥분상태를 유지하며 공연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상주음악가로서 공연을 이끌어가는 양인모는 물론이고, 솔리스트와 앙상블 연주자로서의 실력을 모두 갖춘 김한, 그리고 무대를 안정감 있게 이끌어간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신선한 조합은 성공적이었다. 이들의 ‘시대정신’은 ‘도전’에 있었다. 이미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에 또 다른 색깔을 입히고, 더 큰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도전이야말로 그들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이미라

 

자연이 만든 음악이라는 조각
양화진음악회
9월 7일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야외무대

서늘해진 가을바람 속으로 해가 질 무렵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야외무대에 하나 둘씩 청중이 모여 들었다.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가 주최하는 스물두 번째 양화진음악회는 뮌헨 국립음대 이미경 교수의 바이올린 선율과 뉴욕필이 선택한 연주자 까리 끄리꾸의 화려한 클라리넷, 지성과 감성의 피아니스트 김대진의 연주로 펼쳐졌다.
야외무대는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연주하고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반면 음악에만 집중하기에는 힘들다는 단점도 갖고 있다. 이날 무대는 야외무대가 주는 자연스러운 감동의 절정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첫 곡이었던 모차르트의 순수한 세계는 청초한 하늘을 배경으로 맑게 빛났고,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 32번 2악장은 죽음을 초월한 내면의 깊은 심오함이 피아노 선율 속으로 스며들었다. 야외무대에 어울리는 분위기의 유대전통민요 결혼식 왈츠와 터키전통민요 즉흥곡, 알 숨바티의 ‘롱가’는 다이내믹한 리듬과 전통적인 민속풍의 선율이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자아냈다.
2010년 봄 뉴욕 필하모닉과 카네기홀에 데뷔한 후 뉴욕 필과의 협연으로 독창성과 탁월한 해석력에서 호평받아 온 클라리네티스트 까리 끄리꾸가 연주한 모차르트 클라리넷 퀸텟 K581의 청아한 아름다움, 이어진 드보르자크의 따뜻한 감성이 돋보인 바이올리니스트 이미경의 ‘유모레스크’,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에 깃든 피아니스트 김대진의 섬세한 피아니즘까지 이날의 음악은 자연과 사람이 하나된 아름다운 어울림을 선사했다. 율해의 ‘후르무리’, 판세라의 ‘환희의 춤’, 벨로소의 ‘카스트로의 시장’ 무대 역시 다채로운 색깔의 음악들이 조화를 이루며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주와 자연, 기도, 음악이 함께 했던 이날 무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멀리서 들리는 기차 소리 같은 일상의 소리였다. 그 일상의 소리가 음악과 어우러지며 내는 조화는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자연이 배경이 된 음악이 객석 사이로 흘러갈 때 음악은 어느덧 사람들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음악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삶 속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예술이 세상을 치유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함께. 국지연

 

우리,
비틀거리며 아파하는 사람들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9월 4~16일 | 남산예술센터

최근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 장강명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하 ‘그믐’)이 동명의 연극으로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올랐다. 장강명의 팬을 자처한 작가 정진새가 각색을 맡았고, 연출가 강량원이 이끄는 극단 동이 소설을 눈앞에 그려냈다.
남자는 고교 시절 동급생 영훈을 살인해 수감된다. 남자의 고교 동창생인 여자는 자신이 일하는 출판사에 온 소설 원고 ‘우주 알 이야기’가 남자가 쓴 것임을 알고, 그를 찾아 15년 만에 재회한다. 남자는 ‘우주 알 이야기’가 자신의 실제 경험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우주 알’을 삼킨 뒤부터는 과거-현재-미래의 일방향적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 아닌, 모든 시간이 뒤엉킨 삶을 살고 있고, 그래서 모든 미래를 알고 있다고 말한다.
“A와 B, 두 가지 노선이 있어. A는 슬프지만 아름답게 오늘 헤어지는 거야. B는 내일이나 모레쯤 헤어지는 거야. 대신 아주 비참하게 헤어지게 돼. 어떻게 할래?”
남자는 여자에게 묻는다. 남자는 여자가 A를 선택하길 바랐지만, 여자는 B를 선택한다. 그 순간 여자를 연기하는 배우가 바뀐다. 노선 A의 여자는 행복한 기억을 안고 헤어졌겠지만, 노선 B의 여자는 비극을 맞게 된다.
‘그믐’의 무대는 크기와 기울기가 다른 두 개의 원, 큰 달과 작은 달이다. 먼 지구에서 바라본 달의 표면이 그려진 무대는 무대미술가 임일진의 말처럼 ‘사실적이지만 사실이 아닌’ 우리의 인지와 기억을 의미한다. 실제 달의 생김새와 크기는 우리가 보는 것과 많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거짓을 본다고 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두 개의 달을 넘나들며 이야기가 파편적으로 제시되는데, 그것은 시간이나 사건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두 개의 달은 서로 다른 시공간을 구성한다. 한쪽에서는 15년 전 고등학생 시절의 교실이, 다른 한 쪽에서는 합정동을 지나는 현재의 버스 안이 펼쳐진다. 해체된 시공간 속에서 진행됨에도 극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극단 동의 ‘신체행동연기’의 힘이다. 배우들은 끊임없이 비틀거리면서 기울어진 달 위를 맴돌고, 저마다의 몸짓을 통해 각 캐릭터의 상처와 패턴을 표현한다. 과거의 행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남자의 황폐함이, 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진심이,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이, 이들의 뒤틀린 움직임을 통해 전해진다.
홍상수의 영화 ‘자유의 언덕’(2014)이 떠오른다. 날짜가 적혀 있지 않은 남자의 편지들을 받았지만 그것들이 흩어지며 순서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여자의 이야기. 그러나 시간이라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 사실은 큰 의미가 없음을, 아니 의미가 없다기보다는 그것을 초월하여 대상을 바라볼 때 새로운 차원의 이해와 공감이 생긴다는 것을 떠올린다. 이정은

 

누가 천사고 누가 인간인가
뮤지컬 ‘천사에 관하여: 타락천사 편’
9월 4일~11월 18일 | DCF대명문화공장 2관

천사를 동경한 천재 화가의 작품에는 다양한 형상의 천사들이 등장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많은 화가 중 레오나르도 다빈치여야만 했던 이유를 묻는다면, 그만큼 천사를 사랑한 인간은 없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뮤지컬 ‘천사에 관하여: 타락천사 편’은 2016년 초연된 작품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조수 자코모, 타락천사라 불리는 발렌티노와 허술한 천사 루카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담았다. 두 명의 배우가 각 인간과 천사 역할을 하나씩 맡아 이끌어가는 2인극이다.
인간을 사랑해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천사 발렌티노가 그가 사랑한 인간 자코모와 닮아있었다는 설정이 눈길을 끌었다. 다빈치가 그림을 완성한 데는 인간을 사랑한 타락천사 발렌티노의 역할이 컸다는 점과 신으로부터 눈물을 빼앗긴 자코모와 눈이 점점 보이지 않는 발렌티노 간의 설정 역시 흥미로웠다. 다만 다빈치와 루카 사이에도 이처럼 무언가의 연결성이 있었다면 더욱 촘촘한 줄거리가 됐으리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빈치와 루카 역의 장지후는 이전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맡았던 집시들의 대장 클로팽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는데, 풍부한 성량과 큰 몸짓은 중극장에서 유독 돋보였다. 자코모와 발렌티노 역을 맡은 홍승안의 경우 자코모로서의 연기력은 돋보였지만, 타락천사의 어두운 면을 좀 더 끌어내야만 2인극에서 상대 배우와 대등한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록뮤지컬이란 장르가 생소하진 않을까 했던 우려와는 달리 노래 구성은 탄탄했다. 대다수의 서사를 대사 대신 넘버를 통해 풀어냈으며, 4인조 라이브 록밴드의 연주는 기대했던 것보다 풍성해 극장을 가득 메웠다. 넘버 사이 짧은 대사들은 조금 가볍다는 느낌을 주었지만, 중·소극장 뮤지컬에서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란 점을 고려하면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이 주를 이루는 한국 뮤지컬 시장에 찾아온 정체기. 이를 극복할 방안 중 하나가 창작 뮤지컬의 활성화다. 연출적인 측면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아쉬웠지만, 독특한 소재와 풍성한 넘버를 다룬 작품에서 한국 창작 뮤지컬의 미래를 엿보았다. 권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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