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뮤지컬 배우 전미도

진지한 순간에 피어나는 미소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1월 5일 9:00 오전

THE FACE

주어진 역할마다 다른 얼굴로 변신하는 그녀의 새로운 도전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오슬로 평화 협정을 이끈 것은 노르웨이의 한 부부, 티에유 로드 라르센과 모나 율이었다. 총 7번의 비밀 회담 이후 8번째 협상에서야 체결된 오슬로 협정의 과정은 험난했고, 협상 테이블에 앉은 당사자들은 쉽게 분노했다. 그때마다 상황에 동요하지 않고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거쳐 “자, 이렇게 하자!”라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모나 율은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국립극단이 2018년 첫 신작으로 선보이는 연극 ‘오슬로’에서 배우 전미도는 외교관인 모나 율을 연기한다. 자신을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던 그녀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얼마의 시간을 거쳐 꼭꼭 씹어져 돌아왔다. 연극 ‘비’ ‘메피스토’ ‘14인 체홉’ ‘갈매기’ 뿐 아니라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스위니 토드’ ‘어쩌면 해피엔딩’과 같은 작품에서 매번 변신하는 전미도를 보면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감성적인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매 작품 이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까 멈춰 서서 고민하고, 작품 개발 과정에서부터 함께 참여해 1차 창작자들의 의도를 파악하며,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작품을 연기하고 싶다는 그녀는 이성과 감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배우였다.

 

가능성 있지 않나요

전미도가 연극 ‘오슬로’에 참여한 것은 역시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티에유는 마지막까지 “가능성 있지 않나요?”라고 말하며 평화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데 반해, 모나는 이 험난한 길을 계속 가야만 한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심리 변화를 겪는다. 실제 오슬로 협정 이후 협상에 참여했던 이스라엘의 이착 라빈은 반대파에 의해 암살되었고,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흑백 논리로 양분하여 설명할 수 없는 극에 참여하는 것이 좋아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구하고자 한 것이 모나가 오슬로 협정을 추진한 이유인데, 이 협정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흔들리게 돼요. 무엇이 맞다고 딱 잘라 말할 수가 없는 거죠. 연극 ‘비’도 그랬어요. 작품 전까진 안락사는 무조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지만, 작품을 하면서부터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게 되었고, 이게 무조건 반대할 일인가 그들의 입장에서 깊이 고민하게 됐어요.”

어려우면서도 무거운 소재를 다룬 ‘오슬로’이지만, 블랙 코미디를 적절하게 녹여내 호평받았다. 그러나 전미도는 사람들이 이 작품을 좋아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점이 관객의 공감을 얻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갈등을 빚고 있는 양자가 화해하고, 또 싸우고, 협의하고 하는 과정이 꼭 나라 간이 아니라 사람끼리도 겪는 일이잖아요. 남북 관계의 특수성도 한몫 했다고 봐요. 남북한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민족이라 ‘우리는 같은 땅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으로 맺어져 있다’라는 대사가 극 중에서 나와요. ‘당신들은 서로에 대해 맞서 싸우고 서로를 죽여 왔다, 지난 50년 동안’이란 말도 하죠. 너무 비슷하지 않나요.”

국립극단 ‘오슬로’

긴 독백은 노래와 같다

연극 ‘오슬로’에 참여한 전미도에게 많은 이들은 오랜만의 연극 무대 복귀라는 말을 건넸다. 연극과 뮤지컬에서 모두 활발하게 활동해 온 만큼 배우로서 느끼는 두 장르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한참을 고민했다.

“어려워요. 대본에 접근하거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연극에 긴 독백이 있다면, 뮤지컬에서는 그 부분을 노래로 풀어가는 거죠. 안톤 체홉의 단편들을 엮은 ‘14인 체홉’을 공연한 적이 있어요. 그 중 ‘백조의 노래’라는 단편에서 정말 긴 독백이 있었는데, 박정자 선생님이 마치 한 곡의 노래를 하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리듬과 템포를 바꿔가며 대사를 읽으셨어요. 연극과 뮤지컬은 큰 차이가 없구나 하고 확신하게 됐죠. 그 이후로 저도 연극에서는 박자를 타며 대사를 하고, 뮤지컬에서는 말하듯이 노래하려고 해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2013년 연극 ‘14인 체홉’이 끝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극단 맨씨어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작품 개발 과정에서부터 참여했다.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좋아요. 극단 맨씨어터와는 입단 전부터 ‘갈매기’나 ‘벚꽃동산’과 같은 작품을 함께했는데, 너무 흥미로웠어요. ‘14인 체홉’까지 함께하게 되면서 입단을 결심한 거죠. 이후 ‘흑흑흑 희희희’와 같은 창작극을 선보이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어요. 작품 개발 과정에서부터 참여하는 건 1차 창작자의 의도를 알아야 배우로서 제대로 연기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에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경우는 워크숍 공연을 통해 관객의 1차 반응을 파악했어요. 이후 여러 번의 수정 과정을 거쳐서 공연을 실제 무대에 올렸죠.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관객을 상대로 실험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브로드웨이도 오프브로드웨이에서부터 많은 작품을 시작하잖아요. 저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많은 이들이 이러한 작업이 필요하다는 걸 점점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함께 호흡을 맞추고 싶은 배우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최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함안댁 역할로 활약한 배우 이정은을 꼽았다.

“이전 연극 무대에서부터 정은 선배가 유명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같이 무대에 선 적은 없지만, 꼭 같이 연기해보고 싶어요. 왜냐고요? 제가 닮고 싶은 결을 모두 갖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진지한 연기를 통해서 웃음까지 선사할 수 있는 배우 말이에요.”

글 권하영 기자 사진 국립극단

 

연극 ‘오슬로’

10월 12일~11월 4일 명동예술극장

티에유 로드 라르센(손상규)/모나 율(전미도)/아흐메드 쿠리에(김정호) 외

Leave a reply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