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 AND LIFE
힘을 뺀 가벼운 발걸음으로 묵묵히 나아가는 데뷔 22년 차 재즈 인생
클 웅(雄), 뫼 산(山). 17세에 절에 들어가 2년 동안 지내던 때에 받은 법명이었다.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산처럼, 힘들고 지친 이들을 품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받은 이름이란다. ‘노라’나 ‘다이애나’ 같은 부드러운 영어 이름도 아닌, 이런 묵직한 의미의 이름을 자신의 예명으로 삼은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 데뷔 후 22년간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웅산은, 이제 자신의 음악과 삶에 ‘웅산’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증명해내고 있다.
웅산의 새 앨범 제목은 ‘I’m Alright’, 한국어로 옮기자면 ‘난 괜찮아’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사랑에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내용의 노래들과 더불어, 지금 이렇게 음악하며 지내는 웅산 자신의 모습 역시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편안하게 들려오는 스무드 재즈의 흐름 안에는 열정과 고혹과 사색이 고루 담겼다. 10월의 어느 가을날, 웅산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
예전부터 꾸준히 자신의 음악을 써 왔고, 이번 9집의 11곡 중 3곡을 직접 작사·작곡했다. 두 번째 앨범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고, 자작곡 쓰는 것을 늘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그전까지 열심히 노래하긴 했지만, 내가 하는 재즈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해 온 음악인지 모른 채 앵무새처럼 부르기만 했던 것 같았다.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필요한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재즈의 역사를 더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더니 ‘블루스’를 발견하게 됐다. 본격적으로 블루스를 공부하면서 곡을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든 앨범이 2005년 발매한 2집 ‘더 블루스’다. 내 안의 음악을 토해내는 작업을 그때부터 했다. 곡을 쓸 땐 순간적인 영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작사와 작곡도 거의 동시에 한다. 만약에 곡을 쓰다가 어느 순간 막히면, 그런 곡은 대부분 거기서 끝이다. 노래가 스르륵 쓰이면 다음 앨범에 실리고.
한국 재즈 시장은 일본 등 해외에 비해 넓은 편이 아니고, 한국에서 재즈라는 장르가 다소 통속적이고도 제한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런 현실이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았나. 물론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하지만 힘든 이야기를 굳이 자주 하진 않는다. 우리나라 재즈 1세대 선배들의 우여곡절을 종종 들어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힘들다’고 말하지 않더라. 그냥 웃으면서 ‘그땐 그랬지’하고 이야기할 뿐이다. 나도 후배들에게 힘든 하소연보다는 힘을 북돋아 주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어둡고 힘든 부분은 혼자 음악을 만들 때 ‘한 스푼’ 넣는 걸로 족하다. 재즈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재즈클럽의 페이는 몇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보다는 재즈를 하려는 사람이 늘기도 했고, 대중음악·힙합·국악 등 타 장르에서 재즈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도 감사하다. 단지 안타까운 건, 한국의 재즈 뮤지션들이 그 실력에 비해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피아니스트 송영주와 조윤성, 베이시스트 황호규 등은 그야말로 ‘월드클래스’ 급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데뷔 22년 차 베테랑 뮤지션이 됐다. 그동안 특별한 공백 없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데. 그게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새로운 뮤지션과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가면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자 후배들에게 늘 조언하는 것은 ‘멈추지 말라’는 것이다. 천천히 가는 건 괜찮은데 멈추지는 말라고 한다. 앞으로 적어도 60세까지는 활동하고 싶은데, 예전보다 점점 걸음이 느려지더라도 끊임없이 궁금증을 가지면서 재즈를 탐구하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재즈는 나의 ‘수행(修行)’이다. 수행하는 사람은 게으르게 살면 안 된다. 한순간도 나태하면 나아갈 수 없다. 누가 보지 않아도 스스로는 계속해서 구도(求道)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수행자의 길이다. 음악을 나의 수행으로 삼았으니, 적어도 게으르게는 하지 말아야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뮤지션 웅산으로 사는 것이 작은 목표이자, 어쩌면 큰 목표다. 늘 재즈가 궁금해서 모험가의 마음으로 해오다 보니 어느새 20여 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아직 이렇게 흥분해서 재즈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지금부터 몇십 년은 너끈히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진(精進)’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과거 어느 인터뷰에서는 앞으로 30년 더 음악을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30년 뒤 ‘웅산’은 어떤 뮤지션이자 어떤 사람으로 남아있을까? 앞서 말한 것처럼 절대 멈추지 않는, 게으르지 않은 뮤지션이 되는 것이 목표다. 유명세와는 상관없이, 몇십 년 후에도 계속 ‘살아있는 뮤지션’으로 살다가 가고 싶다. 눈화장이 짙어서 그렇지, 사실은 속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이 음악으로 전달되길 바란다.(웃음)
글 이정은 기자 사진 유니버설뮤직
웅산 정규 9집 앨범 발매 콘서트
12월 9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웅산(보컬)/찰리정(기타)/민경인(피아노)/황호규(베이스)/임주찬(드럼) 외
웅산 9집 ‘I’m Alright’
웅산(보컬)/존 비즐리(프로듀서·키보드)/벤자민 셰퍼드(베이스)/폴 잭슨 주니어(기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