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IS NOW
따뜻한 음색으로 들려줄 최고의 사운드. 로맨틱 호른과 함께 하는 앙상블의 향연
호른 음색의 매력을 처음 느꼈던 건 어느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을 듣고서였다. 든든한 화음을 뒷받침해 주는 정도의 악기로 생각했던 호른이 오케스트라 무대의 정적을 깨고 그 따뜻한 선율을 드러냈을 때의 감동은 무척 깊었다. 흐르니스트 김홍박의 이번 무대는 그래서 반갑다.
호르니스트 김홍박의 리사이틀은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를 거치며 유럽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지금은 한양대에서 교육자로서 새로운 도전을 이가고 있는 그의 음악 여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여서 기대를 모은다.
2014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객원수석으로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연주투어에 참여하면서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김홍박은 2015년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호른 수석으로 선임되었고 2015년 월간 ‘객석’이 선정한 2015년 차세대 젊은 예술가 12인, 포브스코리아가 선정한 2030 파워리더 30인 선정, 제3회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신인예술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유럽에 있을 때는 음악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연주와 교육활동으로 바쁜 날들을 보내다 보니 그런 여유는 갖기 힘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며 오히려 배우는 것도 많고 음악에서의 기다림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기다림’. 그가 말하는 기다림은 어느 분야에서나 필수적으로 필요한 자양분이겠지만 클래식 음악, 특히 호른이라는 악기를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 속에서는 더 중요한 덕목이다.
“요즘은 훌륭한 금관악기 연주자들이 많아졌고 학생들의 연주 수준도 높아졌지만 아직까지는 테크닉적인 것에 중점을 두고 연주하며 가르치는 경향이 큰 것 같습니다. 모든 악기는 기본적인 소리를 만드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지요. 특히 호른은 연주자를 믿고 기다려주는 시간이 더 길게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는 특히 전체 음악에 어울리는 호른의 음색을 생각하고 다듬고 만들어가는 과정의 기쁨을 느끼게 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 수업을 시작했을 때보다 궁금증이 더 많아진 학생들을 보며 보람과 고마움을 느낀다는 그는 호른이라는 악기의 본질적인 질문부터 다른 악기에 대한 이해까지 넓고 깊게 음악 전체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따뜻한 음색이 함께 하는 로맨틱 호른
김홍박의 이번 무대는 2년 전 프랑스 레퍼토리에 중점을 두고 구성했던 ‘프렌치 호른’에 이어 좀더 낭만적이고 따뜻한 레퍼토리로 선곡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히 다가가는 시간으로 구성했다. 김홍박은 독일·이탈리아·프랑스·러시아 작곡가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에 흐르던 낭만시대의 정취를 호른의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으로 그려낼 예정이다. 특히 일본을 넘어 전세계 관악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춰서 피아니스트 나오코 엔도와 함께 슈만의 로망스, 글리에르의 11개의 소품 등을 연주한다.
다양한 편성의 작품 안에서 그의 절친한 벗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덕우·김범구, 비올리스트 이신규, 첼리스트 심준호가 김홍박과 함께 시니갈리아의 ‘호른과 현악 4중주를 위한 로망스’, 소프라노 이명주와 베르리오즈의 연가곡 ‘브르타뉴의 젊은 목동’ 등을 연주한다.
“평소 많이 좋아하는 곡들이고 호른의 테크닉과 감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작품들이어서 즐겁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음악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서는 거라 의미가 깊고요. 피아니스트 나오코 엔도는 일본 관악·타악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함께 했던 연주자인데 언젠가는 꼭 무대에 함께 서고 싶어서 특별히 부탁을 했습니다.”
서울대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수학한 그는 동아콩쿠르를 비롯해 유수의 국내 콩쿠르를 석권했고 필립 파카스 어워드에서 2위, 이탈리아 스베비아 페데리코 2세 호른 콩쿠르 3위, 일본 관악·타악 콩쿠르 호른 부문 1위와 전 부문 대상 등을 수상하며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았다. 실내악 분야에서 남다른 애정으로 빌라 무지카, 구스타프 말러 아카데미 등에 장학생으로 발탁되어 거장들과 유럽 각지에서 연주했다. 또한 서울시향 호른 부수석을 비롯해 말레이사 필하모닉,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슬로 필하모닉, 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오케스트 객원수석, 스웨덴 왕립오페라단 제2수석을 역임하고 현재 오슬로 필하모닉 호른수석으로 활동 중이다.
“요즘은 음악의 여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결혼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면서 음악이 더 넓게 보이기 시작했죠.”
그렇게 인생의 폭이 넓어지면서 김홍박의 음악 역시 새로운 지평을 넓혀 나갈 수 있었다. 이제 그는 흠 하나 없는 완벽한 연주를 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스며들듯이 음악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 연주한다면 누군가의 마음에 소중한 의미를 남길 거라는 믿음도 갖고 있다. 그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을 물으니 바로 답변이 돌아 왔다.
“세 살짜리 아들이 새로운 단어를 얘기했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웃음).”
어른이 되어 익숙하고 낡아진 단어가 큰 기쁨으로 다가오는 삶의 마법이란 얼마나 근사한 것인가. 김홍박은 가끔씩 하나씩 말을 익히며 세상을 배워가는 아들의 귓가에 따뜻한 호른 선율을 들려주곤 한다. 좋은 음악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우리나라 금관의 자존심 김홍박이 지금 우리에게 ‘행복’이라는 음악의 마법을 걸어오고 있다.
글 국지연 기자
김홍박 호른 리사이틀
11월 3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슈만 세 개의 로망스, Op.94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