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_글 이정은 기자 사진 소니뮤직·크레디아
요요 마를 설명하는 두 개의 커다란 축, ‘바흐’와 ‘실크로드’를 이야기하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앞에서 연주하던 7세 신동 첼리스트는 어느새 환갑을 넘었다. 세월은 흘러도 트레이드마크인 서글서글하고 선한 인상은 그대로다.
요요 마는 하나의 음악적 아이콘이 됐다. 천재 소리를 들으며 성장한 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자신의 세계에 고독하게 몰두하는 ‘자폐적 예술가’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소통을 추구하는 코스모폴리탄 예술가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인 부모 사이에서 프랑스 파리에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그이기에, ‘민족성’과 ‘내셔널리티’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을 선보이는 것은 더없이 자연스러운 행보다.
1998년 요요 마는 ‘실크로드’를 설립해, 다양한 지역의 문화와 음악을 연결해 새로운 예술적 언어를 창조하고자 했다. 소위 ‘월드뮤직’ ‘제3세계음악’이라는 단어로 소비되는 차원을 넘어, 음악을 통해 서로의 다양성을 이해함과 동시에 지역과 민족을 초월한 공감을 추구하는 것이 실크로드 앙상블의 활동 목표다. 올해 창단 20년을 맞은 이들은 여전히 새로운 씨줄과 날줄을 엮어나가고 있다.
지난 10월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요요 마와 그가 이끄는 실크로드 앙상블의 공연이 열렸다. 한국·중국·일본·베트남 등의 전통 악기와 바이올린·비올라·첼로 등 서양 악기가 만나 독특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다양한 문화권의 전통음악과 창작곡을 선보인 가운데,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중 ‘사라반드’를 대만 민요와 결합한 무대가 특별히 인상에 남았다. 요요 마가 연주하는 바흐 선율 위에 대만 민요가 자연스럽게 흐르는 작품은 요요 마와 실크로드 앙상블의 음악적 지향점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공연 이튿날 오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요요 마와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제한된 시간 탓에 질문을 몇 개 소화하지 못했지만, 그는 매 질문에 신중하고 진심 어린 답변을 전했다. 지난여름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음반을 그의 인생 3번째로 발매해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요 마는 인터뷰를 마치고 곧바로 대만으로 출발하기 위해 공항으로 떠났다.
실크로드 앙상블이 내게 준 선물
제 자신이 좀 더 인간다워지는 것 같아요(I feel more ‘human’). 실크로드 멤버들 각각의 음악적 표현과 인토네이션을 습득하면서, 더욱 인간적인 방법으로 음악을 표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그것은 그저 ‘다를’ 뿐이지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을 연결해서 더 나은 해결책을 모색하고 싶습니다. 그런 해결책은 지적재산권이나 특허가 있는 게 아니니,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이러한 생각 역시 실크로드 앙상블이 내게 줬다고 생각합니다. 실크로드가 아니었다면 감히 이런 다양한 시도를 할 용기조차 없었을 겁니다. 신뢰와 협력을 기반으로 해결책을 찾아나가고, 서로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용기와 지혜. 그것이 실크로드를 통해 제가 얻은 도움과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한없이 인간적인 바흐
바흐의 음악에는 뭔가 특별함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바흐를 많이 연주했는데, 몸과 마음이 힘든 사람들로부터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듣고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왜 특별한지 모든 사람이 꼭 알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마치 한국의 인삼처럼, 처음에 발견한 사람은 그것이 왜 좋은지 몰랐겠지만, 먹어보니 좋았던 것처럼 말이죠. 다들 타고난 감각으로 느끼게 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그 음식의 재료나 조리법을 모르더라도 그것이 맛있다는 건 먹자마자 알잖아요. 바흐 음악도 그런 것 같아요. 물론 바흐가 훌륭한 작곡가라는 건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죠. 단 4줄짜리 악기로 어떻게 그런 풍성한 음악을 만드는지 놀라웠으니까요. 거기서 더 나아가, 실크로드 앙상블과 20년을 보내면서 바흐의 음악이 얼마나 ‘소통’을 지향하는지 깨닫게 됐고, 더욱 다양하고 깊게 이해하게 됐습니다. 바흐는 음악을 가지고 공간과 사람을 채울 뿐 아니라, 침묵마저도 너무나 잘 사용합니다. 음악이 흐르다가 어느 순간 쉼표가 나올 때, 거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습니다. 바흐 음악에 대한 제 견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그 이해를 바탕으로 제 음악성이 더욱 깊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몇 달 전 미국 버클리에서 바흐를 연주할 때, 생전 처음 겪은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관객 7천 명 앞에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연주하는 무대였죠. 모음곡 5번이 매우 작은 소리로 끝나는데, 곡이 끝나고 나서 1분이 지나도록 7천 명 관객 그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는 겁니다! 저조차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됐습니다. 그 엄청난 적막을 깰 수 없었고, 깨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바로 다음 곡을 연주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바흐를 통해 한마음이 됐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죠. 이렇듯 음악은 모든 걸 초월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최근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3번째로 녹음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마지막 녹음이길 바라고 있습니다.(웃음) 이번 시즌부터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 투어를 시작해 전 세계를 돌며 연주할 예정이고, 한국에서도 공연할 겁니다.
젊은 연주자에게 건네는 조언
우선 주변을 둘러보길 바랍니다. 내 집 주변, 골목, 이웃, 출근하는 길. 다양한 상황을 둘러보면서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세요. 젊은이든, 노인이든, 실업이든, 차별이든 문제를 찾게 되면 음악이 그것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답을 구해보는 겁니다. 문제의 답을 당장 찾을 수 없더라도, 그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궁금해하고 그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가치를 발견하게 되죠. 저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그에 비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죠. 그게 제가 할 수 있던 일이었습니다. 각 지역에 어떤 음악이 있는지, 그들은 왜 그 음악을 좋아하는지 질문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제게 음악들 들려줬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찾은 것을 또 다른 지역에 가서 전파했고요. 중요한 것은, 커리어를 쌓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스스로 찾아야 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필요를 이해하고 그것에 반응해나가야 합니다.
사회를 위한 음악의 역할
뉴스를 통해 접하는 세상은 굉장히 분열적이고, 파괴적이고, 불행해 보입니다. 지구 온난화와 인구 문제, 전쟁과 난민 등 정치·사회·환경·경제적인 문제들이 산재해 있죠. 하지만 막상 여러 지역을 직접 돌아다니면, 많은 사람들이 친절하고 서로 우호적이며 따뜻하다는 걸 느낍니다. 각 지역에 맞는 문제 해결책을 찾아 대응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직면한 문제와 그에 따른 필요를 이해하게 되면, 거기서 ‘공감’이 발생한다. 공감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바로 사회를 구성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문화가 바로 그러한 공감을 일으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키고 문화예술을 꽃피운 이유는, 그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생존 확률이 높아지고 안정적인 사회를 만들게 됩니다. 과거 저는 경제와 정치와 문화가 나란히 앉아서 동등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약간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둘러앉아 정치와 경제와 사회문제를 논하는 바로 그 ‘테이블’이 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책상에 모두가 모여앉아 문화를 통해 공감과 신뢰를 이끌어내도록 해야 합니다. 문화와 음악이 이 힘든 시대에 도움과 치유를 선사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