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INTERVIEW
2019년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로 마주할 그의 음악 세계
‘작품의 재발견’ ‘새로운 해석’.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연주에는 유난히 새롭고 신선하다는 평이 많다. 그는 말한다. “새롭다는 것은 오래된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처음 그대로의 것, 결국 본질에 다가가는 것 말이다”라고. 테츨라프의 말처럼 어쩌면 ‘새롭다’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것에 깊숙이 다가갔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크리스티안 테츨라프(1966~)가 2019년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됐다. 독일 함부르크 태생의 테츨라프는 여섯 살에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시작했고, 열네 살 때 데뷔무대를 가졌다. 그는 별다른 콩쿠르 입상 경력 없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왔다. 스물두 살에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가 지휘하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쇤베르크 바이올린을 협연한 것 역시 이를 증명한다. 바흐·베토벤·브람스·리게티·쇼스타코비치·외르크 비트만 등에 이르는 광범위한 레퍼토리로 매년 100회 이상의 공연을 소화하는 그는 독주와 실내악, 협연, 음반 등 모든 음악적 활동에서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2010년 LG아트센터에서의 첫 독주회 이후, 테츨라프 현악 4중주단과 함께 내한(2014년)하는 등 국내 무대에서도 다양한 이미지를 선보여 왔다. 그리고 2011년, 브람스 협주곡으로 시작된 서울시향과의 인연은 오는 1월과 9월, 독주와 실내악, 협연으로 채워질 여섯 번의 무대로 이어진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막 브람스 협연을 마치고,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독일로 돌아온 테츨라프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약속된 시간, 첫 번째 통화 연결음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받은 그는 먼저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네 왔다. 목소리로 처음 마주한 테츨라프, 그는 음악에 대한 경외심과 확고한 철학을 지닌 겸손하고 단단한 사람이었다.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로 만나게 되어 기쁘다. 나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기대가 크다. 서울시향과는 이미 함께 연주한 적이 있는데, 아주 훌륭한 오케스트라로 기억한다. 전혀 다른 성격의 작품인 시마노프스키와 베토벤 협주곡을 선보이는 것도 설레지만, 서울시향 단원들과 음악적으로 서로 더 알아갈 기회인 실내악 시리즈에 대한 기대도 크다. 배려와 열정이 넘쳤던 한국 관객 또한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모든 좋은 기억들이 모여 이번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 활동에 좋은 기대를 갖게 한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뉴욕 카네기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등에서도 상주 음악가로 활동했다. 이전의 무대와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로서의 활동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모든 무대의 콘셉트가 다르다. 카네기홀에서는 여섯 번의 공연 모두 다른 연주자, 오케스트라와 연주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서의 활동이 이번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와 형식상으로는 가장 비슷할 것 같다. 오케스트라 협연과 실내악, 독주회를 선보였는데, 첫 공연을 보러왔던 관객이 다음 공연에도 계속해서 찾아왔다. 모든 공연의 프로그램이 아주 다른 레퍼토리로 채워졌고, 관객들 또한 이런 다양한 연주를 즐겼던 것 같다. 덕분에 관객과 더욱 친밀한 교감을 할 수 있었다.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로 만나는 첫 무대에서 시마노프스키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시마노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보석 같은 곡으로, 아주 환상적인 작품이지만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런 면에서 관객에게 아주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무대가 되리라 생각한다. 또한 이 작품은 연주자의 많은 노력과 숭고한 정신을 필요로 한다. 연주자의 역량과 해석이 곡을 전달하는 데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작 포인트로 아주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곡가들을 좋아한다고. 물론 모든 바이올리니스트가 다르겠지만, 나는 악보에 다이내믹이나 템포 표기를 하지 않는 작곡가들은 이해할 수 없다. 연주자로서 우선 악보에 담긴 내용을 기본으로 하고, 악보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그 내용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베토벤과 브람스 협주곡의 경우 모두 깊고 격렬한 감정이 담겨 있다. 베토벤 협주곡은 전쟁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오케스트라가 내는 아주 강한 포르테시모와 작품 곳곳에 담긴 아이같이 순수한 멜로디를 지나 마지막에는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한 ‘이야기’다. 작곡가들은 직접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닐 뿐이지, 작품을 통해 아주 작은 이야기까지 세세히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음악 안에서 내가 가진 것 이상을 나타낼 수 있다.
작곡가와 친밀해지는 것이 좋은 음악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가? 내 연주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표현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음악이 아닌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떤 실수도 없이 틀 안에서 갇혀 연주하라는 것은 아니다. 작곡가를 통해 무한한 상상력을 얻고, 무대 위에선 좋은 배우가 되려고 노력한다. 단 하나의 작품을 연주하더라도 무대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베토벤의 소리는 이렇다’고 단정 짓지 말고, 항상 다른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해석’ ‘들어보지 못한 연주’라는 평을 많이 받는다. 사람들이 말하는 ‘새로운 해석’이 본질적인 것을 의미하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어떤 곡을 연주할 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처럼 연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으면 좋겠다. 때때로 심지어 악보도 찾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 내 연주에 대해 말할 때면 기분이 좋지 않다. 얼마 전 베토벤 협주곡을 연주했을 때도 그랬다. 한 평론가의 글을 읽었는데, 전체적으로는 좋은 평이었지만, 그중에 느린 악장에서의 악상을 지적하는 말도 있었다. 악보를 보았다면 내가 작곡가가 표시한 그대로 연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럼 오직 악보에서만 음악적 아이디어를 얻는 것인가? 나는 오직 독주 악보나 오케스트라 총보만을 보며 공부한다. 가끔 모차르트가 자신의 악보에 뭐라고 적어놓았는지조차 모르는 학생들을 볼 때면 황당하다. 작곡가가 적어놓은 것은 모르면서 지노 프란체스카티(Zino Francescatti)가 어떤 스타일로 모차르트를 연주했는지는 기억하더라. 그것은 프란체스카티가 바라본 모차르트이지 내 것이 아니다. 유명한 연주자의 것을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시각으로 작곡가가 바랐던 음악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연주자는 작곡가와 일대일로 만나야 하고, 또 작곡가마다 다른 접근방식으로 다가가야 한다.
조화와 균형을 이루다
4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음악적인 변화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내 음악에 가장 큰 변화가 찾아왔던 때는 8년 전, 지금의 아내를 만나 사랑에 빠졌던 시기이다. 자유를 찾아 아주 천천히 발전해가던 내 음악이,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아주 빠르게 바뀌었다.
아내 외에 음악적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주는 친구가 있는가? 수년간 나와 함께 연주해온 동료들. 피아니스트 라르스 포그트(Lars Vogt)도 그중 하나다. 내년이면 함께 활동한 지 벌써 26년 차가 되는 테츨라프 현악 4중주단 멤버들과도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엘리자베트 쿠퍼라트(바이올린)와 한나 바인마이스터(비올라), 동생인 타냐(첼로)까지, 각자가 지닌 개성과 서로 다른 음악적 접근방법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
일 년에 100회 이상의 연주를 소화하고 있는데, 일상생활과의 균형은 어떻게 맞추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 주 동안을 연주하는 데 보냈다면, 다음 한 주 동안은 아버지로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스케줄을 조정한다. 지금 여섯 살, 네 살, 두 살, 세 명의 아이가 더 생겨서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보내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음악을 가르치고 있나? 큰아이들 중 둘은 오보에와 첼로 연주자로 활동 중이다. 작은 아이들 중에서는 여섯 살 아이가 얼마 전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버지이자 음악 선배로서 자녀들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하는가? 아이들의 연습에 끼어들어 조언을 해본 적은 없다.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았고 오직 아이들의 선택에 맡겼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스스로 해나갈 수 있도록 믿어주었다. 이런 방식이 결과적으로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연주자로서 오늘날 클래식 음악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궁금하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느 곳에나 클래식 음악을 찾는 좋은 관객이 있고, 좋은 공연장이 있으며, 연주하고 싶은 곡을 마음껏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클래식 음악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요즘 몇몇 연주자와 기획자들이 클래식 음악을 대중음악처럼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그저 스타 연주자들의 이름을 팔아 엔터테인먼트적인 기획을 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은 단순한 여흥을 넘어 그보다 더 깊고 중요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하는 것이다. 슈퍼스타만을 보기 위한 것을 넘어 청중과 음악 사이에 큰 유대감이 형성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우리 연주자들은 음악 앞에서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너무 상업적인 방향으로 흘러서 본질적인 가치를 잃어버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서울시향
2019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1월 5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6일 오후 5시 롯데콘서트홀
시마노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외
실내악 시리즈 I
1월 7일 오후 7시 30분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드보르자크 현악 5중주 3번 외
만프레드 호네크의 말러 교향곡 1번
9월 5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9월 6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Op.61 외
실내악 시리즈 IV
9월 7일 오후 5시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수크 피아노 5중주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