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국립창극단과 손잡고 창극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양손프로젝트의 연출가 박지혜
그리고 나, 이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파블로 네루다 ‘시’ 中
동시대 젊은 예술가와 함께 새로운 창극을 선보이는 국립창극단 ‘신창극시리즈’는 창극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감각을 입는 프로젝트다. 지난해 선보인 두 작품 ‘소녀가’와 ‘우주소리’는 극적·음악적 실험을 통해 창극의 새로운 매력을 드러낸 바 있다.
국립창극단의 ‘신창극시리즈’의 세 번째 도전은 제목 그대로 ‘시(詩)’와 함께한다. 극단 양손프로젝트의 연출가 박지혜가 지휘봉을 잡았고, 양손프로젝트의 배우 양조아·양종욱과 국립창극단의 소리꾼 유태평양·장서윤 등 4명의 배우가 앙상블을 이룬다. 이들이 창극의 재료로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시(詩)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의 대표적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시들을 선별해 무대에 올린다. 탄생과 사랑, 이별과 죽음 등 인생의 순간순간을 말하는 네루다의 시 속 문장들이 창과 결합한다. 소리꾼 이자람과 함께 ‘이방인의 노래’(2016, 연출)와 ‘소녀가’(2018, 드라마투르기)를 작업하며 전통 소리와 극의 결합을 계속해서 실험한 바 있는 박지혜는 이번 작품 ‘시’에서도 이자람과 호흡을 맞춘다.
작품 준비로 분주한 박지혜와 점심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시와 연극과 창극을 결합한 새로운 무대에 대한 기대가 반짝였다.
시+창극=새로운 서사
희곡이나 소설 등이 아닌 시를 창극으로 끌어왔다. ‘배우가 이야기의 도구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최근 많이 했다.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인물, 드라마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닌 온전한 주체로서 배우가 무대에서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다. 자연히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고민하게 됐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등으로 이어져가는 일반적 구조의 드라마가 아닌, 다른 성질의 텍스트가 필요했다. 그렇게 여러 가지를 찾다가 ‘시’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됐다. 시는 태생적으로 노래와 연결되기 때문에, 시와 창극의 만남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이야기전달자’가 아니라 ‘하나의 주체적 존재’로서 배우를 드러내고 싶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지금 연습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표현하지 않기’다. 의미를 전달하는 것, 드러내는 것보다 ‘느끼기’와 ‘인지하기’에 중점을 둔다. 자신이 원하는 감각을 찾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배우가 인물을 연기할 때, 내가 이 인물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파블로 네루다를 선택한 이유는? 그의 어떤 시들이 사용될 예정인가? 창극의 텍스트로 시를 사용하겠다고 결심한 후 많은 시인들과 작품들을 탐색했는데, 예전부터 좋아했던 파블로 네루다가 탁 걸렸다. 특히 ‘시’(1964)가 정말 강렬했다. 나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에게도 ‘시’가 크게 와 닿았다고 한다. ‘죽은 가난한 사람에게’ ‘세레나데’ ‘작별들’ ‘충만한 힘’도 좋다. 최종적으로 어떤 문장이 어떻게 배치될지는 아직 논의 중이다. 매번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고 배우들이 말한다. 하나의 시를 가지고 각자 다르게 감각하더라. 정답 없이 각자의 감각에 맞게 사유하는 시 읽기를 하고 있다. 시의 내용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 명의 배우가 무대에서 만드는 세계를 위해 네루다의 시를 사용한다.
이번 ‘시’에는 양손프로젝트의 배우 양조아·양종욱과 국립창극단의 유태평양·장서윤이 함께한다. 색다른 조합을 통해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내는 모험이 될 것 같다. 공동창작과 신체연기 등은 양손프로젝트에게는 익숙해도 국립창극단의 유태평양과 장서윤에게는 상당히 새로운 경험일 텐데. 전에도 공동창작을 했지만 그때는 주로 서사적인 텍스트를 많이 사용해서 드라마적인 밀도가 높았는데, 이번에는 극의 내용 전달보다는 배우의 신체 감각이나 상호작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무대 위에 온전히 존재하기 위한 훈련을 배우들이 매일 1~2시간씩 함께하고 있다. 작품이 잘 나오는 것과는 별개로, 이 시간이 참 즐겁다. 양종욱이 트레이닝을 주도하고 있는데, 무대 위에 있는 존재를 정확히 인지하며, 자신이 자유롭게 내 세계에 존재함과 동시에 다른 존재까지 잘 인지하기 위해 소리와 몸을 개발하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태평양과 양소윤 두 배우는 이런 점에서 굉장히 열려 있고 호기심도 많다. 몸을 움직이는 것에도 적극적이다. 소리도 몸으로 하는 일이라, 자신의 신체에 민감한 것 같다. 물론 소리가 주가 되다 보니 신체를 운용하는 연극적 방식이 낯설 수는 있지만, 그들 고유의 방식이 존재한다. 소리꾼들은 장단이 마치 피처럼 몸에 흐르고 있더라. 단순한 박자의 개념을 넘어, 창극의 가장 기본이 되는 ‘땅’ 같은 존재 같았다.
텍스트와 장단을 세팅하는 것도 상당히 까다로울 듯한데. 이자람 음악감독과 배우들과 함께 충분히 논의하고 있다. 배우가 먼저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고, 이자람 감독이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창극의 가능성에 계속해서 천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맨 처음 판소리 작업을 했을 때, ‘매직’ ‘판타지’ 같다고 느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소리였다. 소리꾼의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법에 휩싸이는 듯했다. 나의 감각이 풍요롭게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글 이정은 기자 사진 국립극장
국립창극단 신창극시리즈3 ‘시’
1월 18~26일 국립극장 하늘극장
극본·연출 박지혜
작창감독 이자람
공동작창 국립창극단
출연 양조아·양종욱(양손프로젝트), 유태평양·장서윤(국립창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