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나라
1980년생인 정나라는 미국 월넛힐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피바디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이후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와 바이마르 국립음대에서 지휘를 공부했으며, 호프 시립 오페라극장과 빌레펠트 시립 오페라극장에서 부지휘자 및 오페라 코치를 역임했다. 국내에서는 광주시향·대전시향·전주시향을 객원 지휘했으며, 용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활동했다. 강릉원주대학교와 경희대학교에 출강했으며, 현재는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경기필하모닉 부지휘자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어릴 적 악기는 제게 장난감 같은 존재였습니다. 지휘자였던 아버지(故 정두영, 대전시향 초대 상임지휘자)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한정강) 덕분이었죠. 지휘자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아버지가 지휘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지휘자가 되려면 피아노를 배워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에 피아노 공부를 하고, 고등학교 때는 작곡도 배웠습니다. 모두 지휘자가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지휘 공부를 하면서 오페라 지휘에 관심이 많아져 여러 오페라 극장에서 부지휘자 겸 오페라 코치로 일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독일과 달리 오페라 전용극장이나 상주단체도 많지 않고 오페라보다는 오케스트라 위주의 공연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더군요. 하지만 지금도 오페라를 지휘할 기회는 계속해서 찾고 있습니다. 5월에는 국립오페라단의 연습 지휘를 맡을 예정이고요.
독일이나 미국에 있을 때는 끊임없이 발버둥 치는 느낌이었는데, 한국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면서부터는 더 큰 사명감과 행복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한국의 정서와 음악계 실정에 맞추어야 한다는 보수적인 태도와 현실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이제는 지휘자로서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유연하게 의견을 조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지휘자 육성 프로그램에 비교하자면 한국은 아직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지만, 시작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교향악단들이 지휘자 마스터클래스를 하고 있고, 한국지휘자협회에서는 캠프도 마련해 지휘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특별히 경기필하모닉에서는 올해 6월 말, 예술감독 마시모 자네티가 직접 마스터클래스를 개최할 예정이고요. 각 교향악단의 부지휘자 체계가 조금 더 활성화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젊은 지휘자를 키우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경기필 부지휘자로 활동하게 된 것은 제게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다른 단체의 상임지휘자가 되었을 때도 이곳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지휘 공부를 시작한 후로 어떻게 오케스트라를 대할 것인지 깊이 고민했고, 소통하는 지휘자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먼저 단원들과 소통을 해야 청중과도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관객에게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있는 지휘자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상임지휘자가 되어 조금 더 자주적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보고 싶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오페라를 더 많이 해보고 싶습니다. 기회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찾아오기 때문에 이 기회들을 잡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겠지요. 인간적인 모습으로 더욱 아름다운 음악을 전해드리는 지휘자를 꿈꾸며, 올해 경기필하모닉 활동과 함께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 등 여러 무대에서 관객분들과 만남을 이어가려 합니다.
글 이미라 기자
윤현진
1982생인 윤현진은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작곡과 지휘를 공부한 후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 및 함부르크 국립음대 지휘과 최고연주자과정을 최우수성적으로 졸업했다. 2013년 포르투갈 리스본 젊은 지휘자 콩쿠르 2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지휘 콩쿠르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2017년 하반기부터 KBS교향악단의 부지휘자로 선임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지휘자 겸 작곡가로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한편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 지휘를 맡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원래는 작곡을 전공하던 사람이었고, 지휘는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한양대 작곡과 동료들의 작품을 지휘하기도 했고, 동교 의과대학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지휘의 즐거움을 깨닫게 됐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었는데, 오케스트라 앞에 서서 음악을 지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더군요. 지휘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동 대학원의 지휘과에 진학해 박은성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독일에 가서 지휘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돌아보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된 것 같은데, 제게 잘 맞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저 스스로 특정한 분야나 시대, 작곡가에 국한된 지휘자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폭넓은 음악을 선보이면, 청중이 저를 판단하겠죠.
사실 젊은 지휘자가 실제 공연 무대에서 지휘를 맡을 기회가 흔치 않은 것이 한국 음악계의 현실이죠. 음대 지휘과를 다니면서도 직접 악단을 지휘할 기회를 단 한 번도 잡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제가 다닌 만하임 음대는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기회를 학생에게 많이 제공해준 편이라 정말 감사했어요. 함부르크 심포니,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닉 등을 지휘하며 젊은 학생으로서 소중한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있는 시간이었죠. 20대 후반의 젊은이에게 상임지휘자 자리를 맡기는 유럽의 악단들을 보면 부럽기도 해요. 한국에서도 젊은 지휘자들이 두각을 드러내는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2017년 하반기부터 KBS교향악단의 부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BS교향악단에 부지휘자 자리가 처음 생긴 것인데 그 첫 타자가 저라는 것에 참 감사했습니다. 공연이 많은 단체여서,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많은 연주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다양한 경험을 많이 쌓으며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단원분들과도 많이 친해졌고요.(웃음) 현대음악 전문 지휘자라고 말할 순 없지만, 작곡을 전공했던 만큼 현대음악에 관심이 많습니다. 작곡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지휘를 하면서 작곡을 하니 예전보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좋은 표현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오는 2월 제10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에서 한국 동시대 작곡가 6명의 작품을 KBS교향악단과 함께 연주합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와 베를린 등지에서 창작음악을 연주할 예정이고요. 올 한 해도 다양한 연주로 많은 관객 여러분과 만나고 싶습니다.
글 이정은 기자
홍석원
1982생인 홍석원은 서울대 지휘과 재학 시절부터 한국지휘자협회가 선정한 최우수 신예 지휘자로 선발되었다.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 지휘과 디플롬 과정과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한국인 최초로 오스트리아에서 오페라극장 수석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독일음악협회가 지정한 ‘미래의 마에스트로’ 10인에 선발되었고, 카라얀 탄생 100주년 기념 콩쿠르 3위, 독일 라이프치히 오페레타 콩쿠르에서 청중상을 수상했다. 올해 유럽 연주뿐 아니라 코리안심포니, 강남심포니, 성남시향 등과 연주할 예정이며, 한경필과의 연주도 계획 중에 있다.
저는 현재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오페라 극장의 수석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페라 극장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 주로 오페라 공연을 많이 하고 있죠.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지휘하면서 아직 많이 배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아직도 ‘내가 모르는 좋은 오페라가 이렇게 많구나’ 하면서 감탄하고 있답니다.
지휘를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 음악을 지휘로 정확하게 표현할 때 대부분의 단원들이 특별히 말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믿고 잘 따라와 주는 걸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전 첫 리허설 전까지 제가 원하는 음악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확신이 들 때까지 악보를 보고 공부합니다. 그것이 단원들을 설득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서로 생각이 다른 경우엔 서로 대화를 통해 의견을 조율해 나가려고 노력합니다. 단원들의 해석이나 의견이 저의 것보다 좋을 때도 분명히 있고 또 그런 과정을 거치며 제 음악도 성숙해 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첼리스트시고 가족들이 음악하는 분들이 많아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음악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음악 공부를 하면서 궁금하거나 고민이 되는 부분들은 가족들과 대화하면서 해답을 얻기도 하고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고요.
종종 한국에서도 지휘할 기회가 있었는데 관객들의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분위기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유럽에 비해 클래식 음악회의 프로그램이 단순하다는 것인데 능동적으로 청중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획의 무대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동안 유럽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며 느낀 점은 지휘자와 단원들이 서로 교감하면서 음악을 만들어가기 보다는 아직도 지휘자가 더 주도가 되어 지휘자의 해석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음악이 만들어지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죠. 이제는 한국 교향악단도 음악적인 수준이 많이 높아졌기 때문에 단순히 악보에 적혀 있는 음표를 완벽히 연주하는 것 이상의 것들을 지휘자와 단원들이 함께 추구해야 더 좋은 연주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저는 삼국지의 유비 같은 덕장의 리더십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지 어떤 책임이나 권위 의식으로부터 억눌려서 나오는 음악은 좋은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휘하는 공연에 온 청중이 항상 무엇인가를 느끼고 감동받을 수 있는,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지휘자가 되고 싶습니다.
글 국지연 기자
안두현
1982년생인 안두현은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오케스트라 지휘과 학·석사를 졸업했다. 마제스틱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역임했으며, 현재 아르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과 양평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다. 클래식 음악 콘텐츠를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클래식에 미치다’를 개설 및 운영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지휘자를 동경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라는 책을 읽으면서, 음악을 만들어가는 존재로서의 지휘자가 너무나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예전부터 러시아 음악을 좋아해서 유학도 러시아로 떠났습니다. 모스크바의 차이콥스키 음악원 오케스트라 지휘과에 입학했는데, 오디션 당시 어느 교수가 ‘동양인은 입학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지만 당당히 합격했죠. 그곳에서 러시아 음악 특유의 감각적이고 열정적인 표현을 배웠고, 수많은 거장 연주자들의 공연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워낙 다양한 것에 흥미를 가지는 성격이라, 음악 이외에도 여러 가지 경험을 했습니다. 말을 잘하고 싶어서 스피치 학원에 다니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군악대에 다니던 시절 문법책을 보면서 글쓰기 연습을 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했습니다. TV 예능 프로그램들과 영화 등을 통해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도 놓치지 않으려 하고요. 그러한 노력 덕분에 다양한 글을 매체에 기고하기도 했고, ‘클래식에 미치다’라는 앱을 개설해서 클래식 음악을 재밌게 소비하는 통로를 만들기도 했죠. 요즘은 지휘만 잘하는 것 말고도 다양한 역량이 필요한 시대 같습니다. 지휘자는 비즈니스적 마인드도 갖춰야 하고, 기획력도 있어야 하더라고요.
클래식 음악은 몇백 년 전에 작곡됐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말러는 웅장함을 위해 베토벤 교향곡의 관악기 편성을 2배로 늘려 지휘했습니다. 베토벤이 원래 명시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시도는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카라얀도 이러한 확대 편성을 선호했죠. 베를린 필하모닉의 혁신을 이끈 사이먼 래틀, 파격적 해석으로 주목받는 테오도르 쿠렌치스 등 동시대 청중과 교감하는 지휘자들이 있기에 클래식 음악이 지금도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습니다. 저는 현대의 젊은 관객이 클래식 음악을 보다 친숙하게 즐길 수 있는 길을 고민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연구하고, 악보를 토대로 현대적 상상력을 가미하곤 합니다. 클래식 음악이 가진 무궁무진한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지휘자로서 여러분들과 다양한 무대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글 이정은 기자
진 솔
1987년생인 진솔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마틴 베어만·김홍수·김성기를 사사하고, 만하임 국립음대에서 클라우스 아르프의 마지막 제자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독일 등에서 해외 다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경기필하모닉·코리안심포니·국립합창단 등에 객원지휘자로 초청되어 무대에 올랐다. 현재 대구MBC교향악단 전임지휘자이자 아르티제 예술감독으로 다양한 기획을 선보이고 있으며, 2017년에는 게임음악 전문 오케스트라 ‘플래직’을 창단해 다양한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오는 4월에는 KBS홀에서 ‘블리자드’ 공연을 선보일 예정.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세이지 오자와의 연주 영상을 보고 나서부터였습니다. 큰 체구에 힘 있고 카리스마 있는 제스처 등 그동안 생각하던 지휘에 대한 개념이 깨진 순간이었죠. 백발의 노장 오자와의 지휘에는 그런 권위적인 모습보다는 연주자들과의 깊은 교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를 통해 지휘에 처음 눈길을 주게 되었다면, 활동하며 인상 깊게 다가온 지휘자는 쿠렌치스(Teodor Currentzis)입니다. 그리스의 젊은 천재 지휘자인데, 음악가로서 평범한 길을 밟지 않은 괴짜이죠. 독특한 방법으로 음반 제작을 많이 하고 있어 호불호가 갈리지만, 두터운 팬층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독특한 행보를 밟고 있는 지휘자들이 제게 영감과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킵니다.
주어진 길을 따라가기보다는 다양한 것에 관심을 두고,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기는 편입니다. 작년에 선보인 게임음악 오케스트라나 아르티제 ‘말러리안 시리즈’ 등도 다양한 관심과 경험을 통해 시작되었죠. 물론 대구MBC교향악단 등 완전 다른 성향의 클래식한 단체를 지휘하기도 합니다만 이 경우 행정적인 부분이 우선시되다 보니 사실 지휘자로서의 권한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게임음악 오케스트라나 아르티제를 통해 같은 방향성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고 있죠. 개인적으로 리더십이 있다 해도 단체의 리더로서 여러 사람을 이끌어나가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운영에서의 어려움, 사람 관계에서의 어려움 속에서도 모든 일을 재미있게 추진해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결국 음악을 통해 진심을 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유학 초기에는 한국에 없는 좋은 제도와 음악에 관한 복지를 보며 문화적 수준이 다름을 느끼기도 했는데, 조금 더 생활하다 보니 그저 시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성 지휘자에 대한 의식의 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긴 생머리의 젊은 여성 지휘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일부러 낮은 목소리를 내고, 말투도 세게 바꾸려 했습니다. 하지만 20대 중반이 되어보니 내 본래의 기질을 억지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지며 남의 시선에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결국 서로 낯선 환경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베트남의 경우 오케스트라에 여성 단원이 있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낀다고 합니다. 그들의 시선에서는 우리나라 문화가 훨씬 진보적으로 여겨지고 있죠. 결국 시대의 흐름 속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기에 이런 차이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시대에 대한 불평이나 좌절을 하기보다는 주어진 흐름 안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변화를 꾀하는 것이 중요하죠.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습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를 나를 기대하면서요.
애매한 걸 싫어하는 제 솔직한 성격처럼 음악도 굉장히 분명한 편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좋은 음악에 내 자아를 투영해 솔직하고 두드러지고 분명한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고전적인 레퍼토리를 기본으로 현대음악도 많이 지휘하고 싶고, 고음악과 관련된 프로젝트도 기획 중입니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또 어떤 자리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휘든 작곡이든 음악가로서 명음반을 남기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한 분야와 장르를 막론하고 사회 전반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많은 여성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그들을 꿈꾸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글 이미라 기자
박준성
1982년생인 박준성은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4세에 피아노를 시작, 선화예중 3학년 때 독일로 유학, 17세 때 독일 슈투트가르트 음대에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다가 20세에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지휘과에 다시 들어가 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2013년 독일 말러 국제 지휘 콩쿠르 준결승, 2015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국제 지휘 콩쿠르 3위, 2016년 하차투리안 콩쿠르에서 공동 1위와 특별상 3개를 수상했다. 현재 BBC 스코티시 심포니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휘자인 아버지(전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총감독 박명기)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지휘는 정명훈 선생님의 무대를 보고 나서 매료된 후였죠.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 공부를 했는데, 사실 그곳은 제가 어린 시절부터 꼭 가서 공부하고 싶었던 학교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는 너무 공부할 것들이 많아 나중에는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였죠.(웃음) 졸업 후 무대에서 지휘를 하면서 그때 들었던 수업이 얼마나 귀하고 음악과 지휘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지휘나 작곡의 경우 그 능력을 점수로 매긴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어서 콩쿠르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하차투리안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무대에 설 기회들을 얻게 되었고 그렇게 이어진 음악 커리어들은 저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새로운 악보를 보고 공부하는 것,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 이해한 작곡가의 의도를 나의 음악 해석과 조화를 이뤄야 하는 것 등 늘 어렵고 힘든 싸움을 하며 지냅니다. 지휘를 하면 할수록 레퍼토리를 하나씩 쌓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죠.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단원들의 급여와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인데요,시간이 생명인 연주자들에게 오케스트라 연주에 따른 연습과 준비에 집중할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울러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대열에 서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음악 전용홀이 많이 생겨 오케스트라가 마음껏 연습하고 연주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별히 존경하고 좋아하는 지휘자가 있었는데 지휘자의 길이 얼마나 힘든지가 새삼 느껴져서인지 요즘은 지휘를 하는 모든 분들이 다 존경스럽게 느껴집니다.(웃음) 어린 시절부터 지휘자의 꿈을 꾸었고 지금 무대에서 지휘를 하고 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고 끝이 없어 보입니다. 훌륭한 지휘자가 어떤 사람인지 단정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정의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훌륭한 지휘자란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글 국지연 기자
최재혁
1994년생인 최재혁은 줄리어드 음악원 작곡과 학사를 마치고 석사 과정 중이다. 2018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루체른 페스티벌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에서 던칸 와드, 사이먼 래틀과 함께 지휘했고 72회 제네바 콩쿠르 작곡부문 1위를 차지했다. 2019년 4월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객원 지휘를 통해 한국에서 정식으로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데뷔할 예정이다. 5월에는 제네바 빅토리아 홀에서 제네바 콩쿠르 역대 수상자들 18명으로 구성된 앙상블 공연을, 6월에는 파리에서 자신이 현재 쓰고 있는 앙상블 곡을 앙상블 앙텡콩탱포랭이 세계초연 할 예정이다.
2018년 9월 9일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슈톡하우젠의 그루펜을 지휘했습니다. 사이먼 래틀 경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공연이어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설레고 긴장감이 생생합니다. 무엇보다도 그 공연을 끝내고 마신 맥주 맛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 아마추어 유스 오케스트라를 다니면서였어요. 유명한 지휘자들의 영상을 찾아보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마티아스 핀처 교수님을 사사하고 있죠. 지금은 작곡과 지휘를 함께 배우고 있습니다.
작곡가와 지휘자의 공통점은 두 음악가 모두 직접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점,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손으로 직접 소리를 만진다는 점입니다. 작곡가는 세상이 모르던 아름다움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조각하며, 지휘자는 작곡가가 발견해낸 아름다움을 손으로 빚어내며 관객에게 그 전달합니다. 지휘자는 소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스스로 악보를 통해 공부하고 상상한 곡을 작곡가의 의도대로 관철시키는 것이 지휘자의 음악적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관철시키느냐가 관건입니다. 그 해답을 음악에서 찾으려 했던 카라얀이 있었고 관계가 음악을 만든다고 믿었던 아바도도 있었죠. 저 또한 지휘자로서 카라얀이나 아바도가 했던 고민을 계속해 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공부할 것입니다. 지휘자로서 가장 어려운 부분인것 같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오케스트라들은 당대의 작곡가들에게 작품들을 계속 위촉하고 초연하며 그들만의 레퍼토리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오케스트라들도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그런 레퍼토리들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과제일 테고요. 또한 오케스트라 고유의 소리를 갖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오케스트라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성장만큼 우리나라 작곡가들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창작계도 발전을 함께 이루어져야 겠지요.
작곡가로서는 제가 탐미하고 있는 미학을 더 깊게 탐구한 음악을 쓰고 싶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작곡가들에게 위촉을 함으로써 그들만의 레퍼토리를 형성시키는 한편 창작계를 자극해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동시에 창작곡에 대한 자유는 편성과 길이 외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의 훌륭한 현대작품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휘자로서는 ‘음악은 철학이나 문학보다 더 위대한 계시다’ 라는 베토벤의 명언처럼 정말 음악이 그 어떤 것보다도 위대하다는 것을 몸소 지휘로 보여주는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
글 국지연 기자
김유원
1988년생인 김유원은 서울대 음대에서 임헌정을 사사한 후,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에서 석사과정을 최우수로 졸업하였다. 2014년 미국 아스펜 음악제에서 로버트 스파노 지휘자상을 받았으며, 2018년 노르웨이 트론헤임에서 열린 프린세스 아스트리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 현재 커티스 음악원에서 야닉 네제 세갱의 지도로 연주자과정에 재학하고 있다. 오는 5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올림푸스 음악 페스티벌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심포니와 연주하며, 하반기에는 프린세스 아스트리드 콩쿠르 우승자의 특전으로 트론헤임 심포니와 연주를 펼친다.
지금껏 가장 기억에 남는 저의 스승은 2013년 마스터클래스에서 만난 쿠르트 마주어입니다. 나름의 선발과정을 거쳐 참석했던 거라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졌던 제게 마주어는 호통을 서슴지 않으셨어요. 음악이 그냥 가도록 놔두면 되는데 왜 자꾸 큰 손동작을 해서 음악이 가는 길을 끊으려고 하냐고 하셨죠. 마지막 콘서트의 2부는 쿠르트 마주어께서 직접 지휘를 하셨는데, 그분의 지휘를 보며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편찮으셨던 상태라 휠체어에 앉아 지휘하던 마주어는 작은 손동작만으로도 팀파니의 음정까지 정확하게 조절하셨어요. 테크닉보다 진심을 다한 연주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이 제 연주의 신조가 되었죠.
여성 지휘자로서의 한계를 체감한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제가 지휘를 갓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여성분이신데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어요. 성시연·김은선과 같은 지휘자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지금은 국내에서 여성 지휘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외국에서는 여성이라서 힘들다기보다는 외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겪는 불이익이 더 큰 것 같아요.
몇 년 전부터 세계 유수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한국 지휘자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전 같으면 콩쿠르 수상 하나만으로 인생 역전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요즘엔 그보다는 본인을 조금 더 알릴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다고 봐요. 콩쿠르 우승의 가장 큰 장점은 콩쿠르 이후 수반되는 다양한 연주 기회거든요. 그 기회를 통해 매니지먼트를 만나거나 또 다른 연주 기회를 얻게 됩니다. 지휘자에게는 오케스트라가 악기니까 많은 연주 경험이 필요해요. 한국의 젊은 지휘자들도 연주를 선보일 기회가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미국에서는 마스터클래스나 부지휘자 시스템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졸업 이후 지속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돼요. 오케스트라 소속으로 활동하며 매일 리허설에 참관하고, 어린이 콘서트·커뮤니티 콘서트·해설 음악회 등은 직접 지휘하며 성장할 수 있는 거죠.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연주를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 번 연주했다고 꽃다발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연주를 일상처럼 할 수 있는 직업 연주자가 되는 것 또한 꿈입니다.
글 권하영 기자
이규서
1993년생인 이규서는 서울대 음대에서 임헌정을 사사했고, 현재 동 대학원에 재학하고 있다. 2017년 한국지휘자협회로부터 우수 지휘자로 선정되었고, 2018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선정한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에서 음악 부문 주목할 예술가상을 받았다. 2014년부터는 실내관현악단인 오케스트라 앙상블 서울(OES)의 음악감독이자 수석지휘자로 단체를 이끌고 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6번에 걸쳐 ‘OES와 베토벤 교향곡 & 피아노 협주곡 전곡 시리즈’를 피아니스트 이진상·문지영·김태형 등과 함께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저는 2014년 결성된 챔버 오케스트라 앙상블 서울(OES)의 수석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에스메 콰르텟 제2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하유나 씨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면서 졸업생 챔버 오케스트라를 같이 만들어보자고 제안하면서부터 시작됐어요. 점차 훌륭한 단원들과 호흡을 맞추다 보니 ‘밖으로 나가보자’고 적극 제안하게 되었죠.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어요. 창단연주회 때는 당차게 예술의전당에 대관 신청을 했었는데, 보란 듯이 떨어졌어요.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과 함께한 2회 정기연주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플루티스트 윤혜리와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그리고 작년 가을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함께하면서 점차 이름을 알리게 됐죠. 2016년부터는 ‘사회적협동조합 이음’에서 연주회 대관료를 후원해주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OES가 웬만한 대형교향악단 기획에 못지않은 공연을 올릴 수 있는 이유는 항상 자기 자리를 지켜주는 우리 단원들의 열정 때문입니다. 단원들은 프로그램 노트를 만드는 데서부터 SNS 관리까지 각자 일을 나눠서 하고 있어요. 진정한 의미의 자주 운영단체인 거죠.
선후배 간 단단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는 우리나라 음악계의 특수한 환경은 서로 친숙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다만, 오케스트라 운영은 단원들 간의 깊은 배려가 뒷받침되어야 해요. 젊은 지휘자는 자만하지 않고 철저히 준비해서 포디움에 서야 하고, 경험이 많은 단원들은 지휘자를 우리 오케스트라가 키워낸다는 선한 마음에서 만남이 이뤄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외국의 지휘 환경과 가장 다른 점은 프로 악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진입장벽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제 나이에 상임지휘자는 아니더라도 부지휘자 등으로 ‘직업으로써의 지휘’를 시작하고, 대학 졸업 연주에서도 프로 악단과의 연주 기회를 제공합니다. 외국 음악계가 굳이 신인 지휘자를 프로 오케스트라 포디움에 세우는 이유는 그들의 기량이 뛰어나서라기보다 대인 관계와 프로페셔널리즘을 배우게 하려는 목적이 커요. 서울시향·경기필·인천시향 등 국내 유수 오케스트라에서도 젊은 지휘자를 위한 마스터클래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여전히 빈도와 시기 면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국의 오케스트라들도 전문 지휘자 양성을 최우선순위에 두는 환경으로 변해갔으면 좋겠습니다.
글 권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