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지휘봉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
정나라·윤현진·홍석원·안두현·진솔·박준성·최재혁·김유원·이규서
예술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걸까? 새해를 맞아 ‘객석’은 미래를 이끌 차세대 젊은 지휘자들을 조명한다. 현재 한국과 해외 무대에서 활발히 지휘 활동을 하며 눈부시게 비약 중인 지휘자들을 만나 그들의 꿈과 열정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 보았다. 지금 그들이 마음에 그리는 세상이 우리 클래식 음악의 미래이기에.
100여 년에 걸친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돌아보면 1945년 광복이 되면서 성장한 교향악단의 발전이 지금 한국 클래식 음악 성장의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1900년대 초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선교사들은 선교와 함께 교육을 담당하며 우리나라에 서양 클래식 음악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관현악단 활동은 중앙악우회 관현악단, 경성방송국 관현악단, 경성제대 관현악단, 연희전문 관현악단 등 학교와 방송국을 통해 눈에 띄게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본격적인 오케스트라 조직은 현재명이 중심이 되어 1945년 창단된 고려교향악단(지휘자 임원식)과 서울관현악단(지휘자 김생려)이 그 시작의 중심이 되었다.
1940~1950년대 클래식 음악계를 이끈 음악가 중에는 일본강점기때 일본에서 공부하고 활동했던 지휘자들도 있었다. 아직도 친일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엇갈리지만 그들이 당시 관현악단 창단을 이끈 공이 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귀국하지 않고 유럽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1960년대가 되어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이나 유럽에서 공부한 유학파들이 한국에 들어와 음악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외국에서 배운 레퍼토리를 한국 무대에 보급하는데 힘썼다. (음악 칼럼니스트 송주호)
혼란한 정치 가운데에서도 그들은 자기들만의 색깔로 다채로운 모습을 펼쳤고 6.25 전쟁을 겪으며 육군 군악대와 해군 군악대로 활동하며 현재의 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의 뿌리가 되었다. 서울시향, KBS교향악단과 견줄 만한 수준급 앙상블을 갖춘 민간 주도형 악단이었던 코리안심포니는 1985년 홍연택의 지휘로 그동안 베토벤·모차르트 등 고전 레퍼토리에 주력했던 음악계에 말러·부루크너·리하르트 슈트라우스·바그너 등 당시 낯선 레퍼토리를 들려주며 새로운 음악세계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1970~1980년대에는 외국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지휘자들이 한국에 많이 자리를 잡았다. 당시 한국을 대표하던 지휘자는 원경수로, 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을 모두 맡은 전력을 갖고 있다. 그는 한국의 관현악단의 수준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1990년대가 되면서 지방 교향악단의 성장과 도약이 눈에 띄었고, 뛰어난 솔리스트의 활동들은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이 세계로 향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임헌정이 이끄는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이어진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를 통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며 우리나라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다. 금난새의 해설음악회는 어렵게만 느꼈던 오케스트라 음악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킨 신선한 시도로 이후 많은 교향악단에서 대중과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해설 음악회들을 선보였다.
1990~2000년대 초 수준이 향상된 국내 교향악단들은 외국의 명망있는 지휘자들에 눈을 돌렸다. 오트마 마가, 드미트리 키타엔코, 마르크 에름레르 등이 한국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명함을 새겼다. 반면에 젊은 한국인 지휘자들은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정명훈, 유종, 이윤국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해외의 유수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세계의 여러 교향악단을 지휘하거나 초청받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예술의전당이 1989년부터 음악당 개관 1주년 기념으로 서울과 수도권, 지방의 교향악단을 초청하며 시작된 교향악축제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뛰어난 신인 음악가들이 협연자로 연주하며 데뷔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이 이끌었던 서울시향의 도약은 탁월한 음악적 성과와 프로그래밍으로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주도했고, 우리나라 교향악단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공연관람 관객을 위한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 ‘차세대 지휘자 양성을 위한 지휘 마스터클래스’, 작곡 전공생을 위한 작곡세미나 등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아르스노바’ 시리즈 등은 클래식 음악의 저변 확대와 마니아층 확보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2005년부터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던 김대진이 지휘를 맡은 수원시향의 도약도 눈에 띄었다. 이를 바탕으로 각 지방 오케스트라들의 음악적인 성장과 해외 초청 공연 횟수도 늘어나면서 각 지역 음악회장에서도 이제는 음악적으로 완성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생겼다.
현재 한국 지휘계는 성시연(전 경기필 상임지휘자), 구자범(전 경기필 상임지휘자), 최수열(부산시향 상임지휘자)을 비롯해 김광현(원주시향 상임지휘자), 서진(과천필 상임지휘자), 이병욱(인천시향 상임지휘자) 등 40대 젊은 지휘자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이들은 정통 레퍼토리를 비롯해 독특한 레퍼토리에 도전하는 것은 물론 이전 세대보다 더 자유로운 감성을 가지고 다양한 플랫폼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위한 새로운 기획 공연들도 무대에 올리며 클래식 음악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젊은 시절 유학하고 콩쿠르에 입상하며 해외에서 활동하는 재능있는 지휘자들이 귀국하여 곳곳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약 10년 동안 서울시향을 맡았던 정명훈은 그 대표적인 인물로 한국인이라는 동질감과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하지만 외국인 지휘자들이 한국의 주요 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는 모습은 여전하다. 스타를 만들기 보다는 스타를 영입하는데 익숙해진 사업방식 때문이다. 이러한 와중에 성시연·최수열·김영민 등 시립급 교향악단에서 젊은 지휘자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들은 많이 남아 있다. 아직도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근무환경 등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고 상임 예술감독의 임기, 상주 작곡가의 부재, 전용홀 문제 등이 숙제로 남아 있다. 음악 칼럼니스트 송주호는 스타 지휘자 관리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한다.
“스타 지휘자는 단지 한 인물이 큰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 음악 문화와 사업 전반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필요하고, 또 잘 관리되어야 한다. 금난새·정명훈·함신익 등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까지 티켓 파워를 갖고 있는 지휘자들이다.”
하지만 짧은 클래식 음악사 속에서도 한국 오케스트라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힘겹게 음악의 뿌리를 내리고 가꾸고 키우며 그 명성을 쌓아 왔다. 이제는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의 악장에 한국인 연주자가 발탁되었다는 뉴스가 자주 들린다. 각종 지휘 콩쿠르에서도 훌륭한 한국의 젊은 음악도들이 주목받고 있으며 세계 무대에 서고 있다. 이렇게 끝없는 음악의 세계를 향해 도전과 열정을 멈추지 않는 젊은 지휘자들은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그리고 좋은 음악을 만드는 진정한 지휘자의 반열에 서기 위해서는 무엇을 노력하고 인내해야 하는 것일까? 객석은 그들의 목소리와 함께 음악의 예술적 가치와 공공적 가치의 균형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대에 현재 교단과 무대에서 가르침과 지휘를 통해 음악의 언어를 전하고 있는 정치용(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 교수·코리안심포니 상임지휘자)과 최희준(한양대 지휘과 교수·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을 만나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약하고 있는 젊은 지휘자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들어 보았다.
글 국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