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1월 6일 롯데콘서트홀
서울시향은 2019년 첫 연주회로 수석객원지휘자인 마르쿠스 슈텐츠와 ‘올해의 음악가’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함께하는 의미심장한 무대를 마련했다.
시마노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으로 올해 첫 공연의 테이프를 끊은 것은 매우 신선했다. 슈텐츠가 직접 선택한 곡으로, 테츨라프의 레퍼토리 중 가장 흥미로운 연주이자 그의 해석을 열렬히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관객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작품일 수 있지만, 이러한 연주자들의 강한 신뢰와 의지는 완벽한 연주와 최상의 예술적 교감을 기대하게 한다.
테츨라프는 이 작품에 대해 “지극히 관능적이다 못해 에로틱하기까지 하다”고 언급했다. 거대한 관현악에 맞서 관능미와 에로틱을 표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관현악의 음량에 대응하기 위해 무게감을 가지면서도 날카롭게 연주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전적으로 틀린 접근”이라며 가차 없이 비판을 날린다. 그리고 자기만의 관능적이고 에로틱한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은은하고 요염한 순간부터 격렬하게 타오르는 순간까지, 테츨라프의 바이올린은 공간을 유영하는 님프와 같이 자유를 만끽한다. 곧 관현악이 뒤쫓아 오지만, 테츨라프의 최상의 실력과 파워 그리고 뛰어난 악기는 오히려 관현악을 희롱한다. 여기에는 관현악을 음량이 아닌 음색의 팔레트로 접근함으로써 이러한 테츨라프의 판타지에 일조하는 구도가 있다. 특히 들릴 듯 말 듯한 타악기 연주를 비롯하여 파스텔 톤의 섬세한 사운드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음화적인 표현은 시각적 상상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관현악의 대단원에서 님프를 품에 안고 환희에 찬 목신의 포효가 연상되었다면, 마지막 바이올린의 제스처에서 유유히 빠져나가는 님프의 모습이, 그리고 더블베이스의 마지막 음에서 어이없어하는 목신의 표정이 그려졌을 정도로 극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음악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했다.
후반부를 채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은 낭만시대의 관현악 음악이 가진 특징을 고루 반영한다. 즉, 음색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나타난 다양한 음색의 혼합과, 그 반대로 음색적 대비를 강화하기 위한 단일한 음색의 강조를 꾀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악기군 전체를 관현악단에 편성하는 경향을 보인다. 피콜로·잉글리시호른·헤켈폰·E♭클라리넷·콘트라바순·바그너튜바 등이 한꺼번에 편성되어 마치 여러 개의 앙상블이 모여 있는 것 같은 구성이다. 이 초대형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열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슈텐츠는 여러 색을 가진 실내악의 팔레트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서로 다른 뉘앙스를 가진 22개의 알프스의 풍경화를 그려냈다. 금관 앙상블의 장대한 팡파르와 여러 목관 앙상블의 아기자기한 숲속의 장면들, 그리고 섬세한 현악기의 음악적 내레이션 등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소화하며 조화를 이룬다. 현악기가 충분한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하여 음악이 전체적으로 들떠있다는 인상을 준 점이나, 대단원에서 관현악단의 음량에 눌려 타악기들이 충분한 효과를 들려주지 못했다는 점 등은 그 순간의 희열을 기다린 관객에게 적지 않은 아쉬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소리가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고 뻗어가는 장엄하고 거대한 사운드의 생명력은 잊지 못할 감동의 연속을 만들어 냈으며, 올해 계획된 서울시향의 연주에도 희망찬 기대를 하게 했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서울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