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필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1월 17~19일 이음센터 이음아트홀
어쩔 수 없이 의지에 반하는 순간은 의식적일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의도치 않게 떠오른 기억으로부터 잃어버린 시간의 의미를 찾았던 프루스트를 따르자면, 진실은 비자발적 기호들로부터 누설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주치는 어떤 공백과도 같은 것이리라. 뭔가 채워 넣거나 규정지어야 할 것 같지만 당장 기존의 관념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그래서 프루스트와 같은 끊임없는 ‘찾기’를 발동하게 하는 그 무엇이라고 할까. 이번 ‘이음 해외공연 쇼케이스: 영국’에서 담담히 자신의 삶 이야기를 들려주는 댄 도우(Dan Daw)의 공연 역시 그러한 공백과 같았다. 그의 작품 ‘조건(On One Condition)’의 시작부터 관객은 양말 신는 행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몸을 대면하고서 다소 당혹스러워한다. 그 몸은 아무리 애를 써도 바지를 입고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간신히 채우기까지 한참의 시간을 써야 하는 몸이다. 비장애인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는 일상사를 기능적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다.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그가 이러한 ‘비자발적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간을 그대로 펼쳐 보이는 동안 어쩔 줄 몰라 했던 시선은 이내 그 과정에 붙들리고 응원의 마음조차 동하게 된다. 이 첫 장면은 일상에 대한 다소 낯설어진 감각과 그의 속도를 받아들이기까지 거쳐야 하는 일종의 관문이었던 셈이다.
1인 렉처 퍼포먼스 형식의 이 공연에서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그가 들려주는 에피소드의 근간에 자리하는 것이 바로 이 비자발성의 몸이다. 그것은 어떤 전환의 순간에 끼어들어 “렛츠 댄스”라고 흥얼거리며 몸을 들썩거리게 하기도 하는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처럼 돌발적이며, 그의 어린 시절 친구들이 그를 놀라게 할 때 그 자신도 어쩌지 못한 채 소리치고 뒤틀렸던 사태처럼 무의지적이다. 한편으로 그 몸은 자신의 힘으로 계단 내려가기를 강요하는 비서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몰이해와 폭력적 상황에 맞닥뜨려 타격받기 쉽고 취약하며, 다른 한편으로 서구 사회가 배려한답시고 내민 쉬운 시험지를 거부하고 오히려 놀라운 지성을 증명하는 반전을 보여준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고자 하는, 그렇지만 그것이 기존 사회와의 갈등과 충돌의 지점을 어쩔 수 없이 노출하게 되는 몸이다.
하지만 정상성이나 편견에 대해 드러내놓고 저항하기보다 감각적 낯섦을 체감하고 겪게 하면서 납득 가능하게 하는 안무적 배치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 뇌성마비 장애의 몸이 초래하는 일종의 타자성 체험이 “가까이, 가까이…” 다가갈 때 생상의 첼로 음악이 흐르고 그가 ‘빈사의 백조’를 추는 장면으로 건너뛰듯이, 공연 자체가 또한 순차성을 탈피한 채 발랄하게 편집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접붙여지는 유희적 방식으로 짜여 있기도 하다.
그의 쿨한 유쾌함 속에 비평적 순간이 번뜩인다. 그가 경로를 예측하지 못하고 에너지를 매우 많이 소모하는 듯한 그의 몸 자체의 움직임이 춤이 된다는 것을 의식할 때, 다시 말해 그가 “나는 컨템퍼러리 댄스를 추고 있어요.”라고 할 때, ‘이것도 춤이다’라는 확장된 의미에서의 춤으로 드러난다. 그가 “나는 발레를 추고 있어요.”라고 말을 옮길 때 역시 다른 방향에서 기존 춤 개념의 비평이 된다. 결국 그의 몸과 춤은 기준과 규율에 길들 수 없는 불가능한 새로움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다.
글 허명진(무용평론가) 사진 주한영국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