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S & LIFE
30년 광고인으로 살아온 그녀가 말하는 ‘내가 책과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
생각의 힘을 얻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따뜻하고 지적인 공간, 최인아책방은 2016년 오픈해 올해 만 3년을 맞았다. 책방에는 이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늘어났고 얼마 전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책을 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따로 열어 사랑받고 있다. 다양한 강좌와 공연들도 늘어나 생기 넘치고 푸르른 생각의 숲을 이뤄가고 있다. 최인아책방의 대표 최인아는 깊고 넓어진 생각들이 이 답답한 도시 속에서 진정한 휴식의 원천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책방이 마치 지인의 집 서재에 초대받은 느낌이다. 최인아책방을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금은 동네 책방들이 문화공간으로 많이 활성화되었지만 처음 책방을 열 당시에는 살롱 같은 서점이 별로 없었다. 이 책방을 기획할 때 그런 분위기의 공간을 머릿속으로 그렸었다. 행운처럼 이 각박한 도시 속에서 특별한 느낌이 있는 건물을 만나게 되어 만족스럽게 시작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삶에서 받은 무거운 긴장을 내려놓고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최인아책방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마치 ‘오아시스에 온 것 같다’는 말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3층에 혼자서 책을 볼 수 있는 새로운 공간도 생겼다. 책방을 하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곳은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 생각할 수 있는 분위기를 주기 위해 인테리어도 많이 신경을 썼다. 크림 빛으로 환한 느낌을 주었고 공간과 가구, 벽지 등에서도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도록 했다.
책방의 도서가 다양한 테마별로 진열되어 있어 마치 스토리가 있는 책방 같은 느낌이 든다. ‘바쁜 시간을 내서 이 공간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책방을 다녀간 후에는 이 곳에서의 시간이 어떻게 마음에 남게 할까 대해 많이 고민했다.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다 이 곳에 오면 오랜만에 지적이고 우아하고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개념을 가장 크게 깬 것이 책의 진열이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직장인이 가장 많기 때문에 인생을 살다 부딪치는 다양한 문제들, 그것에 대한 답이 필요한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서는 주제에 먼저 주목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책을 찾게 되는 이유를 뽑아 각각의 주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책과 추천한 이유를 지인들에게 써달라고 부탁해 구체적으로 서책들을 분류했다. 처음엔 이런 방식으로 책을 모두 분류하려고 했지만 기존의 장르나 주제별로 책을 찾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서 한 편에는 기존의 고전적인 분류 방식으로도 진열해 놓았다.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 인상적이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민감한 분야에서 일한 ‘광고쟁이’ 답다. 트렌드를 중요시하는 광고와 아날로그적인 책과의 연관성이 크게 없어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나에게는 같은 일의 연속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가치도 있다. 나의 경우 ‘광고쟁이’ 치고는 트렌드 보다는 시대가 가도 변하지 않는 가치에 더 천착하는 편이다. 자본주의적인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런 방향으로 마음이 자꾸 간다.
예전과 다른 가치 중 ‘소확행’ 같은 현상은 현재의 사회 분위기를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치열하게 살아온 시대의 어른으로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몇 년 전부터 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이 ‘꼰대가 되지 말자’는 것이다. 왜 꼰대가 되는 것일까? 성장하지 않고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듣고 아는 것만 가지고 젊은 세대를 평가하려 드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계속 공부하고 성장해야 한다. 물론 지금 나타나는 현상을 다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 중요한 선택은 상대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생각의 폭을 넓혀라!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책은 삶의 과정을 거치며 생기는 어려움과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해주고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인생의 중요한 지침서가 될 수 있다. 독서를 하며 자신의 마음속에 가둬둔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 사고가 넓어지고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다.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언제 기쁘고 무엇을 중요시하는지를 아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고민이 이어질 때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 그 선택은 자신이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최인아책방은 그 수많은 자신들이 모여 어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느낌이다. 책은 종이이고 아날로그적이지만 내가 놓인 환경은 디지털 시대다. 내가 이 일을 하며 하는 질문은 ‘왜 이 디지털 시대에 책방에 와야 하는가?’였다. ‘왜 이 곳에 와야 하는가’가 나의 계속된 질문이었다. 이 곳에서는 현재 콘서트를 비롯한 다양한 강좌와 모임을 하고 있다. 그 행사를 하면서도 같은 질문을 해 왔고 그 답을 찾는 것이 우리가 하는 프로그램의 중심이 된다. 이 곳에서의 음악회는 큰 공연장에서 듣는 감동과는 다른 것이다. 음악을 온몸으로 하고 있는 현장을 바로 앞으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다양한 형태로 관객과 대화하는 방법이며 존재 이유다. 디지털 사회에서 사는 우리는 여전히 몸을 가진 존재이고 디지털로는 다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이 반드시 존재한다. 내 자신을 찾고 이 곳에서 새롭게 느끼는 감동이 있다면 이곳을 다시 찾을 거라고 믿는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경험을 원하고 누군가가 진실로 연결되고 싶어 한다. 4월부터는 음악 공연뿐 아니라 국악 공연도 할 예정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 간의 연결고리도 되는 듯하다. 그때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방, 살롱처럼 사람들이 계속 연결되어 서로 이어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갈수록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더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는 것 같다. 나와 뜻이 같은 누군가를 만나는 계기가 되고 접점이 되는 그런 공간에서 공유하는 경험은 특별하다.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우리 자신을 더 성장하게 하고 의미 있게 한다.
최인아책방을 연지 3년이 되어 간다. 이 삶이 만족스러운지 궁금하다. 꽤 괜찮은 것 같다. 예전에 하던 일도 재미있었고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광고를 하면서는 늘 이 광고의 의미가 뭔가 하는 질문이 있었다. 이 일은 의미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고민이 필요치 않다. 다만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다. 이 공간에서 좋은 경험과 의미를 만들 수 있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늘 고민하고 있다.
출판계가 불황인 가운데 책방운영을 선택한 것은 큰 용기였을 텐데 자신의 인생을 지금까지 이끈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늘 내 앞에 질문을 놓고 정면으로 마주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정면으로 마주했던 태도가 지금의 나를 이끌지 않았나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도 변한다. 스스로도 이런 과정이 있었나? 광고일을 하면서 늘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하지?’라고 물었다. 40대 초반까지는 문화계 동향을 꾀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 시점이 지나니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은 트랜드를 잘 아는 친구들에게 맡겼다. 클래식보다는 트랜드가 중요시되는 업계이고 사이클도 짧고, 이 일을 언제까지 잘 할 수 있을까도 고민했다. 일터에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다시 이어나가야 했고 그 선택이 최인아책방이었다.
최인아책방은 이전부터 꿈꾸었던 일인가. 일하고 있었을 당시에는 자각하지 못했는데, 돌아보면 이 곳에 있기까지 점들이 계속 이어져 나를 이끌었던 것 같다. 내 안에 씨앗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서 무엇인가 문제가 생긴 건 내 안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라는 사인이다.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내 인생 역시 그런 과정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 나도 매일을 부딪치며 산다. 사는 동안은 계속 이렇지 않을까?
수많은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 아이디어도 평소에 머릿속에 많이 집어넣어야 나온다. 그렇게 넣은 지식과 생각들이 뇌에서 발효가 되어 필요한 순간 영감이 나온다. 그래서 평소에 생각도 많이 하고, 어떤 답을 찾기 위해 지름길을 구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이키의 슬로건 ‘just do it’이 답이다. 빨리 무언가를 하려다보면 쌓이질 못한다. 겪어야 할 것은 겪어야 한다.
어떤 꿈을 꾸고 있나. 하고 싶은 것들이 지금도 많다. 요즘 신간이 나오면 북토크를 많이 하는데 일회성의 홍보 행사가 아닌, 좀 더 작가의 사상을 들여다보고 깊이 읽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보고 싶다. ‘그 책, 그 저자 깊이 읽기’처럼 책을 다 읽고 온 사람들과 저자가 모여 토론하는 형식의 모임을 해 보고 싶다. 그리고 일을 통해 성장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 클래스도 운영해 보고 싶다. 요즘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는데, 가입한 회원을 대상으로 한 달에 한권씩 선정한 책을(신간 중 돌아볼만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책) 선정의 이유 등이 담긴 2장짜리 편지와 함께 집으로 보내준다. 이런 다양한 것들을 통해 생각들이 만나고, 깊어지고, 그럼으로써 각자의 삶이 충만해졌으면 좋겠다.
최인아책방의 슬로건이 ‘생각의 숲을 이루다’인데 어떤 의미인가. 내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가 ‘나무 심는 사람’이다. 숲은 나무 한그루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 우리가 나무 한그루를 심어놓았으니 같이 숲으로 키워 나가보자는 의미다. 이런 가치가 단단해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퍼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인생의 수많은 고민과 과제 앞에서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지만 결국 다시 일어서서 걸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그리고 지금도 질문을 던지고 있는 수많은 책 속에서 그 답의 단서들을 찾아보자. 절실하게 찾는다면 답이 보일 것이다. 그것이 인내이든 용기이든 그 답은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곳에서 진정한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자신안의 껍질을 깨야 하는 순간이 있다. 최인아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들이 모여 견고한 껍질에 균열을 만들고, 그 흔들림으로 인해 고통스러울 수 있겠지만 결국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문제의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인생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연속이며 그것은 나의 인생 뿐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그 삶의 길을 함께 걸으며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깊고 따뜻한 생각들이 모여 이뤄낼 이 시대의 아름답고 울창한 푸른숲. 최인아책방이 꿈꾸는 세상이다.
글 국지연 기자 사진 심규태(HA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