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1919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장르의 문화
2019년 3월, 문화계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빼곡하게 기념한다. 공연·영화·전시 등 각 분야에서 다수의 작품이 쏟아진다. 맹목적인 애국심을 강요한다거나 관료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도 제기되나, 의미 있는 역사를 되돌아보려는 시도는 고무적이다. 이를 통해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탄생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연대 의식을 심어준다면 성공적이라 하겠다.
공연
우리의 역사를 표현해내는 우리의 소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다루는 만큼 한국적인 소리에 바탕을 둔 공연들이 성행한다. 국립합창단 창작 칸타타 ‘동방의 빛’은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를 관통한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매년 극장이나 교회당을 빌려 독립군가를 부르며 3·1절을 경축한 것에 착안해,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한번 축제의 장을 마련했다. 서양 관현악을 기본으로 하되 대금·훈·피리·가야금·운라·꽹과리·모듬북 등의 국악기와 소리꾼의 목소리로 한국적인 색채를 가미했다. 탁계석 대본에 작곡가 오병희가 곡을 썼고,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윤의중이 지휘한다. 국립국악원은 항일 저항시인 5인의 시를 주제로 전통 성악과 협연하는 국악 관현악 공연 ‘그날’을 선보인다. 심훈 ‘그날이 오면’, 이육사 ‘광야’, 한용운 ‘님의 침묵’,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최남선 외 ‘기미독립선언문’을 바탕으로 한 국악 칸타타 다섯 곡이 초연된다. 경기민요·정가·판소리와 어우러지는 36명의 혼성 합창단의 음성은 식민지 시절 독립을 갈망했던 마음을 애절하게 표현한다.
웅장한 함성을 담아내는 오페라
3·1운동에 참여했던 민중의 함성을 담아내기엔 오페라가 제격일 듯하다. 오페라 ‘함성, 1919’는 ‘어머님의 은혜’ ‘산골짝의 다람쥐’ ‘시냇물은 졸졸졸졸’ 등 익숙한 동요를 다수 작곡한 동요계의 대부 박재훈이 참여한 작품이다. 해방 후 일본 군가를 부르며 노는 어린이들을 보고 아픈 마음을 안고 동요를 작곡하기 시작한 그는 3·1운동을 예술로 승화하고자 하는 염원으로 40년에 걸쳐 이 작품을 만들었다. 지식인·농민·학생 등 각계각층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인 점에 주목하여 민중들의 함성을 많은 분량의 합창으로 표현한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단체 서울시합창단은 독립운동가 유관순의 불꽃 같던 삶을 합창의 울림으로 전하는 ‘유관순 오페라 칸타타’를 초연한다. 서곡으로 시작해 매봉교회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유관순과 정동교회에서의 장례식까지 유관순의 실제적 이야기를 음악으로 그렸다. ‘윤동주’ ‘상처 입은 영혼-이화 이야기’ 등을 통해 비통한 한국사를 예술로 재조명한 작곡가 이용주가 참여하며, 자발적인 오디션을 거친 서울시민들이 함께 노래한다.
국립오페라단은 두 편의 작품으로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한다. 첫 작품은 1829년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190년 만에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로시니 ‘윌리엄 텔’이다. 13세기 오스트리아의 압제에 대항하는 스위스 민중의 저항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저항하던 3·1운동의 정신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2016 오스트리아 음악극장 시상식’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바 있는 테너 강요셉이 주역 아널드를 맡는다.
국립오페라단의 또 다른 작품은 창작 오페라 ‘1945’로, 2017년 국립극단이 선보인 배삼식 원작의 연극이 오페라로 재탄생했다. 1945년 광복 후 만주에 살던 조선 사람들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머물렀던 전재민구제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연출가 고선웅과 작곡가 최우정이 참여한다.
극적인 사건을 무대 위로
일제강점기라는 배경이 갖는 드라마적인 측면에 기인하여 연극과 뮤지컬 계에서 다수의 작품이 펼쳐진다. 먼저, 지식인으로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청년 윤동주를 다룬 극들이다. 낭송 음악극 ‘동주: 찰나와 억겁’은 청년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을 한 후 느끼는 부끄러움과 고뇌를 담았다. 그의 생애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동주와 같은 현재 젊은이들의 고뇌를 이중구조로 표현해 공감을 자아낸다. 연극 ‘두 메데아’로 카이로 실험극 연극제 최우수 연출상을 받은 극단 서울공장의 임형택 연출가가 참여한다. 서울예술단은 2012년 가무극이라는 타이틀로 내놓은 첫 번째 작품이자 단체의 대표 레퍼토리 작인 ‘윤동주, 달을 쏘다’을 다시 선보인다. ‘팔복’ ‘십자가’ ‘참회록’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같은 시인의 대표작을 노래가 아닌 가사와 대사로 엮었다. 특히 마지막 감옥 장면에서 절규하며 쏟아내는 ‘서시’와 ‘별 헤는 밤’은 그가 겪어내야 했던 절망과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을 조명한 작품 역시 눈길을 끈다. 극단 명작옥수수밭 ‘세기의 사나이’는 무려 125년을 산 주인공의 삶을 통해 파란만장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경쾌한 시선으로 그린다. 영웅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소시민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도는 우리가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임을 자각하게 한다. 뮤지컬 ‘신흥무관학교’는 1907년 개교 이래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 승리하기까지 신흥무관학교에서 성장했던 청춘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다. 동명의 드라마를 극화한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여옥·대치·하림 등 세 남녀의 삶을 통해 1940년대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아픔을 겪었던 한민족의 역사를 표현한다.
글·정리 권하영 기자
영화
평범한 영웅들의 이야기
3·1절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한국영화도 100주년을 맞았다. 이에 따라 올해 한국영화계는 더욱 다양한 소재와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로 100년 전 그날을 돌아본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1년의 시기를 다룬다. 작품은 우리가 몰랐던 유관순의 이야기와 더불어 수원에서 기생 30여 명을 데리고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향화’,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 천진한 모습 뒤로 뜨거운 항일 의지를 품었던 다방 종업원 ‘이옥이’ 등의 인물을 그린다. 배우 고아성과 다수의 독립영화에서 인상 깊은 연기력을 펼친 김새벽·김예은·정하담 등이 평범하지만 범상치 않은 용기를 보여준 인물들을 재현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1919 유관순’ 또한 유관순과 어윤희·심명철·권애라·김향화·이신애·동풍신 등 역사 속에 가려져 있던 실존 소녀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새롭게 담아낸다.
일제의 문화 억압에 대항했던 사람들의 움직임을 다룬 작품도 있다.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말모이’는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를 배경으로, 까막눈 판수가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을 만나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말을 모으는 이야기를 담았다. 총과 칼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말과 문화를 지킴으로써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몰랐던 독립운동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며 뜨거운 울림을 전한다.
기존 어디에서도 다루어지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희망의 아이콘의등장은 신선함을 더한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에서는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조선인 최초로 전조선자전차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동아시아 전역을 휩쓴 실존 인물 엄복동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본의 갖은 압박 속에서도 무려 15년 동안 우승기를 놓치지 않으며 식민지 시대 민족의 영웅이었던 엄복동. 그러나 그 역시 생계의 어려움으로 자전거 도둑질까지 했어야만 했던 시대상을 내포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긴박한 무장 항쟁의 상황을 묘사한 영화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전투’는 일본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봉오동 전투와 그 기적을 만든 대한 독립군의 4일간의 사투를 그린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제강점기 한국을 그린 영화도 기대를 모은다. ‘꺼지지 않는 불꽃’은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강제 추방당한 선교사 스코필드의 시선을 통해 3·1 만세운동의 발단과 제암리 학살 사건 등으로 점철되는 일본의 만행을 고발한다.
전시
역사를 돌아보는 예술적 경험
역사를 다층적으로 돌아보기 위한 노력은 전시로도 이어진다. 일제의 억압에도 지켜낸 우리 예술품과 100년 전 그날을 이야기해주는 독립운동 문화재는 3·1운동의 정신을 전한다. 현대 예술가들은 회화·공간 설치·영상·사진 등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당시의 역사적 사건이 갖는 의미를 새롭게 시각화한다.
문화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간송 전형필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전시가 지난 1월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박물관에서 개최된다.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은 간송이 남모르게 도쿄까지 가서 구해온 고려청자, 친일파의 집에서 불쏘시개로 사용되어 사라질 뻔한 겸재 정선의 화첩, 일본 대수장가와의 경매 경합을 승리로 이끌어 지켜낸 조선백자 등을 전시한다. 우리 문화재가 수탈된 비화와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 유산을 지키려 했던 간송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를 더욱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구미술관의 ‘1919년 3월 1일 날씨 맑음’은 3·1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이후 한민족 100년의 삶과 역사를 예술적 시각으로 담아낸다. 전시는 강요배·권하윤·김보민·바이런 킴 등 14명 작가의 회화 및 사진·설치·영상 작품으로 꾸며지며, 대구문학관 소장 ‘대구아리랑’ ‘일제강점기 대구 문학작품과 문인들의 활동’ 등의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가 함께 전시되어 깊은 이해를 돕는다. 조선 황실의 비극적 종말을 다룬 이상현의 다큐멘터리 ‘조선의 낙조(2006)’ 등은 근현대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보며, 일제강점기를 겪은 재외 교포의 초상 사진과 그들의 목소리를 병치하는 손승현 ‘삶의 역사(2003~)’ 등의 프로젝트는 역사가 개인에 미친 영향을 대변한다. 이번 전시는 그 제목처럼 3·1운동에 대한 기억이 비단 상흔일 뿐만이 아니라 따뜻한햇볕처럼 미래를 비추는 양분으로도 작용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당시의 역사적 사건이 현재를 사는 아티스트의 화폭에는 어떻게 담길까? 서울시립미술관의 ‘3·1운동 100주년 기념 현대미술 전시, 모두를 위한 세계’는 3·1운동 이후 100년의 역사를 동시대 미술의 지평과 세계사적 토대에서 재조명한다. 전시는 3·1운동이 이후 타국에 거주 중이던 유학생들의 총체적 움직임을 낳았다는 점과 중국의 5.4운동이나 인도·필리핀·동남아시아· 아랍지역의 민족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짚어보며 3·1운동이 갖는 세계사적 의의에 대해 고찰한다. 각각의 작품들은 피지배계급 개개인의 삶에 주목함으로써, 계급이나 불평등을 거부하고 무시되어온 집단의 문화를 회복하는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나간다.
이외에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3·1독립선언서·윤봉길선언서·이육사 친필원고 등의 독립운동 문화재를 활용한 특별전을 개최하며,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에서도 다양한 관점으로 한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고민해볼 자리를 마련한다.
글·정리 박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