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태어난 악기들 – PART1

이 시대에 태어난 악기들 음악의 한계를 부수고 경계를 확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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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4월 15일 9:00 오전

SPECIAL

시대에 발맞추어 악기의 경계 또한 확장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악기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시간의 흐름과 함께 확장된 다양한 악기의 모습을 만나보자

 

악기, 시대를 닮다

INTERVIEW①

임종우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및 뉴미디어음악전공 교수

GREAMA 한양대학교 전자음악연구소장

현대음악 및 전자·컴퓨터음악 작곡가 겸 연구가

 

현대음악에 존재하는 다양한 악기

현대음악이라는 큰 범위 안에는 다양한 악기가 존재한다. 구멍을 내어 미분음을 낼 수 있게 만든 플루트처럼 기존의 악기를 변형시켜 음역대를 넓히거나 새로운 소리를 내게 만든 악기, ‘전기’를 통한 시도, 컴퓨터의 알고리즘을 이용한 것 등 모든 시도가 여기에 속한다. 1877년부터 1920년까지의 기술적 부분 또한 음악에 흘러들었고, 에디슨 축음기처럼 소리를 증폭시키거나 오르골처럼 시계태엽을 감는 형태를 지나 전기 작동에 의한 기록 장치가 나왔다. 영화에서 기록을 담는 필름처럼, 소리를 증폭하거나 기록을 담는 구조 자체를 사람들은 음악에 끌어들이고 악기화했다. 또한 신시사이저나 일렉트릭 기타, 디지털 피아노처럼 사람들의 여러 가지 기능을 소화하며 손쉬운 접근성을 지닌, 기업의 시장 윤리에 의해 발전되어 온 악기도 있다. 다시 말해 기존 악기의 확장, 전기 작동을 이용한 시도, 그리고 기업의 시장 논리에 의해 발전된 악기 등이 모두 현대 악기의 범주 안에 속하는 것이다.

초기 현대음악에는 대부분 전기를 통한 시도가 많았다. 미국의 타데우스 카힐(Thaddeus Cahill, 1867~1934)이 발명한 텔하모늄은 이후 등장한 수많은 전자악기의 전조를 보여준 초기 전자악기로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의 시초가 되었으며, 1980년대로 가면서 디지털 신시사이저나 샘플러들이 나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자유롭게 녹음하고 이것을 다시 기계적·전기적으로 가공, 테이프 몽타주 방법으로 구성한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 또한 전자음악의 시작을 이끈 중요한 흐름이다. 유리나 고무호스를 악기화하고 음정 체계를 만들어 연주한 것처럼 20세기의 신소재들 또한 악기 개량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퍼포먼스 자체가 하나의 악기가 되기도 했다. 세대가 시각적으로 바뀌어 가며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다. 카메라로 동작을 인식해 움직이는 방향에 맞춰 소리를 만들어 내는 등 소리를 내기 위한 제스처를 아예 음악 화하거나 빛을 활용하는 등 더욱 다양한 재료들이 음악에 첨가되었다. 이런 ‘몸짓’에 의한 악기들은 점점 소형화되고 센서화되어 착용하기 쉽게 만들어지는 추세다.

작곡과 연주를 겸비한 1인 체계가 많았던 이전 시대에 비해 작곡가와 연주자의 개념이 분리된 지금의 현상 또한 악기의 탐구에 영향을 미쳤다. 오랜 훈련으로 악기에 대한 전문성을 높인 연주자들이 기존의 악기를 가지고 여러 가지 소리를 탐구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악기에 구멍을 뚫거나 길이를 늘여 훈련받은 제한적 용법과 소리를 확장해보거나, 마이크와 같은 외부적 장치를 이용해 원래의 음역대를 넓히고 새로운 소리로 변형시키는 방법으로 이어졌다.

어떤 음악가는 환경 자체를 음악에 들고 오기도 했다. 미래파 화가이자 음악가였던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 1885~1947)는 우리 주변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을 악기(노이즈 오르간)와 음악으로 만들었고, 스티브 라이히 또한 주변의 소리를 테이프 리코더로 녹음, 이것을 실제 악보로 옮겨(피아노 페이스, 1967) 미니멀음악을 탄생시켰다. 이는 이후 ‘비디오 페이스(Video phase)’로 선보여지기도 했다. 모두 새로운 소리에 대한 탐구로 시작된 결과물이다.

 

한국의 현대음악 시장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우리나라에 현대음악 시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몇몇 협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국가의 기금지원으로 그때그때 만드는 공연 정도다.

그러나 요즘은 기금을 받아 운영되거나 지원금이 있어야 하는 예술을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예술이 무슨 예술이냐’는 식으로 공격을 한다. 이미 예술을 유희와 쾌락, 즐거움으로만 인식하는 사회에서는 또 다른 행동의 것이 ‘틀렸다’고 지적받지, ‘다르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이미 틀린 것으로 답이 내려졌기 때문에 다름의 교류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음악을 시도하기 어렵고 지원도 많지 않다. 이를 평가하는 가장 큰 기준도 결국은 얼마나 많은 관객을 유입해 얼마나 큰 매출을 냈고, 앞으로 얼마나 큰 경제적 파급력과 기대효과를 가지고 있느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시간의 작업이 필요한 악기 개발이나 개량에도 어려움이 있다.

자본주의가 커지며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예술을 자본 논리로만 따지지 않고,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계속 연구해 나갈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하고 있다. 이는 문화를 이익을 창출해야 할 소재로만 보느냐 아니냐에서 오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분야에서 굉장히 선진적으로 나아가며 그들에 비해 뒤지지 않는 실력과 기술, 아이디어를 가진 우리가 예술 분야를 개발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점이 너무 아쉽다.

물론 대중을 상대로 실험만 한다면, 당연히 시장도 외면할 것이고 대중도 외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예술도 상업적 논리 안에 갇히는 것이다. 모두가 현대음악과 악기 개발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대중음악도 아이돌 음악이 있는 반면 실험정신을 가지고 새로운 소리나 악기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언더그라운드’도 있지 않나. 클래식 음악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인벤터(inventor)가 되어야 하고, 누군가는 그것으로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우선 작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여러 패러다임을 생각해야 한다. 기존 악기들이 지닌 새로운 소리를 탐구하는 것에서 시작해 생각을 모으고 쌓아야 한다. 그래야 그 안에서 걸러진 것들이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씨앗만 뿌리고 백만 송이의 장미가 피기를 바랄 수는 없지 않나.

우리가 꼭 선두주자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가 정치·경제 등 여러 부분에서 성장한 만큼 현대 예술, 현대 음악도 선입견 없이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러한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다양한 인터페이스(interface)를 통해 제공되는 예술에 더 쉽게 다가가며 풍성한 음악과 문화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라 기자

 

 

INTERVIEW②

 

문종인

TIMF앙상블 프로그래밍 디렉터

 

통영국제음악제(TIMF)의 홍보대사로서 2001년에 창단된 TIMF앙상블은 창단 이래 국내외에서 지속적인 연주 활동을 하며 대표적인 현대음악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매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동시대의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특히 정기 연주 프로그램 ‘사운드 온 더 엣지(Sound on the Edge)’는 많은 현대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올해에는 총 다섯 번의 공연을 예정 중이며, 기존의 일신홀 외에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금호아트홀 연세로 무대를 넓혀 더욱 많은 관객을 찾아갈 계획이다.

 

올해 ‘재창조: 신선하게 더럽혀진 음악 III’에서 시보드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TIMF앙상블에서 시보드(Seaboard)를 구매해 지난해 처음으로 작품을 선보였고 올해는 작곡가 안성민에게 작품을 위촉했다. 이 역시 관객층을 넓히기 위한 새로운 시도 중 하나인 동시에 흥미로운 작업이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악기를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아직은 시행착오 단계에 있지만, 악기 자체의 가능성을 가지고 계속 시도하는 중이다.

시보드처럼 새로운 악기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이유가 뭘까.

악기는 시대를 반영해오는 것 같다. 음악도 그때그때의 목적에 맞게 발전한 것처럼, 악기도 시대와 환경, 목적에 맞게 만들어지고 개량되는 것이다. 이전의 악기들은 작은 공간에서 연주되었기 때문에 그 음량도 작았다. 그러다 음악이 점점 대규모화되고, 공연장도 커지며 악기 또한 멀리까지 소리를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사실 요즘에는 ‘악기’라는 개념이 많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악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소리를 내지 않는 ‘빛’을 음악의 소재로 연주하고, 영상 자체가 음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악기라는 것은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것 같다.

새로운 악기에 대한 젊은 작곡가들의 반응은 어떤가?

악기와 연주자를 구하는데 드는 비용적 측면, 대부분이 초연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잘 시도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기존의 악기를 가지고 소리를 탐구해보는 것 또한 악기가 상한다는 이유로 잘 허용되지 않고. 새로운 악기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악기를 위한 레퍼토리도 계속 확장되어야 하는데, 이런 이유로 인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를 활용한 연주 형태가 더 많아지는 게 아닐까.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TIMF앙상블은 매년 다양한 현대음악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3월 ‘사운드 온 더 엣지’의 첫 공연으로 ‘재창조: 신선하게 더렵혀진 음악 III’을 선보였다. 재창조(Re-creation) 시리즈의 세 번째 무대로, 이전의 것을 다시 재활용하고 재창조하는 등 다양한 접근으로 음악을 보여주는 시도를 담고 있다.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현대음악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공연의 관객층 대부분이 작곡가나 평론가, 혹은 작곡을 공부하는 학생들이었다. 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관객층을 흡수하기 위해 ‘현대음악’이라는 단체의 정체성과 중심은 지키되, 영역을 넓혀 현대 예술의 측면을 바라보려 한다. 필요에 따라 현대적 연출 혹은 다른 예술가의 협업을 통해 하나의 주제만 표현할 수 있다면 더 다양한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이미라 기자

3월에 공연된 ‘재창조: 신선하게 더렵혀진 음악 III’ ©Sihoon Kim/Ensemble TIMF

‘사운드 온 더 엣지’ 시리즈

미니멀리즘 크래프츠 | 5월 16일 일신홀

스티브 라이히 두 대의 피아노와 퍼커션을 위한 콰르텟 외

콘체르토 그로소 | 8월 21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클로드 비비에 ‘지팡구’ 외

TIMF앙상블 연주자 시리즈 10 | 11월 22일 금호아트홀 연세

스크랴빈 소나타 3번 Op.23 외

한국작곡가의 밤 | 12월 19일 일신홀

박정규·조광호 외 위촉초연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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