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최신작 ‘스쿨 오브 락’, 한국을 찾다
스크린 속 록 음악을 열창하며 날뛰는 코미디언 겸 배우 잭 블랙의 모습을 상상한 것이라면, 맞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으로 알려진 뮤지컬계의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영화 ‘스쿨 오브 락’(2003)을 관람한 후 성공을 확신했고, 7년간의 협상 끝에 ‘파라마운트 픽처스(Paramount Pictures)’로부터 뮤지컬 제작 권리를 획득했다.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은 1971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이후 44년 만에 웨스트엔드가 아닌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웨버의 작품이란 타이틀만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연출가 로렌스 코너를 포함한 제작진이 참여하며 완성도를 높인 작품은 2015년 브로드웨이 초연, 2016년 웨스트엔드에서 공연되며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거머쥐었다. 이후 미국·호주 투어를 거쳐 최초의 월드투어를 확정한 ‘스쿨 오브 락’은 중국에 이어 오는 6월, 한국을 찾는다. 이번 월드투어의 연출은 브로드웨이 초연부터 협력 안무 겸 연출을 맡은 패트릭 오닐이 맡는다. 지난 4월, 프레스 컨퍼런스를 위해 한국을 찾은 패트릭과의 대화는 유쾌했다.
–영화 속 잭 블랙이 맡았던 ‘듀이’ 역의 배우 코너 존 글룰리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 대한 첫인상이 궁금하다.
어제 새벽 한국에 도착했다. 인사동과 북촌 한옥마을에서 해가 뜨는 것을 바라봤는데, 무척 아름다웠다. 학교 기숙사 시절, 서울에서 온 룸메이트로부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멀게 느껴졌던 터라 그 친구에게는 그의 고향을 가는 것이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코너와는 미국 투어 공연을 거쳐 한국에서도 함께 하게 됐다.
이 작품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많지는 않다. 특정한 형식으로 노래할 수 있어야 하고, 젊은 에너지가 있어야 하며, 군인같이(웃음) 일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코너는 웨버뿐 아니라 프로덕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다. 록 정신과 맞닿아 있는 ‘미국스러움’을 표현하는데 우두머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코너다.
–록 밴드에서 쫓겨난 듀이가 명문 사립학교인 ‘호세 그레이스’의 교사로 위장 취업하면서 만나게 되는 학생들 역시 또 다른 주역이다.
뉴욕·런던·멜버른·중국 등 우리가 거쳐 온 프로덕션 중 가장 잘하는 배우들을 한국 공연을 위해 모았다. 오직 한국만을 위한 캐스트다. 특히 한국에서는 학생들의 공연 방식을 뉴욕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할 예정이다. 뉴욕에서는 각 배역에 맞는 배우가 존재하는 것이 전부였다면, 한국 공연의 학생들은 여러 개의 캐스트를 번갈아 맡는다. 드러머가 키보드 연주자가 되기도 하고, 밴드 매니저가 기타 플레이어가 되는 식이다. 우리가 찾은 친구들의 실력을 모두 뽐내고 싶기 때문인데, 공연에서는 이들의 각기 다른 재능들을 보게 될 것이다.
–듀이 역의 배우뿐 아니라 학생들 모두 연기하면서 하드록 기타 리프 등 직접 라이브 연주를 선보인다. 이들의 캐스팅이 쉽진 않았을 것 같다.
학생들의 경우, 배우가 아닌 일반 아이들을 주로 뽑는다. 다만 연주나 노래를 잘하는 친구들을 뽑는데, 연출가로서 해야 하는 일은 이들이 하는척 하지 않고 이미 가진 능력을 자연스럽게 끌어낼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지도를 그려준다, 그다음 비켜준다’라고 표현한다. 뉴욕 초연에서 드러머 역할을 맡았던 친구는 불과 오디션을 보기 2주 전까지 미식축구 선수였다. 원래부터 잠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던 친구들이 굉장한 실력을 지닌 음악팀의 도움을 받아 진정한 록스타로 거듭나게 된다. 엄격한 규율에 얽매여 있던 ‘호세 그레이스’ 학생들이 듀이를 만나며 점차 록 음악에 눈을 뜨고, 진정한 자신을 찾게 되는 작품 속 스토리와 꽤 비슷하다.
–연출가 로렌스 코너로부터 얻은 조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운 좋게도 로렌스와 세 개의 다른 프로덕션에서 함께 작업했다. 보고, 듣고, 배우면서 그의 좋은 점을 흡수할 수 있었다. 핵심은 ‘아이들이 진짜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정형화되거나 특정한 유형의 인물처럼 느껴지지 않고, 현실 속 인물 같아야 한다는 말을 강조했다.
–잭 블랙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와의 차이점 역시 궁금하다. 구조적으로는 영화 스토리 라인의 90% 이상을 가져왔다. 차별화한 것은 영화에 없는 부분을 더한 것이다. 부모와 학생들 간의 관계를 무대 위에서 보여줄 뿐 아니라 교사들의 이야기도 추가하여 학교 내부의 색깔을 특색 있게 표현했다. 듀이와 교장 로잘리 간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극적인 구조를 부각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사랑했던 것들을 더욱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다.
레츠 록, 레츠 체인지!
인류의 역사는 저항의 물결과 함께 발전해왔다. 1960~1970년대 미국에서는 기성세대에 반기를 든 젊은 세대의 저항 정신이 ‘록’이라는 음악 형태로 표출됐고, 이후로도 록 음악은 혁신과 도전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자리했다. 오늘날 록 음악이 전자음악과 팝 음악 등에 밀려 조금씩 자리를 잃어가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하나, 록은 더 이상 음악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정신(Spirit)’으로 존재하는 록 음악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다. 패트릭 오닐이 말하는 록 스피릿은, ‘변화’에 보다 가까웠다.
–어제 진행한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록 스피릿은 ‘본인을 더 큰 존재로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모든 등장인물은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다. 듀이는 성공을, 로잘리는 어른이 되며 잃어버렸던 것들을 열심히 찾으려 하지만, 자기만의 일상에 갇힌 이들은 이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음악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웨버는 음악이 그들의 삶을 해방하고, 갈등에서 헤어 나오게 하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작품이 전개되면서부터 이들은 자신을 붙잡던 과거나 비관적인 생각을 털어버리고 삶 자체를 즐기게 된다. ‘스쿨 오브 락’이라는 작품 그 자체, 그리고 작품 속 인물들이 겪게 되는 여정 하나하나를 록 스피릿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품에는 록 음악 외에도 다양한 음악들이 함께 등장하는데.
웨버는 영화에 사용된 3곡에 새롭게 작곡한 14곡을 추가했다. 록 음악에서부터 클래식 음악·팝 음악·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조화를 이루며 스토리를 유기적으로 끌어간다. 특히 모든 캐릭터가 각기 다른 음악적 정체성을 갖고 있다. 로잘리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아리아를 차용한 ‘퀸 오브 더 나이트’ 등의 넘버에서 성악적인 발성을 보여주고, 듀이는 중독적인 멜로디와 강력한 록 사운드를 선보인다. 학생들은 팝에 가까운 음악을 하며, 성인 배우들은 19세기 뮤지컬 코미디를 선보였던 작곡가인 설리번 스타일과 유사한 음악을 한다. 하지만 출신이나 음악적 배경과 관계없이 극이 끝날 무렵에는 한데 어우러져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내는 것이 흥미롭다.
–작품 초반 ‘호레이스 그린’ 학교 장면에서는 주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엄격하면서도 고전적인 학교 분위기를 강조하고자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느낌이 나는 노래를 차용했다. 이 음악들은 듀이가 음악 수업을 처음 목격하는 장면에서 학생들로 구성된 교향악단이 직접 연주할 예정이다. 이들의 음악적 재능을 확인한 듀이는 본격적으로 경연 대회에 나갈 밴드를 학생들과 함께 조직한다. 처음 시작할 때의 학생들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식만을 갖고 있지만, 듀이는 점차 그것을 산산 조각내며 또 다른 음악 스타일로 발전시킨다. 실제 오디션에서도 드러머를 제외하고는 기타 연주자들은 클래식 기타를, 피아노 연주자들은 소나타를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베이스 연주자 중에도 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처음 접한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클래식 음악이 모든 음악의 기초가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에서 흘러나오던 AC/DC와 같은 실제 록스타들의 음악도 들을 수 있나?
꼭 듣게 될 것이라고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스티비 닉스의 음악이다. 다만, 이들의 음악적인 멜로디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선 조심스럽다. 익숙한 음악 선율이 흘러나오면 관객들은 잠시 극의 흐름에서 벗어나 음악 자체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안무, 이미지, 의상 등의 요소를 통해서 록 스타들의 흔적을 작품 곳곳에 숨겨두었다. 듀이가 닉 재거처럼 춤추고, 어린 피아니스트는 프레디 머큐리처럼 연주하며, 어린 디자이너는 데이비드 보위의 옷차림을 재현하는 식이다.
–록 음악을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극 중 전반적으로 미국적인 정서가 흐른다. 이 작품이 한국 관객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록 음악을 소재로 하긴 했으나, 이는 일종의 메타포로 사용됐다. 은유하는 개념은 ‘절대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통하기에, 놀기에, 노래하기에, 사랑하기에 늦은 시기는 없다는 것을 록 음악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했고, 여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록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작품이다. 록은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의 일부인 것이지, 단순히 시끄러운 음악이 아니다. 오페라나 클래식 음악을 사랑한다면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마치 ‘호세 그레이스’ 학생들과 로잘리처럼 말이다. 조금씩 로큰롤로 빠져드는 과정을 맘껏 즐기길 바란다. 특히 영화에도 나오는, 뮤지컬의 마지막 넘버 ‘스쿨 오브 락’에서는 한국 관객들의 떼창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글 권하영 기자 사진 에스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