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2017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첫 전국 투어(울산·제주·수원·강릉·천안·광주·대구·경주·부산·서울) 공연을 갖는 선우예권. 이제 그는 콩쿠르 우승자로서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갖고 새로운 여정의 길을 가고 있는 예술가로서의 무대를 보여줘야 할 때다. 클라라 슈만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며 그가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들은 클라라 슈만과 슈만, 그리고 브람스가 음악으로 남긴 그들의 사랑과 우정의 발자취를 선우예권만의 선율로 느낄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글 국지연 기자 사진 김용호
선우예권은 연주자가 가져야 할 미덕과 해석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음악적 무기가 무궁무진한 젊은이다. 무대 위 집중력과 제어력, 단단한 질감의 음상을 만들어내는 능력과 견실한 테크닉을 구사한다. 거기에 프레이즈를 조절하는 균형감각이 매우 예민하며, 즉흥성을 보이더라도 과도함의 선을 넘지 않아 단정하고 규범적인 건강함을 전달한다.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칼럼니스트 김주영은 선우예권 음악의 특징으로 ‘균형감각’을 강조한다. 이것은 30대 피아니스트가 갖고 있는 미덕으로는 흔치 않는 경우다. 하지만 오래전부터의 선우예권의 인터뷰를 들여다보면 그의 조화로운 음악들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는 인터뷰 때마다 언제나 그때의 나이에 맞는 겸손함과 건강한 자신감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 세계를 명확히 전하곤 했다. 그는 피아노에 빠져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밝고 평범한 이웃집 청년 같았다.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우아함은 선우예권의 반듯하고 선한 성품에서 나오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전국 투어를 앞두고 오랜만에 촬영장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애띤 미소가 매력적인 미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베를린에서의 조용하고 한가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베를린에서의 생활은 어떤가.
어린시절부터 미국에서 유학을 해서 영어권의 나라가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베를린에서 생활하면서 자연과 함께 느리게 흘러가는 균형잡힌 삶이 무척 만족스럽게 느껴진다. 미국에서 느꼈던 다양하고 화려한 문화와는 다른, 조용하고 어딘지 모를 고독한 분위기가 음악적으로 정신적으로 머리를 맑게 하고, 혼자 사색하고 휴식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 같다. 혼돈스러운 것들이 정리되고 다듬어지는, 직선들이 곡선으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바쁜 연주활동으로 힘든 면도 있을 것 같다.
요즘은 연주 무대가 늘어날수록 같은 곡들을 자주 연주하게 되는 경우도 많아 레퍼토리를 확장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칠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떤 곡을 연주하든지 나를 드러내는 자극적인 연주보다 그 작품의 본질을 전하는데 더 힘을 쏟으려 노력한다. 나의 공연을 듣기 위해 오는 청중을 위해 어떤 컨디션이든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평소에는 무엇을 하고 지내나.
산책하고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 한가할 때는 파스타와 찌개를 잘 하는데 친구들과 함께 음식도 해 먹고 나눠먹고 수다도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줄리어드 음악원에 다닐 때는 동혁이 형과 삼계죽을 끓여 먹으며 음악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연주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감정기복이 있고 외국에 있으면 외롭기 때문에 친구가 있으면 서로 위로도 하고 격려도 하며 힘이 많이 된다. 물론 너무 힘들 때는 그냥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쉰다. 독일은 그렇게 휴식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음악적으로는 어떤 것들을 배우고 느끼고 있나.
음악적으로도 음악 외적으로도 많이 보고 느끼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곡가들이 살았던 곳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도시의 저녁 노을과 해질 녘 잔 물결을 일으키며 투영된 달빛 같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면 작곡가들의 음악이 더 가깝게 느껴지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새로운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는 것은 감사한 일이면서 에너지가 많이 빠지고 지치는 일이기도 하다.또 같은 곡을 갖고 투어를 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쉽다.그때 그 순간에 최대한 집중하고 연주에만 충실하고 싶다
작년 TV 프로그램 ‘이방인’에 출연해 대중들에게도 다가가는 기회가 되었을 텐데, 어떤 경험이었나.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방송을 통해 클래식 음악가로서 대중들이 접근하기 어려워하는 클래식 음악을 자연스럽게 내 삶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조금은 친근하게 소개하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방송으로 나의 모든 걸 보여주기는 힘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음악의 더 다른 깊이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었으리라 믿는다.
같은 책, 같은 음악이라도 언제, 어디서 듣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 것 같다.
같은 작품을 연주할 때 그 순간마다의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음악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시 공간을 넘나드는 특별한 감동이고 그 안에서 늘 다른 기쁨과 슬픔과 위안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깊어진다. TV를 시청한 사람들이 새로운 분야를 접한 후, 관심을 갖고 클래식 음악 공연장에 오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연주자의 진짜 이야기는 무대에서 들을 수 있을 테니 그런 기회로 팬도 많이 생겼을 것 같다.(웃음)
방송을 통해 따뜻한 시선으로 내 음악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그다지 없었던 분들이 종종 연주회에 오셔서 음악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계기가 되고 즐기게 되셨다고 하니 참 감사한 일이다.
2017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첫 전국 투어 공연을 갖는다. 음악회 제목이 ‘나의 클라라’다.
올해가 클라라 슈만 탄생 200주년이어서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클라라 슈만을 중심으로 로베르트 슈만, 브람스로 구성해 음악적 동지로서의 영향력과 서로의 의미를 무대에서 표현하고 싶었다.
고전 레퍼토리를 특히 좋아한다고 들었다.
사실 이 세 작곡가의 작품 연주는 예전까지 불편한 옷을 입은 것처럼 편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최근 3년 전부터 이들의 음악이 가슴에 와 닿기 시작했다. 특히 브람스 피아노 2·3번 소나타를 연주하면서 몸과 정신의 균형이 맞혀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 세 작곡가의 사랑과 우정을 음악적으로 풀어가면서 서로가 느꼈을 음악가로서의 존경, 고뇌, 아픔들이 그들의 음악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어떻게 음악으로 자신들을 표현한 것인가.
슈만은 복잡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 다양함을 여러 음악캐릭터로 표현하며 드러냈다. 브람스는 내성적인 자신의 성향을 슈만에 대한 존경과 클라라 슈만에 대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라는 마음에 담아 표현했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끊임없는 갈구이며 그 과정을 통해 음악가들도 성숙해지는 것 같다. 사랑과 우정이라는 감정을 바탕으로 한 서로의 깊은 이해를 통해 각자 음악적으로도 균형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삶 역시 그런 균형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을 것 같은데.
우리의 삶 속에서 호흡이 중요하듯 연주 역시 호흡이 중요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호흡도 달라지고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도 생긴다. 음악 속에서 예전엔 보지 못했던 것이 어느 순간 보일 때가 있다. 감사한건 요즘 들어 숨을 더 편하게 쉴 수 있는 호흡이 생겼다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를 찾은 것 같고, 그 호흡으로 더 자연스럽게 음악을 연주하게 되었다. 전체적인 음악의 큰 그림을 이해하게 되면 연주자나 청중 모두 음악적인 전달력과 설득력이 높아진다.
이번 연주를 듣고 청중이 무엇을 얻고 돌아가길 바라나.
어떤 한 감정보다는 무수히 많은, 여러 감정을 가슴에 담아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이 가슴에 자그마한 불씨가 되었으면 한다.
클라라 슈만의 노투르노 Op.6-2, 로베르트 슈만 판타지 Op.17,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연주한다. 이 작품들은 어떻게 선곡했나.
로베르트 슈만의 클라라에 대한 내적인 갈등이 정열적인 피아노 선율 속에 녹아있는 판타지와 가슴 끓는 감정을 담은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은 어느 하나의 감정 보다는 삶에 지쳐 있거나, 사랑을 시작해 지금 막 행복해 하는 사람, 외로움에 고통스러운 사람까지 모든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는 감정의 폭이 넓은 작품들이다. 세 작품을 통해 인생은 결코 혼자가 아니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느꼈다. 이들은 함께여서 더 아름다운 그림이 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여서 좋은 음악 친구들이 많지 않은가. 그들은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서로의 존재 자체로 힘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가구 같은 느낌의 사람들. 노부스 콰르텟 멤버들과 음악적인 교류 뿐 아니라 함께 이 길을 걸으며 서로 많은 격려와 위로를 주고 받는다. 같은 세대의 연주자들과의 연주도 많이 해 왔고 그들과 무대에서 일상에서 즐거움을 많이 나눈다.
아름다움은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다
선우예권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건 세계적인 콩쿠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면서이지만, 사실 그는 실력에 비해 늦게 알려진 피아니스트였다.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수석 입학·졸업한 선우예권은 학창시절 뛰어난 연주로 이미 촉망받는 인재였고 전액장학생으로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해 세이무어 립킨을 사사하며 졸업할 때는 라흐마니노프상을 수상할 만큼 미국에서도 주목받았다. 이후 줄리어드 대학원에서 로버트 맥도널드를 사사하며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상을 수상했고 매네스 음대 전문연주자과정을 리처드 구드 사사로 졸업했다.
국제 콩쿠르 수상 경력 역시 화려하다.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와 방돔 프라이즈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룰 수상한 이후 센다이 콩쿠르 1위, 윌리엄 카펠 콩쿠르 1위를 비롯해 청중상 및 체임버상, 인터라켄 클래식 콩쿠르 1위 등 그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전에 이미 한국인 피아니스트 최다 콩쿠르 우승 기록을 갖고 있었다.
연주 경력은 링컨센터 에버리 피셔홀에서 이자크 펄만의 지휘로 줄리어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11월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지휘로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 초청 리사이틀을 포함해 세계적인 페스티벌에서 호평받으며 2016년에는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되어 리사이틀을 가졌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피아니스트로서의 첫 행보는 동네 작은 피아노 학원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스승인 피아니스트 신민자(숭실콘서바토리 교수)는 어릴 때부터 총기가 있었던 그를 하나를 알려주면 본질을 파악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아이였다고 기억했다.
“예권이는 어린시절부터 화려한 기교로 자기를 드러내는 음악을 하는 스타일의 학생이 아니었다. 점잖은 인격으로 진지하게 음악을 대했고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그의 음악은 기품이 있고 우아하다. 억지로 삶에서 이탈하지 않고 선을 벗어나지 않는, 그 안에서 절제된 연주를 하곤 했다. 학생으로서는 훌륭한 제자였고, 선배 피아니스트로서는 부럽고 감사한 연주가이며, 엄마의 마음으로는 사랑스러운 아들 같은 존재다.”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두 누나의 피아노 치는 모습이 부러워 어머니를 졸라 초등학교 2학년 때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피아니스트가 될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면 할수록 피아노 치는 게 흥미롭고 더 잘치고 싶었다. 그러다 나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독일로 유학을 가시면서 어머니에게 내가 음악을 계속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하셨다. 당시 나를 ‘원석’이라고 표현하셨다고 들었다.(웃음)
미래의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을 처음 알아본 분인가 보다. 그 후 본격적으로 전공을 위해 공부한 것인가.
김선화·신민자 교수님께 배우며 예원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실력을 쌓았다. 그 분들의 가르침이 지금 내 음악의 반석이 되었다. 그리고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미국 커티스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처음에는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한 마음에 울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언어도 늘고 친구도 생기다 보니 미국에서의 생활이 점차 적응이 되었다. 무엇보다 음악공부가 재미있었고 피아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혼자 공부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커티스 음악원의 세이무어 립킨 교수를 사사했는데 가장 큰 가르침은 무엇이었나.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리고 나의 음악이 커지기 위해서는 피아노뿐 아니라 책·오페라·교향곡·영화·미술 같은 예술 분야를 많이 접하라고 늘 말씀해주셨다. 커티스 음악원에서는 연주회가 자주 열리는데 그때 했던 연주들이 훗날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럼 콩쿠르에 처음 도전한 것은 언제인가.
처음에는 유명한 콩쿠르에 빨리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많은 경험을 다양하게 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당시 세이무어 립킨 교수님은 계속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 시간을 음악적으로 완벽하게 준비하고 예술을 공부하는데 잘 사용하라고 하셨다. 선생님 덕분에 내 또래 친구들이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는 시간에 학교에서 하는 다양한 연주 무대에 서고 레퍼토리를 넓혀가면서 음악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그것이 그 뒤 콩쿠르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해주었다.
국제 콩쿠르에서 굉장히 좋은 성과들이 있었다. 콩쿠르의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수많은 콩쿠르를 통해 계속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준비하는 동안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콩쿠르는 내가 게으르지 않고 음악 안에서 성실할 수 있도록 자극이 되었다. 특히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정신적으로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후회없이 준비했던 콩쿠르였다.
콩쿠르를 필요악이라고들 한다. 콩쿠르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은가.
우선 여유를 갖고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준비는 치열하고 견고하게 해야 한다. 콩쿠르는 연주자의 마지막 목표가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연주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자신에게 잘 맞고 원하는 콩쿠르에 도전하는 것은 필요한 것 같다. 무엇보다 연주를 할 때는 자신만의 호흡이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연주한다면, 그 결과를 본인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콩쿠르에서는 벗어났지만 진정한 연주자가 되는 여정 속에는 더 큰 고민들이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는 것은 감사한 일이면서 에너지가 많이 빠지고 지치는 일이기도 하다. 또 같은 곡을 갖고 투어를 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쉽다. 그때 그 순간에 최대한 집중하고 연주에만 충실하고 싶다.
바쁜 연주 일정 속에서도 새로운 레퍼토리들을 많이 연주하고 있다.
학창시절 세이무어 립킨 교수님은 한 곡 보다는 여러 곡을 다양하게 공부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새로운 곡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새로운 작품 익히는 것을 즐긴다.
최근 들어 감동적인 연주를 본 것은 언제인가.
안드라스 쉬프의 연주는 늘 좋아하긴 했지만 첫 라이브 연주를 듣게 된 것은 2018년 2월이었다. 개인적 친분은 없지만 한번 듣기만 해도 악보의 모든 화성과 각 성부의 선율들이 눈앞에 그려지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는 음악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도 정확한 구도와 섬세함을 가진 분 같았다. 오직 음악에만 헌신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음악 속에 자신의 삶 전체는 담는 것 같다. 연주하는 것 자체가 축복임을 연주로 말씀하고 계시는 분이다.
새로운 목표들은 무엇인가.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사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작품들을 연주할 때면 모든 것을 쏟아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하루 하루 발전하는 나를 보면 새로운 동기부여가 된다. 독주회 이후 2019년에는 협연 무대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많이 예정되어 있다. 한국에서 12월에 덴마크 로열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
듀오와 실내악 무대에서의 활동도 활발하다.
한 작곡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피아노 독주만으로는 역시 힘든 부분이다. 다양한 실내악 연주를 통해 그의 음악 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으니까. 오페라나 합창곡을 듣거나 그가 쓴 편지를 읽는 것 등 이해하기 위한 통로는 넓다. 그리고 실내악 연주는 함께 호흡하는 그 순간의 기쁨이 남다르다. 그들과 함께 연습하고 무대에 서는 시간도 소중하다.
언젠가 슈베르트 후기 작품과 베토벤 후기 작품들을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영적으로 깊어지는 것 같고 가슴에 여운이 깊이 남는 작품들이라 좋아한다. 이런 종류의 작품들은 연주할 때 내가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시간이 갈수록 그 안에서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는 그런 작품들이어서 더 무대에서 연주하고 싶다.
음악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음악이 없었다면 내 삶도 의미 없었을 것이다. 사실 연주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불균형 속에서 잦은 충돌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는 때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들도 연주를 하면서 작품이 깊이 빠져드는 순간에는 잠시나마 조화로워진다. 무대에서 연주하는 그 시간만큼은 정말 특별한 순간이기 때문에 음악을 통해 내 자신이 위로와 힘을 얻는다. 모든 감정을 진심으로 느끼고,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삶의 가장 어려운 순간이 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때가 왔을 때, 음악 때문에 살고 음악 때문에 나의 길을 걸어가는 피아니스트이고 싶다.
2013년 센다이 콩쿠르에서 수상했던 선우예권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단정한 언어를 바탕으로 자기 색깔을 찾아가려던 고뇌가 느껴졌던 20대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은 청춘의 낭만과 애수가 깃들어 있었다. 얼마전 들은 그의 슈베르트 연주에는 어딘지 모를 깊은 여백의 미가 느껴졌다. 선우예권의 음악 여정이 어느덧 또 다른 지점을 지나가고 있는 듯했다. 사람의 진심이 움직이는 순간, 복잡한 것들이 가라앉고, 깊고 깊은 마음의 골짜기를 지나 직선에서 곡선으로 가는 그 찰나의 어디쯤.
선우예권 피아노 독주회 ‘나의 클라라’
5월 16일 오후 8시 울산 현대문화예술회관
5월 17일 오후 7시 30분 제주 아트센터
5월 18일 오후 4시 수원 SK아트리움
5월 23일 오후 7시 30분 강릉 아트센터
5월 24일 오후 7시 30분 천안 예술의전당
5월 27일 오후 7시 30분 광주 유스퀘어문화관
5월 28일 오후 7시 30분 대구 콘서트하우스
5월 29일 오후 8시 경주 예술의전당
5월 31일 오후 8시 부산 영화의전당
6월 1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