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5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그런 모습들을 본다. 일부러 꾸며낸 모습들. 내가 아닌 모습으로 겉을 포장하고, 그에 맞추어 내면까지도 바꾸려 하는 모습들. 그리고 이 모습에 사람들이 속을 것이라는 착각. 그러다 보면 나 자신마저도 꾸며진 모습이 진짜 나라는 착각에 빠진다. 다른 사람을 보는 시선도 그렇다. 내가 보는 모습이 상대방의 진짜 모습인가? 혹시 내가 만들고 상상한 이미지에 갇혀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특히 내가 실제로 만나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런 상상 속 이미지에 갇히기 쉽다.
내게 굳어진 베토벤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베토벤은 어떤 사람인가. 각종 사이트에 베토벤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사진들. 그 대부분의 사진 속 베토벤의 모습은 비슷하다. 살짝 주름진 미간에 날카로운 눈빛. 왠지 신경질적이고 시니컬한 인상이 다가가기 어려울 것만 같은 예술가를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수많은 장르의 작품을 쓴 음악가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베토벤의 음악은 왠지 심각하고 철학적이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런 소리들이 ‘베토벤다운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들은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의 연주로 무참히 깨졌다. 베토벤 하면 무심코 떠오르거나 기대했던 것들, 그 오랜 시간 동안 내 안에 쌓인 클리셰들이 부흐빈더의 연주를 듣는 순간 모두 무너졌다. 베토벤의 표정이 이렇게도 다양했던가!
부흐빈더의 연주는 인간 베토벤을 만나게 해주었다. 베토벤의 다양한 표정이 보였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정확하게 놓이는 듯한 타이밍과 명료한 소리, 마치 청년 베토벤을 보는 것 같은 움직임은 이런 다채로움을 배가시켰다.
초상화 속 베토벤의 굳은 얼굴은 어느새 수만 가지의 표정으로 눈앞에 그려졌다. 소나타 10번 3악장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경쾌했고, 환상곡풍의 소나타 13번은 부드러운 말투로 시작해 당시 베토벤이 겪었던 내면의 고뇌와 갈등이 그려지며 더욱 풍성하게 표현됐다.
8번 ‘비창’은 그 도입부부터 마음을 사로잡았다. c단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눈물을 머금고 옅은 미소를 띠는 청년 베토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2악장 아다지오의 메시지 또한 분명했다. 반복되는 주제 선율의 미묘한 변화들은 곡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있어 확실한 지표가 되었다. 마지막 론도 또한 마치 즉흥연주를 보는 것처럼 모든 주제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의 연구와 몰입 끝에 나온 ‘자유’, 그 자유를 담은 부흐빈더의 베토벤 연주는 마지막 ‘열정’ 소나타에서 절정에 달했다. 앞서 보여준 작품들에서 명료한 선과 음색이 돋보였다면, 여기에서는 조금 더 묵직하고 두터운 울림이 더 드러났다. 그렇게 격정적이고 자유분방했던 마지막 열정이 몰아치며 끝나자 관객의 탄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이처럼 열정적이고 가슴 벅찬 박수 소리는 정말 오랜만이 아닌가.
부흐빈더는 이날 무려 세 곡의 앙코르를 연주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3악장과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빈의 저녁’, 그리고 바흐 파르티타 1번 중 ‘지그’까지. 베토벤이 아닌 다른 작품에서도 그의 음악은 빛났다.
간혹 그 끝에 사람만이 남는 연주를 본다. 하지만 이날, 마지막까지 부흐빈더가 남긴 것은 ‘음악’이었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빈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