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춤을 추는 거야. 음악이 울리는 동안은 어쨌든 계속 춤을 추는 거야. 내가 하는 말 알아듣겠어? 춤을 추는 거야. 계속 춤을 추는 거야. 왜 춤추느냐 하는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멈춰버려.” – 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내내 후회했습니다. 이번 특집에서 장애예술을 다루겠다고 호기롭게 말했지요. 그런데 자료를 수집할수록 묘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이런저런 끊임없는 질문이 저를 괴롭혔어요. 그러다 우연히 하루키의 위 문장과 마주쳤습니다.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멈춰버려”라는 문장을 보고는 콧날이 시큰해졌어요. 장애예술을 억지로 규정하려고 한 제가 부끄럽기도 했고요. 사실 장애인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을 뿐인데요. 그래서 그들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에 대해 주목했습니다. 장애예술 정책 지원이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에서, 장애예술의 미학을 짚어보는 일은 필요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현재 국내에서 장애예술은 여러 가지 용어로 불리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장애예술, 장애인예술, 포용예술 등 적합한 명칭을 고민하고 있지요. 이번 특집에서는 ‘장애예술’이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좌담에서 오고 간 의견을 참고해 이렇게 표현하기로 하였습니다(123쪽 참고). 모쪼록 장애예술에 관한 폭넓은 담론이 형성되어 앞으로 알맞은 용어가 생성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대개 장애인이라는 특이성을 두고 장애예술을 평가하지요. 예컨대 장애인 연주자를 보고는 “장애를 가졌는데도 꽤 잘하네”라고 말하지는 않았나요? 예술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예술은 감정의 표출입니다. 그들이 지닌 감정의 깊이를 우리가 감히 짐작이나 할까요? 때로는 장애를 가진 신체가 표현의 확장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물론, 장애인이어서 가진 여러 한계도 분명 있을 테죠.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방법론이 장애예술에서 모색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시급한 건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장애예술을 즐기는 우리들의 마음이겠지요. 장애예술… 그냥 한 예술가의 표현일 뿐입니다
글 장혜선 기자
ISSUE
국내 장애예술 정책,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장애예술인의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위하여
장애예술인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한국장애인사(정창권 외, 2014)’에는 조선시대 장애위인 66명을 소개한다. 이 가운데 38%가 예술인이다. 조선시대 장애인 가운데 예술인이 많았다는 것은 예술이 조직이 아닌 개인 활동이라서 접근이 수월했기 때문이다. ‘세계장애인물사(방귀희, 2015)’에 137명의 장애위인을 소개했는데 이 가운데 58%가 문화예술 분야이다. 이 사실은 장애인에게 예술 활동이 적합한 직종이라는 것을 뜻한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넓은 인도 땅과도 바꾸지 않겠다며 소중히 여긴 사람은 셰익스피어이다. 그는 장애인이었다. 이 밖에 이솝, 세르반테스 등 세계 문학의 금자탑을 이룬 작가들이 장애를 가졌다. 르네상스 최고의 걸작인 ‘실낙원’은 밀턴이 실명한 후에 쓴 작품이다. ‘인간의 굴레’의 작가 서머싯 몸과 ‘데미안’을 쓴 헤르만 헤세는 언어장애인이었다. 베토벤은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청각장애 속에서 교향곡 9번 ‘합창’을 작곡했다. 세계적인 화가 프리다 칼로도 소아마비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장애가 심했다. 프리다 칼로는 화폭에 강인한 생명력과 자유를 담았는데 그것이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 세계 많은 사람들을 작품 속에 끌어들였다. 프랑스 인상파 창시자인 모네는 화가로서는 최악의 조건인 사시와 색약을 갖고 있었다. 르누아르는 말년에 관절염으로 붓을 쥘 수 없어서 손에 붓을 묶어서 창작을 했는데 작품 ‘목욕하는 여인들’은 그가 죽기 며칠 전에 완성한 명작이다. 조선시대 장애예술인 가운데에는 문인(文人)이 가장 많았다. 고순, 조성기, 강취주, 장혼, 김성침, 강이천, 기정진, 지여교 등이 조선시대 대표 문인이다. 음악은 더욱 발전하여 시각장애음악인으로 구성된 단체를 장악원에 두어서 궁궐 행사 때 연주하면 관직과 녹봉을 줬다. 그 밖에 장애를 가진 이반, 정방, 김복산 등은 당대를 풍미하던 예술가였다. 역사 속에 무수히 많은 장애예술인이 존재했다.
현재 장애예술인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장애예술인은 1만 명으로 추산되는데(방귀희, 2013) 2012년 장애문화예술인실태조사(문화체육관광부, 2013)에 의하면 장애예술인의 82.18%가 발표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예술인의 활동에 어떤 지원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창작 비용 지원이 43.9%로 1순위를 차지하여 창작지원금에 대한 욕구가 가장 컸다. 2019년 장애인예술예산은 138억 원으로 장애인체육예산의 13% 수준에 머물고 있고, 공모사업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실시하는 장애인문화예술지원사업의 배분 현황을 보면 올해 예산 38억 6천만 원에서 장애예술인에게 지원되는 규모가 7억 원으로 18%에 불과하다. 장애예술인들은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장애인예술 업무를 관장하는 정부 조직은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국 예술정책과이다. 2013년 장애인문화예술 업무가 체육국에서 예술국으로 이관돼 조직 개편이 되면서 장애예술 정책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지만, 잦은 인사 발령으로 알맞은 정책을 꾸준히 펼 수 있는 전문가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장애인 업무가 있는 부서인데도 장애인공무원이 없어서 장애 인지(認知) 감수성이 매우 떨어지는 행정을 하고 있다.
장애예술 정책 제안
이제부터는 장애예술인 욕구에 맞는 예술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20여 개의 장애인복지 관련 법률 제정을 통해 장애인복지는 양적으로 발전했다.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자존감을 높여야 행복을 느낀다. 장애인의 다양성을 인정해주지 않은 복지 서비스로는 장애인의 만족도를 높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예술을 하는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기에 다음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장애예술인창작지원금 제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예술인복지법에 장애예술인의 창작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조항을 넣어 ‘예술인복지법 일부 개정안’을 자유한국당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인 박인숙 의원이 대표 발의 했는데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어서 걱정이다. 이 법률에 여당과 야당 그리고 진보와 보수의 이념이 작용해서는 안 된다. 장애예술인을 위해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법안을 통과시켜줘야 한다. 둘째, 장애예술인후원고용제도로 장애예술인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라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으면 고용부담금이 부과되는데, 장애예술인을 후원하면 고용으로 인정해주는 제도이다. 기업은 장애예술인 고용으로 기업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고, 장애예술인은 취업 상태에서 소속감을 갖고 안정적으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 이 역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일부 개정으로 쉽게 시행될 수 있는 법안이다. 국회의원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주면서 호소하고 있지만 움직임이 없어서 더욱 부지런히 뛸 것이다.
해외 장애예술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사회통합 차원에서 장애예술 정책이 효과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영국은 장애인 차별과 사회적 편견 제거,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를 위해서 다양한 법령 제정과 함께 다양한 문화 활동과 예술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영국예술위원회는 두 차례에 걸친 장애평등계획(2007~2013)으로 예술 활동에 장애인의 참여를 극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프랑스는 문화예술교육 정책에서 일반인은 물론 장애인까지 그 대상이 광범위하다. 독일의 장애예술은 유크레아(EUCREA)가 대표하고 있는데 이것은 장애예술인의 지원을 위한 하나의 네트워크이다. 미국 VSA(vest special arts)는 장애인의 예술 활동을 위한 접근성 강화, 전문예술인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며, 장애인의 사회적 통합을 추구하기 위한 예술의 역할을 강조한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에이블 아트 운동’이 전개되면서 많은 장애인에게 문화예술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장애예술 정책에 비하면 우리나라 장애예술 정책이 얼마나 미미한지 알 수 있다.
장애예술인은 이미 준비를 마쳤다
장애예술인수첩(한국장애예술인협회, 2018)에 수록된 343명의 장애예술인을 분석한 결과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이 매우 전문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장애예술인들은 정상적인 등용문인 공모에 입상하여 데뷔한 경우가 62%나 되었고, 대학 졸업이 50.4%, 대학원 이상도 45%일 정도로 학력이 높았다. 이는 2015년예술인실태조사에서 나타난 대졸 58%와 대학원 이상 26.8%와 비교했을 때 대학 졸업 학력은 큰 차이가 나지 않았고, 대학원 이상 학력은 오히려 장애예술인이 훨씬 앞지르고 있어서 장애예술인이 비장애예술인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편견임이 입증됐다. 장애예술인들은 이미 전문적으로 창작 활동을 할 준비가 됐다. 그런데 일반적인 인식은 장애예술을 아마추어 수준으로 몰고 있어서 정부와 국회에서 장애인예술정책 마련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예술이 비장애인예술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글 방귀희(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