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유치엔 쳉

달라진 시선, 다시 만난 차이콥스키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8월 5일 9:00 오전

WELCOME INTERVIEW

차이콥스키 콩쿠르 이후 4년, 그의 음악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그를 처음 만난 건 초여름, 6월의 어느 날이었다. 한국에 도착한 지 만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그와 음반 한 장을 들고 마주 앉았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치엔 쳉. 대만 출신의 이 바이올리니스트는 24세의 젊은 나이에 국내외의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2009년 파블로 사라사테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과 2011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우승, 201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5위 입상 등으로 꾸준히 이름을 올리긴 했으나, 그를 국제무대에 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5년 제15회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통해서였다. 2011년, 2라운드 진출에 만족해야 했던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다시 도전한 그는 1위 없는 2위를 기록하며 주목받았고, 이후 세계 각지에서 독주와 협연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차이콥스키’ 음반이라는 또 다른 도전이 쥐어져 있었다. 지난 6월 5일 국내에 발매된 ‘차이콥스키’는 2017년 도이치 그라모폰 데뷔 앨범 ‘몽상(Reverie)’에 이은 두 번째 앨범이지만, 그가 콩쿠르 이후 또다시 차이콥스키를 꺼내 들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더욱이 수록곡 중 하나인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는 콩쿠르 마지막 무대에서 연주했던 곡이기도 하다. 데뷔 음반에서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였다면, 이번 앨범은 오롯이 차이콥스키로만 채워 집중력을 높였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직후 가장 먼저 시도했던 것이 차이콥스키 협주곡 음반이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내에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그리고 음반 엔지니어를 모두 결정하고 섭외하기가 쉽지 않았다. 규모도 컸지만, 내게 중요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충분히 준비하자는 결론을 냈고, 이번에 선보이게 되었다. 협주곡을 비롯해 ‘우울한 세레나데’ Op.26과 ‘왈츠 스케르초’ Op.34까지 모두 차이콥스키의 작품으로 채우며 작곡가와 그의 음악에 더욱 집중하려 했다.”

음반으로는 처음이지만, 콩쿠르 이후 이미 여러 오케스트라와 차이콥스키 협주곡으로 수많은 협연 무대에 올랐던 그였다. 이번에는 지휘자 미하일 플레트뇨프,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함께다. 수십 번도 더 연주했을 이 음악이 이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을까.

“어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를 만나느냐에 따라 같은 곡도 다르게 연주되곤 하는데, 이번 플레트뇨프와의 만남은 내게 굉장히 특별하게 다가왔다. 콩쿠르 이후 여러 오케스트라와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서른 번도 넘게 연주했지만, 플레트뇨프의 해석으로 바라본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특히 서정적인 부분이나 클라이맥스로 향해가는 발전부에서 오히려 살짝 템포를 늦추며 그 순간이 주는 특별한 하모니를 부각했다. 차분하게 시작해 폭발적이고 화려한 사운드로 발전시키며 더욱 큰 다이내믹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오케스트라가 내는 크고 풍성한 다이내믹 안에서 나 또한 작품을 향한 음악적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다.” 리허설을 포함한 녹음은 단 이틀 만에 완성되었다.

“첫날은 협주곡만 작업했고, 다음날 나머지 두 곡을 녹음했다. 특히 ‘왈츠 스케르초’는 짧은 리허설 후에 바로 녹음을 시작했는데, 마치 오랜 시간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춰온 것 같았다. 대게 음반 작업을 할 때 여러 번의 시도를 거치는데, 플레트뇨프는 기본적으로 두 번 만에 녹음을 끝내곤 했다. 모든 녹음이 다 끝난 후 그가 최근에 진행한 녹음 작업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단 한 번 만에 끝냈다 하더라. 지금의 나로서는 굉장히 놀랍고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콩쿠르라는 발판을 딛고 다양한 무대와 음반 활동을 이어가는 유치엔 쳉의 연주는 이전보다 더 자유로워졌다. 여유로움마저 느껴지지만, 그 이면은 여전히 치열하다.

“테크닉적인 면에 치우쳐 작품을 바라봤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작품의 이면에 더욱 깊게 다가가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음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나 자신과 관객 모두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음악을 느끼는 내 감정에 충실하며 억지로 꾸며내지 않는 것,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에 억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이 느끼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 좋은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재능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표현함에 있어 진정성이 없다면 결코 좋은 음악을 선보일 수 없을 것이다.”

음악가로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공항에서의 기다림”이라 답하며 웃음 짓는 그는 이어 연주자로서 경험하는 그 외의 모든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에 특별함을 느끼고, 여러 나라의 다양한 공연장을 찾아 새로운 관객과 만나는 그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타고난 연주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은 언어적 장벽을 허물고 소통을 가능케 한다. 내가 비록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음악을 통해 내 생각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또 무대에서 음악을 연주하다보면 수많은 잡념이 사라지곤 한다. 이처럼 음악은 복잡한 세상 속에서 쉼을 주는 선물 같은 존재다. 내게 음악이 갖는 의미,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 무대에서 연주해보고 싶은 레퍼토리가 너무나 많다. 지금의 목표는 스스로 어떠한 한계를 두지 않고 많은 것을 경험해보는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치엔 쳉, 그의 음악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됐다.

 

이미라 기자 사진 유니버설뮤직

 

Leave a reply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