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춤을 ‘안은미래’전

미술관에서 춤을 ‘안은미래’전 안은미의 세계에서 춤은 여가가 아니다. 그는 춤을 통해 얻는 유희가 우리 삶에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안은미래’전은 30년간 쌓아온 그의 철학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도록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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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8월 5일 9:00 오전

INSIDE EXHIBITION

‘안은미래’전 6월 26일~9월 29일 서울시립미술관 1층

 

“번아웃증후군은 다 타서 꺼져버린 탈진한 영혼의 표현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효율성만 중시하는 성과 위주의 사회가 가져온 병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능하기 위한 움직임과 개인의 유희를 위한 몸짓 사이에서 균형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전시가 있다. 무용가 안은미는 극장이 아닌 미술관에서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안은미래’전을 기획했다. 틀을 깨는 파격적인 안무를 선보이며 무용계를 놀라게 했던 안은미답게, 그의 전시기획 데뷔작 또한 범상치 않다. 30년 세월을 담은 설치 작품들은 사이키 조명 아래서 빛나고, 관람객은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된 무대 위에서 춤춘다. 안은미의 세계에서 춤은 여가가 아니다. 그는 춤을 통해 얻는 유희가 우리 삶에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안은미래’전은 그의 오랜 철학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도록 구현했다. 전시장 입구를 들어설 때부터 당신은 몸을 한껏 움직여야 한다. 길게 늘어진 안은미의 무용복들이 천장에 매달려있어 몸을 굽히지 않고는 입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황금빛 안은미 동상을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위엄을 덜어낸 안은미의 사진이 전시장을 가득 채운 수많은 공 안에 들어있다. 관람객이 공을 헤쳐 가며 작품 사이를 걸으면, 30년간 수많은 무대에 섰을 안은미들도 같이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안은미래’전에 와서 전시 작품만 보는 것은 반의 반쪽짜리 관람이다. 안은미는 퍼포먼스와 강연으로 구성된 전시 프로그램 ‘안은미야’를 기획했다. 강연에서는 철학자·건축가·과학자·시인·시각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앞으로의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다. 안은미의 활동을 담은 책 ‘공간을 스코어링하다-안은미의 댄스 콜렉션’의 필자들과 함께하는 북 토크도 열린다. 퍼포먼스는 관객이 직접 안은미로부터 춤을 배울 수 있는 ‘몸춤’과 무용단이 리허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눈춤’으로 구성된다. 대한민국 할머니들과 함께한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책임감에 짓눌려 경직된 아저씨들과 춘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쓰’ 등에서 일반인과 여러 번 협업했던 안은미는 춤과 거리가 먼 관람객까지 들썩이게 만드는 신기(神技)를 발휘한다. 7월 9일 몸춤을 체험한 관객에게 소감을 물어봤다. 미술 전공생 강정민(22) 씨는 “추상적인 현대 미술과 비교해 직관적으로 몸을 써서 자신만의 언어를 표현한 점이 좋았다”며 “작가가 연출한 전시의 일부가 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안은미와 춤을 추는 관객의 면면엔 발그레한 생명력이 돋아났다. 안은미가 공연에서 사용했던 원단을 이용해 만든 대형 쿠션 작품 ‘담요무덤’에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눕거나 기대어 놀았다. ‘안은미래’전은 30년간 멀거나 가깝게 자신을 지켜봐 온 불특정 다수에게 전하는 안은미의 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삶에 지쳐 춤을 잊은 당신에게 활기를 돌려줄 전시다.

안은미가 말하는 ‘안은미래’전

안은미는 ‘종이계단(1988)’을 발표하며 한국 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시작했다. 즉흥적이고 과감한 춤사위와 사회 현실을 반영한 주제, 실험적인 연출로 ‘무덤’ 연작 ‘회전문’ ‘레츠 고’ 등을 선보이며 국내외에서 인정받았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일반인의 몸짓을 문화 인류학적 관점에서 인식하고 춤으로 만들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무용가

전시와 프로그램 제목이 재밌다.

‘안은미래’를 발음대로 읽으면 영어로 ‘아는 미래(known future)’다. 내가 가진 긍정적인 에너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작명은 내가 전체적인 흐름을 알고 있으니까 직접 했다. ‘입춤’은 입으로 추는 강의고, ‘몸춤’은 내 몸으로 추는 춤. ‘눈춤’은 눈으로 보는 춤이다. 단순하다. 원래 삶이라는 게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30주년 행사를 미술관에서 연 이유는?

이번 전시는 나를 위해 기획했다. 내 이름이 많이 알려지긴 했으나 사람들이 나에 대해 잘 모른다. 무용 공연을 대중이 쉽게 즐기지 않아서다. 그에 비해 전시는 문턱이 낮다. 가까이 오기도 용이하다. 극장에서 무용가는 저 멀리 가상의 세계에 있고, 관객은 어두운 객석에 앉아서 본다. 그런데 미술관에서는 무용가를 코앞에서 보니까 신기해한다. 우리가 연습하는 걸 보면서 박수치고 사진도 찍는다. 전시는 공연보다 장기간 하니까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다. 나는 만나는 것 이상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한다.

 

 

정적인 전시와 미술관은 어쩐지 안은미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전시를 즐기는가?

곧잘 보러 다닌다. 그런데 전시가 너무 딱딱하다고 느꼈다. 지금은 화이트 큐브(전시공간의 개성을 배제시킨 근대 전시장을 일컫는 미술이론상의 용어)가 무너지고 몸을 깨우는 퍼포먼스 작품들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있다. 나는 춤을 전공했기 때문에 미술가들하고 접근이 좀 다르다. 내가 전시를 기획한다면 다르게 하고 싶었다.

무엇을 중점에 두고 전시를 기획했나?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집중했다. 전시 공간을 거대한 캔버스라고 생각했다. 서 있는 몸들이 회화가 된다. 똑같은 사람이 가만히 서 있어도 전시장의 조명이 계속 바뀌면서 매 순간 다른 그림을 만들어낸다. 일부러 기존 전시장에서 보이는 걸음걸이나 태도와 다르게 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관람객이 영상작품이 나오는 모니터를 보려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 무대에서 춤도 추고 전시장에 깔린 공도 ‘뻥뻥’ 차게 했다. 설치작품이 부서지면 부서진 채로 둘 생각이다. 3개월의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전시하는 거다. 뜯어지면 꿰매고 떨어지면 본드로 붙이고.

30년에 걸친 창작 활동의 결과물을 전시하며 어떤 기분이 들었는가?

전시장 입구에 걸려있는 옷이 한 400벌 된다. 어마어마한 양인데 걸어놓으니까 몇 벌 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더라. 다 내가 디자인해서 입고 췄던 의상이라 익숙한 것들인데 다른 공간에 안착하니까 새롭게 느껴졌다. 옷은 무대에서 무용수가 입고 있어야 하는데 전시장에 걸려있으니까. 사실은 더 낮게 해서 나의 역사를 헤치고 들어가면 그 뒤에 골드 여신상이 나타나게 하고 싶었다.

무대 위 알록달록 생동감 있는 의상은 이제 ‘안은미의 감성’, ‘안은미의 개성’으로 여겨지고 있다. 의상은 당신의 작업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의상은 캐릭터기도 하고, 시각적인 기억이기도 하고, 기능이기도 하다. 원색이나 형광색처럼 내 옷에 쓰이는 색깔은 무용복으로 잘 안 입는 색깔이다. 지루한 삶에 변화와 자극을 주는 것이다. 안무를 짤 때 원단을 옆에 두고서 그림 그리듯이 작품을 구상한다.

사람 사이를 잇는 예술가

설치작품 외에 전시 프로그램 ‘안은미야’에서 관객과 함께 춤추는 퍼포먼스도 선보이고 있다.

21세기는 완전히 변했다. 경계가 무너지고 관람자와 작가의 구분도 사라졌다. 이러한 변화에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나는 아마추어와 일반인을 많이 만나서 작품을 해왔다. 나는 예술가와 일반인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전시 체험 신청을 해놓고 부끄러워서 안 오는 사람들도 많다. 와서도 수줍어서 어깨를 굽히고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서 있다. 입시와 노동만 하는 사회가 몸을 가둔 것이다. 춤을 추면 정서적으로 다른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몸에서 똑같은 물질만 나오면 무엇이 즐거운지를 감지할 수 있는 기능이 떨어진다.

우리 삶에 춤이 그렇게 중요한가?

즐거움이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지금 시대는 기술이 발전해서 편해졌지만,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지 않게 됐다. 옛날부터 춤은 단지 몸을 흔드는 게 아니라 ‘살춤’, 살 힘을 얻는 방법이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사냥을 나가기 전에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면서 현실의 두려움을 이겨냈다. 종일 긴장한 채로 있으면 서로 공격밖에 안 한다. 춤추고 몸이 나른해지면 화도 좀 덜 낸다. 재벌이, 권력자가 춤을 춘다고 생각해보라. 귀엽게 느껴질 것이다. 춤추면 다 똑같아진다. 몸을 흔들 땐 계급이 무너지는 것이다.

일반인의 참여와 협업, 이 두 가지는 안은미 작품의 특징이면서 이번 전시의 특징이기도 하다. 1992년부터 안은미 공연의 음악을 맡아온 장영규와 2001년부터 무대 의상을 담당해온 윤관의상실 등 여러 협업자가 이번 전시에도 함께했는데.   무대 퍼포먼스와 설치 작품 등이 있는 이런 전시를 하려면 비용 면에서 부담이 크다. 그런데 내가 전시를 열겠다고 하니 그동안 같이 공연해온 팀들이 자기 일처럼 협업했다.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가 내가 살아온 30년의 재산이다.

협업자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면서 작업을 구체화하는가?

협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다. 제시되는 조건도 없다. 협업자를 믿고 전적으로 일을 맡긴다. 그리곤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협업한 지 가장 오래된 장영규와 일할 때 서로 말을 잘 안 한다. 내가 안무 구성을 짜면 장영규가 핸드폰으로 순서를 찍어간다. 나는 몇 박자인지 길이만 써서 보내준다. 그러면 본인이 알아서 음악을 만들어 오는 식이다. 다들 같이 오래 일해서 눈만 봐도 안다.

기자 간담회에서 “작가로서 다시 태어났으니 불로장생하는 것”이라던 말이 인상 깊었다.

작가로 입문했으니 앞으로 안은미만이 할 수 있는 전시를 할 생각이다. 나의 인생은 새로운 시작을 맞았다. 본격적인 직업 예술가로서 작업해나갈 것이다. 그간 내가 즐겁기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 여태껏 직업 없이 평생 놀았다. 딱 한 번 대구시립무용단장을 한 적은 있다. 공무원이라 매일 똑같은 곳에 출근해야 하는 게 너무 답답해 얼른 도망 나왔다. 난 역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 같은 어른, 자유로운 어른이 안은미의 상징적인 에너지다. 삶 안에서 예술을 확장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안은미래’전을 회고전이자 미래탐구전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어떤 미래를 탐구하고 싶은가?

동아시아로 갈 계획이다. 아시아 대륙이 젊은이들의 몸을 통해 만나는 무용 작품으로 가제는 ‘타이거 앤 드래곤스(호랑이와 용)’이다. 내년에 우리나라까지 포함해서 동남아 5개국의 밀레니엄 세대인 스무 살 무용수들을 초청할 예정이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스튜디오 수직과 수평/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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