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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오페라에서 푸치니 ‘나비부인’을 새롭게 제작해 초연했다. 13년 만에 다시 로렌 오페라에 오르는 작품이라 청중의 이목이 집중됐다. 제작진의 탁월한 팀워크와 창의성, 놀라운 캐스팅은 극찬을 받았다. 무엇보다 관중은 소프라노 서선영의 놀라운 무대 장악력에 갈채를 보냈다. 프랑스 연출가 에마뉘엘 바스테는 화려한 기모노와 일본풍의 연출 대신 대본에 충실했다. 그리하여 다른 연출에서는 감지할 수 없었던 몇 가지 디테일이 눈에 들어왔다. 초초는 열다섯 살이다. 그 어린 나이에 집안이 가난해지자 게이샤로 일했고 사랑 때문에 종교도 개종했다. 이러한 캐릭터를 기반으로 연출은 검소한 의상과 집을 설정했다. 테너 에드가라스 몬트비다스가 연기한 핑커턴은 로맨틱한 신사가 아니라 어린 소녀와 지나가는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는 피상적인 인물이다. 1막의 대사 중 “미국 여성과 다시 결혼하겠지만…”이라는 대사가 강렬히 귀에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른 조명 아래에서 첫날밤을 보내는 장면은 핑커턴이 정말로 사랑에 빠진 듯 보였다. 2막 코러스 장면에서 초초와 스즈키, 아이는 나란히 바다를 보고 앉았다. 이어서 역광으로 비치는 조명은 마치 눈부신 아침 햇살 같았다. 핑커턴의 귀환을 기다리며 꽃으로 집을 장식하는 장면에서는 공중에서 꽃들이 내려왔다. 시적인 장면이었다. 압권은 초초가 아이를 핑커턴에게 보내고 자살하는 장면이다. 소프라노 서선영은 혼신의 힘을 다해 드라마틱 한 감정을 쏟아냈다. 6월 23일 공연이 끝난 후 서선영을 만났다. 그는 화창한 웃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공연을 무사히 끝냈다. 대작이라 걱정이 많았을 텐데.
준비하는 동안에 내가 과연 이 작품을 해낼 수 있을지 계속 의심이 들었다. 정말 끝이 안 보였다. 다행히도 훌륭한 지휘자와 연출가 덕분에 많은 부분이 명확해지고 이해됐다. 표현할 때 둔하고 무거웠던 부분들은 세련되게 변했고 체력적으로도 편해졌다. 첫 공연이 끝나니 감사한 마음만 남았다.
이번 ‘나비부인’은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
1막 시작부터 끝까지 무대에서 연기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또한 이 역할만큼 길게 노래하는 오페라는 없다. 즉 이 작품은 거의 나비부인의 독백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음을 쏟아 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컨트롤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악기와는 달리 사람의 목은 조금만 무리하면 손상된다. 지휘자는 나에게 한 호흡에 강력한 소리와 연약한 소리를 함께 실어 내는 게 큰 강점이라고 했다. 연출가도 자신이 원했던 초초라고 기뻐했다. 2016년 함부르크에서 ‘카티아 카바노바’를 불렀다. 마지막 자살 장면에서 바닥이었던 무대 세트가 벽으로 변했다. 나는 그 세트를 타고 높이 올라가야 했다. 그때 고소공포증이 생겨서 못 할 것 같은 어려움을 느꼈다. 세 번의 공연 동안 손과 발에 땀이 흐르고 심장이 뛰었다. 그런데 심리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이번 초초 역이다. 다행히 로렌 오페라 소속 합창단에 한국인이 세 명 있는데, 후배 한 명이 많이 도와줘서 잘 해낼 수 있었다.
네 번째 참여하는 푸치니 작품이다.
미미, 리우, 수녀 안젤리카 이후 네 번째 푸치니 작품의 주인공이다. ‘수녀 안젤리카’ 또한 이 작품처럼 아이를 잃는 슬픔이 돋보인다. 그 작품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전막이 1시간 정도 되는 짧은 작품이다. 그러니 기쁨을 표현하는 부분이 전혀 없다. 반면 초초는 1막에서 핑커턴을 만나 사랑에 빠져서 3년이란 시간을 아이와 보낸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아이가 없어서 잘 모르긴 하지만, 혼자 아이를 기르는 일은 경제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힘이 많이 들 것이다. 큰 용기가 필요하고 강인한 성격이 요구된다. 이 작품은 사랑과 모성애 등 여성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두 시간으로 요약했으니 드라마틱 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초초가 소녀에서 어머니로 변하는 과정을 길게 보여줘 매력적이다. 나의 목소리와도 잘 어울려서 매우 기뻤다. 다음 푸치니 작품 중 하고 싶은 역은 ‘토스카’이다. ‘투란도트’는 10년 후에나 할 수 있지 않을까.
바쁜 와중에 커리어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2015년까지 바젤 극장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다가 한국에 들어갔다. 한국에 온 이후에도 함부르크, 런던, 베를린에서 여러 연주를 가졌다. 지금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객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공연은 학생들 시험 기간이어서 설 수 있었다. 바젤 극장 솔리스트 시절에도 1년에 두 번 밖에 공연하지 않았다. 작품을 세 번 하면 체력적으로 무리가 온다. 혼신의 힘을 기울일 작품은 1년에 두 작품이면 충분하다. 사실 이번에 맡은 역의 경우는 한 공연이 끝날 때마다 모든 근육이 다 아프다. 이틀 후 좀 회복되면 다시 무대에 올라야 한다. 공연이 없는 날에도 마음 편히 놀 수 없다. 이번 공연은 극장 쪽에서 날씬한 실루엣을 원해 다이어트를 했다. 현재 10킬로그램을 뺐다.
유럽과 한국에서 요구하는 커리어는 좀 다른가.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이후 한국에서 많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경력이 콩쿠르 입상보다 더 중요하다. 즉 극장 경력이 얼마나 됐고, 해 본 작품 수가 얼마인지에 따라 커리어가 쌓인다. 이외 무슨 학교 출신인지, 무슨 콩쿠르 입상자인가는 의미가 없는 편이다.
자신만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마지막 리허설 후 화려한 미래가 보인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노래하지는 않는다. 현재에 충실하고자 한다. 나의 최고의 테크닉은 진심이다.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오늘 선보인 사랑 장면만 하더라도 하는 척을 하면 청중이 금방 느낀다. 아이의 행복을 선택하는 장면에서 진실되어 보인다는 칭찬을 받아서 기뻤다. 핑커턴과 만난 첫날 30분 만에 키스를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직업이다. 즉 1분이라도 진짜 그 사람을 사랑해야지 청중도 그렇게 느낄 수 있다. 나는 다행히 감정 이입을 잘 하는 편이다.
동경하는 성악가는 누구인가.
나의 아이돌은 마리아 칼라스다. 그의 목소리는 가장 자연스러운 목소리이다. 목소리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노래한다. 다들 내 목소리가 공명이 뛰어나다고 칭찬하는데, 나는 진성으로 부른다. 여기서 진성이란 위로 띄우는 소리보다는 아주 날카롭고 납작한 소리를 말한다. 잘 울리는 극장에서 위로 띄워서 부르면 발음이 잘 안 들린다.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